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칙 조주선사의 네 문(趙州四門) : 조주의 동문 서문 남문 북문
“누가 그 문을 닫아걸었을까? 잠근 놈이 열기 전에야…”
천리마를 몰아 달려도 조주를 알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러나 그 잣대만 버린다면 이미 조주에 있지 아니한가?
송강스님
조주 종심(趙州從諗, 778~897) 선사는 십대에 출가하여 다른 절에 있다가
남전 보원(南泉普願)선사를 찾았다.
남전선사는 비스듬히 누운 상태로 어린 사미를 맞았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그럼 훌륭한 상(瑞像, 부처님)은 이미 보았겠구나.”
“훌륭한 상은 모르겠으나 누워계신 부처님(누워계신 남전선사)은 뵈옵니다.”
남전선사가 벌떡 일어나 앉으시며 다시 물었다.
“네게 스승이 있느냐?”
“아직 일기가 찬데 스승님께서 법체 강녕하시옵니까?”
이렇게 남전스님의 제자가 되었고, 남전스님께서 입적하실 때까지 40년을 모셨다.
60세부터는 여러 곳을 다니시며 운수행각을 하시다가,
80세에 조주현 관음원(觀音院) 현재의 백림선사(栢林禪寺)에 주석하시면서
120세까지 후학을 지도하시었다.
조주선사와 관련이 있는 거의 모든 화두가
바로 이 조주현의 관음원에 머무실 때의 얘기들이다.
관음원은 옛날부터 측백나무가 가득한 도량이었기에
현재는 명칭을 ‘측백나무 빽빽한 선사’ 즉 백림선사(栢林禪寺)라고 부르고 있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는 화두도 관음원 뜰에 보이는 측백나무를 가리키며
“뜰 앞의 측백나무니라”고 답하신 데서 비롯된 것이다.
백수자(栢樹子)라는 한자어에 ‘측백나무’와 ‘잣나무’의 두 가지 뜻이 있지만,
조주선사는 이곳에 있지도 않았던 잣나무를 가리킨 것이 아니다.
조주선사는 스승 남전선사와 나눈 서상원(瑞像院)에 관한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막연한 말장난 따위는 하신 일이 없다.
➲ 강설
지혜가 확연해지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며,
깨달음에 이른 선지식이라면 어떤 난관이라도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지혜가 사라지면 곧 어리석음이요, 어리석음을 벗어나면 곧 지혜이다.
깨달으면 생사 가운데서 열반을 볼 것이고,
어리석으면 정토에서도 지옥의 고통을 맞으리라.
자, 위대한 선지식을 만났을 때 지혜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가령 부처님을 만났다고 해도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반대로, 누군가를 이끌어주려고 해도
바른 안목과 선교방편을 갖추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자, 무엇이 생사를 해탈하는 안목이며,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이겠는가?
➲ 본칙 원문
擧 僧問趙州 如何是趙州
州云東門西門南門北門
➲ 본칙
이런 얘기가 있다
어떤 스님이 조주선사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조주입니까?”
조주선사께서 답하셨다.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지.”
➲ 강설
원오대사의 ‘평창’에는 이 다음의 대화로 “저는 그 조주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어떤 조주를 물었는가?”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의 문답은 사실 생략해도 그만이지만,
질문자가 어떤 허세를 부렸는지를 아는 데는 아주 적절하다.
조주선사는 상대의 마음을 송두리째 뺏어 버리는 솜씨를 지닌 분이다.
“어떤 것이 조주입니까?”라는 질문은 얼핏 보면 시퍼런 칼을 정면으로 목에 들이댄 격이다.
이 질문만 가지고 보면 대단한 용기를 지닌 듯도 하다.
그러나 조주영감님이 손가락 한번 튕기자 그 칼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일초식도 감당하지 못하는 솜씨로 객기를 부린 스님의 허세가
조주선사의 한마디에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조주(趙州)라는 법호는 조주현의 관음원에 오래 머무셨기에 붙여진 존칭이다.
그러니 조주라는 지역과 조주라는 선지식을 둘 다 가리키는 말이 된다.
이 점은 상식적으로 아실 터. 그러니 조주스님의 답에서 말씀하신
동서남북의 문을 꼭 조주라는 지역의 성문으로만 생각지는 마시라.
질문한 스님은 굳어진 잣대를 가지고 있어서 자상한 답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명력이 없는 자상한 설명 따위는 일찌감치 버린 지 오래인 노인네다.
그러니 어쭙잖은 상대에게 맞추고 있겠는가. 그래서 다른 방식의 자상한 답을 해 주셨다.
“동쪽에도 문, 서쪽에도 문, 남쪽에도 문, 북쪽에도 문이지.”
얼마나 멋진 답변인가! 이런 답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툭 터져 시원해야만 한다.
여기서 자유자재한 조주선사의 진면목을 봤어야만 한다.
그런데 “저는 그 조주를 묻지 않았습니다”라는 두 번째의 대화를 보면
질문자는 조주선사에게 자신의 칼을 뺏기고도 뺏긴 줄도 모르고 있다.
아니 처음부터 칼날이 없는 칼을 들고 설친 꼴이다.
그래서 “그대는 어떤 조주를 물었는가?”라고
조주선사는 얼이 빠진 후학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조주선사는 참으로 친절하신 분이다. 후학의 수준미달도 기꺼이 받아주시지만,
상대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것을 어쩌랴.
천리마를 몰아 달려도 조주를 알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러나 그 잣대만 버린다면 이미 조주에 있지 아니한가?
서울 한복판에서 서울을 묻지 말라.
스스로 모른다면 백년을 끌고 다니며 설명해도 여전히 무엇이 서울이냐고 물을 것이다.
나는 항상 처음 찾아온 이들에게서 이런 얘기를 듣는다.
“저는 스님을 잘 아는데, 스님은 저를 모를 겁니다.”
그것 참! 알고 모른다는 게, 쯧쯧! 떠도는 정보 따위에 끌려 다니다니.
➲ 송 원문
句裏呈機劈面來 爍迦羅眼絶纖埃
東西南北門相對 無限輪鎚擊不開
※ 삭가라안(爍迦羅眼) : 금강의 눈. 흔들림 없는 눈. 깨달음의 눈.
‘삭가라’는 범어 ‘cakra’를 소리대로 옮긴 것.
➲ 송
질문한 구절 속에 모든 기량 기울여 곧바로 부딪치나
➲ 강설
설두노인네는 그래도 질문자에게 온정을 베풀고 있다. 그렇긴 하다.
천하의 조주스님을 마주하여 “어떤 것이 조주입니까?”하고
질문을 던진 스님은 얼마나 굳센 각오를 하고 나섰겠는가.
그는 자신을 모든 것을 기울여 정면으로 부딪쳐 간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는 모름지기 그와 같아야 하리라. 이 점은 참 칭찬할만하다.
➲ 송
깨달음에 이른 안목은
어느 것에도 걸리지 않네.
➲ 강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가 경전 속에 다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언어문자만큼 어설픈 것이 또 있던가.
언어란 여러 갈래로 벌어지는 애매성(曖昧性)과
정확하게 과녁을 적중시키지 못하는 모호성(模糊性)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굳어진 관념의 그릇이 되어버린 것을 사구(死句) 즉 ‘죽은 언어’라고 하는 것이다.
천하의 조주선사가 죽은 언어에 후학을 가둘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자비를 베풀어 활로를 열어 보인 것이다.
➲ 송
동·서·남·북의 문이 서로 마주보고 있으니.
➲ 강설
조주의 문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조주영감님의 말씀을 잘못 들으면 곧바로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이다.
누가 그 문을 닫아걸었을까? 잠근 놈이 열기 전에야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네 대문의 문짝을 살피고 다니진 말라.
➲ 송
끝없이 계속되는 망치질로 시도해도
열리지 않네.
➲ 강설
공부를 하면서도 방향을 잘못 잡으면 수많은 노력이 허사가 된다.
예전에 <금강경>을 마치 진언이나 다라니처럼 한문으로 줄줄 외우는 이가 있었다.
그는 20년 동안을 하루 20회 이상 금강경을 암송했다고 자랑을 했다.
그래서 물었다.
“금강경에서 어떤 가르침을 배웠고 어떤 깨침을 얻었습니까?”
“그런 것은 모르겠고 외우는 동안 머리가 맑아서 좋습니다.”
“외우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항상 편안하십니까?”
“스님,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슬플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지요.
어떻게 늘 편안할 수 있습니까?”
본래 없는 문은 내려친다고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철벽같은 문을 만들어 놓고, 그 문을 노려보는 놈이 있으니 말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하긴 안타깝다는 것도 헛소리지.
2021년 8월 10일
송강스님 서울 개화사 주지
1976년 부산 범어사에 한산 화엄선사를 은사로 득도했다.
범어사 해인사 묘관음사 선암사 표충사 영구암 등에서 참선 수행을 했으며
범어사 불교전통강원과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국장 재정국장 등을 맡아 부처님 오신 날을 비롯한
종단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행정력도 갖췄다.
불교방송 강좌를 2년 여 동안 진행했으며 불교방송 ‘자비의 전화’도 진행했다.
불교TV에서는 기초교리강좌를 진행했다. 불교신문에 ‘백문백답’과
‘마음으로 보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제주도 천왕사 주지를 역임한데 이어
2004년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개화사를 창건해 수도권 포교에 진력하고 있다.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