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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장자권!(7) : 장자여! 염려하지 말고 살아가라!”
+ 본 문 : 마태복음 6장 31절 - 34절 (신약성경 9쪽)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아멘!
서로 축복 / “나는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의 근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복의 근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장자 – 하나님의 자녀가 가지는 권세를 회복하고, 그 권세를 누리며 살아갑시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장자여! 염려하지 말고 살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저를 따라서 선포하겠습니다. “나는 / 하나님의 장자답게 / 염려하지 않고 살아가리라! / 아멘!”
최근 여기저기서 터지는 전쟁으로 세계 안보위기는 물론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정부가 단행한 금리인상은,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많은 여파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중국의 성장둔화와 함께 21세기 경제는 더욱 깊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학자들의 표현처럼, 덩달아 지금 우리도 매우 길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야만 하는 위기상황입니다.
계속 곤두박질하고 있는 저유가 경쟁, 잘 사는 선진국들의 수입수요 위축으로 인한 제조업의 불황,
신흥국가들의 외환위기 리스크, 대내외적인 늘어만 가는 가계부채 증가, 고령화에 따른 노후대책 불안,
실업자 – 특히 청년실업자의 수는 날로 늘어가고 있고, 그래서 미래가 전혀 없는 삶에 대한 불안 가중,
전세가격과 월세상승으로 인한 주거비 부담 가중,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한 경기침체는 이미 장기불황의,
늪으로 빠진 상태입니다. 그야말로 길고 어두운 터널을 어떻게 통과해야할지 모두가 염려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엎친데 겹치는 격으로, 남북의 관계는 위험수위에 이르러 우리를 더 불안하게 합니다.
북한의 체제 불안으로 인한 공포정치, 그로인한 전쟁도발의 위험, 거기에다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
그에 대한 반발로 개성공단 폐쇄, 그리고 사드! -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로 북한이 주력하고 있는,
300km – 3500km 중단거리 탄도 미사일로부터 군 장비 시설지역과 핵심 인구 밀집지역과 핵심시설을,
방어하기 위한 체제라고는 하지만, 한마디로 한반도가 핵미사일의 전쟁터로 불바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는 염려, 걱정, 근심할 수밖에 없고, 불안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따지고 보면, 염려한다고 우리가 어찌해 볼 수 있는 일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염려, 걱정, 근심하면서 살아가고, 불안에 떨고, 두려워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별것 아닌 현실에 대해서도, 지나친 불안을 느끼는 과잉걱정까지 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과잉걱정 현상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램프증후군’ 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동화 속 알라딘이 마술램프에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마법의 거인 ‘지니’ 를 깨워내듯이,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는 걱정들을 램프에서 불러내듯이, 지나치게 염려 걱정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사실 전혀 있지도 않는 허상 속의 염려로 지나치게 걱정하는 현상을 “과잉걱정” 이라고 지칭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일들에 대하여 상반된 현상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랍니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에 불과하답니다. 걱정의 4%는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한 것이랍니다.
걱정의 4%만 우리가 바꿔 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랍니다. 어니 젤린스키라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어떻든 이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염려하는 일들의 96%는 모두 다 과잉걱정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세계적인 헤드헌터 기업 대표인 밥 보딘은, 어느 날 자기 아버지에게 잘 풀리지 않는,
자신의 사업에 대한 고충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아들의 염려와 걱정을 끝까지 다 들으신 아버지는,
아들에게 책상 서랍 속 조그만 카드 위에 너의 고민에 대한 답변이 적혀 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아들 밥 보딘은 기대감으로 그 카드를 꺼내 보았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좋은 처방전입니까? 이처럼 우리가 염려하는 것들의 96%는 과잉걱정에 불구한데도,
계속 우리를 위축시키는 요인들이 무엇일까요? 오늘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우리를 자꾸만 과잉걱정으로 몰아갑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우리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미래 불안사회’ 를 넘어 “미래 공포사회” 라는 말에 너무나 익숙해져있습니다.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불안은 계속 가중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먹고 살만해지면서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불안은 공포심까지 조성합니다. 코로나가 얼마나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는지, 서로 만나거나 악수하는 것까지도 부담으로 여겼습니다.
여러분! 코로나 때문에 죽은 사람 전체가, 하루에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의 숫자보다 더 적습니다.
떠들어대는 매스컴과 SNS 의 무차별 과잉 보도가, 과잉 불안을 넘어 과잉 공포를 조장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아무 상관도 없는 정치와 교묘하게 연결시켜, 대통령이 책임지고 물러나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자꾸만 과잉 걱정과 염려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과잉 정보 내용들이 우리를 자꾸만 과잉염려로 몰아갑니다.
현대인들은 건강에 과민할 만큼 예민합니다. 이런 불안 심리를 역이용하여 허위광고들이 많습니다.
텔레비젼 프로그램이나 매스컴을 통해, 과장되거나 잘못된 의료정보를 여과 없이 쏟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텔레비전에 출연한 의사나 자칭 전문가 한 두 사람에 의해 지나친 영향을 받습니다.
제가 보면 맹신 수준입니다. 매스컴을 통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다이어트식품이나 각종 치료제들은,
대다수가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으며, 비싼 돈을 들여 복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부작용을 경험합니다.
소위 텔레비전에 나온 건강 전문가라는 한 사람에 의해, 이건 먹으면 안 된다고 하면 모두 안 먹습니다.
이건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하면 너도나도 따라 먹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통일 안 이루어지는데,
전문가라는 한 사람에 의해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식습관은, 순식간에 하나로 통일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소위 건강식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잘못된 식습관을 가지게 되는지,
정말로 미치고 환장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열정을 다해 설교하는데, 제 말보다 텔레비전 신이 더 쎕니다.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시청률을 높여 광고비를 많이 얻어내려는 장사수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청하도록 짜여진 각본에 의해, 전문가들을 앞세워 사람들로 믿게 하려는 것뿐입니다.
그야말로 그렇게 식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온갖 질병에 걸려, 금방이라는 죽게 된다는 공포마케팅입니다.
여러분들이 해외에 가거나, 아니면 국내에서도 약을 팝니다. 안 먹으면 금방 죽을 것 같이 광고합니다.
텔레비전의 의사를 앞세운 의학 프로그램, 건강 전문가를 앞세운 건강 프로그램도 결론은 다 똑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게 하는 허위광고나, 잘 꾸며진 허황된 프로그램에 속아 넘어가고 있습니다.
댄 가드너라는 분은 “이유 없는 두려움” 라는 책에서, 이런 사람들의 과잉걱정 증후군의,
근본적인 원인을 세 가지로 규명해줍니다. “첫째는 두뇌, 둘째는 대중 매체, 셋째는 두려움” ,
자극하기 위한 과잉정보를 역이용하여, 이득을 얻는 개인과 어떤 조직들의 부채질로 인하여 생긴 결과다.”
이렇게 미래사회에 대한 불확실성과 과잉정보에 대한 맹신으로 삶의 만족도는 점점 더 떨어집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27위 수준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만족도는 꼴찌라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탈렌트 소유진의 남편으로보다, 요즘 집 밥 운동가로 더 인기를 끌고 있는 백종원 세프가,
요리강좌를 통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조미료나 설탕을 조금 넣어 먹으면 어떠냐?” 고 말입니다.
그리고 게스트들이 건강의 유해를 이렇게 저렇게 따지면 던지는 멘트가 있습니다. “그냥 먹어요.”
핀잔주듯이, 나무라듯이 픽 웃으면서 “그냥 먹지, 뭘 그렇게 따져.” 라는 뜻으로 “그냥 먹어요.”
우리가 언제부터 따져가며 음식 먹었습니까? 배부르니까 따지고 먹는 것 아닙니까? “그냥 먹어요.”
기쁘게 먹고, 즐겁게 먹고, 맛있게 먹고, 그러면 먹는 모든 음식은 건강식이고, 보양식 아닙니까?
우리 모두 과잉정보가 가져다주는 허황된 상식들 때문에, 제발 과잉걱정의 덫에 걸리지 말고 삽시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아니면 재미로 하는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지 말고, 제발 정신 차리고 사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에게 딱 한마디만 할께요. “생사화복은 텔레비전 건강상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물론, 우리의 건강도 오직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한마디 덧붙일께요. 제발 텔레비전, 스마트폰 정보검색 하는 시간 있으면, 진짜로 우리에게 건강주고,
영원한 생명주고, 풍성한 축복을 안겨주는 말씀 읽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전도하고, 축복하며 사십시오.
셋째로, 과도한 일중독과 스트레스가 우리를 자꾸만 과잉염려로 몰아갑니다.
우리가 어떤 부정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을 다룬 보도를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사건을 겪지 않았으면서도 그 사건을 겪은 사람과 비슷한 정신적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을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Vicarious Trauma. - 우리말로는 대리외상” 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라면, 세월호 사건의 충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대리외상 증후군을 앓았었습니다.
더 쉽게 우리나라 속담으로 설명하면 “자라보고 놀란 사람 솥뚜껑보고도 놀란다.” 는 식입니다.
이처럼 지금 현대사회는 갈수록 불안지수가 높아지면서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불안장애라고 부릅니다. 불안장애는 정신과 질병 중에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요즘 금융보험 업체들도 고령화 사회에 따른 노후불안을 전략적으로 활용합니다. “1544 - 0000”
유명 연예들을 내세워 일반 보험가입이 안 되는 사람도 된다면서, 폐지 줍는 노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것이 당신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하면서, 지금 당장 들라는 식으로 보험을 홍보합니다.
그야말로 노인들로 하여금 남은 노후생활에 과잉염려하게 하여 각종 보험과 금융상품을 판매합니다.
우리가 과도한 일중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다섯 가지 부작용이 초래된다고 합니다.
첫째, 혈액 순환이 갑자기 나빠진다. 둘째, 근육통이 생긴다. 셋째, 자주 판단 착오를 일으킨다.
넷째, 정말로 중요한 것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다. 다섯째, 실력 발휘를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미국의 명문 시카고 의과대학의 연구팀에 의하면, 과도한 스트레스와 염려 걱정이 많은 사람일수록,
모든 질병에 걸릴 확률이 두 배나 높다고 경고합니다. 과잉염려, 과잉걱정이 가져다주는 부작용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아주 길게 과잉염려가 가져다주는 것들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우리를 자꾸만 과잉걱정으로 몰아갑니다.
둘째로, 과잉 정보 내용들이 우리를 자꾸만 과잉염려로 몰아갑니다.
셋째로, 과도한 일중독과 스트레스가 우리를 자꾸만 과잉염려로 몰아갑니다.
왜 제가 이런 과잉염려에 대해서 세밀하게 진단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하였을까요?
진단했으니 처방을 내리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저의 처방전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처방전,
과잉염려에서 치유 받고 해방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비법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진단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마디로 이렇게 처방하였습니다. “너의 모든 염려와 스트레스를 십자가 밑에 내려놓으라.”
네가 염려하지 말고, 모든 것을 다 너의 주가 되시는 나 예수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1:28)
그러면서 우리에게 너무나 명료하게 오늘 본문으로, 모든 과잉염려를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과잉염려 하는 우리에게 주신 오늘 본문 말씀을 선포하므로 우리의 모든 염려를 날려 버립시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아멘! - 아멘하신 분들에게 모든 염려가 사라질 줄로 믿습니다. 아멘! 아멘!
한 말씀 더 소개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너의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이보다 더 확실한 처방전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제발 여러분의 염려를 여러분이 끌어안고, 끙끙대지 말고 모두 다 주님께 패스! - 보내 버리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돌보아주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책임지고 해결하신다고 약속합니다.
다윗은 왕실에 모반이 일어나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불안한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시편 55:22 “네 근심을 하나님의 어깨위에 올려놓아라. 그분께서 네 짐 지고 너를 도우시리라.”
다윗은 인생의 그 어떤 어려움과 환난 중에서도, 염려나 걱정을 주님께 맡기는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시편 37편 5절입니다.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라. 주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다.”
오늘 우리가 다함께 불렀던 379장 찬송입니다.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 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 걸음씩 늘 인도하소서.’
그리고 우리가 이 설교를 마치면 부를 찬송입니다.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382장 찬송입니다.
1. 너 근심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2. 어려워 낙심 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이 찬송은 미국의 W. S. Martin 이라는 목사님 부부가 작사 작곡한 은혜로운 찬송시입니다.
그의 부인이 중병에 걸려 병상에 누워 있는데, 어느 주일저녁에 이웃교회로부터 설교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파 누워있는 부인을 돌봐야할 것 같아 고민하고 있는데, 아들이 뜻밖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오늘밤 아빠가 설교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엄마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마틴 부부는 큰 감명을 받아, 목사님은 설교를 하러 갔고, 부인은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시를 썼고, 설교를 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그 시를 주자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작곡을 했습니다.
‘너 근심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선포하셨습니다. “평안할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다함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세 번 선포합니다. “평안할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기독교 초기의 성도들은 로마정권의 신앙박해와 압정 밑에서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 서로 주고받은 인사가 있습니다. “나는 / 결코 염려하지 않는 사람 / 김대용입니다.” 아멘!
옆에 사람들에 우리 서로 인사합시다. “나는 / 결코 염려하지 않는 사람 / 김대용입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