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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佛畵)
김 동 리
상여 나가는 소리가 난다.
어어훠엉…… 어어훠엉.
어어훠엉…… 어어훠엉.
바람결에 아련히 끊어졌다 이었다 하며 상여 소리는높게 처량하게 들려 온다.
“어머니…… 어머니.”
“…….”
어머니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귀가 먹은 게다.문득 상여 소리가 그친다. 상여를 쉬고 술을 먹으려는가 보다.
“예수교인도 공동묘지로 가나?”
어머니는 발칵 성이 난 목소리다. 낯은 조금도 돌리지 않는다. 크고 억센 손으로 키의 팥을 만지고 있다. 저래봬도 저이도 한땐 여간 독실한 예수교인이 아니었다.
“어머니…… 어머니.”
“…….”
어머니는 고개도 까딱하지 않는다.
“으…… 이…….”
길게 뽑는 상여꾼들의 구성진 목소리와 함께 다시 상여가 뜬다. 운삽이 나오고 명정이 따르고 만서가 이으고, 그리하여 꽃송이처럼 나불나불 떠오는 것이 상여라 한다. 어디 가서 저렇게 고운 비단을 가져다 감았을까. 빛깔이 너무 진하다. 눈가에 어뜩어뜩 현기가 난다. 공동묘지에 무지개가 걸린다.
아련히 목메인 상여 소리는 바람결에 높았다 낮았다 하며 어느덧 물을 건너고 모래펄을 지나서 산기슭을 오르고 있다. 상여를 따라가던 혜룡선사(惠龍禪師)가 뒤를 돌아다보며 그를 부른다. 그는 문득 어머니의 얼굴이, 눈이 저 상여 속에 들어서 산기슭으로 오르고 있는 것이 답답해서,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영영 가버리고 까맣게 없을 것이 아득해서, 어이 할까, 아엉엉…… 엉엉엉…… 아련히 목메인 상여 소리는 아직도 오색 무지개가 하늘거리고 있는 공동묘지로 향해 오르고 있었다.
데그렁…… 데그렁…… 데그렁…….
재호(宰浩)는 자기의 울음 소리가 데그렁거리는 요령 소리와 섞갈리는 것을 깨달으며 눈이 뜨이었다. 은은한 요령 소리는 의연 꿈에서와 같이 들려오고 있었다.
데그렁…… 데그렁…… 데그렁…….
재호가 누워 있는 방 건너채 뒷방에서, 밤새도록, 어저께 죽은 공양주(供養主)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염불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재호는 후줄근히 맥없이 늘어진 손으로 이마의 찬땀을 씻고 이어 자기의 마른 가슴을 더듬었다. 그리하여 그 앙상한 갈비뼈 여남은 대속에 나날이 여위어 가는 심장의 고동을 헤아리며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곧 감은 눈에 비친 것은, 찬바람이 휘휘 도는, 덩그렇게 빈 터, 엉클어진 잡풀, 여기저기 희뜩희뜩 누워 있는 주춧돌…… 그는 다시 손으로 이마를 씻었다.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방문은 아직 캄캄하고, 이따금씩 툇마루에는 밤비 치는 소리가 들린다. 비 치는 소리를 듣자 문득 그도 고향이 그리워졌다.
‘올해가 몇 해째나 될까.’
동경서 나오던 길로 잠깐 집에 들르고는 아직까지 이렇게 객지로만 돌아다니고 있으니 스물둘에서 여섯이라, 그 동안이 벌써 삼사 년이나 되는 셈이다.
‘그 동안 고향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조금 전에 본 꿈이 또 머릿속에 떠올랐다. 꿈에 어머니와 상여를 보았는데 혹 어머니께서 병환이나 나시지 않았는가, 그는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그보다도 도대체 이 즈음 와서는 거의 밤마다 고향 일이 꿈에 보이니 이건 아마 무슨 곡절이 있는 일인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엊그제 밤 꿈에는 십 년 전의 그 소녀가 마치 생시와 같이 똑똑한 얼굴로 나타나 뵈었다. 재호가 막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기차에서 내리자 소녀는 대합실에서 뛰어나오며 트렁크를 같이 들자고 하였다. 소녀는 검정 세루치마저고리를 입고 검자줏빛 구두를 신고 갸름한 얼굴엔 엷은 화장까지 하고 있었다. 정거장을 나와 ‘와카미쓰’라는 일인의 여관 앞을 지나 아이들이 구워 파는 군밤가게 모퉁이를 돌아, 논들이 보이는 작은 길에 나왔을 때, 소녀는 트렁크 들었던 손을 놓고, 길바닥에 서서 웃으며, 재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맨 처음 얼굴이 왜 그렇게 희어졌느냐고 하였다. 시험 공부 하느라고 햇볕을 통히 못 본 것 아니냐고 하였다. 그리고 서울은 아직도 그렇게 날씨가 추우냐, 무슨 예과시험을 보느냐, 하며 그 희고 가지런한 이로 웃어보일 때 재호는 너무도 가슴이 답답하여 꿈을 깨고 말았던 것이다.
얼마 전 고향에서 온 형의 편지에서도 사람이 결혼을 하는 것은 반드시 제 자신을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때로는 부모를 위해서도, 때로는 집안을 위해서도 하는 법이라고, 나이 삼십이 가깝도록 연만하신 부모를 고향에 두고 그렇게 독신으로 객지로만 돌아다니는 것은 도저히 남의 자제 된 도리가 아니라고, 지금 마침 가문으로나 자색으로나 적당한 규수가 있으니 빨리 돌아와서 결혼을 하여 부모님을 안심시키라 하였다. 형의 편지마다 이와 같이 그의 결혼을 재촉하는 데는 형제로서 부모에 대한 도리를 세우려는 것 이외에 또 재호에 대한 다른 의미의 회한이 들어 있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그해 열일곱인가 나던 재호는 같은 동네에서 어릴 적부터 보고 지내던 소녀와 우연히 뜻이 맞아 함께 산과 들을 헤매며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교환한 뒤라, 지극히 순조로운 부모들의 약혼 승인을 믿고 바랐던 것인데, 의외에도 양쪽 가문의 반목으로 인하여 이루지 못하고 만 일이 있었다. 재호 쪽 형들의 말로는 재호가 아직 중학생의 몸이요, 게다가 마침 졸업반에 있으니까 한 해 동안 공부에 더 전심을 해서 대학 입학이나 치른 뒤에 보자 하는 것이었으나, 이것은 오히려 구실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보다는 그때까지도 아직 그 고을에서 향반의 지위를 다투는 주체스런 자만에서 소녀의 집이 옛날의 아전 줄거리란 것을 은근히 흠잡았던 것이고, 소녀의 집에서는 또 전날 그쪽에서 도의원 입후보를 했을 때 이쪽이 저희와는 대립된 쪽에다 협조했던 사실을 들추어내어 그까짓 향반 부스러기가 다 무어냐고 씹어뱉듯 하여, 이리하여 소녀는 감금이 되고, 재호는 재호대로 물 마른 땅의 송사리처럼 파닥거리다 못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 이내 거기 열중해 버려, 그 길로 아주 달아나듯 동경으로 건너가고 말았던 것이다. 본디 무엇에든 한군데 아주 마음을 잘 쏟아 버리는 성질인 그는, 소녀 잃은 슬픔까지 겹쳐서 거의 손에서 화필을 놓을 사이가 없으리만큼 이에 열중하여 있었고, 그리하여 그 뒤 그가 솔거(率居)의 유적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그림에서 이미 연애에 못지않은 또 하나 다른 황홀한 세계를 발견하고, 거기 잠길 수 있었던 것이었으나, 그의 집에서는 그래도 그런 줄은 모르고 실연호로 인하여 그림에 미쳤다느니, 또 그 일이 있은 이래 십 년이나 지난 이제 와,서, 그보다는 또 한번 별개의 동기로 오늘날 이렇게 절간에서 병들어 누워 있는 것까지도 모두 그때에 입은 상처가 의외로 깊었던 것으로만 간주하는 모양이었다.
‘소녀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그는 지금도 밤비 치는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몸에는 병이 들고 그림마저 아주 버리듯 하게 된 오늘날의 그에게는 문득 고향이 그리워지고 고향과 함께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 소녀의 얼굴이곤 하였다.
원당(願堂)에서 땡땡땡 울리는 날카로운 종소리를 뒤이어 근처에 있는 여러 암자들이 일제히 이에 따라 경쇠를 치고, 이 여러 암자에서 요란히 나던 경쇠 소리들이 수그러지면서 이번에는 정말로 큰절에서 우렁찬 큰 북소리가 우렁거리고, 이리하여 이 가야산(伽倻山) 일대의 모든 암자들에서 하루의 새벽 예불이 시작되는 것이다.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레……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모따모따 모따야, 모따야, 대마리야…… 사바하 시따야 사바하 마하 시따야 사바하…….”
큰방으로부터 천수경 외는 소리가 들려 오고 이내 연달아 경쇠 소리가 땡 하고 울린다.
“아금 천정수 변이 감노다 봉헌 삼보전 원수 애납수 원수 자비 애납수…….”
청청하고 은은한 송주 소리가 밀물처럼 그의 마른 가슴을 흥건히 적시어 주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촛대에 불을 붙인 뒤, 조그마한 향합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 조그마한 불상(佛像)을 모셔 둔 복도 구석으로 가 분향을 하려 할 때, 바로 그의 곁에서 흑, 흑, 느껴 우는 울음소리가 들리었다. 고개를 돌이켜 암만 살펴보아야 아무깃도 없다. 그러자 울음 소리도 잠깐 그치고 들리지 않아 응당 그의 귀에서 일어난 착각이려니 생각하고 다시 향로에 향을 넣으려니까 이번에도 또 그의 바로 발 앞에서 울음 소리가 들리었다. 놀라서 뒤로 주춤 두
어 걸음 물러서서 들어 보니 불상 바로 밑의 그 컴컴한 구석에 나이 열 살도 채 못 돼뵈는 지금까지 이 산중에서 그의 길인도를 해주곤 하던 개동(開東)이란 소년이 온 낯을 눈물로 적신 채 앉아 있었다.
“너 왜 여기서 울고 있느냐.”
그는 우선 이렇게 물어 놓고 그때 마침 또 뒷방에서 아까의 염불 소리와 함께 들려 오는 요령 소리를 듣자, 문득 이 소년이 이번에 죽은 저 공양주의 상좌였다는 것을 깨닫고, 아차 괜히 쓸데없는 걸 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소년은 별안간 한층더 섧게 울며 주먹으로 눈물을 닦기 시작하였고, 그와 동시 재호는 자기 자신도 어쩐지 설운 생각이 들어서 얼른 불상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합장을 하였다.
‘나무 관세음보살.’
처음은 재호도 이 모양으로, 눈을 감고 합장하거나 분향을 하는 것보다는 물론 그림을 그리려 하였고, 이왕 그림을 그릴 양이면 솔거처럼 유마상(維摩像)이나 아주 관세음상(觀世音像)을 그리는 것이 어떠냐는 혜룡선사의 말도 있었지만, 그러나 불화엔 아직 경험이 없는 그는, 이절 저절 다니며 우선 구경이나 고루 한다고 시작한 것이 이제 와서는 자기가 그릴 생각보다도 차라리 이렇게 구경하는 편에 더 마음이 기울어졌고, 그와 동시에 어느덧 이렇게 합장하는 버릇까지 생겨지고 만 것이다.
“분상은 향일암이 그중 거룩하다두만요.”
저 개동이란 소년은 재호에게 제가 아는 암자를 인도해 주는 것이 무슨 큰 영광이나 되는 것처럼 즐거운 얼굴로 이런 말을 하며, 그 꼬불꼬불한 산길을 그와 더불어 오르내리곤 하였던 것이었다.
향일암(向日庵)의 불상(佛像)은 소년 말처럼 과연 음전하고 거룩하게 생각되었으나 본시 조상보다 그림에 더 관심을 가진 그에게는 불상보다도 그곳의 나한도(羅漢圖)에 더 마음이 끌리곤 하였다. 큰채 앞 툇마루를 돌아 뒤채 마루로 건너 들어서자, 사철 햇빛을 모르는 음울한 벽에 십육 나한의 새하얀 머리들이 해골바가지들처럼 오글오글하고 있음을 보았을 때, 저 어느 영겁으로부터 내려오는 고달픈 촉수(觸手)가 그의 온 심장을 쓸어쥐는 듯하였다.
불화에도 이 나한도만은 비교적 흔치 않은 모양으로 향일암에서 본 것 말고는 불이암(不二庵) 한군데밖에 이렇게 큰 것은 더 찾아볼 수 없었다.
불이암은 뒤로 층층이 난 바위와 비스듬히 드러누운 노송(老松) 둥치를 등에 지고 옆으로 넓은 계곡을 비껴 보며 험준한 산비탈에 겨우 붙어 있는 조그마한 묵은 암자였다. 기와가 한 모서리 벗겨져 벌건 흙이 드러나고, 벽은 헐리고, 추녀가 썩어 무지러지고, 기둥이 모두 굽어지고 하여, 오래전부터 그냥 비어져 있는 모양이어서, 처음은 그도 선뜻 들어서기를 주저하다가 드디어 신발째 툇마루에 올라가 방문을 열어 보았다. 옛날 불상을 모셨던 듯한 정면 벽에, 채색이 거의 벗기고 군데군데 구멍 이 뚫어진 불화 한 폭이 붙어 있어 곧 뛰어들어가 한참 동안 자세히 들여다보았으나, 불보살(佛菩薩)의 얼굴들은 하나도 제대로 가려 볼 수 없으리만큼 화면이 헐리고 퇴락되어 있었다. 그림에 비기어 방바닥은 그래도 정한 편으로 구석구석이 흙무더기가 쌓이고 새짐승들의 발자국과 쥐똥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널려는 있었으나 봉당이 패고 구들이 헐려 있는 것은 아닌 듯하였다.
재호는 불현듯, 그의 거처를 이리로 옮겨 왔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어 그 방에서 샛문을 열고 곁방으로 들어서자, 그쪽 어둠침침한 바람벽엔 역시 언젠가 향일암에서 본 듯한 그 새하얀 해골바가지들이 오글오글 끓고 있으매 또 한번 가슴이 흠칫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지봉 밑이라 이 해골바가지들에도 군데군데 곰팡이나고 채색이 벗기이고 전체가 우중충하게 흐려져 있었으나, 큰 방 정면 벽에 붙어 있는 것에 비하여는 훨씬 성한 편일 뿐 아니라, 저 향일암의 것에 비겨서도 각자의 표정과 성격들에 있어 월등 뛰어나 있다고 생각되었다. 제사존자(第四尊者) 소빈타(蘇頻陀)의, 날개처럼 그려 내린 새 하얀 눈썹과 상투처림 머리 위에 솟아 오른 육계(肉훨읔)와 북같이 생긴 둥그런 배에 혹처럼 튀어나온 배꼽과 이러한 생리상의 기형적 발달이 그의 얼굴 표정과 꼭 어울리어 조금도 부자연한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소빈타의 두력(道力)이나 도심(道心)에 조화시킨 때문이 아닌가고도 그에게는 생각되는 것이었다. 중생(衆生)으로서의 인간이 불(佛)을 향해 화(化)해 가고 있는 과정, 부처와 인간 사이의 어떤 중간적인 동물로서, 올챙이가 개구리 사이의 어떤 중간적인 동물로서,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하려 할 즈음 올챙이의 몸에 네 발이 뾰족뾰족 나기 시작했을 때와 같은 그러한 내적(內的) 변화에 따른 외적(外的) 변형이리라 하였다. 먼저 향일암에서 본 소빈타의 얼굴에는 이러한 도심의 발로 같은 것이 포착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만큼 그의 긴 눈썹과 육계들의 특수한 발달이 조금도 어울리지 않고 부자연스럽기만 했었다. 필자로서도 그러한 부자연함을 느꼈던 겐지 낙구라(諾矩羅) 벌사라불다라(伐闇羅弗多羅)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육계를 그리지도 않고 말아서 그 앉은 자리의 순서로써 헤아리지 않는다면 다른 존자들과 구별해 낼 만한 아무런 얼굴의 특징도 찾아볼 길이 없었다. 이 불일암의 것은 그러한 각자 개성 무시의 획일적 필법과는 아주 대척적으로 여기서는 또 너무 개성들을 날카롭게 살리려 한 데서 오히려 무리가 생긴 것같이도 생각되었다. 너무 형용 구별과 개성적 특징에 유의한 나머지, 혹은 영악한 고양이 모양과도 비슷하고, 혹은 청승스런 노새 모양 비슷도 하고, 혹은 영성한 삽자리 모양, 변덕스런 여우 모양, 넋 잃은 두꺼비 보양, 미련한 곰의 모양, 능글맞은 늑대, 암팡스런 딱정벌레, 딱딱한 나귀, 불행스런 잔나비…… 여러 가지 동물들의 차고 외로운 얼굴들을 지니어 캄캄한 칠야, 혹은 비바람이나 치는 어스름으로 야단스레 저희들의 해골바가지들에 푸른 불을 켜고 난무와 아우성을 칠 것 같은 창백한 의욕이 눅눅한 벽에 가뜩 스며져 있는 듯하였다.
어느 날은 무우암(無憂庵)에서 해를 지워 버렸다. 아미타불은 역시 무우암의 것이 제일 그의 마음에 드는 편인 모양이었다. 색조로나 필법으로나 이 산중에서는 제일 오래된 것이라는데 아직 화면이 그다지 헐리지도 않았고 곰팡이도 나지 않은 것이 어딘지 그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림을 그리려다 말고 솔잎도 먹지 말고 참선을 해보려 애쓰지도 말기로 하고, 이대로 흐렁흐렁 아미타불이나 바라보며 이렁저렁 어떻게 간단히 늙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들곤 하였다.
혜룡선사는 그에게 생식(生食)하기를 권하며 늘 솔잎 가루와 대추와 하얀 생청을 조금씩 구해다 주곤 하였다.
“건강을 회복해야지, 건강 없이야 아무리 존 도리가 있은들 어떻게 수득한담?”
선사는 건장한 체구와 화기 떤 얼굴을 들고 평로로 쳐도 오 리나 넘어 되는 산길을, 재호를 위하여 사흘돌이 내려오곤 하는 것이었다. 그의 불그스름한 낯에는 언제나 자신 있는 듯한 안심과 행복이 빛나고 있었다.
지난해 늦은 가을 재호가 이미 처리하기 거북한 가슴의 상처를 지닌 채 선사의 산방을 찾아왔을 때, 그때 마침 선정(禪定)에 들어 있던 그의 얼굴은 그 너무도 치열한 의욕으로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방선한 뒤 그는,
“저를 찾아오신 것은 너무나 황송합니다.”
재호에게 처음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저 부처님께 의지함으로써 별 병고는 없이 지냅니다만 저 이외의 사람에게 얼마만한 도움을 줄 수 있을는지 의문이올시다.”
선사는 무척 수줍은 듯이 재호의 수척한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그 커다란 두 눈을 슴먹거리며 말을 머뭇거리곤 하였다.
이튿날 재호는 그에게 거사계(居士戒)를 받고 그의 수계상좌가 된 뒤, 그의 지시대로 건강이 다소 회복될 때까지 이 대공암에 거처를 정하고 우선 요양하기로 되었던 것이었다.
“하루에 두 번씩은 밥을 먹을 때 반드시 솔잎을 먼저 좀 들도록 하게. 재호 같은 사람에게는 체질에도 대단히 맞을 거야.”
그러나 재호는 그것이 의외로 그의 식성에 거슬렸을 뿐 아니라, 체질에도 그다지 맞지 않는 듯하였다. 재호가 이런 말을 선사에게 했더니 선사는 그 동안에 차차 맞아질 것이라고 하면서, 옛날 공부하던 스님네들 생각을 해보라고 하였다. 꿀이 다 무엇이냐, 사람 발자취도 아주 없는 깊은 산 바위틈으로나 굴 속 같은 데 들어가서 일 년내 밥구경 한번 못 하고 솔잎과 도토리 따위나 조금씩 주워 먹고도 견디어 내지 않았더냐, 우리가 빚지지 않고 햇빛을 바라보기란 이렇게 힘들고 거창한 사업이 아니겠느냐고 이런 말도 하였다. 그는 업(業)이란 말 대신 가끔 빚〔債〕이란 말을 가져와서 우리가 우리의 업을 다스려야 하는 것은 곧 우리의 부채를 갚는 것이니 사람의 할 일 가운데서는 이것이 아마 제일 큰 사업이 될 것이라고도 하였다.
그래 재호도 이 즈음은 매일 암자로 돌아다니며 불상, 불화들만 바라보고 지내노라니 가끔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즐거울 때가 있더라고 했더니, 선사는 만면에 희색을 띠며 고마운 일이라고 부처님의 은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모양이라고 여간 즐거워하지 않았다. 부처님의 은덕인지 스승의 덕택 인지는 몰라도 그의 심경에 어느 정도의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재호 자신도 생각될 때가 있있다. 치유엔 불이암의 나학도가 아니면 아무런 자극도 받아지지 않던 것이 이 즈음 와서는 나한도보다도 아미타불을 보는 편이 차라리 더 마음이 편했다. 특히 이 무우암의 아미타불상에서는 진한 초록과 빨강 빛깔에 웬일인지 마음이 끌리었다.
한가운데 앉은 아미타불은 전신 금(金)을 써서 그것이 오랜 세월에 절로 그슬린 것이 도로 아미타불다운 존엄과 품위를 자아내고 있었다. 아미타불의 양쪽 어깨 위로, 연화대(蓮花臺)를 들고 서 있는 좌우보체(左右保體)의 관세음, 대세지(大勢至) 양 보살은 초록빛 장삼(長衫) 위에 붉은 가사를 두르고 머리엔 화관을 쓰고 있었다. 좌우보체의 아래로는 일광(日光), 월광(月光) 양 보살이 버티고 서 있고 위로는 문수(文殊), 보현(普賢)의 양 보살, 다시 그 뒤에는 금강장(金剛藏), 제장애(除障碍), 인로왕(引路王) 세 보살이 삼태성같이 둘러 있었다. 그들의 얼굴엔 누구나 다 기쁨과 안심이 넘치고 있었다.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재호는 빈정거리듯 입술을 비쭉거리며 지장보살 위에 시선을 휼렸다. 다른 보살들처럼 화관도 하나 쓰지 않고 그 새까만, 지옥 중생을 위하여 사는 저 지장보살의 손길은 어쩌면 자기의 머리 위에도 닿을는지 모른다고 재호는 또 이런 생각도 하였다. 사르르 내리감은 그 가느다란 두 눈에서 그는 문득 처음 이 불공(佛供)을 이룩한 화승(畵僧)의 발심(發心)과 정열이란 것이 머리에 떠올라, 그의 두 눈 언저리에는 어뜩어뜩 현기가 났다…… 그가 당채(唐彩)에 기름을 풀었을 때에는 이미 마흔아흐렛동안의 정신재계(淨身齋戒)의 분향예불(焚香禮佛)로 두 볼의 살은 한 점도 없이 내리고 두 눈에 새로운 광채만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가끔 붓을 쉬고 고개를 잦혀 까마득한 하늘 위에 가만히 돌고 있는 소리개를 한참씩 바라보곤 했을 것이다. 곁방에서 그 절 감원스님과 그 상좌아이가 의논성스레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에도 이미 그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리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그는 또 한번 합장을 한 뒤 아난(阿難) 존자의 새빨간 가사에 화필을 가져갔다. 존자의 아름다운 얼굴에 떠도는 미소와 그 달고도 조촐한 숨결은 그의 새빨간 가사에서 화필을 통해 혈관 속으로 맥맥히 홀러드는 듯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 타불. 그는 어느 까마득하게 젊은 날에 보리밭을 매다 부지중 호미 끝으로 찍어 죽인 그 어느 흙벌레 한 마리의 명복을 빌며 또다시 합장을 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몇백 년 전에 이름도 없이 사라졌을 그 어느 화승의 맑은 두 눈초리와 약간 떨리는 붓끝이 시방 재호의 눈앞에 선히 보이는 듯하였다. 아무런 유감도 미련도 없이 만족한 웃음을 띄우며 조용히 봇을 놓고 떠나간 화승의 숨결에는 이지러진 신경과 고지식한 집착이라고는 한 나부랭이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재호에게는 생각되었다. 이제 모든 일에 아무런 흥미도 긴장도 느껴지지 않는, 다 풀린 태엽과도 같이 이완(弛緩)된 그에게는 날과 날을 외로운 달팽이처럼 어둡고 눅눅한 벽 아래 붙어 서서 이 차고 숨기 없는 채색만을 벙벙히 쳐다보기로만이 마련이던가. 재호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서 있었다.
밤중에 오던 비는 날이 새면서부터 어느덧 다시 눈보라로 변해져 있었다. 지대가 좀 높은 탓인지 겨우내 곧잘 눈보라가 치고 하더니 새해 들면서부터는 정말 함박눈이 퍼붓기 시작하여 한 스무 날 동안은 채 녹을 새도 없이 쌓인 위에 다시 쌓이곤 하는 것이었다.
중들은 어깨를 쪼그린 채 앞머리로 눈을 맞으며 아침부터 이 암자로 모여들었다.
“이만한 눈에는 상관없겠지요.”
큰절 감사로 있는 키가 나지막하고 머리통이 뚝뚝 불거진 사내는 연방 한쪽 손으로 단주(短珠)를 돌리며 이렇게 말했다.
“상관없다뿐이오.”
대공암 감원스님이 대답하였다.
“나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큰절 감사는 또 단주를 돌렸다.
“나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곁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이렇게 합장을 하였다.
재호는 문득 추위를 깨달으며 복도같이 된 긴 툇마루에서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부엌 쪽 복도 구석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듯한 거친 목소리가 들리기에 고개를 돌이켜 보니 며칠 전 새로 들어온 젊은 공양주가 어린 소년 하나를 쥐어박고 있는 것이었다.
“안 올라거든 아주 나가 버려! 어디로든지 나가 버려! 썩 나가! 썩!”
새 공양주는 소년의 팔을 잡아당겼다, 머리를 앞으로 쓰러엎었다 하다가, 나중엔 주먹으로 볼을 쥐어박았다. 그러나 소년(개동)은 엉엉 울며 불상이 걸려 있는 복도 구석으로만 곧장 파고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선생님, 이놈애 좀 보십시오.”
공양주는 재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이놈애가 시방 어저께부터 밥을 굶고 있습니다요. 그런데 제가 와서 밥을 먹으러 가재도 안 간다, 그러면 어디 다른 데로 나가서 얻어먹으래도 안 간다, 그러고 늘 이 구석에서만 앉어 울고 있겠다지요.”
재호는 이 젊은 공양주가 처음부터 좀 모자라는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어젯밤에도 재호가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데 와서, 곧장 저의 상판을 들이밀며 사진을 박아 달라고 조르던 위인이었다.
“왜 그래? 밥을 먹잖고.”
재호는 그 소년이 아침부터 거기 앉아 울고 있던 개동이임을 알고 이렇게 한마디 참견을 하였다.
“누가 아나요? 쳇, 그 공양주 스님 죽었는데 제깟 놈이 압만 울면 무슨 소용이 있다고…… 그 스님이 어릴 적부터 주워다 키웠다고는 합디다만 정말 저의 아버진지 아닌지야 누가 압니까요? 그 동안 공양주를 하자니까 저놈엘 먹이긴 많이 먹였지요. 밥이랑 누렁지랑 불공 때는 떡이랑 유과랑 하고…….”
젊은 공양주는 곁눈질로 소년을 흘겨보며 이렇게 늘어놓았다.
“그런데 왜 그리 때리고 야단이오?”
재호는 이 새 공양주가 요즘 며칠 동안 늘 먼젓공양주의 흉을 보고 다니던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 소년에 대해서도 결코 호의를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저한테 왜 그리 야단이냐 하십니까요.”
공양주는 너무도 억울하다는 듯이 한참 동안 눈을 흡뜨고 그의 얼굴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런 제기랄, 온 산중 스님네들이 모조리 나만 골라 댈라고 하지요, 쳇, 쇠견이 있거던 좀 생각해 보시지요, 이 절 스님네들은 어지간히 욕심들을 채워야지요, 대체 저놈애를 저에게 맡깁니다요, 대체 저에게 무슨 재산이 있습니까요.”
그는 어느덧 울상이 되어 두 손으로 공중을 움켜쥐곤 하는 것이었다.
재호는 공양주의 하는 양을 멍청히 바라보고 섰노라니까 문득, 그의 마음 한구석에 진작부터 이 소년에 대한 어떤 동정 같은 것이 움직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어, 그 순간의 야릇한 충동으로 소년을 그대로 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이리 오너라.”
재호가 부르자 소년은 단번에 복도 구석에서 나와 그의 곁으로 왔다.
자기의 방에 데리고 들어온 재호는 방구석에 놓아 둔 조그만 상자에서 밤 대추를 한움큼 움켜내어 소년에게 주었다. 소년은 양쪽 손에 밤 대추를 한움큼씩 노나 쥔 채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두어 시간쯤 지난 뒤 점심을 먹여서 재호는 소년을 데리고 백일암(白日庵)을 찾아가고 있었다. 우선 혜룡선사에게 데려다주어서 당분간 맡겨 두려는 것이었디·.
계곡을 건너 수풀을 거쳐 산모퉁이를 돌아 나오니, 저 멀리 화장터에서 연기가 오르고 있는 것이 보이었다. 그는 여느 때와 같이 고개를 수그린 채 밤도 오지 않은 영원한 어스름 같은 것을 생각하며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의 눈에는 이따금 흰 눈과 소년의 빨간 두 손이 비치곤 하였다. 소년은 몇 번이든지 고개를 돌이켜 먼 화장터에서 오르는 허연 연기를 바라보곤 하였다. 눈은 그새 잠깐 멎은 모양으로 나뭇가지가 흐느낄 때마다 푸숫푸숫한 눈덩이가 그의 목덜미로, 이마 위로 떨어져 내리곤 하였다. 재호가 작년 가을 처음으로 혜룡선사를 찾아 이곳을 지났을 때는 눈 대신 누런 나뭇잎들이 이 길윽 덮고 있었다고
그는 지금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때 선사는 오랫동안, 진실로 한 십 분 동안이나 묵묵히 눈을 내리감은 채 앉아 있다가 드디어 수줍은 듯한 얼굴을 들며 말하는 것이었다.
“솔거를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꿈같이 아득한 말을 얼굴의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일러 주는 선사의 심경을 재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황룡사지(黃龍寺址)에도 분황사(芬皇寺)에도, 단속사(斷俗寺)에도 솔거의 그림은 흔적도 없어졌더라고 재호가 입을 비쭉거리며 간신히 말을 한즉, 선사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재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선사의 얼굴에서 그 꽃 같은 미소를 보는 순간, 재호는 갑자기 뜻하지 아니한 울음이 솟아 올라, 수건으로 낯을 가린 채 한 오 분간이나 흑, 흑, 느껴 울었다.
황룡사의 노송은 본디 벽에 그렸던 것이니까 건물과 함께 사라졌다 하더라도, 그렇지만, 분황사의 관세음상이나 단속사의 유마상(維摩像)은 어떻게 보존되어 었을 줄 생각했던 것이라고, 이틀 뒤 역시 미련을 가진 재호가 이렇게 말한즉, 그거라야 비단 아니면 종이에 그렸을 터인데 설사 지금까지 있다손 치더라도 앞으로 며칠 더 있어 먼지 티끌이 될 것이냐고 선사는, 오히려 약간 성을 내듯이 말했었다.
눈 쌓인 산이라 오 리 남짓한 거리라고 하지만 성치 않은 재호에게는 홀가분하지 않았다. 이따금 까마귀들은 길가 소나무 가지에서 어둡게 울며 눈을 떨어뜨리는데, 우우 우우 하고 바람이 화장터의 노랑 냄새를 풍기며 연기를 불어 올 때마다 소년은 온 낯에 눈물을 좍좍 흘리며 눈 속에 발을 빠뜨리곤 하였다.
산비탈을 끼고 돌아 나가면 거기서 산등성이로 오르는 작은 길이 있었고, 이 길로 꼬불꼬불 산등성이로 올라가면 저만치 높은 층층대 위에 백일암은 사뿐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래 눈 속에 오누?”
그 동안 수좌들과 큰방에서 함께 선정중에 들어 있은 모양인 선사는 꿈에서 깨인 듯한 약간 열적은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선사는 처음부터 재호가 혼자 오지 않고 개동이를 데리고 온 데 대하여 자못 호기심을 가지는 듯, 그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쪽으로 가끔 시선을 돌리곤 하였다. 재호가 이에 그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선사는 무척 홍미있게 귀를 기울이며 고개까지 끄덕거리곤 하였으나, 그러나 재호의 부탁에 대해서는 간단히 승낙을 하지 않고, 아무튼 잘 왔다고 오래간만이고 하니, 오늘 하룻밤 여기서 쉬어 가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재호가 떠름해하니까, 선사는 자기도 재호가 밖에 나가 묵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는 성미인 줄은 짐작한다고, 그렇지만 사람이 그렇게 인정이 없어서야 쓰느냐고 밤에 천천히 이야기나 하며 자기한테서 쉬어 가라고, 재차 삼차 만류를 해서 재호도 굳이 이를 거역한달 수도 없었으나, 한 가지 이상하게 생각된 것은 그가 데리고 간 개동이를 스승이 아주 재호와 같이 손님 대접을 하는 일이었다. 개동이로 말하면 재호가 이 산중에 들어오기 전부터 대공암 공양주의 상좌로 선사와는 같은 산중에 있는 아이요, 승가(僧家)의 견지로 보더라도 재호의 거사계보다는 사미계를 치른 터이다. 더구나 재호가 자기에게 맡기려고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까지 다 듣고 난 선사로서, 이 소년에 완전히 손님 대우를 하는 데는 어떠한 곡절이 있는 것이라고 재호에게는 헤아려졌다.
“너 이름이 뭣 이지?”
선사가 물었다.
“개동이 올시다.”
“개동이, 거, 이름 참 좋구나.”
선사는 소년과 더불어 한참 재미나게 이야기를 주고받곤 하기도 하였다.
저녁을 치른 뒤 선사는 자기의 솜옷 바지저고리 한 벌을 재호에게 내주며, 양복이 거북할 터이니까 이것으로 갈아입으라고 하였다. 처음 재호는 무척 사양을 했다. 그의 스승은 듣지 않고 기어이 갈아입으라고 권고를 해서 재호는 속으로 얼마든지 혀를 차면서도 마지못해 그것으로 갈아입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납의 처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잠을 자본 적이 과히 없고 또 그것을 무척 꺼려하는 재호는, 이날 밤 선사와 소년이 좌우로 누워 있는 가운데, 더구나 선사의 솜옷까지 빌려 입은 채,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내 잠이 들어 버렸던 것이었다. 평소의 습관에 비추어서는 극히 어색하고 거북하고 여러 가지 불합리적이요, 모순된 일들이 선사의 곁에서는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절로 돌아가는 듯이만 생각되었다.
선사가 그에게 제일 처음으로 한 말도 재호에게는 언제나 잊혀지지 않았다. 일천 수백 년이나 그보다도 더 옛날에 이미 죽고 없는 솔거를 이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멀쩡한 거짓말이요, 허황한 꿈과 같은 말이었으나 그러나, 선사의 곁에서는 그것이 조금도 거짓말 같지도 않고, 어색한 것도 거북할 것도 없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실같이만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의외의 하룻밤을 편히 쉬고 난 재호는, 이튿날 아침 뜻밖에도 미소까지 띤 얼굴로 선사에게 하직을 하였다. 선사는 한참 동안 멍청히 앉아 있더니, 겨우 입을 열어 한다는 말이, 소년을 도로 재호가 데리고 가라는 것이었다. 재호는 어안이 벙벙하여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선사와 인연을 끊기 전에는 선사의 분부를 도저히 거역할 수 없게끔 되어 있는 재호는, 그러나,
“저도 물론 그럴 작정은 합니다만 그저 당분간만 여기 두었으면 해서…….”
한즉, 선사는 수줍은 소녀처럼 입을 오무리며 돌연히,
“나도 실상은 내일부터 여행을 좀 떠날 작정인데.”
하였다.
조금 뒤 돌층층대를 내려가는 재호의 뒤에, 선사는 소년에게 옷보따리―재호가 지난밤 입고 잔 숌옷을 싼 것――까지 들려서 함께 따라 내려오는 것이었다.
층층대를 다 내려와서 산모퉁이를 돌아 나가는 데까지 와서, 선사는 재호를 불렀다. 내일 일찍이 떠나면 혹 재호를 못 보고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럼 부탁한다고, 이렇게 선사는 말하는 것이었다. 재호는 고개를 들어 선사의 얼굴을 보았다. 순간, 재호의 두 눈에는 까닭 모를 눈물이 핑 도는 것이었다.
재호가 백일암을 다녀온 이튿날 아침 일찍이, 선사는 과연 어디론지 길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아직 안거(安居)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지금까지 안거중에 먼 길을 떠난 적이 없는 선사가, 따라 나온 수좌들이 언제나 돌아오시겠느냐고 묻는 말에도, 그건 나가 봐야 알겠다고만 하는 것이 언제 돌아오게 될는지 모른다는 말 같게만 들리어, 산중에서는 이상한 일이라고들 말하였다.
재호는 재호대로 선사가 길을 떠난 지 한 보름이나 지난 뒤까지도 거의 매일같이 소년과 더불어 싸움하기만이 일이었다. 특별히 소년에게 무슨 과실이 있다·든가, 아이의 질(質)이 나쁘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었으나 공연히 밉고 성가시고 화가 치오르는 것이었다. 재호 자신도 물론 그것이 자신의 신경쇠약 탓인 줄 알았으며 옛날의 소녀와 헤어진 이래로 갑자기 생긴 염인증으로 해서 그가 동경 있을 때부터 독신거처(獨身居處)밖에는 못 하던 벼릇의 탓인 줄도 잘 알고는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병폐와 악습이 쉬 가셔지는 것도 잊혀지는 것도 아님에는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얘, 이불은 누가 개키라고 했어, 누가?”
재호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본디 몸이 성치 않은데다 또 추위를 몹시 타는 그는 겨우내 거의 이불을 깔아 놓은 채 지냈던 것이었다. 그것이 또 이 소년의 소제하기 좋아하는 성미와 맞지 않아서 소년은 몇 번이나 그로부터 무서운 호통을 듣고서도 부지중 다시 그의 노염 살 짓을 지지르곤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의지가지없는 아이를 길에 쫓아낸달 수도 없었고 어디 맡겨 버릴 자리가 있는 것도 하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에 대한 재호의 짜증과 미움은 한층더 격심해질 뿐이었고 나중 가서는 선사가 슬그머니 원망스럽기까지도 하였다.
하루는 그가 무우암에서 아미타불상을 보고 있다, 문득 화필 잡을 생각이 나서 돌아오려니까, 나갈 때 그리다 벌여 둔 화가가 어디로 치워지고 붓과 물감도 모두 한쪽으로 집어넣어 버린 채 방 안이 환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재호를 보자 손에 결레를 쥔 채 일어서는 소년에게 그는,
“그림을 누가 치우랬어, 그림을?”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손으로 소년의 이마를 힘껏 떠밀어 버렸다. 휘딱 자빠진 소년은 방바닥에 쿵 소리가 나도록 뒤통수를 찧고 일어나더니 방구석에 가 서서 무척 서럽게 느껴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오래도록 훌쩍훌쩍 울고 있는 소년을 재호는 그러나 달래려고도 하지 않고 이불을 뒤쓰며 눈을 감아 버렸다. 문득 백일암에서 떠나 올 때 그의 뒤를 따라 나와서 하직을 하던 선사의 얼굴이 감은 눈에 떠올랐다. 선사는 수줍은 듯이 고개를 수그렸다. 재호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였다.
“선생님, 선생님.”
하고 저녁때가 되어 저녁상을 갖다 두고 소년이 재호의 어깨를 흔들었으나 그는 손을 내저었다. 그날 밤 그는 끙끙 소리를 내어 가며 앓았다.
새벽녘이었다.
그는 소년의 따귀를 때리고 있었다. 소년은 무척 서러운 듯이 조그마한 어깨를 달싹거리며 방구석에 돌아서 울고 있었다. 문득 선사가 나타나, 그럼 부탁을 한다고, 부디 잘 가라면서 그에게 하직을 하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선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두 눈에서는 돌연히 눈물이 핑 돌았다. 까닭 모를 설움이 목구멍에 복받쳐 올랐다. 그는 목을 놓고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스승은 그의 곁에 다가서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그는 또 한번 고개를 들어 스승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스승의 얼굴은, 그러나 낯선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는 미소를 띠며, 왜 그리 울어 쌓느냐고 하였다. 스승보다 멀쑥란 키대에 어깨까지 약간 구부정하고, 귀가 크고 눈썹이 길다란, 창백한 얼굴에, 먹물 누비두루막을 입은 중의―솔거였다. 재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에게 절을 하였다. 그는 아직도 미소가 만면한 채,
“난 평생 단군상만 그리다 말었어…….”
하며 문짓문짓 물러가…… 안개에 싸인 산이 나타났다. 산에는 퍼런 소나무들이 서 있고 새가 울고…… 눈을 뜨니 온몸이 물에 빠진 것처럼 땀에 젖어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도 의아스러우리만큼 몸이 가벼운 듯함을 깨달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으로 땀을 씻었다.
밖에는 벌써 새들이 지저귀고 문종이에는 아침 햇빛이 훤하게 비치어 있었다.
일여드레 지난 뒤였다.
오랜 장막 속에서 푸른 하늘이 그 씻은 얼굴을 내어놓고, 처마끝에서는 눈 녹아내리는 낙숫물 소리가 처정처정 들리는 이른 봄날이었다. 흰 햇빛이 걍물처럼 번쩍거리는 동구 앞 황톳길 위로 커다란 트렁크와 조그마한 나무가방과 보따리 하나를 지게에 지우고 재호와 그의 소년은 절에서 마을 쪽으로 향해 내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삼대작가전집 김동리 편 1』, 삼성출판사,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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