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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하면서, 무조건 긍정론자들, 더욱 무너 질 뿐이다.
한중간 축구 경기가 있었다. 요즘 중국 내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조바심을 갖고 지낸다. 이유는 사드 때문이다. 사드 하나가, 그것도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필요충족이 아닌 물건이다. 이 하나가 중요한 외교 라인과 그와 관련한 경제 자체를 흔들어 무르익기도 전의 열매를 떨어뜨리 듯이 우리 경제기반을 흔들어 대고 있다.
중국 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인들조차도 조마조마 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주권이 불안한 나라 구조는 나라와 국민들을 언제라도 위기로 몰릴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현실은 본래 나라 조건이 좋은 환경이다. 그런데 미일에게 우리의 주권을 조절 당하는 구조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긴장하는 국가 환경이 되어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것은 국민들을 어지럽히고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돌아오고 있다. 미일 중심이 아니면 다른 그 무엇도 부정해야 하고, 그래서 우리의 경제문제 조차도 중국과 틀어지고 우리 스스로 우리 문제를 해결도 못하고 주변의 힘을 가진 나라들이 결정하는 것을 바라만 보는 현실이 되어 있는 것이다.
원래는 우리가 주권을 주도하는 자주적인 사회구조와 자주국방으로 나아 왔다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결국 우리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것이다. 처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서 출발해서 오랜 세월이흐르다보니 너무 굳어진 기반이 결국 우리를 힘들게 하는 현실이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도하여 미일중소 등, 등거리(等距離)로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우리의 국가와 국민 개인의 실익을 추구하기 좋은 배경을 만들어 가면서 미래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조절되는 환경으로 나아오다가 요즘에 이르러서는 그마저도 안 되는 환경을 우리가 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축구가 일단은 좋은 역할을 했다. 우리 나름대로 정치를 잘 한 것 같다. 직접 보지 못하고 어제 저녁 녹화 된 게임 장면을 보았는데 확실히 우리가 행보를 잘 한 것 같다. 중국은 이겼으니 승자로써 논리를 갖는 것 당연하고, 친중국 성향의 한인들도 한국 축구를 낮추어서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경기 이후 중국 내에서 큰 사태가 일어남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한인들도 편안하게 활보를 할 수 있었다. 식당에서 웃으면서 차분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졌기 때문에 사드와 연결해서 폭동이나 위험한 사태로 연결 될 수 있을 확률이 많이 높았던 시기에 축구 경기가 주어 진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은근히 한중 사이에 큰 사태가 벌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쪽에서 “붉은 악마”라는 이들이 죽음을 각오까지 하니 어쩌고 하면서 갈 정도로 심각성을 보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중국은 A조에서 최하위이고, 한 번도 이기지 못한 0점의 상태가 아니었던가?
더욱이 사드 문제로 두 나라 사이에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만일 한국이 이겨버렸더라면 중국은 본선에 바로 탈락이고 그 상태는 비참 그 자체로 운동장에서는 물론 점점 고조되어 오르던 감정이 어느 한 지역에서 폭발했더라면 크게 연결 될 수 있었던 비상한 순간이었다.
사드로 이미 감정들이 상하고 인터넷 상에서 이상한 소문들이 돌고 그런 판에 축구 경기가 분을 발화(爆炸)도록 했으면 경기장에서부터 물론 그 다음 날, 중국에서 살고 있었던 한인들과 중국인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터져도 터졌을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경기가 중국 승리, 한국이 지고 나자, 중국인들은 기분이 좋아졌고, 그것은 한국에 대한 기분이 많이 누그러졌었을 것이라고 예상 되는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스포츠로 중국에 대한 예와 겸손을 보임으로써 미일이 어렵게 만들어 놓은 패를 부드럽게 하는 패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오늘은 이러한 점에서 우리 사회의 진정한 문제를 들여다보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를 심도 있게 짚어보기를 원한다.
우리사회에 대한 본인 같은 국민들의 노력은 긍정을 위한 비판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나라 사랑이나 애국의 가장 기본이요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바로미터일 것이다. 즉, 사회의 문제점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제시를 하고 그것을 고침으로 진정한 발전을 이룩하며 더 좋은 미래 사회로 나가가는 사회 각성을 일으키는 동력이기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오해와 불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눈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 사회 문제점을 진단하지 못하고, 거기다가 우리를 둘러싼 어떤 배경들이 원하는 사회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아마 우리와 우리사회는 전혀 우리와 상관이 없는 나라 현실을 맞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 같은 과도기가 강하게 형성 되어 왔고, 그것이 지금 우리사회 문제의 근원이 되는 현상들이 사회를 어지럽히는 문제들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시각들이 있다. 그들이 누구인가? 이유가 어찌 되었던 이 같은 사회를 방임 내지 적극적으로 주도해 온 부류들이다.
이들은 긍정적 사회를 위해서 지적하고 밝히려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키는 반응을 한다. 이유는 자신들은 열심히 나라 발전을 위해서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이 만큼 잘 먹게 되지 않았느냐?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그것을 말하지 않고 부정적인 면만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 가지고 나오는 방법이 종북 좌빨 몰이 인 것이다. 국민들이 왜 자기사회를 돌아보는 소리들이 나오는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잘못을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그 같은 목소리를 잘못으로 간주하고 그러한 국민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어떻게 때려 잡을 것인가? 라는 차원에서 나오는 종북 좌빨몰이가 아닌가?
그러니까 자기사회 안에서 나오는 자각의 소리들이 바로 잡자는 의미에서 스스로 나오는 자각의 소리요, 비판으로 긍정사회를 지향하는 건강한 사회 형상인데 거기에 귀를 기우리고 반성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찬성하지 않는다고 극단적 방법으로 몰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 사회가 윤리와 도덕 수준이 높은 사회인가 저급한 사회인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해외 나와 있다보니 우리사회와 한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나라 안에 있을 때 보다 더 깊이 있게 바라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왜 뛰어난 민족성을 갖고서도 훌륭한 인격과 사회 결합을 이루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가지 못하는가? 그 근원적인 문제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그 같은 근본 이유가 무엇인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심도 있게 다루었으면 한다.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좁은 사회 현상이 되었는가?
이 세상은 100% 찬성만이 있는 곳이 아니다. 긍정이 있으면 반대 또한 있는 것이다. 긍정을 긍정하고, 부정을 부정하는 사회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긍정을 부정하고, 부정을 긍정하는 반대 현상의 사회가 강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는 국토가 크든 작든 작은 사회 모습, 특히 의견이 수용되지 못하는 닫힌 사회 현상이 강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닫힌 사회나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단정한다. 거기다가 인간에 대해서 아무리 그가 뛰어나고 사람들 마음을 잘 사로잡는 능력자라 해도 싫어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즉, 지극히 기본 사회 현상 조차도 통용이 안 되는 적대적 관계가 주도하는 환경이 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물며 수 천 만 명의 인간들로 구성되고, 다양한 성격과 종류와 가문들로 이루어진 나라가 얼마나 하나의 통일과 완벽한 인간관계 구조로만 나아가고 오직 찬성을 해주는 한 조직구조 사회로 나갈 수 있겠는가? 이것은 오직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완전히 완벽한 사회이거나 완전히 통제를 하는 사회 말이다. 전자는 있을 수 없고 후자는 북한이 이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러나 요즘 거기서도 반대하는 인민들이 많아진다고 하지 않는가? 은연중에 사회 곳곳에서 북한 김정은 비난하는 낙서들이 등장한다고 하니 말이다.
이러한 인간적인 사회 구조나 속성도 이해를 못하고 여러 반응들에 대해서 수용을 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통제를 지향하도록 하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이들의 속에 들어앉은 문제이기 때문에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근본적으로 자기 사회 건강을 지향하는 내부 목소리 조차도 포용을 못하는 이해 폭이 좁은 정치 기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아류들은 어떻겠는가? 본래 아류들이 더 극단성을 띤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섬겨야 할 어른들에게 충성을 해야 만이 그로부터 떨어지는 부스러기나 권력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기사회 목소리조차 수용을 못하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닫힌 사회 모습을 닳은 기반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왜 닫힌 사회 기반인지는 자기사회를 부정하는 힘이 주도되기 때문에 자기사회를 지향하는 목소리 듣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이는 자기사회에 대한 포용력이 없는 것이고, 그것은 무슨 이유인지는 자신들의 중심에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계기가 되어서 그렇게 몰기까지는 알 수 없는 음성적 경향성의 사회 현상이다. 즉, 사회 안에 형성 된 쌓여 있는 쓰레기 덤이들이 우리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순수한 국민적 자성의 목소리 조차도 수용을 못할 정도로 포용을 못한다는 점이다.
다음은, 본래 긍정이나 부정은 다 자기나라 발전 동력이다.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혹은 민주주의가 요구되는 다른 힘이 주도하는 사회적 배경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폐단이 이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가 잘못 되면 그 사회는 폐단으로 가득 찬 자본주의 사회가 주도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그 사회의 주인 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그 사회를 주도하여 범죄 사회, 즉 법도 제대로 집행이 안 되는 사회로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주 된 현상이다. 거미줄 망 사회가 주 된 현상이다. 이것은 우리사회가 자주적 사회가 아님에서 주로 나타나는 증세이다.
그래서 수정 자본주의 사회라는 이론과 실천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발전 단계지만 우리사회에서는 아직 그러한 조짐이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또한 조절되는 사회라는 증거이다.
이런 점에서 본인은 우리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민 운동들을 결코 순수한 우리 사회 자력 에너지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들을 지적하고 자신의 사회가 건강하게 바로 가기를 원하는 순수한 국민들이 긍정사회를 지향하고자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긍정과 부정은 본래 그 사회 발전의 바로미터이다. 그런데 어떤 목적을 가진 무리들이나 오로지 자기 이익에 갇혀 있는 자들이 힘을 가졌을 때, 즉 탐욕에 사로잡힌 군주가 인간 앞에 설 때는 그것이 법이기 때문에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고 거기에는 긍정만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조금이라도 반대 할 때, 가차 없이 처단해야 하고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는 극단적 공산주의나 군주시대나 독재의 특징인 것이다. 그런데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 같은 비슷한 증세가 나타날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회가 천민자본주의처럼 저급한 사회 수준이나 다른 힘이 주도되어 내정 간섭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사회 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증세이다. 이럴 때 그 사회는 초기에는 어느 정도 발전상을 이루지만 중기로 갈수록 둔탁해지는 현상이 강하고, 그 상태가 깊어지면 퇴보의 가속도가 붙으면서 나라와 국민 사이가 괴리와 갈림으로 강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왜인가? 긍정과 부정이 자율적인 국가 기반으로부터 무너져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 때 정치구조는 대리 정치 수준으로 내려가고 그 당시 지도자들이나 정치는 결코 자신들의 행보를 부정하는 사회 안의 기운들이나 소리들을 거부하여 더욱 사회를 공포 분위기로 몰아가려 하거나 건강 사회를 지향하는 자체 목소리들을 거두어 버리는 것이다.
이 때 긍정의 마인드, 진정한 자기사회 발전 에너지는 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가하는 자기사회를 진단하는 목소리들과 그에 의해서 일어나는 자기사회 수술이다. 이것을 우리는 그 사회가 갖고 있는 내재적 힘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자기사회 고발과 같은 양심의 소리에 의해서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힘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부 고발자들이 민간 차원에서 잘 살려져야 하고, 긍정적 비판 론자들이 언론이나 전문가 집단들을 통해서 자기사회 해부나 수술들을 해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는 이 같은 소리들에 귀를 기우리고 고치려는 정책과 공약들을 통해서 수정해 가면서 나라를 발전 방향으로 몰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서 그 사회가 갖고 있는 발전 물결, 혹은 통치 물결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이것이 안 돼는 사회가 아닌가? 강하게 반문을 하면서 이것은 민주주주의 이해가 부족한 이들이 자신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 이러한 자연적인 에너지나 양심의 소리들을 죽이는 힘으로 국가 운용이 이루어 지는 나라가 특징이 된다는 사실이다.
양심의 소리가 결여 된 사회 현상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사회 윤리나 도덕은 인간 양심으로부터 시작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가의 통치 철학도 바로 이 양심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얼마나 건강하고, 강렬하고, 혜안이 깊고, 통치철학이 바로 된 대통령이냐 할 때, 바로 이 양심에서 비롯된다.
과연 그 같은 인물이 세워질 것인가? 할 때 이번 대선은 이것이 우리사회의 관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양심이 살아 있는 인물은 매우 신중하고, 지혜롭고 혜안을 가지고서 두려움 없이 나라를 움직이고,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이 되려고 끝까지 정신줄을 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사회와 국가의 힘은 인간의 이 양심이 살아 있는 사회인가? 여기로부터 시작 될 것이다. 국민들이 양심을 자유롭게 행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나라 구조, 이것이 바로 지상 천국 형태를 하는 사회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결코 자기사회를 향한 긍정, 부정의 목소리들을 모두 다 경청하는 수준 높은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공하는 유럽의 몇몇 나라는 모범적 국가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유럽이 역사에서 양심의 소리들이 국가에 대해서 반응하는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민중이나 대중적인 힘이 국가로 표출되어서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했던 운동들은 바로 이 인간 양심들의 소리가 결합되어 진 힘의 원류였다.
이것이 유럽의 몇몇 운동들은 지금의 유럽의 국가 형태로 나아오게 했던 것이다. 즉, 유럽의 민주주의는 몇몇 나라를 중점으로 볼 때, 거의 정상적인 코스로 나아온 것이다. 세계가 인권 문제를 표방하는 것도 바로 이 인간의 양심이 제대로 표현되는 사회인가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이 양심의 문제로 자국을 지배하려 하는 현대적 침략 형태이다. 이는 나라 밖에서 국민들의 양심 문제를 거론하면서 그 나라를 길들이는 힘을 구축해가는 보이지 않는 운동들이다.
이를 우리는 양심을 통해서 다른 나라나 사회 체제를 간섭하는 어두운 힘의 그림자들로 표현할 수 있다. 선한 문제를 가지고 침략의 배경을 만들어 가기 때문에 어두움의 움직임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힘에 야합되어서 자기 사회 안의 건강을 지항햐는 양심의 소리를 죽이고 거부하는 힘이 작동되는 형태의 사회구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점에서 유의하여 지켜보면서 거부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국민적 양심의 문제로 국가를 전복하거나 정부를 약하게 만들고자 몰아가는 시민 운동들이다. 이는 바로 일본 같은 현대 침략적 배경이 배후에서 국민들의 양심과 민주주의, 혹은 인권 문제를 통해서 자국 정부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국민들의 항거를 이용하는 배경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먼저 언론이 장악되어 있다면 너무 식은 죽 먹기인 것이다.
이것을 나라 안에서 수용하여 동조하는 힘이 안으로부터 밖에서 들어오는 이 같은 힘과 결합하는 될 때가 바로 자신들의 정치 행위에 반대한다고 종북 좌빨로 몰아가는 우리사회 정치 지대와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배경들이 자기 사회 안에서 종합되어서 입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침략적 배경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사회에 반하는 양심인가, 자기사회 순기능의 순응하는 양심인가? 과제가 우리사회를 들여다보는 해답이 될 것이고, 이것이 국민들과 정치인들의 반응을 통해서 건강한 사회에 대한 현 주소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럼, 왜 반대의 목소리들이 나오는가?
본인 같은 경우 양심의 소리는 일본과의 연관 관계에서 나온다. 이와 관계를 통해서 우리사회가 근본적으로 잘못 된 점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반대를 하는 것이다.
내년부터 일본은 자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독도 관련해서 상당히 많은 분량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교육 시킨다’라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일본은 지난 과거 500년 동안에 두 번의 침략을 했다. 지금은 제3차 침략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판단이 되고 있는 시점에 놓여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여러 면에서 드러나고 입증되고 있다. 2차 대전 패전 직후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면서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승자였던 미국 맥아더에게 조선을 자신들에게 맡겨 줄 것을 여러차례 타진을 하다가 안 되자 3.8선 문제로 돌렸다고 하는 주장이 지금은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국가적 의지는, 그것이 지금까지 이르면서 점진적으로 움직여 온 것이다. 이를 우리사회는 일본의 대 한반도 침략 프로그램으로써 백년대계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일본 정책은 점진적으로 움직여 오다가 요즘 이르러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 과거는, 우리 민족진영의 지도자들이 나라 국정에 많이 참여하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우리사회는 자주적인 움직임도 많이 살아 있을 때는 이 같은 목소리들이 우리사회를 일깨웠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더 길게 이어지면서 후대로 올수록 우리나라 안에 상대적으로 일본 힘이 강해졌다.
그 영향력 아래 들어가는 정부구조와 정치인들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 침략 배경을 알리는 목소리들이나 그와 같은 위험을 알리는 경각심들을 높이는 운동들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오히려 일본과 가까워지자는 환경 조성이 주도하는 사회로 나오고 만 것이다.
특히 IMF 이후 일본의 한국 침략 물결은 더욱 그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실제화 되려고 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독도 찬탈은 더욱 노골화 되었고, 그와 궤를 같이 하면서 군사대국화와 무기 개발과 판매 문제가 부상했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체결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일본 역사왜곡은 한국사회 안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통해서 “화해, 치유” 재단 형태와 나라 건국일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려는 시도로 일본의 과거 시대를 다시 이어지도록 하려하거나 역사를 잇게 하려는 시도가 호응되고 있는 시점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일본 왕의 생일과 일본 군사대국화 헌법개정 1주년 기념행사가 한국 서울 한 복판에서 버젓이 이루어지면서 자축 분위기를 띄웠다. 그런데다 “새누리, 온누리, 신천지” 등으로 우리사회 안에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 등의 운동들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누리란 의미는 일본어로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 등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도 모르게 일본 받아들이기 운동들이 전개되는 것이 아닌지? 매우 의문스럽게 하는 움직임들이 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MB정권과 함께 우리정부 국정에 참여를 하기 시작했던 친일 집단 뉴라이트들이 등장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보의 핵심은 “다시 일본이 우리를 다스려 줄 때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잘 살게 되고, 일본 왕의 국민이 됨으로 2등 국가에서 1등 국가로 등극을 하는 것이다라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려 하면서 그러한 주장들이 양성화 되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 “어두운 면, 밝은 면” 새로운 슬로건을 우리사회 안에 붐을 조성하려고 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이었던가? “일본을 따르면 밝은 면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우리 역사와 전통을 따르면 못 먹고 못 사는 어두운 면이다”라고 환경을 조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생각 밖에 반발이 심하고 역풍이 되려고 하자 다시 물 밑으로 들어가고 만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는 그대로 음성적 지대, 즉 안 보이는 사회 지대를 형성하고 움직이는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실상은 이 같은 환경이 지금까지 우리사회 안에서 작용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독립군과 그 자손들, 나라에 충성을 다하던 공무원이나 군인, 경찰, 검찰, 법관, 국정원, 소방소 등에서 나라의 진정한 일군이나 가문들은 한직이나 가난한 현실로 나아온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거쳐서 이루어져 왔다면, 그래서 지금의 우리사회가 자기나라와 사회를 부정하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얼마 전 옛날 일제 강점기에 포항에 살았던 일본 사람들이 고향 운운 하면서 항상 잊지 못하고 산다고 하면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방송을 우리 한국 방송 체널에서 이제는 대범하게 내놓지 않는가?
지금 이 같은 사회 움직임들은 그 만큼 우리사회가 일본화 되어 있다는 현실을 반영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 안에는 이처럼 한일 문화적 교류라는 차원에서 일본 문화가 거침없이 우리 사회 안으로 밀물 듯이 들어오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지금 50~60대 이상만 죽으면 젊은 세대들은 급속도로 일본화 될 것이다라는 운을 떼면서 그 날들만 기다린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 사회 젊은이들 사이에 삼삼오오 학교나 사회 직장 가운데서 사교나 교제의 자리에서 일본 좋은 이미지 심기 등의 운동들이 전개 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먼저 친일화 되고, 일본유학 등에서 일본과 특별한 연을 맺고 일본화 되었거나 한국 사회 안에 일본 2~3세들이 이 같은 운동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일본 저축 은행 5~6개 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워져서 우리사회 40% 이상의 자본을 확보해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사회 주 은행들의 저축율은 올라가지도 않고 오히려 퇴보되고 약해져 간다고 한다.
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거의 주 기반들이 맥을 못 추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는 일직이 일본 자본들이 흑막의 관계나 우리사회 내 친일 큰손들 배경, 혹은 친일 공무원이나 자본가들과 그들과 관련 된 친일들이 차명 계좌 등으로 일본 현금들을 지하자본이나 아파트 사재기 등으로 보호 정책을 펴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 같은 숨어 있는 일본 재력이나 한국 돈 현금 관리를 위해서 5만원 권 큰 돈 지폐들이 나온 것이고, 지하자본을 양성화 해 준 배경은 아닌 것인지? 강하게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부정 축재자들이 10만원 권, 5만원 권 등의 출현으로 돈을 감추기에 얼마나 많은 도움들이 되겠는가?
이것이 우리사회 안의 일본 보호 정책의 일환으로 통용되는 자기사회에 대해서는 어두운 면이 아닌지? 분노가 일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부산을 비롯해서 울산, 포항 등지 등, 경상도 일대를 중심으로 엄청난 건물들을 사들이는 사재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독도 찬탈을 이룩하는 날, 바로 경상도 동해안이 일본으로 떨어지는 현실이 될지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유병언이 울릉도 일대에 100만 평이 넘는 땅을 사 놓았던 것도, 만일 그가 친일 배경이었다고 가정했을 때 미리 판을 깔아 놓고자 했던 것인지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자, 지금까지 본인이 알고 있는 정보 차원에서만 나열을 해보았다. 이것이 100% 사실일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 내용들은 거의 모두 근거가 있고 우리사회 뉴스에서 모두 밝혀졌던 사실이다. 그 중에 몇 가지는 본인이 추론을 해 본 것도, 즉 유병언 땅 문제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거의 모두 우리 뉴스에서 다루어진 문제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보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 보다 훨씬 더 일본의 영향력은 이미 우리사회 안에 엄청난 힘으로 뻗어 있을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을 그 누가 만들어 왔더란 말인가?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사회 자체적으로 비판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것이 바로 일본의 제3차 침략물결이고, 이는 결국 영원히 나라를 갖다가 마치는 현실로 연결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사회를 비판으로 긍정사회를 지향해야 하는가?
우리사회를 병들게 하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고김영삼 대통령이 한국 병론을 논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 같은 배경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현대 침략 배경의 가장 무서운 방법 적용이다. 이것을 가리켜서 가만히 놔두고서 혹사 시키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옛날 정복은 전쟁을 통해서 어떤 나라의 땅 빼앗기를 단행했다.
하지만 그 같은 형태는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복귀하려는 힘이 살아났고 끊임없이 항거하다보니 통치를 하는 나라에도 소모가 컸던 것이다. 그러다 결국은 세상의 여러 요소에 의해서 독립을 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로 오면서 발전 된 침략의 진화는, 그 대상 국가를 혹사시키는 것이다. 스스로 망하고 스스로 자기 나라를 버리도록 세월 속에서 그렇게 바보 국가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우방이란 외교관계 채널이다.
국민들 모르게 뒤로 주종 관계를 형성해서, 즉 경제나 정치적으로 큰 나라가 우리 작은 나라인 한국을 간섭하고 누르고 겁박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흐르는 세월 속에서 타락한 문화의식으로 길들여 가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서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학하고 그곳에서 타락한 문화에 심취하고 영향을 받고 그렇게 정신적으로 길들여지고 사상화 된 자들이 자기사회로 돌아와서는 그 역할들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흑막의 세력들과 연관을 맺고 들어 온 경우이다. 그래서는 자기사회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자기사회를 타락의 방향으로 몰아가는 역할들을 하는 것이다.
얼마나 우리사회 드라마나 영화들이 자기사회 파괴를 지향하는가? 지식으로 판단이나 건강성에 약한 국민들이 얼마나 많이 길들여지는가? 거기다가 얼마나 합법적으로 사회악을 조성하는 방법들을 언론들이 방송을 통해서 자기사회에 가르치고 유도를 하는가?
우리사회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자들의 가정 상태나 그의 개인적인 삶의 면면을 보면 얼마나 더럽고 지저분하고 타락 적인가? 그러면서 예술이니 인간 자율이니, 하면서 자기사회 정신적 파괴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들의 작품을 보면, 도저히 정상적인 사회 형태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정말 지하에서 별 짓을 다하고 사는 사람들의 영락없는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이것이 나라 밖에서 인간의 한 면이라고 뇌가 이미 포로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전혀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자기사회를 타락과 파괴로 몰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침략적 작용의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즉, 일본은 경제 침략으로 우리사회를 장악해 왔을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사회 안에 정신적인 무너짐을 추구해 온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제3차 침략의 공략으로써 조 된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사회는 중국과의 관계가 성공을 못하는 시대로 나아오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이 우리에게 깔아놓은 그 장치 때문에 우리가 중국과의 관계를 우리 발전 동력으로 만들어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이 우리를 장악하는 배경이 된 것이다. 중국까지 내다보고서, 일본의 임진왜란 침략은 우리를 거쳐서 명나라, 인도까지 나아가려고 했던 그 배경이 지금 현대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 장악 당한 한인들이 중국으로 들어와서 일본을 이롭게 하는 중요한 경향성 두 가지가 있다.
그 첫째는 경제 문제이다. 일본은 65년 한일 협약이 맺어 진이래 한국으로 진출하여 공장지대를 세워서 우리사회 기술과 공장 운용 기반을 비롯해서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장치였던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이를 우리의 자산이나 힘으로 만들면서 우리자체 배경으로 만들어 버렸다면 문제는 달라졌을 것이다. 공장을 뺏고, 일본인들을 다 돌려보내고 했다고 하지만 뒤로는 일본의 경제 침략이 이루어지는 배경이 되어 진 것이다.
지금도 그 배경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 관계가 중국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 정치는 중소기업을 죽이는 정책을 펴왔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은 중소기업 웬만히 가능성과 기술, 실력, 자본 등에서 탄탄한 중소기업들을 다 먹어 치우도록 방임 역할을 했다.
게다가 대기업들은 정부 보증의 은행 자본 끌어당겨 쓰는 제도가 너무 쉬운데 중소기업에는 항상 그 문턱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이것이 친일 집단들이 일본과의 연관 된 사교 관계나 개인적인 관계에서 일본의 침략적 영향력이 우리사회 중소기업 육성을 막히게 하는 배경이 만들어 지도록 한 부분이 이 같은 나라 현실이 되도록 했다면 이는 우리의 불행인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중국으로 들어오는 중소기업이 과거 일본과의 연결 고리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 구조가 닫힌 제도로 인해서 일본 자본은 끌어 당기가 용이하여 일본 자본으로 중국으로 들어오는 중소기업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경제활동이라는 것이다. 나라와 상관없이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활동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 경제구조가 외국인들이 말한 것처럼 구름위에 떠 있는 경제 기반인 것이다.
이것이 경제 침략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람들이 일본 경제 아래로 들어가도록 하는 자기사회 경제 정책의 막힘, 자연스럽게 일본이 그런 불만자들을 포용하게 되는 우리나라 경제 구조 말이다.
중국에서 경제활동으로 벌어들여도 우리나라로 들어오지 않고 일본으로 들어가는 경제 침략 형태 말이다. 왜, 이런 불합리한 사회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가? 바로 친일하는 힘이 이를 막아버리기 때문이 아닌가?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주로 중국으로 들어오는 한인들이 친일로 무장 된 자들이 들어와서 움직인다면, 어떤 현상들이 벌어지겠는가? 왜냐하면 일본의 교활성은 이를 충분히 내다보고서 우리를 이용하는 침략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중국과 대립관계이고, 일제 강점기 역시 중국과 싸운 배경으로 지금도 중국 방송 채널들을 거의 90% 이상 전쟁 드라마는 일본과 싸우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일본은 직접 중국에서 활동이 우리보다 적은 것이다.
하지만 만일 우리 한인들, 즉 일본으로 무장 된 한일들이 중국으로 들어와서 활동을 하는 배경이라면, 어떤 상황들이 발생하겠는가? 이들은 중국에서 결코 한중이 가까워지도록 하는 행보를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국에서 중국인들과 교류를 할 때, 일본 이미지를 좋게 하는 말하기, 행동하기 등으로 일관되게 움직일 것이다. 이것이 중국 각 지역에서 가장 좋은 호텔 등지에서 한일 관계의 사람들이 비밀 회담을 하는 장면들이 목격되는 중요한 배경이 아니겠는가?
친일 한인들은 일부로 중국에 한국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행보 등을 할 것이다. 가령 예를 들자면, 중국 사람들을 무시하고, 얍 잡아 보고, 때론 자신 집에서 일을 시키면서 과격한 행동도 하고 말이다.
언젠가 이런 예를 기록 한 적이 있다. 열차에서 한국 남자와 중국 젊은 아가씨가 엮이게 되어 일본어로 대화를 한 이야기이다. 한국 남자가 리장에서 곤명으로 앉아서 오는 열차에서 일어난 일화이다.
얼마나 이들이 지능적으로 그 같은 일들을 하는지, 알릴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다시 기술을 하고자 한다. 그런데 자신 앞에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학생이 입석 표였기 때문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리장에서 곤명까지는 약 9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다. 한 2시간 이후부터 이 아가씨가 너무 힘드니까 견디기 어려운 표정을 했던 가 보다. 마음 좋은 것 같은 한국 사람이 그 아가씨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일어섰던가 보다.
이것이 좋은 계기가 되어서 서로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두 사람이 확인해 보니 한중어로도 통하지 않고, 영어로도 통하지 않고, 두 사람이 일본어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곤명에 도착하기 내내 일본어로 대화를 하면서 왔다는 것이다.
옆에 서 있었던 다른 중국 사람들도 그 모습을 보았고, 그 열차 칸 가까이에 앉아 있거나 서 있었던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인접거리에 한국 사람이 자기나라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인데 일본어로 대화를 하니!
이들은 속으로 얼마나 일본 사람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심어 졌었겠는가? 만일 이러한 배경이 바로 한일 관련한 자들이 중국 각지 최고의 호텔 등지에서 만나서 비밀 회담 등을 통해서 바로 이 같은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훈련 형태를 통해서 진행되는 것이라면, 무서운 일이다.
친일 한인들의 특징은, 일본이 우리 한국에 대해서 하는 짓들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할 때, 이들은 전혀 호응을 하지 않거나 다른 말로 화재를 돌리려 하거나 무덤덤하게 그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거나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은 일본의 좋은 점을 이야기 하거나 일본인들 중에는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예를 들면서 적극적으로 옹호하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에 이르러서 한중 관계는 멀어지고, 중국인들의 입에서는 묘하게 일본 칭찬과 존경의 의미들이 묻어나오고, 한국에 대해서는 비아 냥 거리거나 무시하려는 태도로 일관 되려 한다는 사실이다.
요 며칠 전 뉴스하나는 멕시코에서 우리 영사 한 사람이 자국민이 어려움을 당하는데 너무 소극적이고 나몰라 하는 행보를 했다는 뉴스가 떴다. 이러한 행보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다 만일 이 같은 외교가 자국은 어렵게 만들고 일본을 위한 행보가 암암리에 성행한다면, 우리나라는 그만큼 세월이 무너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이것이 방치 된다면 회복 불가능한 나라 상태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국민들이 각성되어 있어서 비판의식으로 이런 문제를 자기사회에 고발하고 그럼으로써 함께 공유하여 바로 잡고 고치도록 하는 공동의 노력들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나라 국내외적으로 일본 이롭게 하고, 일본 문화의 앞잡이들로 노력을 하면서 이를 밝히고 바로 잡으려 하는 자기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비판을 듣기 싫어하고 거부하는 행보를 노골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대 의견을 내놓는 것이다. 이런 반대 의견을 거부하고 오히려 무조건 잡아 없애기 위해서 국민 50%를 종북 좌빨로 몰아가려 한단 말인가? 특히 이들의 아류(亞流)란 부류들은 한 술 더 뜬다는 사실이다.
만일 이들이 순수하게 자국 중심의 정치지대를 형성하고 있다면, 이들이 자신들 후손들에게 좋은 나라를 물려주겠다는 것이 이들 마음의 중심이라면, 오히려 이 같은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기나라를 이롭게 하는 양심의 소리임을 알고 있고, 여기서부터 자기사회가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근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조건 거부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립 사회, 즉 아군 아니면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는 대립구조를 형성하는 것은, 바로 일본과 같은 침략적 배경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조건 편을 갈라서 때려 죽여야 한다는 폭력적 배경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들은 교수요, 법조계 등과 같은 우리나라 보수라고 하는 이들의 입이나 행동에서 볼 수 없는 폭력성을 내보이는 것이다.
왜인가? 일본 앞에서는 개의 수준이기 때문에 뜻대로 안 되자 물어야 하는 정신 수준으로 내려 갈 수 있고, 그렇게 해서라도 일본이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충성심을 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대로 우리사회에서 적용되기 때문에 똑같은 수준의 모습들이 나오는 것이다.
글을 맺도록 하자!
본인은 독특한 성향의 사람이다. 특히 우리사회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가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다. 특히 일본에 관한 배경은 유대인들로부터 받은 그 모티브가 일본 역사 속에 깃들여 졌음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 마음을 통해서 우리사회를 바라보는 마음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본이 우리사회를 향해서 갖는 악의 근원을 잘 알게 된 서부터 나오는 힘의 배경이다.
그리고 삶 속에서 직접 경험을 했던 것이다. 선험적 경험과 일본의 한국에 대한 역사성과 지구의 흐름이 어떻게 일본으로 하여금 우리사회를 공략하는 배경이 되는지를 바라보는 안목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흐름이 점점 이러한 배경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똑 같은 한인들이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냄새를 더욱 짙게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공공연하게 일본을 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기사회와 자신의 민족을 더욱 힘들고 어렵게 하는 모드를 펴기 시작 한 것이다. 이러한 우리사회 정황이 우리에게 일본의 위험성을 알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본인이 일본 비판 경향성이 지금처럼 이렇게 강하게 나타나기 전, 본인을 잘 몰랐던 다른 한인들이 본인에게 다가와서 일본 중심으로 살아야 할 것을 몇 번씩이나 접근해서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인만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 자체가 은근히 어두운 배경을 통해서 그렇게 유도하는 사람들이 움직여 왔던 것이다. 그렇게 해 왔던 배경들이 오늘 우리사회 지금의 형태를 가져 올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수도 없이 많이 일본으로 끌어가 버린 것이다.
이 모든 현상들이 종합되어서 우리에 대한 일본의 계략과 움직임을 우리사회에 고발할 수 있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사회는 각성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대비가 지금부터라도 우리 사회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적이 북한이 아니라 일본임을 자각하는 대국가적인 힘이 모아져야 하고, 속히 북한과 통일로 나아가는 구조적인 배경을 만들고, 일본을 대비하는 국가 체제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생각해 보라! 북한이 미사일을 주로 일본을 향해서 많이 쏘지 않는가?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15년 전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북일 사이에 이루어진 비밀 회담을 통해서 일본은 과거사 배상 문제라는 이유로 이미 북에 돈을 지급 했을 것이다.
거기에 일본 특유의 교활성은 무언가 장치를 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하나는 일본 자신들로 하여금 북한 위협론을 펴서 무기 체계 확산과 원폭을 만들고자 하는 환경 조성일 것이다. 이를 우리사회 정치가 반대로 세계에 알리고 드러내는 로비나 첩보전으로 일본의 힘을 꺾으려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전혀 행동하지 않는 국가로 방임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독도 찬탈과 같은 방임 문제와 동일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극히 소극적인 행보로 일본을 돋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일본은 강성하게 자신들의 위치를 확보해 오는 배경이자 미국과 통용되는 아시아 행보를 하면서 상대적으로 우리는 수세와 받드는 위치로 전락되고 우리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국가 기반으로 내려앉고 마는 현실이 된 것이다.
여기에 적극적인 친일본 경향의 인적 자원이 이렇게 해 온 것이 아닌가? 이것이 누가 우리의 진정한 적인가? 판명이 안 되는가?
그러자면 우리사회 안에 친일본 경향의 배경을 정리해야 한다. 이들의 특징은, 결코 자기 사회 중점으로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와 동시에 일본에 대한 비판에도 피하려 한다. 전혀 미동도 하지 않을 정도로 무덤덤하게 대하면서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것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전형적인 일본인들과 같은 모습인지? 부드러움은 솜털보다 더하는데 교활한 눈빛은 자기사회를 말아먹기 위해서 반짝인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중국에서 조차 만일 그 같은 행보, 즉 한국사회 타락을 지향하는 역할을 했던 대로 중국에 까지 와서 그런 행보를 한다면, 어떻게 한중이 가까워 질 수 있겠는가?
지금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한중이 멀어지고, 그로 인해서 경제 교류까지 무너지는 현실이 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사회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일본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어떤 나라와도 가까이 지내려하고 나라 실익 추구로 나아가는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일본과는 척을 져야 하는 정책으로 하루속히 노선을 변경해야 한다.
그러한 제도를 마련하고 어떻게 해서든 일본의 재침략 모드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도록 온 나라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나라 안에 이처럼 깊이 드리워져 있는 일본적인 경향을 모두 거두어내는 일을 시급하게 단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사회 인적 배경들을 점검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공무원 지대와 국민성을 하루속히 점검해야 한다. 일본과 밀착되어 있는 우리 한인들, 즉, 친일화 되어 있는 사람들이 나라 이미지 실추 방향 쪽으로 행보를 하는 배경을 파악하고 막는 일에 우리사회는 심각성을 느끼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향해서 지금 벌이고 있는 현실이 똑똑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오히려 일본에 대한 호감의 행보를 해가면서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어투로 반감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이제 우리사회는 경계하고 그들을 바꾸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반감의 태도를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않는 소극적인 긍정론자들을 바꾸어가는 나라 구조가 가동되어야 한다. 속히 국가 운용기조를 바꾸어야 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더 늦어지기 전에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결코 이 같은 샌드위치 구조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일본이 원하는 나라 구조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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