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이사 온지도 2년이나 되었다.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렀구나. 생각해보니 시골생활에 그리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내가 사는 성환에서 서울에 볼 일이 있으면 마을버스로 평택에 가서 버스를 타고 남부터미널에 내린다. 마을버스는 30분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드문드문 있지만 시간표를 알아두면 큰 불편이 없다. 바로 집 앞에 정거장이 있는데다 늙었다고 버스도 공짜고 타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편안히 앉아 다닐 수 있다. 서울 가는 버스요금은 5,300원, 시간은 대략 한 시간 걸린다. 시간 반이면 집에서 서울까지 갈 수 있지만 여유 있게 가려면 2시간을 잡는다. 바쁠 것 없는 생활이니 뭐 서두를 일이 있나?
늙은이들이 서울에 사는 이유 중 하나가 병원이 가까워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곳 성환에도 병원은 많다. 더구나 2년 정도 병원을 다니다보니 병원 의사들이 모두 알아보고 친절하게 대해주어서 아주 기분이 좋다. 서울의 세브란스 심장내과, 성모병원 안과, 신경외과도 모두 시골로 옮겼다. 김용현 내과의원에서 혈압 약을 탈 때면 원장은 혈압 외에도 어디 불편할 곳이 없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자상하게도 날씨가 추워지니 감기에 조심하고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서울에서 의사와의 대화가 3분도 걸리지 않는 것에 비하면 천지차이다. 아내는 그런 김용현 원장을 마치 우리 집 개인 주치의 같다고 한다. 안과의 김재우 원장은 내 포도막염이 재발하면 제가 무슨 큰 잘못이나 저지른 듯 쩔쩔맨다. ‘미리 예비로 약을 드릴 테니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드시고 병원으로 오시라’고 달랜다. 누가 환자고 누가 의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정형외과의 물리치료사들은 ‘할아버지, 할아버지’하면서 챙겨준다. 나는 이틀거리로 정형외과에 들린다. 그럴 정도로 불편하지 않아도 젊은 물리치료사가 허리와 목을 차례로 만져주면 기분이 너무 좋아서다.
은행도 농협, 신협, 새마을 금고 등 모두 시골로 옮겼다. 이제 행원들도 모두 낯이 익어서 눈이 마주치면 아는 체 한다. 특히 신협의 혜리는 내가 처음 이사 와서 구좌를 개설할 때 만났는데 그 때 혜리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협에 취업한 햇병아리였다. 어찌나 귀엽던지 일부러 커피 심부름을 시키며 친해졌다. 혜리는 내가 신협에 가면 우선 커피부터 타온다.
나는 농약을 사러 가끔 농협에 들린다. 처음부터 농협의 회원이 아니어서 농협직원 아버지의 이름으로 등록을 했다. 30대 중반의 이 젊은이는 내가 나타나면 ‘아버지, 오셨어요?’하며 반긴다. 병이 든 나무의 잎이나 줄기를 보여주면 이 젊은이가 알아서 적당한 살충제니 살균제를 내준다.
머리를 깎으러 다니는 미용실에서도 즐겁다. 늙은이는 8천원이라지만 나는 만원을 주고 거스름을 받지 않는다. ‘난 아직 늙은이 아냐.’하면 처음에는 뜨악한 표정이던 미용실 여인이 이제는 가만히 웃어준다. 귀엽다.
이웃과도 잘 사귀고 있다. 단무지 공장을 하는 이관노 사장, 골동품을 하는 홍 사장, 농사 짖는 남상직 이장, 연암대 정년퇴임 정헌재 교수 등. 퇴비비료도 나눠 쓰고 종자도 나눠 심는다. 심심찮게 야채며 과일도 얻어먹는다.
코로나가 창궐하지 전에는 주민쎈타, 문화원,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시간을 보냈다. 주민쎈타의 체력단련실에서 만나는 늙은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2~3시간은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다. 문화원에서 중국어도 배우고 도서관의 무료기타강습에도 참여하고 심심치가 않다. 그런데 아쉽게도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모두 문을 닫아서 아무도 만날 수 없어 안타깝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다시 좋은 때가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