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매우 낡아 허물어질 듯한 집이 있어요.”
1년 전 동 행정복지센터로 신고가 들어왔다. 그곳을 찾아가니 우뚝 선 빌라들 틈바구니에 허름한 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길을 무수히 지나쳤는데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집이었다.
“계십니까? 행정복지센터에서 왔어요.”
그 집 문을 두드리자 박금채 씨가 우리를 맞이했다. 그녀는 우리를 낯설어하지 않고 햇살처럼 환한 웃음을 던지며 반겼다. “우리 집까지 어쩐 일이세요? 우선 들어오세요.”
그녀는 집이 누추하다며 연신 부끄러워했다. 집 안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까 싶을 정도로 좁고 천장이 낮았다. 방이라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은데다 짐과 잡동사니가 쌓여 있어 겨우 몸만 뉘일 정도였다.
“어머님, 가장 불편한 게 뭐예요?”
“화장실이요. 퇴행성관절염이 심해 무릎을 구부릴 수 없는데, 재래식 화장실이서 무척 고통스럽네요.”
박 씨의 남편이 주워온 나무로 덧대어 만든 화장실은 아주 좁고 낡은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길가에 있어서 안전하지 못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장님과 함께 논의하기 시작했다. 집이 무허가이므로 기존 화장실을 철거하고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하면 법적인 문제는 없을지, 이웃과의 마찰은 없을지 하나하나 점검했다. 결과는 불가능이었다.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고민했다. 하지만 해결책은 없었다.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하더라도 이웃 주민이 신고하면 원상태로 복구해야 했다. 겨우 복지용구 제품인 접이식 이동 변기를 구입하는 게 최선이었다.
“어떡하죠. 무허가 집이어서 도움이 쉽지 않군요.”
박 씨에게 상황을 알리자 그녀는 애써준 것에 고마워하며 오히려 우리를 위로했다.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접고 다른 도움을 주기로 했다. 박금채 씨의 집은 도배가 누렇게 변색되고 전등도 어두워서 환경개선이 시급했다. 우리는 즉시 우리 동의 자랑인 ‘행복전사’ 집수리 봉사단체에 도배 작업과 LED형광등 설치 서비스를 의뢰했다.
그 후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런데 갑자기 박 씨의 아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함부로 집을 건드리면 지붕이 무너질 수 있어요. 그냥 놔둬요, 놔둬!”
지금껏 부모님께 용돈 한 번 드린 적 없고 집에 관심도 없었던 30대 후반의 미혼 아들, 그의 막강한 파워(?)에 우리는 또 한 번의 안타까움을 맛보며 속절없이 돌아서야 했다.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여전히 박 씨의 주거 환경은 변함이 없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허름하고 위태롭다. 다행히 그 안에서 사는 박 씨와 남편은 세상을 다 가진 듯 밝고 활기차다. 이웃에게 쓰다 남은 화장지를 받을 때에도, 길에 버려진 화초를 가져다 키울 때에도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이렇게 사노라 당당히 밝힌다.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고 감사할 줄 안다. 더욱이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애쓰고 배려할 줄을 안다. 그런 마음이 이웃에게도 전해진 것일까? 박 씨와 이웃은 소소한 나눔이 일상이다. 새것도, 비싼 것도 아니지만 따스한 정을 나누며 산다. 가난하고 궁핍해도 마음은 한없이 풍요로운 사람들이다.
며칠 전, 박 씨의 남편 소식이 들려왔다.
“아버님, 다리를 삐었다면서요?”
쌀을 전할 겸 찾아갔더니 박 씨는 보이지 않고 다리에 깁스한 남편이 나를 맞이했다.
“웬 쌀을 또 가져왔어요. 염치없이 신세만 자꾸 지네요.”
그가 몹시 쑥스러워했다. 평소에는 재활용품을 수거하러 다니느라 집에 있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일까. 절룩거리는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날씨가 추워져 등유도 넣어야 할 텐데…긴 겨울을 어떻게 보내시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오는 내내 뒤돌아보았다. 빌라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작은 집이 자꾸 눈에 밟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