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6칙 ] 큰 정성으로 염하면 큰 감응이 있고, 작은 정성으로 염하면 작은 감응이 있나니, 절대 감응하지 않는 법은 없다.
관세음보살 명호를 염함에 큰 정성으로 염하면 큰 감응이 있고, 작은 마음으로 염하면 작은 감응이 있나니, 절대 감응하지 않는 법은 없다. 주저하지 않고 마음을 크게 먹고 사람들에게 말하니, 비록 감응을 보지 못하여도 감응에는 현재 정근하여 현재 이익을 얻거나(顯感顯應), 과거 선행을 닦아 감응은 없지만 은밀히 법익을 받거나(冥感冥應), 과거 선근을 심어 현재 이익을 얻거나(冥感顯應), 현재 선행으로 감응을 보지 못하지만 은밀히 이익을 얻는(冥感冥應) 자취가 있어, 또한 감응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역주】 일심은 얕게 이해한다면 지성전념 그대로이다. 그러나 이 일심경계는 얼마나 광대한가? 아래로 범부의 전심성의한 일심(명자위)에서부터 점차 미혹을 조복한 사일심불란의 일심(관행위)으로 들어가 의혹을 끊은 사일심불란의 일심(상사위)로 상승하여 법신보살의 이일심불란의 일심(분증위)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심이라 부를 수 있다.
또한 선인의 일심과 악인의 일심, 의심하며 뒤섞인 일심으로 나뉠 수 있는데, 모두 다 일심일지라도 부처님 명호를 칭념함은 같지만, 그 공덕의 많고 적음은 하늘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또한 발심이 동등하지 않아 어떤 사람은 칭명하면 선을 낳지 않고 오히려 탐진치를 증가시키고, 어떤 사람은 칭명하면 복덕은 생기지만 공덕은 생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칭명하면 공덕이 생기는데, 이 공덕으로 비로소 죄를 없애고 삼악도에 떨어지는 정업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공덕 또한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정업은 모두 바뀌거나 점차 바뀌거나 바뀌지 않는 등 차이가 있다. 또한 감응도 현감현응. 현감명응. 명감명응으로 나뉜다.
또한 불법은 안으로 배움(內學)이고 안으로 닦음(內修)이다. 관음은 곧 자성관음이고 감응 또한 심작심시(心作心是)이다. 범부는 대부분 마음 바깥에서 법을 구한다. 이 글은 비록 간단한 질문이지만, 온갖 수많은 불학의 난점과 관련된다. 그 난점은 하나하나는 모두 특별한 제목으로 논술할 수 있다.
매우 많은 사람들은 염불하여도 전혀 감응이 없고, 우연히 재앙을 만나기도 하며, 심지어 횡사하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불교의 감응원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오해하거나 의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본문에서 열거한 것도 감응이론의 전체가 결코 아니다. 어떤 스님의 법문은 흔히 간략하다. 머리에 불을 끄듯, 강한 적을 맞다뜨리듯, 이와 같이 감응을 볼 수 있지만, 사람마다 반드시 감응할 수 없는 것은 중생의 심경과 업력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범부가 염불하면 흔히 감응이 적은 것은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늘 의혹이 섞이고 마음이 산란한 경우가 많아 ‘미혹을 조복한 일심(伏惑一心’에 도달하기 어렵다. 미혹을 조복한 일심불란이야말로 마음이 안정되어 가장 얕은 염불삼매에 들어간 셈이다. 고요한 마음으로 하는 정심염불定心念佛은 정선이고, 정선定善이면 정업定業을 바꿀 수 있다. 산란한 마음으로 하는 산심염불散心念佛의 산선散善은 정업을 바꾸기 어렵다. 게다가 엄격히 계행을 지키지 않고, 진실로 보리심을 발하지 않으며, 정진 수행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보통 염불인이 뜻밖에 일을 만나거나 뜻밖에 병을 만나는 원인이다.
또한 관세음보살은 불법에서 자비를 대표한다. 자비심이 두터운 경우 곧 감응하기 쉽다. 마지막으로 위급한 재난을 만날 때 관세음보살을 칭념함은 평상시 염불함과 다름을 응당 이해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사태가 급박하기 때문에 지극한 정성이 간절하고 용맹할 수 있어 설사 범부일지라도 잠시 관행위의 일심에 이르도록 염할 수 있어 비록 짧고 일시적인 정선일지라도 그 역용의 효과는 평상시 산심의 염불과 견줄 수 없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위급한 재난을 만날 때 관세음보살이 감응하는 사례는 어느 것이나 모두 그렇다. 그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보통사람들이다.
그래서 관세음보살께서 소리를 찾아 괴로움에서 구해내신다는 사실에 대해 자기 스스로 충분한 믿음을 일으켜야 하고, 발심하여야 하고, 많이 염불해야 하며, 지극한 정성을 다해야 하고, 공경심을 다해야 한다. 인광대사께서는 말씀하신 것처럼 “불법에서 실익을 얻고자 하면 모름지기 공경심에서 구해야 한다. 일분 공경심이 있으면 일분 죄업을 없애고 일분 복덕과 지혜가 늘어난다. 십분 공경심이 있으면 십분 죄업을 없애고 십분 복덕과 지혜가 늘어난다.” 그래서 견고한 믿음, 지극한 정성으로 염불하면 반드시 노력이 헛되지 않다.
[보충] 일심으로 칭념하여 괴로움을 여의고 해탈하거늘 여하히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칭념하여야 반드시 감응하겠는가? 《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말씀하시길,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에게 이르시길, 선남자여, 만약 무량 백천만억 중생이 있어 갖가지 괴로움에 핍박 받을 때 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듣고서 일심으로 칭명하면 관세음보살이 즉시 그 음성을 관하여 모두 해탈을 얻게 하느니라.” “염념마다 의심하지 말지니, 관세음은 청정한 성인이라. 괴로움의 핍박과 죽음의 액난에서 능히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느니라.”
0원영대사 강의절록 위에서 과거와 현재의 악업. 미혹. 고뇌를 밝힘을 듣고서, 과거. 현재의 선근으로 말미암아 명호를 들을 수 있고 다시 칭명한 공덕의 힘으로 말미암아 해탈을 얻을 수 있다. 공덕은 어디에 있는가? 곧 일심으로 칭명함에 있고, 혹 과거. 현재 겁에, 세상에 있다. 듣자하니, 관세음보살은 광대한 자비가 있고 광대한 영감이 있어 괴로움을 만나 구제를 구하여 일심으로 칭명하면 보살은 종 걸이에 걸린 큰 종처럼 두드리면 울리고, 받침대가 있는 밝은 거울처럼 형상이 만나면 비치는 것과 같다.
「즉할 때(卽時)」 무작묘지無作妙智로써 그 음성을 관하고, 소리를 찾아 괴로움에서 구하여 해탈을 얻게 되니, 이는 사일심事一心을 기준으로 지극한 정성이 간절하면 감통感通할 수 있고 중생의 기심機心과 보살의 성심聖心이 서로 교류하면 곧 해탈을 얻는다. 이일심理一心에 도달하면 자타가 둘이 아니고 능소가 함께 사라져 괴로움의 성(苦性)과 억념의 성(念性)이 모두 고요하면 「해탈함」도 없고 「해탈하지 못함」도 없다. 두 사람의 공이 모두 일심에 있다. 만일 혹시라도 산심散心. 난심亂心. 경심輕心. 만심慢心이면 비록 칭명할지라도 신속한 효험을 거두기 어렵다.
0보정법사 강의절록 일심으로 명호를 집지함에는 사일심과 이일심이 있다. 우리는 경전을 듣지 못한 이전에 불법의 진실한 뜻을 알지 못하였다. 무릇 명호칭념만으로 불현 듯 곧장 염해나가 일심불란에 이르도록 염할 때 「사일심事一心」이라 한다. 염할 때 또렷이 할 수 있는 마음은 능념의 마음이고 관세음보살은 소념의 명호이다. 능념의 마음을 떼어놓고 달리 소념의 명호가 없고, 소념의 명호를 떼어놓고 달리 능념의 마음이 없어 능소가 둘이 아니어서 하나의 진여이치를 융합하여(融會一如) 깨달음을 「이일심」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은 신통이 광대하고 위덕이 견줄 데가 없고, 내게 몸과 마음을 귀의함만 있고 분별 사랑하는 생각이 없이 착실히 염해나가 일심불란에 이르도록 염할 때 오직 한마디 거룩한 명호만 있을 뿐이다. 심지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행해도 그칠 줄 모르고, 앉아도 앉을 줄 모르며, 망념. 분별이 없어 한 덩어리가 되는(打成一片) 까닭에 「일심칭명」이라 한다.
....「즉시」, 바로 칭명할 때 즉 감응을 입을 때 앞뒤에 떨어지지 않고 무선전파 방송처럼 그 음을 방송하여 여기서 발하고 저기도 받으면 멀든 가깝든 관계없이 조금 앞이든 뒤이든 상관없이 동시에 감응하는 까닭에 「즉시」라고 한다. 사람의 손과 발이 줄에 묶인 것처럼 자유롭지 못함을 「해탈하지 못함」이라 한다. 일단 이해가 열려 다시 자유로워짐을 「해탈함」이라 한다.
사람은 고뇌에 얽매이면 마치 속박된 것 같다. 이러한 속박은 사람마다 스스로 지은 것으로 봄에 누에가 고치를 짓고, 가을에 나방이 불속으로 뛰어들어 죽도록 깨닫지 못한다. 당신이 일심으로 명호를 칭념할 수 있으면 망상. 잡념이 일어나지 않고, 능소를 잊고 신견身見이 없어지며, 번뇌가 절로 소멸하고 고통에서도 곧 해탈할 것이다. 만약 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수지하는 사람이 있으면 설령 큰 불에 들어갈지라도 불에 타지 않나니, 이 보살의 위신력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다.....
그래서 불법은 불가사의한 것이지 미신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의 세계는 세상이 어지럽고 사람이 좋지 않은 시대이자 오탁악세로 재난이 빈번히 일어난다. 세계에는 전란과 천재와 인화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망망한 대지에 한 조각 정토도 없으며 도망칠 수 있는 곳도 없다. 오직 서둘러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며, 일심으로 명호를 칭념하여야 해탈을 얻을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미혹하고 몽매하여 날마다 아침에 끝없이 펼쳐진 고해를 해쳐나가야 한다. 머리를 돌려 일심으로 명호를 칭념할 수 있다면 이른바 머리를 돌림이 바로 피안이다. ...원적怨賊은 전세의 오랜 죄과로 말미암아 갚을 것을 재촉하러 올 것이다. 또한 일심으로 명호를 칭념하여야 이러한 삼악도에 떨어지는 정업定業에서 구해낼 수 있고 해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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