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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미래』를 읽고. 2015.12.22 동지에 시작.hwp
미치오 카쿠 저 『마음의 미래』를 읽고
무학산인 박희용
미래의 제국은 정신의 제국일 것이다
윈스턴 처칠
맞다, 미래엔 정신에 대한 탐구가 더욱 정밀해져서 정신을 조종하고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제국’이란 말이 갖는 어두운 이미지 때문일까, 윈스턴 처칠이라면 유명한 정치가 이상도 이하도 아닌 줄 알고 있는데, 이렇게 정신의 가치를 절대시하는 말을 한 줄은 진작에 몰랐다.
제목 다음 쪽 간지에 있는 처칠의 말 아래에 다음과 같이 썼다.
「마음은 지극히 개아적인 것으로 형체가 없어 본인이나 타인이나 결코 종잡을 수 없다. 남도 모르지만 자기 자신도 모른다. 단, 마음은 신체를 기반으로 그 때 그 때 영양 상태와 주위 여건에 따라 가변성을 띈다. 동물과 미물도 마음이 있다. 죽이려고 해 봐라, 벌벌 떤다. 애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을 100p까지 읽고 중단한 다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 『중국의 붉은 별』은 어디까지나 1936년의 사건이다. 2015.7.10 12:12에」
『마음의 미래』 1판 3쇄는 2015.4.27에 김영사에서 발행되었으며 저자는 미치오 카쿠이다. 그는 194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일본계 미국인으로 태어나 하버드대학교를 숨마쿰라데(최우수등급)로 졸업하고, UC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끈 이론, 평행우주론의 창시자로 현재 뉴욕시립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이론물리학계의 세계적 석학이자 독보적인 미래학자로 손꼽힌다. 과학 전문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기존의 우주 상식을 완전히 뒤바꾸며 우주 시대의 서막을 알린 『평행우주』, 아인슈타인의 상대서이론 이후 전 인류가 도전해온 과학의 모든 불가능에 종지부를 찍는 물리학의 세계를 밝힌 『불가능은 없다』를 집필하여 큰 화제를 모았다. 그 외에도 『비전』, 『아인슈타인을 넘어서』, 『초공간』, 『미래의 물리학』 등을 집필했다.
『마음의 미래』는 3부 15장 580p의 구조를 갖는다.
제1부는 ‘마음과 의식’이란 제목 아래 ‘마음 해독하기’와 ‘의식(물리학적 관점)’의 두 개의 장으로, 제2부는 ‘마음으로 육체를 극복하다’란 제목 아래 ‘텔레파시’, ‘염력’, ‘주문 제작된 생각과 기억들’, ‘아인슈타인의 뇌’ 등 네 개의 장으로, 제3부는 ‘꿈속에서’, ‘마음 조종하기’, ‘달라진 의식’, ‘인공정신과 실리콘의식’, ‘두뇌의 역설계’, ‘미래’, ‘순수한 에너지로 존재하는 의식’, ‘외계인의 마음’, ‘맺음말’ 등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어서 부록으로 감사의 글, 후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등이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 태양계가 속한 은하수에는 대략 1천억 개의 별이 존재한다. 이 숫자는 한 인간의 두뇌 속에 들어 있는 뉴런(neuron: 신경계의 기본단위 세포)의 수와 비슷하다.”라는 말을 먼저 한 다음, 후주에서 다음과 같이 두뇌에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을 제시한다.
“DNA에 저장될 수 있는 총 정보량은 4의 30억 승이다. 그러나 두뇌는 1천억 개의 뉴런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뉴런은 활성 상태나 비활성 상태에 놓일 수 있으므로, 두뇌가 취할 수 있는 초기 상태는 2의 1천억 승 가지나 된다. 게다가 DNA의 정보는 고정되어 있지만, 두뇌의 정보는 수백분의 1초마다 변한다. 아주 간단한 생각을 할 때조차 뉴런은 수백 단계에 걸쳐 활성화 된다. 그러므로 두뇌에 저장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최소 (2의 1천억 승)의 100 승 이상이다. 그런데 두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항상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뉴런이 N 단계에 걸쳐 활성화된다면 총 정보량은 (2의 1천억 승)의 N 승이며, 이 값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간단히 말해서, 두뇌에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DNA와 비교가 안될 만큼 방대하다. 이것은 (인간을 제외한) 태양계에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양보다 많으며, 아마도 은하수 전체의 정보를 합친 것보다 많을 것이다.”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 정신과 우주의 실체는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도전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정말 신기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들은 완전히 극과 극이다. 우주는 방대한 규모의 ‘바깥세상’으로, 블랙홀과 폭발하는 별, 충돌하는 은하 등 거시적 스케일의 온갖 현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정신세계는 내면의 공간으로,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환희와 분노 등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일들이 수시로 교차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주와 정신은 완전히 정반대 세계인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놀라울 정도로 동통점이 많다. 먼 옛날부터 우주와 정신은 미신과 마술의 대상이었다. 우주와 정신은 다양한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라고 말한다.
또한 “두뇌의 질량은 약 1.4kg밖에 안 되지만, 적어도 태양계 안에서는 그 구조가 가장 복잡한 물체이다(태양계 밖에서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어서 장담하기 어렵다). 사람 몸무게의 2%에 불과한 이 장기는 식욕이 엄청나서 생명유지에 필요한 에너지의 20%를 소모하며(갓 태어난 아기의 두뇌는 총 에너지의 65%를 소모한다), 유전자의 80%가 두뇌에 할당되어 있다. 인간의 두뇌에는 거의 1천억 개에 달하는 뉴런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고, 뉴런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이제 과학자들은 MRI를 이용하여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읽을 수 있고,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하여 생각만으로 물건을 움직일 수도 있다.”라며 두뇌구조 분석을 통해 정신세계를 연구하는 두뇌과학의 발달 정도를 말하고 있다.
더하여 “언젠가는 컴퓨터를 통해 특정 기억이나 기술을 사람의 뇌에 다운로드하게 될 것이므로, 기술은 인간의 지적능력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라고 하니, 인즉슨 미래엔 기술로 인간의 정신을 조작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몸도 교체할 수 있고 정신도 조작할 수 있으면, 그것은 인간세계가 아니라 기술, 기계세계이다. 즉 실제세계가 아니라 사이버세계인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이 자칫 공상소설로 읽히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인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뇌와 관련한 연구분야에서 온갖 가설이 넘쳐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설은 많을수록 좋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것이 공상이고 어느 것이 과학인지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다. 지금 신경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면에서 그 핵심은 현대물리학이다. 전자기학과 핵물리학은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비밀을 과학적인 언어로 풀어줄 것이다.”
또한 자기가 신경과학자가 아니면서도 이런 류의 책을 쓰는 명분을 다음과 같이 말하며 서문을 맺는다.
“물론 나는 신경과학자가 아니다. 그저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은 이론물리학자일 뿐이다. 하지만 가장 친숙하면서도 낯선 우주, 즉 인간의 정신세계를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새로운 방향으로 이해를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나의 희망사항이다.)”
이 말대로, 책의 곳곳에는 두뇌에 대하여 현대 신경과학이 해석한 부분은 실증물리학적 응용이, 미해석 부분은 이론물리학적 관점이 응용되고 있는데, 이론물리학적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 가설이란 전제 하에 전개되는 이야기도 많지만 자칫 과학적 상상력, 또는 허황된 공상이라고 여겨질 이야기가 다소 있기도 하다. 하지만 논리의 대개는 두뇌의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기반 위에서의 과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제1부 마음과 의식
「36~42p: 우리 뇌는 파충류 뇌에서 출발하여 포유류 뇌(대뇌변연계)를 거쳐 지금의 인간 뇌(신피질) 형태로 진화해 왔다.
파충류 뇌는 가장 안쪽에 있는 뇌간과 소뇌 그리고 기저핵을 묶은 것인데 약 5억 년 전에 생성 되어 진화역사가 가장 오래된 부위로서, 생명활동의 기본적 기능인 균형감각과 호흡, 소화, 심장박동 그리고 혈압을 관장한다. 또한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인 싸움, 사냥, 짝짓기, 영역보존본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파충류 뇌에서 출발한 뇌는 복잡한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바깥쪽으로 점점 자라났고, 부피가 커지면서 완전히 새로운 구조가 탄생했는데, 이것을 포유류 뇌 또는 대뇌변연계라 한다. 해마, 편도체, 시상, 시상하부로 이루어지며 두뇌의 중심부 근처에서 파충류 뇌를 감싸고 있다.
마지막으로 포유류 뇌를 감싸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발달한 대뇌피질로서, 두뇌의 가장 바깥부분에 해당한다. 이 중에서 가장 최근에 형성된 부위를 신피질(새로 생긴 껍질)이라 하며, 고도의 인식기능을 담당한다. 신피질이 가장 발달한 동물은 단연 인간이다. 인간의 두뇌는 전체질량의 80%가 신피질인데, 두께는 냅킨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쥐의 신피질은 매끄러운 반면 사람의 신피질은 복잡하게 꼬여 있어서 표면적이 훨씬 넓다. 인간의 두뇌는 바깥쪽으로, 그리고 앞쪽으로 계속 커지면서 기능도 다양해졌다.
신피질neocortex은 전두엽, 두정엽, 후두엽, 측두엽 등 크게 네 개의 엽葉으로 나눌 수 있다. 뇌를 구성하는 모든 엽은 감각기관에서 전달한 신호를 처리하는 데 전문화되었지만 단 하나, 이마 바로 뒤에 있는 前頭葉만은 예외로서, 전두엽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전두피질은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이 진행되는 곳이다. 이 부분에 손상을 입으면 앞일을 계획하거나 미래를 상상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전전두피질은 감각정보를 평가하고 향후 행동을 결정한다.
頭頂葉은 뇌의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중 오른쪽 절반은 감각 집중과 몸에 대한 느낌을 제어하고, 왼쪽은 특별한 기술과 언어 일부를 제어한다.
後頭葉은 눈을 통해 들어온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곳으로, 이 부위에 손상을 입으면 시력이 약해지거나 아예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
側頭葉은 언어와 얼굴인식, 그리고 특정한 감정을 처리한다. 이 부위에 손상을 입으면 말을 못하거나 친숙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신피질에서 특히 회색을 띤 부분은 수십억 개의 작은 두뇌세포, 즉 뉴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의 뉴런이 다른 수만 개의 뉴런과 연결되어 이들은 거대한 전화 네트워크처럼 다른 뉴런으로부터 신호를 수신한다. 또한 두 개의 뉴런이 연결되는 지점에는 시냅스라 불리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이것은 뇌 안에서 정보를 통제하는 일종의 ‘문’으로, 신경전달물질 같은 특별한 화학물질이 시냅스로 유입되면 신호의 흐름이 바뀌게 된다.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노르아드레날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은 두뇌에서 정보가 이동하는 수많은 경로를 제어하면서 우리의 기분과 감정, 생각, 마음 상태 등을 크게 좌우한다. 」
신피질은 컴퓨터 칩과 같다. 컵퓨터 칩이 발달하듯이 신피질도 발달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수천수만 년 동안에 걸쳐 신피질이 더욱 진화하여 신신피질이 되면 인간의 두뇌가 우주의 중심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컴퓨터 칩에 전기가 흐르듯이 두뇌에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흘러야 칩이 작동하듯이 두뇌도 전기가 흘러야 작동한다. 그러므로 인식은 두뇌의 전기적 작용이다. 마찬가지로 신경전달물질은 전기이다. 컴퓨터 칩의 전기는 단속에 따르지만 두뇌의 전기는 살아있는 인체에서 신경전달물질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기 때문에 일생동안 계속해서 흐른다.
그러므로 인간의 건강은 두뇌에 달렸고 두뇌의 건강은 신경전달물질에 달렸다. 또한 신경전달물질의 건강은 인체의 건강에 달렸다. 그래서 인체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흡수하는 공기, 물, 음식이 건강해야 한다. 이처럼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의 순수성은 물질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면에서도 중요하다. 즉 감각기관으로 흡수하는 경험의 순수성이 중요하다.
「44p: 환자를 눕혀서 두 개의 대형코일이 에워싼 실린더 안으로 밀어 넣고 전원을 켜면, 기기 내부에 강력한 자기장이 형성되면서 환자의 몸을 구성하는 원자핵들이 자기장의 방향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정렬하도록 하는 것이 MRI의 작동원리이다 (이것은 나침반 바늘이 자석의 방향에 다라 정렬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우주의 원자가 모인 인간은 지구자기장, 더 넓고 크게는 태양자기장과 우주자기장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만 할 수 없고, 자석에 문지른 바늘이 미약하고 일시적인 자성을 띠듯이 아주 미세하나마 자성을 띤다. 그러므로 일생 동안 외부 자기장의 영향을 받는 인간 역시 자기장이다.
‘두뇌에 생성된 전기장은 생각이 진행되면서 수시로 변하고, 이 ‘변하는 자기장’은 미세한 자기장을 만들어낸다고 미치오 카쿠는 말한다.
그런데 ’인간자기장의 세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자기장의 세기를 정신력 또는 염력이라 한다. 종교에서는 ‘기도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인간자기장의 세기는 두뇌건강에 달렸다. 특히 신피질의 활성도에 달렸다. 신피질은 오랜 인류역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해왔지만, 한 개인의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일생 동안에 더 많이 발전할 수 있으며 어떤 특수한 경험이나 자각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인간자기장의 실체인 道力 또는 靈性의 확대는 수행자의 내적인 노력과 외적인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약간의 확대는 가능하나 괄목할만한 확대는 어렵다. 몇 몇 聖人들이 이적을 발휘한 것은 인간자기장을 극대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대화가 극히 어렵기 때문에 성인이 극히 드물다.
이 책 후반부에서 미치오 카쿠가 강조하는 텔레파시 논리는 인간자기장이란 근거 위에 서 있기보단 뇌신경과학과 양자물리학의 관점에 서 있다. 미치오 카쿠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신피질의 발전에 따른 뉴런의 활성화 면이니 곧 내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고, 인간자기장론은 외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자기장의 발전 실체가 곧 뉴런의 활성화에 따른 신피질의 진화이다.
「45p: 뉴런에 에너지가 공급되려면 산소가 반드시 있어야 하므로, 산소를 함유한 피는 뉴런에 흐르는 전기신호와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우주 자체가 에너지이니 뉴런도 에너지다. 에너지는 원자에서 나오며 비록 무형이나, 원자의 크기가 전자현미경에 겨우 잡힐 정도로 초극미하여도 일단은 존재하기 때문에 유형이다. 원자들이 집합해서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유형이 된 것을 물질이라 하며, 물질의 이산집합을 물질대사 현상이라 한다. 생물체 내에서의 이러한 현상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은 반드시 대기 중에 있는 산소를 통해야만 에너지화 될 수 있으므로 물질의 에너지 변환은 대기, 즉 우주 에너지의 변환인 것이다.
뉴런이 신경전달물질과 산소를 통해 물질대사를 하므로 뉴런과 그 작용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 현상이다. 즉 에너지가 생산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두뇌 속에서도 작용하여 현상이 된다. 인간의 사고와 행위가 에너지에 바탕을 둔다. 그러므로 물질이 정신이고 정신이 물질인 것이다.
이것을 보면, 물질이 중요하냐 정신이 중요하냐, 또는 물질이 우선이냐 정신이 우선이냐 하는 문제, 주기론이냐 주리론이냐 하는 문제, 유물론이냐 유신론이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 고금에 걸쳐 전개된 수많은 논쟁들이 얼마나 허상과 허구 속에서 자맥질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소수 지식인들의 지적 사치와 우월, 오만과 편견 때문에 물질과 정신이 얼마나 혹사당했는지 알 수 있다.
원자계-분자계-무기계-유기계-현상계로 이어지는 일련의 순환과정을 보면 유와 무, 본질과 현상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도 이것을 통해 마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인간동물은 파충류 뇌, 포유류 뇌, 신피질 뇌의 단계를 밟으며 진화 중이다. 마음은 바탕에 감각 층 두고 그 위에 차례로 켜켜이 의식, 인식, 분별, 종합, 적용 등의 층을 둔 중층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파충류 뇌는 감각과 의식 층은 발달했으나 이후 층은 차츰 좁아지는 형태, 포유류 뇌는 인식 층까지는 발달했으나 이후는 차츰 좁아진 형태, 신피질 뇌는 모든 층이 잘 발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건물은 생물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각 층을 확장할 수도 축소할 수도 있으며, 층을 더 높일 수도 있다. 저능인이나 장애인, 범죄자나 정신이상자는 각 층이 발달하긴 했으나 오류와 빈틈이 생겼기 때문이다. 즉 마음의 벽이나 바닥에 하자가 있다.
마음은 또한 정신, 생각, 의식, 사상, 서정 등의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형이상학적 의미는 분별 층 이상에 해당되는데, 나타날 때는 고차원의 무형이지만 그 근원은 역시 아래층들에 두고 있다. 아래층들은 감각에 기반을 두고, 감각은 물질 뉴런의 작용이니, 인즉슨 형이상학적 의미는 형이하학적 물질에 근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원리를 무시하거나 외면한 형이상학은 뿌리 잘린 식물과 같이 금방 고사한다. 지식인이면서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마음은 또한 감정, 감동, 정서 등의 형이하학적 의미를 갖는다. 이것들은 물질로 이루어진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면대해야만 발생하므로 물질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면할 물질과 현상을 잘 선택함으로서 감정, 감동, 정서의 작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즉흥적인 감정, 감동, 정서의 작동에만 의존하여 자기 편리와 이익의 면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는 결국 폐쇄성을 띄게 되어 더 큰 피해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감정, 감동, 정서 등의 원초적 마음을 일차로 거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신경전달물질의 오류나 약물 등으로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상부와 하부의 이중 구조를 가지는 마음을 잘 이해하고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 인체 밖과 안에서의 물질의 순환과 마찬가지로 정신세계에서도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마음과 형이하학적 의미의 마음이 잘 순환해야 한다.
「58p: 미래의 MRI는 뉴런을 활성화하는 물질을 직접 추적하여 인간의 사고과정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말은 다음과 같이 연계된다. 인간의 사고과정을 조절할 수 있다→조정 칩을 개인 두뇌에 삽입하거나 부착한다→의식과 행동을 조절한다→인간을 기계화 한다→인간을 생체 로봇화 한다→어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절대 권력이 인간세계를 지배한다→인류의 미래는 규격화 단일화 된다.
21C엔 뇌신경과학의 연구와 발달이 뇌질환 치료에 목적을 두지만 22C엔 그 발달의 결과가 인간 의식 통제용이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인류의 미래는 규격화 단일화 된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출발점이 한 곳이므로 수십 억 수백 억 단위의 인구로 증가한 인간동물을 통제하기 위해선 필요할 지도 모른다. 또 실제 현실에선 필요성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 특히 과도한 인구 팽창과 자원 고갈의 시대에 이르러 세계의 지도층 인사들과 과학자들이 이러한 인식에 합의한다면, 소수 지배자들의 통제에 의한 인류 생활이 실제화 될 수 있다. 즉 빅 브러더가 사실이 된다.
빅 브러더가 통제하는 사회는 다중성을 갖는다. 시작은 선의이지만 도중에 변질되기가 쉽다. 아니 변질되지 않을 수가 없고, 그 변질의 끝은 악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회가 인간에게 유익할까 유해할까 하는 여부는 인간이 동물인 이상 개체마다 차별성을 갖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할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모든 인간이 지적 인식과 판단력이 정밀하다면 범죄나 폭력, 다산과 낭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적 인식과 판단력에서 차이를 갖기 때문에 현실세계에서는 빈번하게 범죄와 폭력이 일어나고 물질을 함부로 낭비하며 생태계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자식을 많이 낳는 욕심이 창궐한다. 환경 문제와 자원 문제, 식량 문제 등의 생태계 문제와 범죄, 폭력, 전쟁, 강간 등의 사회적 문제의 근원은 인구 폭증 문제이다. 10억 단위에서 70억 단위가 된 기간이 불과 한 세기도 안 된다. 한 칸에 든 쥐 떼가 많을수록 싸움이 치열해져서 결국 나중엔 최강자 한 마리만 남게 된다. 인간 역시 근원이 쥐와 같은 동물이기 때문에 미래를 자연 상태로 방치한다면 비슷한 결과가 된다. 즉 인류 파멸은 공상이 아니라 실제가 될 수 있다.
파멸의 근원인 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서, 피임이나 낙태와 같은 강제적인 접근과 전쟁이나 장애자 제거와 같은 제도적 접근을 동원한 직접적인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교육과 계몽을 통한 지적 인식과 판단력의 증진을 통한 간접적인 방법이 있다.
물론 누구나 후자를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방법은 지난해서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선진국에서는 후자가 효과적이나 후진국일수록 개체의 동물적인 성욕이 강하기 때문에 다산이 계속된다. 과거에 우리나라도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부부일수록 산아 제한에 관심했다. 그러나 교육 수준이 낮은 저소득층일수록 다산이었다. 이것이 지금까지는 국가 경제 발전에 동력이 되었지만 현대에 들어서서는 짐이 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80년대 이후 저출산 의식이 보편화되어 비교적 알맞은 인구를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선진국은 우리나라와 같은 인구관이 정착되었지만 후진국에서는 다산이 계속되고 있다. 요즘 문제되고 있는 중동 지역과 아프리카 북부 지역의 난민 문제도 정치적인 요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팽창한 인구 문제 때문이다. 가뜩이나 건조한 환경 속에서 근근이 살아가는데, 날이 갈수록 사막화되는 환경에서는 팽창하는 인구들이 살아갈 수가 없다. 사정이 그러하니 죽기 살기로 살기 좋은 환경을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는 것, 지구 위에 국경선은 권력이 그은 것이지 자연이 그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물인 인간들은 자의로 어디에나 갈수 있는 천부의 이동권을 갖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난민들의 무모한 이동욕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구 위 인구 문제의 중심축은 선진국이 아니라 후진국이다. 우리나라가 남북 합하여 인구가 두 배 증가한 기간이 약 100년이다. 세계 인구는 같은 기간 동안 육칠 배 증가했다. 그러한 증가의 대부분이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후진국 지역이다.
인류사를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단순한 관점에서 보면 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역이 승자고 타 지역은 패자다. 19세기 중반에서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한 세기 동안에 걸쳐 펼쳐진 인류사는 백인종이 유색인종을 침탈한 과정과 결과이다. 유색인종들은 철저히 파괴되고 유린당하였다. 지구 전체를 백인종들이 차지하고 있어야 마땅하다. 유색인들은 멸종하고 백인종들의 후손들만이 지구에서 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이다. 백인종 인구보다 유색인종 인구가 훨씬 더 많다. 마치 화단에서 가꾸어지는 화초들보다 산과 들에 저절로 자라는 야생초들이 훨씬 많듯이 말이다.
인구 문제를 보는 관점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크게 보면 인종에 따라 다르다. 그 중에서 훨씬 심각하게 보는 쪽은 인구 팽창 압력이 높은 유색인종 국가들보다 백인종 국가들이다. 유색 국가의 국민들은 특별한 물질적 욕구 없이 살아가기 때문에 인구가 늘어도 기존의 일정한 생활 범위 안에서 수용하면서 별다른 부담을 갖지 않지만, 백인 국가의 국민들은 물질적 욕구가 무한하기 때문에 인구가 늘면 늘수록 그만큼 자기에게 돌아올 양이 적다고 여기기 때문에 상대방을 경쟁상대로 여겨 배척한다. 예를 든다면, 후진국 가정은 형제가 많아도 고루 적게 먹기 때문에 만족하지만 선진국 형제들은 많을수록 자기 지분이 적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의식과 현상이 그 선진국 안에서, 백인종 지역 안에서 끝나면 괜찮지만 지구 전역으로 확대 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아직은 비록 일부이지만, 우월 의식으로 무장한 백인종들이 지구를 지배하며 풍요를 누리던 과거를 합리화하고, 그것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점증하고 있다. 지구의 환경과 자원이 백인종들만의 것이란 욕구가 유전자를 통해 심리 근저에 깔려 있다. 물론 유색 국가들의 국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그 욕구가 실현되기엔 난망하다.
그 욕구의 출구로 제시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뇌신경과학과 MRI의 발달이다. 물론 미치오 카쿠가 이런 말을 한 목적이 반드시 ‘욕구의 출구’는 아니다. 그는 부모가 일본인이지만 종전 후인 1947년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인이다. 그러나 무의식 일부에는 일본인, 즉 유색인으로서의 인식이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전적 이중성을 갖기 때문에 그의 논리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亞백인종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백인종적 사고, 즉 ‘욕구의 출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백인종적 욕구의 실체는 무엇일까? 특히 일반인들보다 지적 능력이 우수한 백인종 지식인들이 갖는 인류의 미래는 과연 어떠할까 하는 문제는 인종을 초월한 인류 전체의 미래가 걸렸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아직은 백인종들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 욕구의 핵심은 생존이다. 생존도 일상적인 생존보다는 특별한 생존, 즉 풍요한 물질문명을 누리며 상쾌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환경과 자원이다. 그런데 그 환경과 인구 팽창 때문에 망가지고 있으니, 자기들의 국가는 인구가 정체되거나 오히려 감소 추세인데 후진국들의 인구는 날로 증가하고 있으니, 단순하게 말해서 유색인들에 대한 증오가 누적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과 자원의 최대 이용자, 즉 수혜자는 누구인가? 바로 백인종들이 사는 선진국이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자원과 에너지의 대부분이 선진국에서 소비되고, 공업은 선진국에서 가장 발달되어 많은 오염물질을 지구에 배출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에 비해 인구가 많은 후진국들은 소비량과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므로 인구 문제의 핵심은 팽창하는 인구라기보다는 자원과 에너지의 과소비에 있다. 후진국들도 인구 적정선을 유지해야겠지만, 선진국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소비욕구를 일정하게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앞장서야 할 곳은 선진국이고, 후진국 역시 독자적인 생존 모델을 개발해야지 선진국의 풍요한 소비문화를 추종해서는 안 된다.
피임이나 낙태, 전쟁이나 장애자 제거와 같은 직접적인 방법은 누구나 반대할 것이기 때문에 제외한다면, 교육과 계몽을 통한 지적 인식과 판단력의 증진을 통한 간접적인 방법밖엔 없다. 미국에 사는 유태인 지도층들은 지구에 적정한 인구가 10억이라고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말인즉슨 백인종들만, 백인종 중에서도 중동 지역이나 러시아, 북인도, 북아프리카 같은 곳의 2류 백인종들을 제외한 유럽과 북아메리카, 그리고 이스라엘의 순수한 백인종들의 후손만 지구에 살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참 기막히고도 우스운 말이다. 인류 문명이 진화한 이래로 가장 추악한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이 실제화, 현실화 될 수도 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지구를 리드하는 주류가 백인종이고, 그 백인종의 중심이 미국이고, 미국을 움직이는 주류가 바로 유태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첨단과학계를 리드하고 있는 주류 역시 유태인 출신 과학자들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MRI 칩으로 인간을, 나아가 인류를 통제하는 빅 브러더가 출현할 가능성이 전무 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아니, 전무가 아니라 수백 년, 아니 바로 수십 년 후에는 인류가 거대한 과학적 통제 속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폭증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동물적 한계를 갖는 한엔 그러한 상태가 인류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개인으로서의 인류를 강조하는 것이 현대 문명이지만, 인간은 어차피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거대한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뇌신경과학을 이용하는 것이 필연적인 미래 문명일지도 모른다. 또 환경과 자원이 완전 오염되고 고갈되어 인류의 생존이 위기에 처한다면, 외계로의 진출이 불가하다면, 인류 유전자를 최소한이라도 보존하기 위하여 그러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고, 21세기 초 현재로서는 개인의 살아있는 자유정신을 강조해야 한다. 그래서 뇌신경과학에 대한 성찰과 통제가 더욱 필요하다. 그 발달은 질병과 장애를 극복하는 데에만, 인간의 활동을 도우는 로봇에만 사용되어야 하고, 인류의 문제는 인류 스스로의 지혜로 해결해나가도록 해야 한다.
「76~81p: 신경의학과 생물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의식에 관한 정의를 내린다면 대충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의식이란 목적(음식과 집, 그리고 짝 찾기 등)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변수(온도, 시간, 공간, 타인과의 관계 등)로 이루어진 다중 피드백회로를 이용하여 이 세계의 모형을 만들어내는 (3단계) 과정이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으면서 중앙신경계를 보유한 생명체의 의식은 1단계에 해당한다. 2단계 의식은 자신이 속한 세계의 모형을 만들 때 공간과 함께 다른 개체까지 고려하는 수준이다. 3단계 의식은 대략적인 논리로 미래예측 모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의식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의식은 이 세상의 모형을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모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도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수많은 피드백회로를 조정하고 값을 매길 수 있어야 한다.」
「89~96p: 인간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모든 단계의 의식을 가진 생명체일 것이다. MRI를 이용하면 각 의식단계에 대응하는 두뇌구조를 분리해낼 수 있다.
1단계 의식의 흐름은 대부분이 전전두피질과 시상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에서 (동시에 느낀) 들어온 (모든) 신호는 척수와 뇌간을 거쳐 중계국에 해당하는 시상에 도달하고, 여기서 분류된 정보는 두뇌의 다양한 피질 (풍경은 후두피질에, 바람의 촉감은 두정엽에)로 전송된다. 뇌의 다양한 피질들이 접수된 신호를 분석하여 전전두피질로 보내면, 이 모든 상황에 관한 인식이 종합적으로 떠오르게 된다.
1단계 의식은 감각정보를 이용하여 공간 속에서 자신의 물리적 위치를 말해주는 모형을 만드는 반면, 2단계 의식은 집단(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말해주는 모형을 만들어 낸다.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자극에 대한 반응인)감정은 대뇌변연계(파충류 뇌를 감싸고 있는 포유류 뇌로 해마, 편도체, 시상, 시상하부로 구성되며 각각 기억, 감정, 전달, 생체 리듬을 담당한다)의 편도체에서 처리, 생성된 후 전전두피질에 신호를 보낸다. 그와 동시에 내분비계로 신호가 전송되어 아드레날린을 비롯한 호르몬이 피에 유입되어 여러 가지 생리적 각성상태를 나타낸다.
그러나 비상사태에 처하면 감정은 전전두피질의 최종재가를 받지 않고 대뇌변연계를 거쳐 빠른 반응을 유도한다. 또한 비상사태에서는 과거 사례를 참조해야 하므로,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2단계 의식이 생성되는 핵심부위는 편도체와 해마 그리고 전전두피질이라고 할 수 있다.
3단계 의식은 자신이 속한 세상의 모형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상 속에서 시간을 미래로 이동하여 모형을 시뮬레이션할 수도 있다. 이 단계의 핵심기능인 미래 시뮬레이션은 두뇌의 CEO에 해당하는 배외측 전전두피질에서 과거의 기억을 중요한 자료로 사용하여 진행된다. 미래를 시뮬레이션 한 결과, 바람직하고 유쾌한 결과가 예상되면 신경핵과 시상하부에 있는 쾌락중추가 활성화 되고, 반대로 실망스러운 결과가 예상되면 안와전두피질에서 위험신호를 방출한다. 그래서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가 모두 예상되면 두뇌의 각기 다른 부위에서 상반된 신호를 방출하여 총체적인 혼란(갈등 상황)에 빠진다. 그러나 배외측 전전두피질이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여 결국은 하나의 최종결정을 내리게 된다. 일부 신경과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 갈등은 프로이트의 에고와 이드 그리고 슈퍼에고 사이의 역학관계와 비슷하다.」
「101p: 과학자들은 전자기학을 십분 활용하여 사람의 생각을 읽거나 먼 곳으로 전송하게 되었으며, 생각만으로 물체를 움직이거나 기억을 저장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지능을 향상하는 기술이 개발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새로운 기술을 과연 어디에 적용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가장 관심을 끄는 분야는 과거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텔레파시(telepathy 정신감응)일 것이다.」
지구의 모든 생물은 육체가 지금도 진화중이기 때문에 마음도 진화중이다. 그런데 인간은 육체의 진화보다 마음의 진화 속도가 훨씬 더 빠르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이 마음의 진화 속도는 미래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빨라진다. 그에 더해 마음에 대한 연구, 뇌신경과학에 대한 연구가 더욱 깊어지면서 자연적 진화 결과보다 더 발전된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과학적 장치를 이용해 뇌의 발달, 마음의 발달을 인위적으로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래엔 이 책에서 미치오 카쿠가 중점적으로 관심하는 개인 간의 텔레파시 수준을 넘어서 단체 간의 텔레파시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도 조종할 수 있는 미래엔 세상을 단순화 할 수 있다. 영장류에서 진화를 시작한 인류의 원천되는 조상이 원래 한 사람이었듯이 모든 인류가 멸치 떼나 가창오리 떼처럼 異體同心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행동할 수 있는 미래가 가능하다. 즉 평등, 모든 인간의 동일화가 이루어져서 통제하기가 쉽다. 약 50만 년 전에 100%에서 시작된 인류 DNA의 분화가 다시 합치 쪽으로 진행될 것이다. 지금의 인식과 이해도로서는 두렵고 불쾌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인류가 자연물이므로 갖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만약에 인류의 미래가 이렇게 된다면, 개체 고유성을 상실하는 단점도 있지만 인류 전체가 상호 충돌 없이 적절하게 공존할 수 있는 의식과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즉 凡我一體가 된다.
미래로 갈수록 예술가들이나 철학자들이 설 자리가 자꾸 좁아지게 되고, 마침내는 없어질 것이다. 그 없어지는 마지막까지 버티던, 가장 자유분방한 사유를 가진 시인도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 극도로 진화한 마음으로 지식이나 정보 같은 것은 이미 모든 인류가 공유할 것이고, 허무나 번뇌의 근원을 지적으로 독파하였기 때문에 전혀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육체의 고장과 병뿐만이 아니라 정신의 고장과 병도 완전하게 수리, 교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마침내는 그것들이 불편하기 때문에 제거할 것이다. 그리하여 획일화 된 정신만이 인류사회에 통행할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공상이 아니라 미래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실현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먼 훗날, 무리에서 우연히 떨어진 인간 하나,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나무이파리를 그리워하리라.
제2부 마음으로 육체를 극복하다
「106p: 요즘 텔레파시는 전 세계 대학에서 중요한 연구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미 최첨단 센서를 이용하여 사람의 뇌 속에 떠오른 단어와 영상 그리고 생각을 읽어내는데 성공했다.」
「107p: 우리의 뇌는 전기를 띠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전자가 가속되면 전자기 복사를 방출한다. 두뇌 안에서 진동하는 전자도 일종의 라디오파를 방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신호는 강도가 너무나 미약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을뿐더러 설사 전달된다고 해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무작위 라디오파 신호를 해독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는 할 수 있다.」
「159p: 단기적으로 볼 때 뇌과학은 마비 환자와 신체장애 환자의 고통을 크게 덜어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뇌과학은 세계경제와 현대문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미치오 카쿠는 마음의 미래를 설명하는 예를 공상과학영화에서 많이 든다. 공상과학영화의 작가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그 상상력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경험과 교육, 전통을 바탕으로 한다.
마음은 육체에서 나온다. 육체를 이루는 모든 구조와 물질들의 통합작용이 의식이고, 그 의식 중에서 현재 이루어지는 의지가 바로 마음이다. 그러므로 물질의 구성비가 중요하다. 즉 섭취하는 물질과 영양소가 중요하다.
마음 중에서 가장 순수한 결정이 정신이다. 그 정신의 가장 순수한 결정은 지혜다. 그 지혜의 가장 순수한 결정은 空이다. 그러므로 공은 이리저리 더운 여름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잎이다.
무학려에서 마라보는 세상, 더 넓게는 우주자연! 얼마나 신선한가. 내 늙음도 이 우주자연에 한 귀퉁이고, 입추를 닷새 앞둔 늦여름밤 풀무치의 울음도 이 우주자연에 한 귀퉁이다. 萬古江山이라 하던가.
제3부 변형된 의식
「304p: 과학자들이 두뇌 신경망의 자세한 구조를 파악하여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조종할 수 있게 되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술과 사회를 통제하는 기술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물론 이런 판단은 기본교육을 받고 충분한 정보를 확보한 대중들이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 기술의 진정한 위력은 인간의 정신에 자유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특히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소식이다.」
이게 어렵다. 미치오 카쿠 역시 말은 이렇게 하지만, 뇌신경과학 기술이 정신 질환 치료에만 사용되지 않고 미래 어느 시기부터는 오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결국 호모 사피엔스가 一體에서 시작되었으므로 고도 문명기인 22세기쯤에는 모든 인류가 동질화, 즉 一體가 된다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一卽萬이요 萬卽一의 원리대로이다.
그러나 개성과 자유가 소중하다. 한 인간이 멸치 떼 속에 한 마리 멸치가 아니라 지능과 지성을 갖춘 한 인격체라면, 반드시 고유의 자유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 자유정신은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만인의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목적이다. 인류 문화란 군중 속의 고독을 발견하기 위한 장구한 작업이고, 그 작업의 동력은 자유정신이다.
그러므로 자유정신을 상실한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고유한 정신을 갖고 유의미하게 살아가는 인간정신이 아니라 하루의 생존에 급급한 인간동물일 뿐이다. 자유정신을 상실한 인류는 이미 인류가 아니라 거대한 동물 집단이고, 자유정신을 상실한 인류문화는 거대한 선전선동의 허상일 뿐이다.
그래서 뇌신경과학의 발전에 대한 지적인 통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과학자들의 탐구의욕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비록 원론적인 말이지만 미치오 카쿠가 말한 대로 ‘기본교육을 받고 충분한 정보를 확보한 대중들’이 확실하게 통제해야 한다. 뇌신경과학이 인간의 범위 안에서 善방향으로 발달해야 한다.
자유정신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최선의 요소로서 지식과 감정을 승화한 지성과 감성의 완벽한 조화 상태를 말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으로 정신적이 면에서는 자유정신의 유무이고 육체적인 면에서는 뇌의 전전두피질의 유무이다. 뇌에서 인간만이 가장 크게 진화시킨 부분이 전전두피질이기 때문에 자유정신은 바로 이곳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고, 자유정신의 발전에 따라 전전두피질 역시 발달할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인류는 넓고 퍼지면서 앞으로 돌출한 두뇌의 앞부분, 즉 이마를 갖게 될 것이다. 앞짱구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몸과 마음의 자유를 희구한다. 이것은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자유가 억압당한다. 우선 부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들은 생존에 필요한 경제적인 여건을 조성해야만 하기 때문에 직업인이 되어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 따라 정신 역시 제약을 받는다. 그리하여 자유정신은 그림 속에 꽃으로 바라 볼 뿐이다. 한 생애를 희구와 제약의 갈등 속에서 보내는 것이 대다수 인간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는 인간이 물질을 흡수하고 소비해야 하는 생물인 이상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관점에서 자유정신을 볼 필요가 있다.
자유정신은 말 그대로 물질을 초월한 ‘정신’이다. ‘정신’의 속성은 미래를 향한 시뮬레이션이다. 몸은 물질 속에서 살지만 정신은 물질을 초월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물질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직업 속에 살면서도 정신을 물질 속에 가두지 않고 해방시킬 수 있다. 두뇌를 사용하여 현재진행 중인 직업에 충실하면서도 전전두피질을 활성화시켜 미래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그 시뮬레이션은 성공한 자신의 미래 모습일수도 있고, 문학이나 철학, 종교 등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한 사색일 수 있다. 그 시뮬레이션이 상상이나 공상의 형태라 할지라도 현재 살아있는 인간임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인류 전체의 자유정신이 점진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인간은 기계나 로봇이 아니라 생물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다. 제아무리 가혹한 강제가 퍼부어져도 한 마리 짐승으로 변화할 수는 없다. 엄동설한에 동면하고 있던 동물들이 새봄이 오면 기지개를 켜고 나오듯이,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듯이 인간의 변화 의지는 물처럼 새어나와 자유정신을 회복한다. 그래서 한 개인은 스스로의 개달음을 통해 자기를 존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지성과 감성을 갖게 되고, 그 깨달음이 사회 곳곳 개인과 개인에게서 들불처럼 일어나 다수가 자유정신을 갖게 된다. 그래서 혹독한 독재정치가 불과 백년을 넘기지 못하고 붕괴하고 마는 것이다. 정의와 사랑을 그리워하는 인류의 자유정신의 진화 때문에 영원할 것 같았던 식민제국주의가 한 세기만에 사라지고 만 것이다.
자유정신은 一卽萬 萬卽一의 원리와 상통한다. 인류는 한 조상에서 분화되었기 때문에 뇌의 진화, 특히 전전두피질의 진화 역시 비슷한 형태를 갖는다. 그러므로 자유정신의 진화 역시 비슷한 형태를 갖는다. 그래서 인류의 미래는 비관적인 면보다 낙관적인 면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중심 동력이 자유정신이기 때문에 에너지 고갈과 자원 고갈과 같은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범죄와 전쟁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물론 21세기 초인 현재로선 우려되는 바가 많지만 금세기 중엽쯤이면 자유정신이 전 세계적인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305p: 광인과 연인, 그리고 시인의 머리는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 -월리엄 셰익스피어 <한여름밤의 꿈> 중에서」
나는 그 중에서 왜 詩人이 되었는가. 사춘기에서 청년기까지 자칫 했으면 狂人 쪽으로 흐를 뻔했다. 그 중심을 지탱해 준 것은 父母와 유교적 기준이었다. 그리고 故鄕山川이었다.
그 중간에서 내가 스스로 길을 찾아 헤맸다. 길을 찾았는가? 겨우 조금 찾았다. 그러나 아직 뚜렷하지 않다. 책 몇 권 읽는다고 길이 찾아지는 게 아니다. 心에서 깊숙이 깨달아야 한다. 그 깨달음의 요체는 無慾이 아니라 적절한 욕망이다. 즉 守分安心이다.
2015.8.12.18:25 영주 舞鶴廬에서.
「307~309p:과학자들이 과종교증hyperreligiosity이라 부르는 증세를 나타내는 환자는 가끔 발작을 일으키지만, 개중에는 자신의 신념에 더욱 큰 확신을 느끼면서 “모든 것의 배후에는 어떤 섭리나 영혼이 존재한다”라고 주장하며 모든 사건의 배후에 심오한 종교적 의도가 있다고 굳게 믿는 경향이 있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역사에 등장하는 예언자와 순교자, 그리고 한 종족을 이끌었던 지도자 중 일부는 측두엽간질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한다.
또한 신경과학자 노먼 게슈빈트는 왼쪽 측두엽에서 전기신호가 과도하게 흐르는 간질 환자들이 종종 종교적 체험을 겪는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1975년 “뇌에 전기폭풍이 불어닥치면 종교적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 박사는 측두엽간질 환자의 30~40%가 과종교증 증세를 보인다면서 “이들은 개인적인 종교 체험을 할 때도 있지만, 때때로 스케일이 엄청나게 커져서 범우주적인 신의 존재를 느끼기도 한다. 한 환자는 나에게 ‘선생님, 저는 드디어 모든 것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신의 뜻도 이해가 갑니다. 이 우주에서 저의 위치가 어디인지, 이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측두엽간질 환자들을 분석한 끝에, 이들이 일상적인 단어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신’이라는 단어에는 유난히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고 결론지었다. 과종교증과 측두엽간질의 상관관계가 실험을 통해 어느 정도 확인된 셈이다.
퍼싱어 박사는 뇌의 경두개에 자기장을 방출하는 헬멧(그는 이것을 ‘신의 헬멧’이라 불렀다)을 피험자에게 씌워주고 그 반응을 지켜본 후에 피험자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대부분은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위대한 존재를 느꼈다고 대답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전속작가인 데이비드 비엘로는 “뇌에 3분 동안 자극을 받은 피험자들은 그때의 느낌을 어떤 신성한 존재의 顯現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다만 개인의 종교적 성향에 따라 하나님이나 부처님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자비로운 존재나 경이로운 우주를 보았다고 주장했다.”고 말한다.」
「311p: 뷰리가드 박사는 “무신론자들이 특별한 경험을 하면 ‘장대한 우주’를 떠올릴 것이고, 기독교인이라면 그것을 신과 결부시킬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일 지도 모른다”고 결론지었다.」
뷰리가드 박사의 말대로라면, 우주신의 존재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는 나는 측두엽간질 환자가 되냐? 그러나 나는 우주신을 확고하게 믿진 않는다. 다만 지능으로 추리하고자 애쓸 따름이다.
신경과학자들이 예언자나 수녀, 자칭 도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장치를 이용하여 그들의 뇌를 연구하고는, 다양한 종교적 체험들을 뇌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결론지으며 측두엽간질 환자로 분류하지만, 유형체인 건강한 측두엽에서 무형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그들을 간단히 환자라고 분류할 수는 없다. 환자라는 말은 비정상이나 질병, 폭력과 파괴 등의 부정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에 함부로 쓸 말이 아니다. 다만 그들의 측두엽이 평상시에 기형이거나 불구라면, 비상시에 측두엽에서 가끔 일어나는 현상이 비정상이므로 환자라고 분류할 수 있다.
전기나 신의 헬멧과 같은 자기장, 약물 투여나 사고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뇌 경두개 부분을 자극하면 어떤 현상(환상이라고 할 수 있는)이 일어나도록 할 수 있지만, 정신 집중력이 강한 수녀와 신부, 목사와 승려, 심지어 동굴이나 방안에서 혼자 명상하는 도인이나 사색인들에게도 그러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전자가 외적인 자극이라면 후자는 내적인 자극인 셈이다.
그런데 전자는 뿌리 없는 가상의 꽃이지만 후자는 뿌리 있는 실제의 꽃이다. 전자는 실험을 통해 한 순간에만 볼 수 있는 단면이지만 후자는 오랜 체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전면이다. 그러므로 객관적으로 봐서 환자가 아닌 사람이 주장하는 종교적 체험을 환상이라고 단순하게 치부해선 안 된다. 정신의 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첨예한 의지가 진화의 물꼬를 트기 때문에 일단은 그의 종교적 체험을 인정하고 시간을 두고 주도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 체험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실상인지 허상인지, 본래인지 과장되었는지, 자아용인지 과시용인지는 일반화 과정을 통해 걸러져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이 ‘마음의 미래’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현재까지 규명된 뇌신경과학의 성과만 해도 엄청나다. 하물며 미래엔 그 성과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은 명약관화 하다. 사색과 명상이 이루어는 곳도 뇌이고 그 성과들이 축적된 곳도 뇌이다. 뇌신경과학이 볼 수 있는 것은 사색과 명상이 뇌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그 축적된 성과는 외부에는 언어 기록이나 영상물로 남고 내부에는 뇌 전전두피질의 진화 흔적이 된다.
한 개인의 종교적 체험은 소중하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영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이비성을 띠고 과시용이 된다면 곧 허상이 된다. 하나님에게 지극한 사람은 하나님을, 부처님에게 지극한 사람은 부처님을, 우주신에게 지극한 사람은 우주신을, 거목신령에게 지극한 사람은 거목신령을 스스로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 어느 누구도 특별히 잘난 존재는 아니다. 그저 평범한 대상일 뿐이다. 무어 개인이나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대단한 능력을 가진 우상들이 아니다. 그저 인간의 전전두피질에 각인되는 자유정신의 상징일 따름이다.
「344p: 두뇌는 컴퓨터가 아니라 고도로 복잡한 신경망 네트워크이다. 디지털 컴퓨터는 구조가 고정되어 있지만(입력, 출력, 연산처리 장치 등), 신경망은 새로운 일을 습득할 때마다 뉴런의 연결 상태가 개선되고 강화된다. 사람의 뇌에는 프로그램이나 운영체계가 없고, 윈도시스템도, 중앙처리장치도 없다. 그 대신 뇌의 신경망은 하나의 목적(학습)을 이루기 위해 수백만 개의 뉴런이 동시에 활성화 되는 병렬구조로 되어 있다. 신경망은 임무가 주어졌을 때 일단 그 안으로 뛰어들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360p; 최근 들어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의식의 핵심이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는 전전두엽(논리적 생각을 관장하는 부분)과 감정중추(대뇌변연계)의 연결 부위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이 가치판단에 혼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동일한 가치를 갖기 때문에, 아주 단순한 선택을 해야 할 때조차(물건을 살 때나 약속시간을 잡을 때, 또는 펜의 색상을 고를 때 등)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감정은 절대 사치품이 아니다. 감정이 없는 로봇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사소한 일인지 결정할 수 없다. 과거에 감정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었지만, 지금은 가장 중요한 테마로 떠오르고 있다.」
감정이란 간단히 말한다면 각종 감각기관에서 받아들이는 환경적 현실에 대한 반응과 적응이다. 그 원초적 반응을 의식이라 하고 조금 정리된 반응을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감정을 이리저리 굴리는 과정이 생각이고, 생각을 정리한 결과가 곧 의지이며, 그 의지가 자유자재로 활동할 수 있는 상태를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즉 자유정신이다. 그 관계를 감각<의식<감정<생각<의지<정신으로 나타낼 수 있다. 미치오 카쿠가 말하는 ‘마음’이란 6단계 모두를 아우른 개념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감정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된다. 지금까지는 희로애락애오욕 칠정은 감정이요 인의예지 사단은 정신이라 하여 감정을 정신의 하위 개념으로 두었다. 심지어 감정은 사단에 의해 마땅히 통제를 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감정 표현은 삼가야 할 것이었다. 감정 표현을 하더라도 고상하게 해야 하며, 그것을 정서라는 이름으로 정의하였다. 그래서 그 둘은 별개가 되어 감정은 상민들의 것, 정서는 양반들의 것이 되었다.
그런데 뇌신경과학자들은 그 경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전두엽과 감정중추가 연결되어 잇기 때문에 한 덩어리인 것이다. 더 나아가 모든 이성적 판단의 근거를 감정에 둔다. 감정의 토대 없이는 이성적 판단 자체가 성립하지 못한다. 달리 말하면 가치 판단은 ‘생각’에 의해 이루어지고, ‘생각’은 감정의 촉수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단 역시 감정의 꽃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유학에 사단칠정론이 뇌 구조와 기능을 모르는 好論家들의 정신 탐구를 빙자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말장난에 넘어간 조선의 현상이 얼마나 왜곡 되었으며,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였는가.
정신세계를 분절하면 안 된다. 정신세계는 감각-의식-감정-생각-의지-정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단계가 제대로 작동해야만 건강하다. 그런데도 그 중에서 어느 한 부위만 강조한다면 전체적 시스템에 고장이 난다. 특히 최종 단계인 정신의 순수성만을 강조하고 나머지를 소홀히 한다면 정신이 곧 고사하게 된다. 물론 기본단계인 의식이나 감정만을 강조해서도 안 된다.
마음은 과연 무엇일까?
기존하는 모든 종교, 철학, 사상, 이념의 중심은 마음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모양과 색깔이 다를 뿐이지 마음이란 본질은 동일하다.
마음은 생물인 몸에 담겨있기 때문에 역시 생물이다. 환경과 조건에 따라 수시로 변화한다. 한 곳에 머물지 않으며 한 모양을 계속하지 않으며 한 크기를 계속하지 않으며 한 색깔을 계속하지 않으며 한 냄새를 계속하지 않으며 한 무게를 계속하지 않는다. 가장 좁고 작은 곳에도 앉을 수 있으며 가장 넓고 큰 곳에도 가득히 앉는다. 시간과 공간에서 극미를 지나 초극미까지 이를 수 있으며 극대를 지나 초극대까지 이를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자유정신이다. 자유정신은 장구한 인류 진화의 결과이며, 자유정신의 농도가 높을수록 마음의 변화가 빠르며 낮을수록 마음의 변화가 둔하다.
마음은 전래의 보편적인 가치세계에 만족하지만 자유정신은 형이상학의 정수이며 마침내 종교성을 초월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화려한 만상을 보는 보통차원을 마음이라면 그 만상의 시작과 끝을 함께 볼 수 있는 고차원을 자유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은 바탕이고 자유정신은 중심핵이다. 마음의 들끓음인 사단칠정은 자유정신에서 나온다.
자유정신은 본질과 현상의 양면을 갖는데, 이 두 개는 평등개념이 아니라 종속개념이다. 본질이 전류가 흐르는 전등이라면 현상은 빛이다. 전등이 두뇌라면 전류는 사유의 흐름이다. 전류가 니크롬선을 만나 발광하듯이 사유는 지식과 감정을 만나 완전한 인식에 도달한다.
완전한 인식을 필요조건으로 하는 자유정신은 지성과 감성의 극치로서 순수하다. 정신의 최상부로서, 지식의 온축으로 생기는 지성과 감정의 단련을 통해 얻을 수 감성이 교차하는 경지이다. 철학적인 면에서는 퇴계의 純理, 헤겔의 순수이성과 같다. 또한 종교적인 면에서는 불교의 空, 선교의 仙, 유교의 和, 기독교의 愛의 개념과 같다.
발광하지 않는 전등은 죽은 전등이듯이 실천하지 않는 자유정신은 이론으로만 끝나는 죽은 정신이다. 전등이 발광하면 반드시 빛이 생기듯이 자유정신은 반드시 실천한다. 실천으로 완전한 인식이 증명되어 자유정신이 완성된다.
자유정신의 현상인 실천면은 소극, 중극, 적극 등의 세 가지 경향이 있다. 유학의 수양론과 처세론, 헤겔의 실천이성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소극적인 경향은 불교의 소승이나 도교의 신선처럼 나 하나만의 도통을 목적으로 하거나 유교의 안심입명처럼 나와 우리 가족만의 평안을 추구하는 생각이다. 적극적인 경향은 이념과 사상의 완벽한 실현과 대중사회에 대한 통제와 조절이 집단생활의 발전에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중극적인 경향은 일상의 평정과 화락 그리고 순리를 중요시하는 생각이다.
세 가지 경향 모두 장단점,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가지는데, 소극적인 경향이 지나치면 은둔자로, 적극적인 경향이 지나치면 독재자로, 중극적인 경향이 지나치면 평범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개인마다 온축하고 단련하는 지식과 감정의 양과 질이 다르기 때문에 자유정신 역시 다양하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보듯이 시공을 막론하고 각양각종의 성인이나 현인들이 나타나 제각기 닦은 자유정신을 설파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의 철학자, 사상가, 종교인들이 나타나 자유정신을 논했다. 그에 더해 각종의 정치가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이 얻은 자유정신을 현실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역사상 폭군이나 독재자로 낙인찍힌 자들도 나름대로는 자기의 자유정신을 최선의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한 시대를 통치할 수 있었다.
양자장강이 수많은 지류를 거두어 바다에 들듯이, 자유정신에 대한 각각의 시대 각각의 인간들의 실험이 숱한 오류와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진화의 원리가 퇴전하지 않는 한에는 마침내 자유정신의 실체가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나 역시 아직 모르지만, 그것의 실체는 중극적인 경향에서 찾아지지 않겠는가 생각된다. 동양의 현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중용지도에서 말이다.
「379p: 신생현상新生現像이란 충분히 많은 컴퓨터를 하나로 연결했을 때, 외부에서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지 않았는데도 컴퓨터의 위상이 갑자기 높은 단계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인간 두뇌의 진화도 신생현상이다. 충분히 많은 DNA가 하나로 연결되면, 즉 순환구조를 형성하면 저절로 스스로 새로운 현상이 발생한다. 즉 내가 말하는 온축현상이다. DNA세계에서는 1+1이 꼭 2가 되는 게 아니라 1.5가 될 수도 있고 2.2가 될 수도 있다. 화학에서도 촉매에 따라 결과가 다르며 간혹 엉뚱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듯이 생체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과 DNA들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돌연변이에 나타날 수 있다.
인간의 마음 역시 신생작용과 온축작용에 따라 생겨났고 진화되고 있다. 미래로 갈수록 생체 진화에 가속도가 붙으며 지능과 마음이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엔 이 책에서 미치오 카쿠가 논거로 들고 있는 여러 가지 공상과학소설들의 황당해 보이는 현상들이 실제화 될 것이다. 인간이 텔레파시, 즉 염력으로 만사를 해결하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잘하면 텔레파시의 힘으로 우주의 가장자리까지 금방 왕복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381p: 그러나 로봇과 인간의 목적이 상충한다면, 인간은 로봇의 노예로 전락할 수도 있다. 자아의식이 있는 로봇은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이 인간보다 뛰어날 것이므로, 모든 시나리오를 예측하여 인간을 완전히 압도할 것이다.」
「391p: 최소단위 뉴런으로부터 뇌를 재구성할 수 있다면,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정신은 수명이 유한한 육체를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은 ‘물질을 다스리는 정신’이 아니라, ‘물질 없이 존재하는 정신’이다.」
인간의 진화가 정지하거나 퇴화하면, 인간은 자기 능력을 컴퓨터에 심는다. 인간의 유전자는 작은 캡슐에 넣어져 로봇의 중심에 심어진다. 로봇의 두뇌는 인간이 저장한 프로그램에 따라 자기를 보호, 개량하며 생활한다. 30C 정도가 되면.
그 땐 다른 생물들은 생체가 왕성하고 인간은 매우 유약해진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로봇 속으로 들어간다. 인간의 흔적은 캡슐 속 유전자로 남는다.
「396p: 인간의 뇌 속에 들어있는 뉴런은 천억 개가 넘는다. 은하수 안에 있는 별의 개수와 맞먹는 수준이다. 게다가 하나의 뉴런은 수만 개의 이웃 뉴런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연결부위(시냅스, 연접부)만 무려 1,000만×10억 개나 된다(물론 정보가 전달되는 통로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그러므로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의 수는 가히 천문학적이어서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399~400p: 차세대 컴퓨터인 블루진/Q세퀘이아는 2012년 1월에 1초당 20.1 PFLOPS(1초당 20조 1천억 회의 연산)를 찍으면서 ‘가장 빠른 컴퓨터’ 세계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컴퓨터는 280제곱미터의 면적을 차지하고, 7.9MW의 전기에너지를 먹어치운다. 이 정도면 작은 도시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사람의 뇌를 시뮬레이션하려면 이 정도 규모의 컴퓨터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우리 뇌는 무게가 1.4킬로그램에 불과하며 두개골 안에 들어갈 정도로 크기도 작고, 아무리 과부하가 걸려도 체온은 단 몇 도만 올라갈 뿐이다. 게다가 전력도 20W 정도면 충분하고, 햄버그 몇 개만 투입하면 하루종일 작동한다. 이 얼마나 효율적인 고성능 컴퓨터인가.」
그러므로 인간은 우주의 산물이기 때문에 두되가 곧 우주이다. 두뇌의 운동이 우주의 운동과 같다. 즉 마음이 우주의 운동과 같다. 인간은 소우주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두뇌가 진화하면 우주에 이를 수 있다. 두뇌에 대한 연구는 곧 우주에 대한 연구와 상통한다. 초극미 다음에 연결되는 것은 초극대이다. 그래서 우주는 공이다.
인신 개념의 조물주가 천지를 열고 생물을 창조했다는 생각은 과거의 것이고 우주가 지구를 만들고 지구가 생물을 만들었다는 생각, 즉 우주신 개념은 미래의 생각이다. 우주신은 맞고 틀리고의 분별개념이 아니라 인신과 자연신을 모두 포함되는 종합개념이다. 생명이 우주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죽음도 우주 속에서 이루어지며, 무어 특별히 나만이 신의 은총을 받아 영생하거나 사후에 현재의 육신과 마음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한 행성인 지구 위에 육신은 이루었던 원소들로 흩어져 남고 마음은 언어나 영상 기록으로 남는다.
자연이 설계한 인간의 한살이는 100년이다. 생물기계를 잘 관리하여 100세를 넘기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사고를 당하지 않으면 대부분이 부품 노후와 고치지 못할 고장 때문에 80세 정도에서 무명을 다한다. 인생은 한 마당 잔치이므로 실컷 먹고 놀았으면 다음 차례에게 마당을 넘겨주어야 한다. 혼자 계속해서 마당을 차지하면 손님의 순환이 안 된다. 지구의 원소들로 형성된 몸과 마음이므로 내게 주어진 한 살이를 마치고선 그 원소들을 다시 지구에 내보내야 한다. 그 원소들이 모여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된다. 원소들이 원활하게 순환하여 지구 생물계가 풍성하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나 혼자만이 오래 살겠다고, 부활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이다. 이 욕심대로 된다면 다음에 태어날 인간들은 살아갈 자리가 없다.
생로병사는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에게서도 이루어진다. 암석의 순환과 지각의 변동 등이 지구의 생로병사다. 지구도 탄생이 있었기 때문에 생로병사를 겪으며 마침내 죽음을 맞이한다. 태양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주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생로병사는 자연, 지구, 우주를 관통하는 원리로서 변화의지를 동력으로 한다. 그 변화의지의 顯現이 눈앞에 펼쳐진 삼라만상이다.
변화의 동력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
먼저 인체와 지구 그리고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공통 요소인 원자의 구조와 운동성을 생각할 수 있다. 전자와 핵 그리고 양자와 중성자, 극미자들이 갖는 공통 성질인 평형과 상충성이 부단히 운동하기 때문에 그 합체인 인체, 지구, 우주 역시 부단히 운동한다.
또한 인체의 뉴런과 시냅스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우주 역시 별이 뉴런이고 별들 사이의 연결망이 시냅스 역할을 하기 때문에 원자의 운동성에다가 합체의 운동성이 더해져서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한 운동과 변화가 자유분방하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과 지구의 활동, 우주의 활동이 자유분방하다.
이 변화를 예측하기 위하여 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현자들이 여러 가지 방법, 동양의 주역이나 명상법, 서양의 점성술이나 연금술 등을 구안하여 변화의 원리를 알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모두 극히 일부의 표피적인 원리만 발견하였을 뿐이고 본질적인 원리를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앞으로 마음이 진화하고 과학이 더욱 발전한다면 변화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해본다면, 변화의 주체가 물질이고, 변화의 방향이 물리법칙과 화학법칙이 가질 수 있는 확률의 범위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변화의 원리는 물리법칙과 화학법칙의 범위를 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被測 대상물질이 갖는 물리법칙과 화학법칙을 정확하게 규명하고, 이 조건들을 입력한다면 최첨단 컴퓨터로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하단 말이 된다.
이것은 무생물뿐만 아니라 생물에게도 가능할 것이다. 인간에게 적용할 때 고려해야할 조건으로 감정적인 면이 있는데, 인간이 갖는 감정의 종류와 반응이 대체로 같거나 비슷하기 때문에 일반화된 감정 수치를 입력해도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꼭 컴퓨터가 아니라도 고도로 집중화 된 정신력으로도 대체적인 변화의 방향을 추측할 수는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꼭 점쟁이가 아니라도 일부 노인들이 오래 누적된 경험과 지식의 힘으로 사람들의 길흉을 예언하고 어떤 사건을 예측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즉 그 노인들의 마음이 최첨단은 아니지만 성능이 좋은 컴퓨터화 된 것이다.
이러한 예언이나 예측은 실제 생활에서도 활용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장거리 여객버스 출발을 앞두고, 버스의 부품과 기능 상태, 운전기사의 숙련도와 정신상태, 기후와 도로의 현재상태를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서 출발부터 도착까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 판정관이 운전 경험과 지식이 누적된 사람이라면 거의 완벽하게 그 여객버스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또한 국방이나 외교에서도 이러한 종합적인 예측시스템을 운용한다면 거의 완벽하게 국방과 외교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국의 모든 물리학적 정보와 인적 정보를 입력한 다음에 우리의 전략 목표를 입력하여 비교함으로서 양국의 현재상태와 미래에 일어날 사태 전개를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풍부한 군사와 외교 경험과 지식을 갖춘 판정관이 있다면 거의 완벽한 예측이 가능하다.
「403~404p: ‘블루 두뇌 프로젝트’의 핵심인 ‘신피질 컬럼neocorti-cal column'을 추진 중인 마크람 박사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 이 컬럼에 들어 있는 뉴런을 분석하고 작동원리를 밝혔다. 이 작업이 완료된 후 그는 IBM으로 가서 방대한 복제컬럼을 만들었다. 2009년에 개최된 TED 학회에서 그는 자신의 프로젝트가 10년 안에 끝날 것이라 예측했다(현재 진척상황을 볼 때, 다른 피질이나 감각과의 연결 관계를 제외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는 한때 “제대로 만들어진다면 (복제컬럼을 장착한 로봇이) 사람 못지않은 지성과 매끄러운 행동을 보여줄 것”이라고 장담한 적도 있다. 또한 비평가들이 “금지된 영역을 침범했다”고 비난했을 때 다음과 같이 응대했다.
“과학자들은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뇌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뇌의 기능과 작동원리를 이해하면 지구에서 모든 충돌이 사라질 것이다. 뇌를 이해하면 사소한 일과 중요한 일, 충돌과 반응, 그리고 모든 오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비평가가 “당신은 神 놀음을 하고 있는가?”라고 묻자, 마크람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신은 우주 전체를 창조하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는 두뇌의 작은 모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기독교 신자인 라크람 박사의 고뇌가 묻어있는 말이다. 그가 본래부터 무신론자일리는 없고, 과학 연구가 깊어질수록 생기는 교리와의 상충에 대하여 나름대로는 많은 고민을 한 결과, ‘신은 우주 전체를 창조’했다고 생각을 정리했을 것이다.
라크람이 정리한 생각은 곧 우주신 개념이다. 기독교의 하나님 개념을 확대 해석하면 곧 우주신이 된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다음에 만물을 창조했다.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라는 말은 곧 ‘우주가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 차례로 발생하여 진화하였다’라는 말이다. 누가 꼭 있어서, 즉 인격신이 의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우주가 어떤 이치와 법칙에 의해 저절로 그렇게 시작되어 전개 되었다라고 해도 전혀 기독교 교리와 어긋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의지가 곧 우주 법칙의 인격화가 된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절대적 인격신화 해서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과학을, 그중에서도 뇌신경과학을 기피하기 때문에 기독교와 과학 사이에 갈등과 충돌이 생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곧 우주신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교리와 과학 사이의 장벽이 금방 해소된다.
우주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정수인 것은 인간이다. 인간에게 가장 고귀한 것은 자유정신이다. 그러므로 자유정신은 우주신의 본질이다. 즉 우주의 원리와 법칙이 인간의 자유정신 발현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자유정신이 발현되는 곳은 고급종교와 고급철학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정신이고 과학은 몸이기 때문에 고급종교일수록 과학을 용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무신론자들이 과학에만 맹종하여 신을 부정하는 것은 단견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신이란 반드시 인격신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인격신은 좁은 개념이지만 우주신은 넓은 개념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 속의 한 부분이다. 만약에 신이 인간과 같은 모양을 갖는다면, 마찬가지로 인격신 역시 자연의 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인격신이 자연과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은 앞뒤가 전혀 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주신은 자연과 인간 모두를 포함할 수 있다.
우주신에게 변화를 추동하는 능력이 있을까? 이것은 물론 있다. 우주 자체가 살아있기 때문에 부단히 변화한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가장 관심하는 부분인 개인의 운명 판별이나 예측, 길흉화복에 대한 조화력이 우주신에게 있을까? 이것은 물론 없다. 우주 자체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운명이나 길흉화복은 이미 정해진 구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적인 결과이다. 개인의 성품과 자질, 육신의 상태가 환경과 조건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타인이나 사물과 같은 객체와 조우할 때 만들어지는 결과가 운명이다. 그 운명의 현현이 길흉화복이다. 그러므로 자유정신이 충만한 현명한 인간이라면 그러한 운명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변화시킬 수가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력 역시 우주신의 범위 안이다.
상상의 범위를 더 확대하여, 귀신과 저승세계가 있을까 없을까? 이것은 인격신 개념에서 보면 있지만 우주신 개념에서 보면 없다. 고금의 모든 종교와 철학이 인격신 개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귀신과 저승세계를 인정한다. 그러나 미래에 확대될 우주신 개념에선 귀신과 저승세계가 본래의 모습인 허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생의 모습이 필름에서 나오는 영상이듯이 사의 모습 역시 영상이다. 단지 방향이 다를 뿐이다. 생의 영상이 앞면 영상이라면 사의 영상은 뒷면 영상이다. 그 중앙에 있는 필름이 빛을 받으면 영상이 나타나듯이, 즉 나의 본질이 우주신의 허락을 받으면 영상으로 현현하는 것이 인생이다. 빛이 꺼져 그 영상이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다. 그 잔상이 허공에, 한 편 영화를 본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게 사후세계이다. 즉 귀신과 사후세계는 산 자들의 몫이지 죽은 자들의 몫이 아니다. 산 자들이 잔상에 귀신과 사후세계를 보태어 스스로 위안한다.
산 자들이 그 허상을 지우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유교식 제사와 기독교식 추모에서 보듯 대략 3대 약 100년이다. 불천위 제사의 경우처럼 수백 년 걸리기도 한다.
귀신이 없다고 해서 제사를 없애야 할까? 꼭 그렇지 않다. 죽은 자들의 잔상이 산자들에게 남아있는 한에는 어떤 형태로든 추모하게 되는데, 그 형태로서 제사가 유효하다. 동양식 제사는 밤에 지내고, 추모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수록 함께 먹을 음식이 많이 필요하고, 그 일부를 제상에 올려놓는다. 기독교에서는 낮에 모여서 기도하는 추도식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음식이 필요하지 않다. 귀한 물건을 깊이 소장하고 잘 보살피듯이 무덤도 조상의 유해가 들어있기 때문에 동양이나 서양이나 잘 보살피기는 마찬가지이다.
제사를 지내고 산소를 보살피는 까닭은 조상 추모와 관리에 있는 것이지 복과 행운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옛날에 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낸 까닭은 산천에 대한 존중을 통해 국가 의식을 기르고자 함이요, 민속신앙에서 고목거석, 가신, 성황당, 산신 등에게 고사를 지내는 까닭도 그것들에 대한 존중을 통해 개인과 가정, 마을과 고장의 소중함을 확인하고자 함이지 복과 행운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상에 대한 추모와 존중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면 복과 행운이라는 물고기가 어디선가 나타나 살게 된다. 선량하고 온순한 마음이 품을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지면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대한 대응력이 강해진다.
‘뇌의 기능과 작동원리를 이해하면 지구에서 모든 충돌이 사라질 것이다’라는 마크람 박사의 말은 과학과 종교가 조화를 이룰 미래세계에 대한 굳은 신념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 유학에서 말하는 대동세상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과학적 결론이다.
그 천국과 대동세상은 앞서 말한 컴퓨터 인공지능이나 폭력과 전쟁을 통한 강제적 통제나 지배가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두뇌 진화와 교육을 통해 자유정신을 갖게 됨으로써 가능하다. 지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 사상과 이념이, 각종의 형이상학이 각자의 자유정신을 발휘하되 과학이라는 공통부분을 갖게 됨으로써 갈등과 충돌이 상쇄된다. 그렇게 됨으로서 형이하학은 형이상학에게 완벽하게 종속되어 두 분야가 함께 발전하게 된다. 형이하학이 엉뚱한 가치를 부여받아 월권하는 경우가 없어지고 인간의 편리라는 본래의 위치에 정착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이 뿌리 없는 괴물이 되어 정신계를 방황하는 과열 상황이 없어지게 된다. 풍만한 형이하학의 몸에 얹혀 밝은 빛과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종교
과학
철학 사상
「409p: 사람의 뇌를 평범한 전자현미경으로 찍으면 데이터의 양이 거의 제타바이트(zettabyte, 1제타바이트 = 10의 21승 바이트 = 10의 12승 기가바이트)에 해당하는데, 이 정도면 전 세계 인터넷에 축적된 데이터를 모두 합한 양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두뇌가 어떻게 진화할지는 결코 장담할 수 없다. 인류의 육신이 현재만큼 진화하는데 700만 년이란 장구한 시간이 걸렸으나, 두뇌, 즉 정신이 현재 상태로 진화하는 데는 1만2천 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이 걸렸다. 압축진화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압축진화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1만 년 뒤에는 현재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뇌가 진화되었을 것이다. 압축진화가 가속도를 갖는다면 멀게는 수백 년, 가깝게는 수십 년 뒤에 두뇌가 어떻게 진화할지도 현재로선 예측할 수 없다. 아주 가깝게는 수 년 뒤에 태어나는 인류의 두뇌가 현재 인류보다 훨씬 진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뇌신경과학이 학문의 주류가 되어 인류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21세기에 제기된 모든 문제들이 시원하게 해결될 것이다. 또한 자유정신이 일반화된 대동세상이 펼쳐지고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이 실현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두뇌의 진화가 모든 인류에게 공평하게 일어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문제다. 700만 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가 갈라지고, 그중에서도 다시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수십만 년 전에 갈라졌듯이, 이후 수천, 수만 년에 걸쳐 현생 인류의 후손 가운데에서도 두뇌가 압축진화 하는 인종과 천천히 진화하는 인종으로 구분될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현생인류가 네안테르탈인이나 크로마뇽인을 조상이 아니라고 부정하듯이 압축진화 한 인종들은 타 인종들을 부정할 것이다. 인류가 침팬지나 원숭이를 대하듯이 할 것이다.
침팬지나 원숭이는 인류와 지능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감히 대적할 상대가 못되지만, 진화가 더딘 인종들도 과학문명이 발달했기 때문에 압축진화한 인종들의 지배를 호락호락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 맨손과 석제무기가 싸우면 석제무기가 이겼고, 석제무기와 청동무기가 싸우면 청동무기가 이겼고, 청동무기와 철제무기가 싸우면 철제무기가 이겼고, 현재는 현대식 무기와 재래식 무기가 싸우면 현대식 무기가 이기듯이 미래엔 보통진화와 압축진화가 싸우면 압축진화한 두뇌가 승리하겠지만 승리한 쪽의 희생과 파괴 정도가 생존에 치명적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현재로선 상상이나 공상이겠지만 수천, 수만 년 뒤엔 필연적으로 일어날 상황이다. 진화가 계속 되는 한 인종 분기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로선 압축성장이 발생할 지역은 미국이고 인종은 백인이다. 그들 중에서도 IQ가 높은 사람들, 그중에서도 우수한 사람들의 후손, 그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사람의 DNA에서 압축진화가 일어난다. 혹시 그 사람이 자기 DNA를 남기지 못한다면 다음 순위의 DNA가 압축성장을 한다. 이것은 필연이다.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수십억의 DNA가 싫어할 일이지만 우주의 물리법칙과 화학법칙이 자연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수만 년 뒤에는 21C에 산 모든 인류가, 압축진화한 두뇌를 가진 인종에 의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으로 정리될 것이다. 그리곤 ‘현생인류와 가장 가까운 인종이었다’라고 인류진화도감에 적힐 것이다.
미치오 카쿠가 이 책 중반부부터는 공상과학 영화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나도 과학적은 아니지만 공상을 조금 더 해보도록 하겠다.
가장 우수한 DNA만의 압축진화를 여타의 DAN들이 보고만 있을까? 절대로 그렇게 되도록 놔두진 않을 것이다. 사회적 감시자들이 첨단 뇌신경과학 컴퓨터를 작동하여 혼자만 압축진화를 하려고 하는 DNA를 적발해서 제거할 것이다. 그렇다고 DNA가 사회화 되는 것도 아니고, 이러한 발생과 적발이 계속 될 것이다. 그렇다면 최우수 DNA는 마치 카멜레온이 여러 가지로 변색하듯이 자기 생존을 위해서 새로운 방법을 진화시킬 것이다. 그러한 새로운 방법 중의 하나로 적발당할 위험이 닥치면 우수성을 위장하거나 정신파로 물리치는 정신에너지가 강화될 것이다. 그것이 조금 더 진화한다면 마치 인격신처럼 주위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DNA가 그 인종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수억 분의 1의 가능성조차 없다. 이미 내 몸이 갖고 있는 DNA는 수십만, 아니 수백만 명의 DNA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1이다. 이것이 다시 수백수천 년 뒤에는 수십수백만으로 갈라진다. 그때쯤에는 나의 흔적은 항하사에 떨어진 티끌 하나처럼 도저히 찾을 수 없다. 내가 쓴 글 역시 항하사에 떨어진 빗방울 하나처럼 도저히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지독히도 운이 좋아 이 글이, 수천수만 년 동안 인터넷 세계에서 떠돌다가 압축진화인종에게 잡힌다면, 그들은 무엇이라 말할까? “야 수만 년 전에 우리를 예언한 사람이 있었구나, 대단한데, 누구야 누구, 그 당시 코리아란 나라 경상북도 안동 땅 운안동천에 살던 박희용이란 사람이라고? 제사? 그래 지내주자”라고 할까? 제사를 지내 준다면,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겠다.
“당신들도 우주신의 손안에 있어요. 진화는 계속되고 있어요. 수만 년 뒤엔 당신들도 고대 인종이 되요”
「415p: 내 의식을 컴퓨터에 옮길 수 있다면, 과연 나는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일까?」
‘내 의식’이란 무엇인가.
자각하는 정신으로 사는 게 좋을까, 아니면 이미 정해진 대로 조용히 순응하며 사는 게 좋을까.
‘내 의식’은 자연 속에서 부드럽게 살아가는 존재이다.
의문하는 게 좋을까, 무조건 믿는 게 좋을까.
종교의 필요성.
엔간한 정신이 아니고서는 의연하게 살아가기 어렵다.
존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할수록 발걸음이 꼬인다.
그러므로 깊게 생각하되 빨리 빠져나오는 지혜와 용기도 가져야 한다.
2015.8.13 평은강을 방랑하고 돌아와서.
「440p: 기본적으로 노화는 유전자 및 세포 수준에서 오류가 누적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세포가 나이를 먹으면 DNA에 오류가 쌓이고, 세포 조각이 축적되면서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포의 기능에 장애가 발생하면 피부가 늘어지고 뼈가 약해지며, 머리카락이 빠지고 면역체계도 약해지다가 어느 임계점에 도달하면 신체기능이 완전히 정지한다. 간단히 말해서, 죽게 되는 것이다.
사실 세포는 자체적으로 오류수정 기능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여기에도 오류가 쌓여서 노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된다. 분자 또는 세포 수준에서 노화과정을 막거나 되돌릴 수 있다면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있다」
노화의 원인은 노폐물의 축적이다. 세포와 혈관 곳곳에 노폐물이 쌓여서 혈액과 영양분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혈관과 세포의 기능이 저하된다. 그러한 현상이 심화되어 자연적 치유의 범위를 벗어나면 질병이 발생하여 상태를 악화시켜 결국 임종에 이른다. 노폐물의 축적을 늦추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지만, 겨우 수년 동안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을 뿐이다.
인간생물의 한계와 슬픔은 이러한 이치를 알면서도 서서히 노화하고 마침내는 죽는다는 데 있다. 동물이나 식물처럼 병과 죽음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채 죽으면 될 텐데 말이다.
바위도 물 흐름에 닳고 부서져 마침내 모래가 되고 흙이 되듯이 생물의 세포 역시 닳고 부서진다. 이것은 거대한 우주신의 영역으로서 자연의 섭리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주어진 기간 동안 육신을 잘 사용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당연하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운명이지만 자신의 DNA를 후손에게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므로 가정을 꾸며서 가꾸고 가족을 보살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또한 미래에 유전공학이 발달하여 자기의 DNA를 100% 가진 세포를 배양할 수도 있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영생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삶이야말로 얼마나 외경스러운가.
「443p: 지금의 우주는 생명 없는 물질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깨어날 것이다. 이들이 숭고하고 지적인 물질과 에너지로 변환된다면, 나는 진정으로 그 일부가 되고 싶다.」
우주는 잔치날이다. 그 수런스러운 行行 , 내가 존재하고 의식하는 우주만 우주라고 여기는 인간의 잔머리, 우주는 하나의 전체다. 그 속에 ‘나’는 환하게 빛난다. 한참 그러다가 서서히 꺼진다. 별의 운명이 곧 한 인간의 운명이다. 탄생-성장-쇠퇴-소멸, 이것을 역동적으로 인식하자!
「459p: 외계인은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을까? 그들의 의도는 무엇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무엇일까?
미래의 어느 날. 외계문명과 조우했을 때 불행한 결과가 닥치지 않게 하려면 이 질문의 답부터 찾아야 한다.」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까닭은, 외계문명인들 역시 이 우주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우주 밖에서 싱긋 웃으며 지구인들이나 외계행성인들을 보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무조건 복종 또는 순응, 체험밖에 무슨 도리가 있는가?
외계문명인, 아니 외계문명생물체가 충분히 있다. 그들이 지구인보다 더 진화했을 수도 있고 미개할 수도 있다. 더 진화했다면, 그들과 조우했을 때 행복한 결과가 닥칠 확률이 더 많다. 진화된 문명은 전쟁과 파괴보다 평화와 건설이 더 효율적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011년 스티븐 호킹이 “외계인의 공격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한 말은 지구인을 기준으로 한 생각이지 않을 수 없다. 스티븐 호킹 역시 사고의 한계를 갖는다.
一發萬華요 萬落一紅이다. 한 점 홍으로 돌아와서 開花를 준비한다.
수많은 작은 행성들이 부서진 고리를 두른 토성에서 보듯 모든 별들은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다는 말이다. 우주 역시 과거, 현재, 미래가 있으며 시작과 끝이 있다. 그래서 우주는 순환한다. 순환도 순환한다. 圓이 끝이 없듯이 우주도 영원히 순환한다. 그래서 공과 겁, 연기와 시방세계를 말하는 불교철학이 대단하다. 2015.8.14 12:32
「463p: 허블망원경이 보내온 관측 데이터에 의하면 우리 우주에는 약 1천억 개의 은하가 존재한다. (한 개의 은하 안에는 태양계와 같은 항성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관측 가능한 우주 안에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10억×1천억 개나 존재하는 셈이다.」
‘지구는 우주에서 생물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별이다’라는 생각은 얼마나 오만한가. 우주가 무한하다지만, 우주 밖에서 우주를 들여다보는 존재에게는 우주가 한갓 공모양의 덩어리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주 안에서도 지구를 들여다보면 한갓 공일뿐이다. 그것도 있는지 없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정도이다. 마찬가지로 나노 단위의 미생물들이 들끓는 미시세계가 인간들의 눈에는 한갓 점일 뿐이다.
우주법칙은 공통이기 때문에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생명체는 필히 있다. 하급생명체가 있는 행성도 많고 고급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도 많다. 하지만 지구문명보다 비슷하거나 조금 우월한 문명을 가진 행성은 있겠지만 훨씬 우월한 문명을 가진 행성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문명을 가진 행성생물이 있다면 벌써 지구를 발견하여 신호가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인간생물들의 두뇌로 계산한 우주의 나이 138억 년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우주법칙이 모든 행성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었기 때문에 진화와 문명 발달 정도가 비슷할 것이다.
우주생명체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저 깊은 우주 어딘가 행성 위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생물체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우주에 작용하는 물리법칙과 화학법칙이 동일하므로 어느 행성에 생물체도 지구생명체와 비슷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모습뿐만 아니라 생각도 우리와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도 아직 과학을 극도로 발달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겨우 전파를 외계로 송출하는 정도일 것이고, 과학자들은 외계 생물체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를 부지런히 가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 별의 시인은 나와 마찬가지로 온갖 상상에 공상을 더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곤 외계 친구에게 보내는 마음의 편지를 쓸 것이다. 지금은 거대한 과학기기를 이용해서 전파를 일방적으로 발사하는 정도이지만, 마음의 진화가 가속도를 가진 미래엔 개인과 개인이 뇌파로 직접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우주는 1임을 확인하고, 적응변화의 진화원리를 담은 우주철학이 온 우주에 충만할 것이다.
「500p: 현재 신경과학은 아직도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있다. 그러나 신경과학은 앞으로 수십 년 안에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지금 진행 중인 다양한 연구과제들은 엄청난 발견을 코앞에 두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생각만으로 주변 물체를 움직이고, 뇌에 인공기억을 주입하고,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지능을 향상하고, 뇌를 뉴런 단위로 이해하고, 뇌의 복사본을 만들고, 다른 사람과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다. 주로 신체적 능력에 의존하며 살았던 과거와 달리, 미래는 마음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정신의 세계’가 될 것이다.」
미래가 ‘정신의 세계’라 할지라도 인간이 인간답다는 기준은 몸과 마음의 합체일 경우이다. 뇌와 몸이 있되 뇌가 정상적이어 하고 뇌가 아무리 우수해도 몸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공상과학영화처럼 기계로봇 속에 뇌를 장착하고 로봇을 몸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뇌를 유지하는 수준일 뿐이지 번식이 불가하다. 설사 줄기세포기술로 몸을 만들고 뇌를 두개골 속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과학이 발달하더라도 그 인체는 장착한 두뇌의 껍데기일 뿐 자손이 아니다. 즉 두뇌만이 영생하게 된다.
그런데 그 두뇌는 왜 영생을 계속해야 할까? 알 만큼 다 알고 경험할 만큼 다했기 때문에 영생이 매우 무료한 생활의 연속이 아닐까? 결국 과학기술을 발달시킨 목적은 ‘매우 무료한 생활의 연속’이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한갓 공상꺼리일 뿐이고, 인간이 과학을 발달시키는 까닭은 몸과 마음의 조화를 통한 생활의 편리인 것이다.
뇌신경과학을 연구한다고 해서 텔레파시 능력이 발견되는 건 아니다. 그 능력은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에 서서히 이루어질 두뇌진화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지식이 팽창하고 경험이 복잡, 다양해지는 생활환경의 영향을 받아 진화가 촉진될 수 있다.
그러나 컴퓨터기술의 발달이 두뇌 진화를 추월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빌 조이가 경고하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컴퓨터 자체가 인류를 직접 통제할 상황이 벌어질 경우도 있겠지만 그건 어렵고, 소수 독재자들이 컴퓨터를 이용해서 대중을 통제할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앞서 말한 대로 컴퓨터와 뇌신경과학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접속한다면 인류의 미래에 대재앙이 닥칠 수 있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에 대한 자유정신들의 관리와 조절이 미래로 갈수록 꼭 필요하다.
「506~507p: 코페르니쿠스 원리는 우리가 우주공간을 목적 없이 떠도는 한 조각 티끌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최근 얻은 천문관측 데이터는 이와 정반대 관점이 인류원리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류원리가 강조하는 바는 간단하다. “우주는 생명체에 호의적이다.” 언뜻 듣기에는 별 내용 아닌 것 같지만, 그 저변에는 매우 심오한 뜻이 담겨있다. 신기하게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힘은 생명이 탄생하고 살아가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세기로 작용하고 있다. 핵력, 중력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강하거나 약했다면 태양과 우주가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죽은 별의 잔해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원자는 먼 옛날 용광로 같은 별의 내부에서 생성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두 별의 후손인 셈이다.
생명은 기적 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한 값진 존재이다. 생명체가 탄생하고 번성하려면 이 밖에도 여러 변수가 세밀하게 세팅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기에 지금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다.」
「511p: 우리가 아는 한 뇌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 중에서 가장 복잡한 물체이다. 데이비드 이글먼 박사는 말한다. “뇌는 자연이 창조한 경이로운 걸작이다. 그리고 두뇌분석 기술이 존재하는 시대에 살면서 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는 정말로 운 좋은 사람들이다. 뇌는 우리가 우주에서 발견한 것 중 가장 경이로운 구조물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뇌를 많이 알수록 신비감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져간다.」
현재까지 공개된 지식의 범위 내에서는 지구 이외에 생물이 살고 있는 행성이 없다. 앞으로 발견 된다 해도 이끼류나 미생물과 같은 하등생물일 가능성이 높다. 지구에서도 인간은 최고의 생물이다. 또한 수많은 인간 중에서도 나란 존재, 이 얼마나 다행하고 축복받을 일인가.
지구에 생물이 존재할 수 있는 까닭은 과거와 현재에 걸쳐 여러 가지 조건과 환경들이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인간이 진화를 가장 비약적으로 하게 된 까닭도 조건과 환경이 맞았기 때문이다. 미래는 현재의 연속이기 때문에 미래에도 최적의 조건과 환경이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류원리에 순응해야 한다.
과학이 세상과 우주를 보는 창이 되어 인문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사회과학의 경계가 해소되고 서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인류 모두가 교육과 교양을 통해 자유정신을 갖게 되고, 밝은 미래가 성큼 다가올 것이다.
「535p: 우리는 모든 선택을 자신의 뜻대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뇌는 이미 결정된 수천 가지의 요인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나의 인생이라는) 영화의 결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양자적 효과와 혼돈의 미묘한 조합이 결정론적 요소를 붕괴시킨다. 결국 우리는 언제까지나 운명의 주인으로 남을 것이다.」
결정론에 순종하면 편안하고, 그것을 거부하여 자유의지를 주장하면 고통스럽다. 과학은 자유의지이고 종교는 결정론이다. 과학은 진보주의자의 특성이고 종교는 보수주의자의 특성이다.
양자적 효과란 의식의 부분을 말한다. 의식은 고형이 아니라 기체 상태이다. 물과 같다. 액체 상태가 보통이다가 얼음이 되기도 하고 수증기가 되기도 한다.
무엇이 물이 되게 하고 기체가 되게 하고 고체가 되게 하는가. 온도다. 온도는 곧 주변 환경적 조건이다. 주변 환경이 평온하면 물의 상태, 즉 안정된 의식 상태다.
인간은 개체적 존재이기도 하고 집단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두 존재의 근원은 ‘나’이다. 희로애락애오욕과 和樂을 느끼는, 즉 ‘의식하는 나’이다.
‘의식하는 나’는 ‘山有一花이다. 2015.8.15. 9:28 제70주년 광복절 아침에 一讀하다.
두 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저자가 일본계 미국인이라 일제 침략을 생각하면 강한 거부감이 들지만, 인류 전체적 관점에서 보면 그는 지성인이다.
그도 출신궁의 죄과에 대해 참회해야 하지만, 인류에 보편적인 지식인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일본 지식인과 일본계 미국인들의 대오각성과 인류평화운동에 참여를 권고한다. 2015.8.15. 9:49 一讀 完하다.
2016년 1월 3일 밤늦게 안동 열락연재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