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무의 분노
법정 스님
보라!
내 이 상처투성이의 얼굴을
그저 늙기도 서럽다는데
네 얼굴엔 어찌하여 빈틈이 없이 칼자국뿐인가
내게 죄라면
무더운 여름날
서늘한 그늘을 대지에 내리고
더러는
바람과 더불어
덧없는 세월을 노래한
그 죄밖에 없거늘
이렇게 벌하라는 말이
인간헌장(人間憲章)의
어느 조문(條文)에 박혀 있단 말인가
하잘것없는 이름 석 자
아무개!
사람들은 그걸 내세우기에
이다지도 극성이지만
저 건너
팔만도 넘는 그 경판(經板) 어느 모서리엔들
그런 자취가 새겨 있는가
지나간 당신들의 조상은
그처럼 겸손했거늘
그처럼 어질었거늘…
언젠가
내 그늘을 거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
나는 증언하리라
잔인한 무리들을
모진 그 수성(獸性)들을
보라!
내 이 상처투성이의 처참한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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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각주가 달려 있다. “물 맑고 수풀 우거진 합천 해인사. 거기 신라의 선비 최고운(崔孤雲) 님이 노닐었다는 학사대(學士臺)에는, 유람하는 나그네들의 이름자로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수백 년 묵은 전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상처받은 나무의 아픔을 보듬는 듯한 시 ‘어떤 나무의 분노’에서 법정스님은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가야산 19경 중 17 경이며 천연기념물 541호인 학사 대전 나무가 제13호 태풍"링링"에 의해 2019년 9월 7일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 밑둥치에서 부러져 넘어져 버렸다.
ㅡ草露(초로) 김성남ㅡ
첫댓글 정말 분노하지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나무는 그냥 보라고 하는 것이지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왜 지신의 이름을 새기느라 흠집을 내는지요?
사람들이 그렇게 잔인하다니까 요
법정스님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작품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점 밤이 깊어 가네요
행복한 저녁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