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5.17.공감5시
제목: 홍천 광암리 용소계곡
1. 오늘은 홍천군 광암리와 용소계곡에 얽힌 이야기를 말씀해 주신다고요. 용소계곡하면 물길이 아름다운 계곡 같아요?
용소계곡은 홍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9군데 중 하나입니다. 홍천 9경에 속하니 그 아름다움은 달리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시원한 계곡물이 넓은 너럭바위 위로 흘러 긴 계곡을 이뤘습니다. 계곡 옆으로는 큰 나무들이 울창하게 덮여 원시림과 계곡의 절묘한 조화가 환상적입니다. 게다가 이 계곡은 그동안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거의 훼손이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광암리 상류 주변에 민박집 하나가 있어서 머무는 손님을 받을 정도입니다.
2.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공으로 아무리 해도 따르지 못하지요. 너럭바위 위로 계곡물이 자태를 뽐내고 원시림과 조화를 이뤄 환상적이다. 정말 가고 싶은 그런 곳으로 들립니다. 어떻게 가면 되나요?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홍천군 두촌면으로 가는 길이고, 하나는 내촌면으로 가는 길입니다. 아무래도 두촌면으로 해서 가는 길이 더 가깝지요. 내촌면으로 가면 백우산을 넘어야 하고요, 두촌면으로 가면 큰 고갯길 하나만 넘으면 됩니다. 홍천에서 인제 방면으로 가다보면 용소계곡이라고 아주 크게 쓴 표지판이 나옵니다. 그곳으로 계속해서 한참을 가면 계곡에 이를 수 있습니다.
3. 그럼 이 계곡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나요? 용소계곡이니 아무래도 용과 관련한 이야기가 아닌가요?
제가 이 마을을 답사한 것은 2011년 10월 20일(목)입니다. 그때 이기연(85), 이복부(81), 서병찬(75), 황병익(64), 황원구(77) 등의 제보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 제보자의 제보에 따르면 용과 관련한 이야기도 있는데 마의태자와 관련한 이야기가 더 많았습니다. 먼저 용과 관련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홍천에 많이 전승하는 아기장수전설과 같이 용은 승천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용소계곡을 소개하는 표지판에 적힌 것과 비슷합니다. 옛날에 이 냇물 웅덩이에 용이 살고 있었답니다. 때가 되어 그 용이 승천하려는 순간에 그 동네 어떤 부인이 불을 때다 말고 부지깽이로 그 용을 가리키며 용이 올라간다고 하니 부정이 타서 그 용이 어디론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움푹 파인 웅덩이가 생겼는데 이 소를 용소라 한다고 합니다. 용소가 있는 계곡이라 하여 용소계곡으로 불러진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계곡은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와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마의태자 하면 이광수의 소설과 유치진의 희곡으로 유명하잖아요. 영화도 몇 번 나왔고, 조영남이 부른 노래도 있습니다. 바로 그 마의태자가 수타사가 있는 공작산을 넘어 이쪽 광암리를 거쳐서 열두골짜구니가 있는 괘석리를 지나 인제 김부리로 넘어갔습니다. 마의태자가 신라구국의 꿈을 이루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마의태자의 전설이 용의 전설로 변이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4. 마의태자라면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인데요. 아버지 경순왕이 나라를 고려에 바치자 마의를 입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는 바로 그 왕자잖아요. 그럼 이곳으로 거쳐 갔으면 그 흔적이 있을 게 아니에요?
그 당시 첩첩 산중으로 태자의 일행이 걸어갔으니 당연히 흔적이 남아 있겠지요.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다보니 남아 있는 것은 탑과 지명에 얽힌 유래뿐입니다. 용소계곡에는 두 개의 돌탑이 있는데 하나는 수태동이란 곳에 있는 삼층석탑이고 하나는 괘석리 열두골짜구니에 있는 삼층석탑입니다. 수태동은 용소계곡의 트레킹로 옆에 있는 장남리의 삼층석탑을 가리키는 것이고요. 둘 다 설명은 고려시대 석탑이고 수타사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탑을 마의태자와 관련을 짓고 있습니다.
5. 마을사람들이 석탑을 마의태자와 관련을 짓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지왕동, 황병재, 김부리 등처럼 공작산과 인제 등 주변의 지명과 설화와도 관련이 있지만, 무엇보다 용소계곡에 있는 광암리 2반의 군유동 지명과 밀접한 관련을 가집니다.
용소 계곡이 있는 2반은 자연마을 이름으로 임금 군(君)자 수례 유(輶)자를 쓰는 군유동(君輶洞)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두 가지로 불립니다. 하나는 ‘군넘이’이고, 하나는 ‘군놈이’입니다. 군넘이는 ‘임금님이 넘은 곳’이라는 뜻이고, 군놈이는 ‘임금 놈이 넘은 곳’이라고 합니다. 이는 뜻을 보면 알겠지만, 너무나 둘이 상반되어 있습니다. 앞의 군넘이는 신라의 입장에서 마의태자를 존경하는 뜻이고, 뒤의 것은 고려의 입장에서 붙인 것입니다. 앞의 것은 마의태자가 고개를 넘을 때 국권회복을 위해서 넘어갈 때 이 지역 사람들이 그를 존경해서 불렀다고 하고, 뒤의 것은 나라를 잃은 놈이라는 뜻에서 멸시를 했다고 합니다. 한자의 군유동은 임금이 수레를 타고 넘은 동네라는 뜻입니다. 수레 유(輶)자가 임금의 수레이기는 하나 아주 가볍고 제대로 격식을 갖추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마의태자가 이곳을 넘을 때 겨우 수레 뚜껑만 달린 것을 타고 건넜다고 해서 그렇게 붙였다고 합니다.
6. 패망한 나라의 왕자가 찢어진 수레를 타고 넘은 슬픈 사연을 담고 있네요. 그럼 이 길들이 그렇게 다 연결이 되나요?
물론 후대인들이 마의태자와 연계해서 지명을 그렇게 붙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나마 지명이 있고 그 유래를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향유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허튼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광암리 군유동을 지나면 괘석리 삼층탑이 있는 열두골짜구니를 지나 황병재라는 곳을 넘게 됩니다. 황병재(皇兵峙)는 임금 황(皇)자에 군사 병(兵)에 재 치(峙)자로 한자를 씁니다. 그 때문인지 이곳 사람들은 임금과 군사가 넘던 고개로 마의태자가 병사들과 같이 넘던 고개라고 말합니다.
조금 전에 얘기했던 괘석리의 삼층탑도 탑거리라는 곳에 있는데, 탑거리는 황병재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이 탑도 마의태자 일행이 지나가면서 쌓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보자들의 말이 옛날 노인들로부터 그렇게 들었다고 합니다. 탑거리를 지나서 열두골짜구니를 지나 황병재를 지나면 바로 인제군의 김부리가 나옵니다. 김부리는 김부대왕이라 일컫던 마의태자의 별칭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마의태자가 신라를 되찾겠다고 이곳에서 병사들을 훈련시키며 머물렀는데, 그때 마의태자가 김부왕, 또는 김부대왕으로 불렀다고 하는 설이 있습니다. 그 명칭 때문에 김부리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7. 그런 역사적 사연이 있는 곳이 용소계곡을 끼고 있군요. 그럼 지금도 그곳에 가면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역사는 또 다른 사실 때문에 지워지기도 합니다. 지금 이곳은 안타깝게도 갑둔리와 김부리, 그리고 괘석리 일대의 마을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갑둔리도 마의태자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모두 육군과학화부대의 부지로 수용되면서 마을사람들은 이주를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이곳에서는 민간인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전승은 끊기게 됩니다. 언제까지 그런 사실들이 마을사람들로부터 전승이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기록으로만 전하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많이 안타깝지요.
8. 그럼 어떤 흔적도 없나요?
괘석리 탑이 있고, 갑둔리에도 김부탑이라는 오층탑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지명은 아직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층탑에는 김부대왕의 이름이 있는 “김부수명장존가…”라는 명문도 새겨 있습니다. 물론 그 진위에 대해서는 설왕설래하지만 어떻든 비슷하게나마 명문이 있다는 것은 전승의 고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