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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머리를 바란다 허 경 심
초등학교 삼학년 셋째 딸과 미용실에 갔다. 허리 위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싹둑 잘라주고 싶었다. 하지만 머리 자르기 전 딸과 타협을 했다. 엄지와 검지를 오무리며 ‘요만큼’ 일 센티미터만 자른다고 한 것이다. 딸은 미용실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엄마 눈을 응시했다. 혹시나 엄마와 미용사가 머리길이에 대해 눈짓으로라도 주고받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리고는 미용사 눈도 뚫어져라 쳐다본다. 눈 깜박할 새 밀담이라도 주고받을까 눈을 떼지 못한다. 미용사가 딸을 미용의자에 앉혀 터번을 두른다. 그러는 사이에도 아이는 정면에 위치한 유리로 또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는 딸의 집요함에 미용사와의 ‘밀담’을 포기했다. 그런 엄마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아이는 여유있게 잘라지는 제 머리카락 길이를 눈대중으로 맞춰본다. 엄마도 따라서 길이를 계산한다. 정말 ‘이 센티미터’ 길이다. 바닥으로 잘려지는 머리카락은 짧은 길이만큼 속도도 빠르다. 엄마의 포기처럼 길이도 짧다. 정말 짧다. 미용사는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콧소리를 낸다. “어머 너는 머리 잘라도 예쁘니!” 한 옥타브 올린 목소리다. 아마 엄마와 아이의 불편한 관계를 메꿔주려는 듯 말을 건네는 것이리라. 아이는 잘려진 머리카락 길이를 보면서 미용사가 제 편이라 생각한다. 그제서야 굳었던 얼굴에 웃음을 띄운다. 미용사는 다시 매직기로 곱슬머리를 반듯하게 펴준다. 아이는 생머리로 바꿔주는 마술봉이 지나갈 때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반들반들 빛나는 머릿결로 연예인이라도 된 듯, 귀 옆머리 웨이브로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공주라도 된 듯. 터번을 벗으며 거울에 비쳐지는 딸아이는 엄마가 봐도 예쁘다. 어느 누군들 안 예쁘랴. 딸아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고정시킨다. 시선이 거울에 한참 머문다. 이튿날 셋째가 아침밥을 먹고 나서 한참동안 보이지 않는다. 학교 갈 시간이 되었는데도 기척이 없자 안방 문을 열어보았다. 아이는 오른손에 매직기를 잡고 왼손에 귀 옆머리 한 움큼을 잡고 있다. 그리고는 매직기 사이에 머리를 끼워서는 쭉 내린다. 그러면서 어깨아래까지 내려오는 머리가 짧다고 투덜댄다. 그러다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또다시 바라본다. 아이는 매직기가 지나간 것 만으로도 머리가 생머리로 변했다고 만족하는 눈치다. 매직기 코드는 콘센트에 끼워지지도 않았다. 타고난 곱슬머리가 눈에 거슬리는 삼학년. 요즘 그 초등학생의 손은 아침마다 바쁘다. 이층 높이로 자란 느티나무는 머리카락을 빳빳히 세운 직박구리를 불러 앉힌다. “직직” 울음소리가 생머리처럼 곧다. 또다시 “직직직” 참 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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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ㅎ 예쁩니다. 옷 입히랴 싸우고 머리단장 하느라 싸우고 그랬었는데 얼마전 이사를 하면서 어릴적 사진을 보다가 '엄마 나안테 신경 썼구나' 합니다. 속상했던 거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엄마와 딸의 실강이가 저희 집과 다르지 않아 웃음이 납니다.
글이 섬세해서 잘 읽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