清く聞ン耳香焼て郭公
清く聞(きか)ン耳香(かう)焼(タイ)て郭公(ほととぎす)
맑게 들리지 않는 귀에 향을 살라 두견새
두견새의 울음소리는 원래 맑다고 할 수 없다. 피를 토하며 우는 새라고 알려진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맑게 들릴 리가 없다. 맑게 들리지 않는 것이 두견새의 울음소리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의 귀에는 모든 것이 맑게 들리지 않는다. 모든 것이 맑게 들리지 않는데 그 중에서도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맑게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은 이 사람의 맑게 들음의 기준이 보통 사람과 다르기 때문이다. 맑음[清]이란 무엇인가? 나와 너, 나와 그 사이에 막힘이 없이 통하는 것. 두견새와 나 사이에 막힘이 없다면 그 소리가 맑게 들린다. 두견새가 꾀꼬리나 참새처럼 우는 것이 아니다. 두견새는 변함없이 두견새처럼 울지만 그 울음소리와 통하고 공감하는 것을 <맑게 들린다>고 하는 것이다.
맑게 들리지 않는 귀, 만물과 소통하지 않는/못하는 귀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귀, 듣고 싶어 하는 대로 듣는 귀. 이 불통의 귀가 향을 들으면 두견새 소리가 맑게 들릴 것. 이것은 생리적으로 불가능한 일. 이 일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현실이 아닐 것. 두견새 소리가 맑게 들리는 것도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소통과 공감의 공간에서는 가능한 일. 향을 사르면서 新異신이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을 향한 끝없는 추구의 길로 나아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