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3:20-28
찬송가 363장 “내가 깊은 곳에서”
양화진에 묻혀 있는 캠벨 여사와 에바 필드 여사의 남편이었던 피득, 알렉산더 피터스 선교사님은 러시아 태생 유대인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이 아닌 일본 나가사키로 갔다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세례를 준 미국 선교사 이름을 따라 ‘피터스’로 개명한 뒤 미국성서공회가 파송한 권서인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권서는 조선 선교 초기 성경을 보급하는 일을 했던 사람을 가리킵니다.
피득 선교사님은 한국에 들어온 지 2년 만에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일부인 ‘시편촬요’를 펴냈습니다. 히브리어에 능통했던 피득 선교사님이 영어, 중국어 성경 번역이 아닌 히브리어 성경을 직접 한글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구약성경 전체를 번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또한 찬송가 열일곱 편을 작사하였는데, 현재 새찬송가에 선교사님이 작사한 곡은 75장 ‘주여 우리 무리를’,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와 오늘 부른 363장 ‘내가 깊은 곳에서’ 세 곡이 들어가 있습니다. 찬송가 363장은 시편 130편을 배경으로 작사한 곡입니다. 시편 130편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시인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노래한 시입니다. 이러한 찬송들이 구한말 고난과 역경 속에 있던 이 민족과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주었을 것입니다. 시편 130편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시 130:1-8) 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이처럼 성경에는 고난 속에서 드리는 기도가 많이 등장합니다. 시편 130편과 유사한 고난 중에 드리는 기도가 오늘 욥의 기도입니다. 욥기 13장 20-28절은 욥이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며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욥은 친구들의 비난에 고통받으면서도 하나님께 간청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 고난의 이유를 밝혀주시기를 묻습니다. 욥은 고통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절박함과 억울함을 느끼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합니다.
고난 중의 욥의 기도(20-23)
(20-23) 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은 하나님께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손을 자신에게 대는 것과 또한 하나님의 위엄으로 자신을 두렵게 하는 것입니다. ‘주의 손’은 끊임없는 재난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의 위엄’은 그러한 고통으로 인해 생긴 공포와 혼란, 당황스러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변호하는 순간만이라도 이러한 고난으로부터 그리고 고난 때문에 느끼는 공포와 혼란에서 놓이게 해달라는 요청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4장의 내용으로 볼 때, 욥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이 모습은 마치 법정에서 변론하는 모습과도 유사합니다. 하늘의 재판장에서 피고 욥이 판사이신 하나님께 변론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22절부터는 천상의 법정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욥을 소환하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환하듯 불러 주셔도 전혀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정 앞에 나아가서 바로 대답할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 하나님께 억울한 상황을 대답할 발언권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왜 자신에게 이러한 고난을 주셨는지 듣고 싶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욥은 지금의 답답한 상황과 자신의 원통함을 토로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억울한 상황이 자신에게 닥친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욥의 답답한 심경이 느껴집니다. 또한 하나님께 대답해 주시기를 바라는 욥의 간청에는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욥의 마음, 회복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음을 봅니다.
아마 욥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향하여 많은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에 유독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래서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대화를 시도합니다. 우리도 때로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때에도 하나님을 향해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욥은 하나님을 향하여 재난의 중단을 요구하면서 하나님과 변론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기도의 형식이지만, 곧 하나님께 대한 항변의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답답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이유 모를 재난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죄가 얼마나 많은지 알려달라는 요청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 항변하는 욥(24-28)
(24-25)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라게 하시며 마른 검불을 뒤쫓으시나이까
욥은 자복과 회개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과연 이토록 심한 고난을 당할 정도로 많은 죄를 지었는가에 대한 항변의 의미로 말하고 있습니다. 허물을 뜻하는 단어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부하는 의미가 있기에 욥 스스로 지금까지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음을 항변하는 것입니다. 죄악, 허물, 죄라는 단어를 거듭 사용한 것은 자신은 그러한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순전한 삶을 살았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의 진노를 뜻하기도 하지만 은혜와 도우심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24절에 주께서 얼굴을 가리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거두심에 대한 하소연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은총을 거두시고 적대적으로 대하신다고 말합니다. 25절에서 욥은 무기력하고 연약한 자신을 ‘날리는 낙엽’과 ‘마른 검불’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힘으로 자신을 대하시고, 맹수가 연약한 짐승을 사냥하듯 집요하게 추격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을 쉴 틈 없이 반복해서 괴롭히고 계신다는 욥의 항변입니다. 이제 26절부터 욥은 보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대적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원망하며 자신의 상황에 대해 탄식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26-28)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 나는 썩은 물건의 낡아짐 같으며 좀 먹은 의복 같으니이다
욥은 하나님께서 하늘 법정에서 자신에게 혹독한 시련과 재난을 판결문으로 내리시고 이를 기록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판결의 이유를 자신의 어린 시절 지은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정도로 욥은 자신의 고난을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하기 어려운 부당한 일이라고 항변합니다. 27절에서, 욥은 자신을 죄수와 같이 여기며 곤고한 처지에 대해 원망하고 탄식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자신의 행위를 빠짐없이 감찰하시고 자신의 운명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발바닥이 닿는 곳마다 쫓아오셔서 조사하시듯 한다고 말합니다.
‘썩은 물건’과 ‘좀먹은 의복’은 인간의 본질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결국 썩어져 흙으로 돌아갑니다. 욥 자신이 이처럼 연약하여 썩은 물건이나 좀먹은 옷처럼 점점 죽어가고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비참한 처지와 무가치함을 탄식하면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14장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욥은 친구들과 무의미한 논쟁을 계속하기보다 하나님께 직접 호소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 줄 유일한 대상이 하나님뿐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에게 고난을 내리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욥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때로 만나는 고난 속에서 다른 것이 아닌 우리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매달리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욥의 신앙과 지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연약함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도 고난 중에서 자칫 하나님께 원망하는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욥이 물론 불신앙으로 그러한 표현을 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시편 기자들,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원수를 갚아달라고 탄원하듯, 또한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항변하듯 기도했던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쏟아 놓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모습까지도 지켜보시며, 또한 함께 마음 아파하시며,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22편에서 하나님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탄식하며, 정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 놓습니다. 욥처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로 고백을 마무리하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찬양합니다.
(시편 22:1-5)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고통과 고난 중에 있을 때 함께 마음 아파하십니다. 또한 고난 중에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우리 속에서 지혜와 계시의 영,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또한 깨닫게 하시고 친히 연약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성령님의 간구를 힘입어 하나님께 창문을 활짝 열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음으로 고난까지도 넉넉히 이기는 기도의 개혁자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고난 속에서 드린 욥의 기도를 통해 우리 인생을 돌아보며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욥의 고백과 같이 저희 인생은 썩어져 가는 물건, 좀먹은 의복과도 같음을 깊이 깨닫게 하시고 날마다 겸손히 하나님께 창문을 열고 기도하는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나 자신을 개혁해 가며,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욥은 고난 중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나의 인생 중에 하나님께 가장 간절히 기도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2. 하나님은 고통 중에 부르짖는 당신의 백성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지금 나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한 동역자는 누구이며 또한 공동체가 있다면 어디입니까?
3. 욥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기도하며 대화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의 태도와 모습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4. 오늘 하루 하나님께 창문을 열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더욱 힘써야 할 나 자신과 교회의 개혁을 위해 어떠한 결단을 하시겠습니까?
(작성: 최정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