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교회가 교회 창립 37주년 기념하는 주일이다. 37년 전에 나이지리아 땅에 벧엘한인교회가 세워지고 오늘에 이르렀다(1981년 8월 23일 교회창립). 30년 전인 1988년 3월 15일에 지금의 장소로 옮겨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그간 몇 몇 분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기도와 수고를 많이 하셨지만 아직은 그대로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성전도 건축되어지리라 믿는다(왜냐하면 지금도 눈물어린 기도, 끝없는 헌신). 교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분들의 기도와 헌신과 눈물이 있었다. 작지만 지역 사회를 섬기며 선교의 영역을 넓혀 온 것도 사실이다. 어퍼롬교회 벧엘스쿨, 러브 브릿지 사역, 조스 선교지 지원 등이 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매듭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요한계시록 없었더라면 성경은 미완성 작품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창세기에서 시작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요한계시록을 통해 완성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중요하다. 요한계시록은 세상 끝 날에 있을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세상 끝 날에 전쟁이 있고,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고,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신다. 주님의 재림을 생각지 않고 세상 끝을 바라보면, 절망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대상으로 주신 말씀이다. 주님은 이 말씀을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대상으로 주신다고 하셨지만 실상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며 나아가서는 마지막 때 큰 싸움을 치루어야 할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일곱 교회를 통하여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에서 이탈되지 않도록 주의하게 한다.
라오디게아는 소아시아 부르기아의 수도로 교통의 요지인 리커스 계곡에 위치하여, 부유한 상업도시로서 발전했다. 근처의 히에라볼리에서 흘러내리는 온천물이 라오디게아에서 만나기 때문에 질병치료에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귓병을 치료하는 특효약과 콜로니온이라 불리우는 안약의 산지로 유명하여 의료도시로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오늘 본문은 일곱 교회가운데 맨 마지막에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관한 말씀이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1. 미지근한 교회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미지근한 것이 아니라 차든지 뜨겁든지 해야 한다. 이는 당시 지역적 특성에 맞게 표현된 것이기도 하다. 라오디게아 지역은 물이 부족한 곳이다. 부족한 물을 충당하기 위해 라오디게아에서 떨어져 있는 히에라볼리라는 곳에서 뜨거운 온천수를 공급받고, 또 골로새 지역에서 ‘차가운’ 생수를 공급받았다. 긴 수로를 통하여 공급받아 라오디게아 지역까지 오면 뜨거운 온천수도 차가운 생수도 미지근해졌다. 이와 같은 지역적 특성에 빗대어 잘못된 신앙을 바로 잡고 있다. 미지근한 신앙생활은 역겨운 것이므로 주께서는 가장 강한 표현으로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경고 하신다. 주님은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신다. 차게 하려면 냉각시켜야 하고, 뜨겁게 하려면 가열을 해야 한다.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모양을 냉각을 시키든지 가열을 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진정어린 마음으로 해야 한다. 예배를 드려도 드리는 건지 마는 건지하지 말고, 영과 진리로 드리라는 것이다. 기도를 할 때에도 기도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하지 말고 집중하여 드리자는 것이다. 찬송도 마찬가지다. 예물을 드릴 때도 하나님께서 받으심 직한 예물 되어야 한다.
미온적이거나 무관심한 신앙심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다. 신앙에는 중립의 여지가 없다. 사람에게는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부분이 혹 통할는지 몰라도 주님께는 결코 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다 꿰뚫어 보시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 나의 온 맘과 정성을 다하여 믿음 생활을 해야 한다.
2. 실상을 모르는 교회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 지역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부요한 도시였다. 무역업이 활발하여서 돈이 많이 돌았다. 그래서 은행업이 가장 번성한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도시에 돈이 넘쳐났다. 얼마나 돈이 많았는가 하면 A.D. 17년에 소아시아 지역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도시마다 초토화가 되었다. 이 때 모든 도시들은 로마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복구를 하였다. 그러나 라오디게아는 로마의 중앙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복구를 하였다. 이는 그만큼 돈이 많았다는 것이다.
물질의 풍요로움을 자랑하던 이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으며, 거만하고 자기 민족에 도취해 있다. 물질이 풍족하고 자기만족에 사로잡혀 있다. 저들은 그러한 연유로 인해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계시다. 자신의 영적 상태와 형편을 볼 수 없었다.
세상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부요와 높은 권좌에 앉아서 세상을 호통 치며 산다고 해서 영적으로 완벽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정하고 계시냐는 것이다. 주님께서 귀하게 보신다면 귀한 사람이고, 주님께서 천히 보신다면 천한 사람이다. 사람 앞에서 자신의 우월감이 아닌 주님 앞에서 자부심으로 모든 일들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오늘 나의 실상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무감각, 무통증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암같은 경우도 아무런 증상도 없이 어느 날 아파서 병원에 가보면 말기 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몸살은 축복이라는 말도 있다. 몸의 피로가 쌓여 더 이상 일하면 안되기에 쉬라고 하는 경고다. 자기의 실상을 바로 알기 위해 말씀과 기도 가운데 자신을 쳐서 복종 시켜야 한다.
3. 주님의 처방전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진찰하고, 처방을 내린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가서 약을 타서 복용을 한다. 마찬가지로 미지근하면서 자신의 실상을 모르는 라오디게아교회에 처방전을 내리셔서 바로 세우려고 하신다. 이들에게 참된 부를 가질 수 있는 것과 그것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것을 가질 수 있는 곳은 주님 자신에게서이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사서” 라는 말은 값을 치루고 사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누구에게 사라고 하는가 하면 “내게서” 라고 한다. “내게서 사라” 는 말은 예수님의 것을 가지라는 말이다. 도리어 우리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것을 취하라는 말이다. 예수님의 것으로 치장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것을 가지라는 뜻이다. 우리 의를 버리고 예수님의 의를 붙잡으라는 말이다.
첫째,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자만심을 버리고, 가난한 마음과 빈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오라. 주님의 숨겨진 보물로 채워지게 되리라. 성경에서 금은 믿음을 상징한다. 불로 연단한 금이란 믿음은 인내가 반드시 따른다는 것이다. 인내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일 수 없다. 여러 가지 훈련의 과정을 통해 단련된 믿음은 순금과 같이 나오게 된다. 불순물이 다 빠지고 순도가 100%에 가까운 순금으로 말이다.
둘째,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옷은 장기간 입을 수 없다. 하루 혹은 이틀 입게 된다. 입은 후 반드시 세탁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세탁이 필요하다. 세탁은 세제와 물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다. 십자가의 보혈만이 깨끗한 옷을 입게 된다. 아무리 깨끗한 옷이라도 오래 입을 수 없듯이 우리도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의 때와 먼지로 인해 무디어 지고 강퍅해져서 은혜 생활을 할 수 없다. 마치 봄철에 트랙터로 논밭을 갈아엎어 씨앗을 심듯 철저한 세속적인 옷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사죄의 옷, 즉 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 회개로 인해 마음을 기경하여 주님을 주님으로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셋째,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라오디게아는 물이 귀하여서 도시 자체가 건조하였다. 그래서 눈병이 많았다. 눈병이 많다 보니까 치료약이 개발이 되어서 상대적으로 안약이 유명했다. 의과 대학에서 나오는 유명한 안약이 있었다. 안약을 사서 발라 보라는 것은 병든 눈을 치료하라는 말이다. 말씀을 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너희를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지를 깨달으라는 것이다. 자신의 지혜와 이성을 포기하고 주님의 말씀과 성령에 몸을 맡기라고 권고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눈이 열릴 것이다.
우리의 뿌리는 예수님이시다. 교회의 터도 예수님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핏 값으로 세워졌다. 예수의 피가 교회를 존재케 하는 근본이다. 그런데 종말의 교회를 상징하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것을 버렸다. 이 사실을 잊고 있다. 자기를 존재케 하는 근본을 허물고 있다.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피를 제거하고 인간의 의를 덧칠하고 있다. 믿음보다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 은혜가 사라지고 법이 난무하다. 미지근한 신앙에서 차든 뜨겁든지 하는 신앙으로 전환해야 한다. 주님으로부터 불로 연단한 금을 사고, 흰옷을 사서 입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