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6)
2006-12-11 11:21:05
[120차] 선자령 정기산행기
2006. 12. 11. / 서덕영
산행일 : 2006. 12. 9. (토), 흐린 후 갬.
코스 : 대관령옛길 휴게소-새봉-선자령-새봉-성황당-대관령
참가자 : 덕영(대장), 민영, 광용, 문수, 은수. (총 5명)
어렴풋이 상상하면서 포근한 동산을 해치고 올라가니 은빛물결로 다소곳이 펼쳐진 겨울의 선자령 감동! 오랫동안 보지 못하던 친한 친구나 형제를 만난 것 같은 희열로 가슴이 확 트이는 뭉클한 기쁨이었다. 선자령은 정상이 넓다랗고 펑퍼짐하게 생겨 ~봉, ~산이라 지칭하기보다 ~령이라 부른 듯하다. 그래도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1400KM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중간 기점이란다. 정상봉 또한 다른 곳과 달리 규모나 느낌이 마치 진흥왕 순수비나 광개토대왕비와 같은 웅장함과 진취적 느낌을 주었다.
혹시나 한겨울도 아닌데 눈이 제법 쌓여있을까 아니면 실망인데 하는 가당찮은 염려는 문막휴게소를 지날 때부터 멀리 보이는 산과 들이며 가까이 펼쳐지는 영동고속도로 주변은 이미 해맑은 백설로 깔려있었다. 어제 밤 고딩 동기들과 송년의 밤을 뒤로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30산우회 120차 선자령 산행 호위대장 임무를 준비한다. 보통은 산행대장이라 칭하는데 이번에는 쫄병들이 대거 불참하는 바람에 동반자분(?)들이 모두다 등산력이 깊어 대장의 의미가 조금 미달 아닌가 싶다. 30산우회 등급으로 말하면 바둑 18급에 해당하는 장정대기인 나 외는 모두 고수들이다.
5명의 칭구들이 미리 와 대기하던 황선달님의 배려로 랜드로바 애마를 타고 정확히 8시10분 수서역을 출발했다. 미스 아이도 조용히 하라고 재갈을 물려놓고, 우리들의 자랑스런 입담들조차 빠지다 보니 오늘의 차 안은 독서실 분위기다. 쫄고님이 간간히 풀어내는 입담과 야담 속에 2시간30분이나 걸리는 대관령까지의 여정을 운전자 외 모두가 취침모드로 변할 위기를 모면해 주었다. 이 위기는 출발점인 옛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하면서 한번 더 우리를 긴장시켰다. 휴게소에 도착하기 전 문수의 애마가 눈을 보고 흥분한 탓이지 눈 위에서 댄스를 하는 바람에 눈티~가 약간 반티~로 변하는 소동도 있었음을 어찌 알려야 되나 고민되네.
눈 덮인 겨울산행이 처음인 호위대장, 장비는 구입했으나 각반이며 아이젠 등 모두가 낯설다. 고수들의 가르침에 각반 제대로 차고 11시10분 본격 산행 개시! 입구에는 기대했던 산행안내판도 없었다. 단지 눈에 뛰는 안내판은 목장 가는 길과 선자령 0.3KM라고 쓰인 것 뿐이다. 뭬야? 겨우 300M밖에 안 된다는 것이여! 5KM정도는 된다던디? 설명도 없이 질문도 못하고 길 따라 올라갔다. 300M쯤 걷다 보니 “선자령 가는 길” 입구가 나왔다. 그리고 팻말에도 4.7KM인가 라고 쓰여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눈 덮인 산길을 아이젠이 팍팍 박히는 기분을 느끼며 고참들의 뒤를 따른다. 아무도 처지는 사람이 없어 나중에는 은수의 배려로 선두로 나서서 걸었다(?). 믿거나 말거나.
가을의 단풍들은 모두 하이얀 눈으로 변하여 길가에 뻗어있는 가느다란 가지에도 눈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끝없이 펼쳐진 아담한 눈송이 나무들의 퍼레이드, 사슴 뿔같이 예쁘게 뻗은 솜이불 껴입은 겨울나무 가지들, 모두 모여 하얀 동굴처럼 보이기도 하고, 굽힐 줄 모르는 소나무 잎도 눈과 함께 고개 숙이고 졸고 있다. 눈 가지를 스치면 쌓여있던 하얀 폭죽이 스르르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 마치 눈으로 이불 덮고 겨울잠을 자고 있는 자태, 그 산자락을 살며시 즈려 밟고 갑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 들리며, 움퍽움퍽 발이 눈밭에 박혀 들어가는 흥겨운 느낌! 이렇게 오래도록 깊이 느끼며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산등성이를 접어들면서 선자령의 별미인 황량하고 화끈한 눈바람이 잠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커다란 바람개비 풍차를 윙윙 소리 나게 돌리는 눈바람의 위세와 유명세는 다소 평지인 듯한 정상의 면모를 일신해 준다. 오는 도중 삼각지 같은 갈림길을 잠시 전세 내어 점심을 맛있게 즐기고 오는지라 오후 1시45분쯤 정상에 다다르자 운 좋게 운무인지 눈바람인지 잠시 그 활동을 멈추고 우리를 지켜볼 모양인지 주변 경관이 확 트인다. 부근에는 헬리곱터 수백대가 않을 수 있는 벌판도 보이고(양을 키우는 목장인 듯), 주변 등성이와 옆 봉들은 눈으로 곱게 화장하고 그 자태를 말끔하게 드러낸다. 멀리 오대산인지 아니면 광용이가 말하는 곤신봉 아니면 발왕산인지 산봉우리도 보이고 망원경을 안 갖고 왔지만 황선달이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강릉시내와 동해바다를 가리킨다. 큰소리로 외치면 신선한 회 한 접시 시킬 수 있을지 가까이 내려다 뵌다. 영령처럼 느껴지는 백두대간 선자령비를 배경으로 증명사진 한 장씩 박는다.
우리들의 사전에 없는 “온 길 되돌아가기”로 결정하고 하산모드로 바꾼다. 그래도 우리가 누고, 길은 되돌아 오지만 방법은 바꾸었다. 썰매부대로 변했다. 은수, 민영 나 각자 황선달이 준비해준 비료포대를 타고 썰매하산. 경사도가 문제가 있어 다소 심들고 군데군데 바위부리가 있었지만 우리는 해보았다. 다 타고난 뒤 민영이는 마침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에게,황선달은 예쁜 아가씨들에게 비싼(한 장에 200원?) 썰매를 공짜로 양도하니 모두들 고맙습니다를 연거푸, 좋은 일도 많이 한다. 거의 3시가 되어 하산하고 좋은 데가 있어 참숫가마에 들어가 원적외선을 쏘이며 피로회복하고 강원도 산길을 뒤로하고 다음 다음주 태백산으로 송년마무리를 하리라. 간간히 전화로 안부전화해준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에 감사하며 오늘도 즐산의 마무리를 합니다.
집에 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니 갑자기 엉덩이 엉치뼈가 저려온다. 아무리 눈길이지만 포대자락하나로 맨땅에 비벼된 엉덩이가 온전할 리 없었지만, 산신령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렇게도 아름다운 설경을 만들어 놓을 줄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