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1Q84』
제목이 좀 희한(稀罕)한 것 같은『1Q84』이 소설은 본아가 사서 읽고 지난 9월24일 일본으로 떠가기 전에 창기한테 준 것인데 다 읽었으면 나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고 하자 갖다 주어서 읽고 있는 것으로 일본인 작가『무라카미 하루키』의 현대소설이다. 하루키의《해변의 카프카》도 본아가 읽는 것을 보았지만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읽지 않았는데 이 소설은 제목도 그렇고 뭔가 다를 것이라는 느낌과 ‘10억을 주고 판권을 샀다’는 광고 등에 관심과 흥미가 생겨 읽어보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가 썩 감동적으로 읽은 소설《칼의 노래》와《남한산성》을 쓴 한국인 작가『김훈』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일본의 중견작가로 2005년《해변의 카프카》가 아시아 작가 작품으로는 드물게〈뉴욕타임즈〉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하였고, 2009년에는 이스라엘 최고 문학상 ‘예루살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Q84』의 Q는 Question을 의미한다고 하고 또 일본어의 Q는 9와 발음이 같다고 하는데 제목이 아무래도 조지오웰의 소설『1984』영향을 받지 않았는가 하고 짐작된다. 그리고 내용도 그와 비견될 내용이 포함된 것도 같다. “비현실적이면서 하루키 특유의 적확(的確)한 묘사로 리얼리티가 넘쳐나는 소설” 이라고 어떤 독자는 평가하기도 한다. 주인공 ‘아오마메’와 ‘덴고’ 그리고 ‘두 개의 달 이야기’라는데 하루키 특유의 흡인력에 빠져 드는 재미가 있는 소설로 누구라도 읽다보면 책장 넘기는 재미가 솔솔하게 된다고 한다.《정석수학》정도의 두께 (1권만 655페이지)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줄 모르고 책장이 넘겨지고 있다.
「이봐. 덴고” 누군가 아까부터 부르고 있다. 그 목소리는 긴 동굴의 한참 저 안쪽에서 멍하니 들려왔다. 덴고는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라는 게 생각났다. “왜 그래 또 그거야? 괜찮아?” 목소리는 말했다. 이번에는 좀 더 가깝게 들린다.
덴고는 이윽고 눈을 뜨고 초점을 맞추고 테이블 끝을 움켜쥔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세계는 분해되는 일 없이 존재하고 자신은 아직 거기 그대로 있음을 확인했다. 마비는 조금 남아있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분명히 자신의 오른손이었다. 땀 냄새도 났다. 동물원의 어떤 동물의 우리 앞에서 나는듯한 기묘하도록 난폭한 냄새다. 하지만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 자신의 냄새였다.」 (09.12.2)
「1Q84년, 변경된 새로운 세계를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아오마메는 그렇게 정했다.
Q는 question mark의 Q다. 의문을 안고 있는 것.
그녀는 걸으면서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좋든 싫든 나는 지금 이 ‘1Q84년’에 몸을 두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1984년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1Q84년이다. 공기가 바뀌고 풍경이 변했다. 나는 이 물음표 딸린 세계의 존재양식에 되도록 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숲에 내던져진 동물과 똑같다. 내 몸을 지키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 장소의 룰을 한시라도 빨리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아오마메는 아유미를 깨울까 생각했다. 정말로 하늘에 달이 두 개가 떠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어쩌면 아유미는 “당연한 거 아냐? 달은 작년부터 두 개로 늘어났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혹은 “무슨 소리야, 아오마메씨 달은 하나밖에 안 보여.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라고 할지도. 어느 쪽이건 내가 갖고 있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더더욱 깊어질 뿐이다.
아오마메는 두 손으로 얼굴 아랫부분을 가렸다. 그리고 두 개의 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틀림없이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어. 그녀는 생각했다. 심장의 고동 소리가 빨라졌다. 세상이 어떻게 되었거나 아니면 내가 어떻게 되었거나. 둘 중 하나다. 병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병뚜껑에 문제가 있거나.」(1권 419p-12.24)
2009년이 저물어 가는 연말 크리스마스 전에 며칠 동안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다가 회복 되더니 엊그제부터 다시 추워져 서울의 오늘 아침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갔다 한다. 이에 더하여 서해안 지역은 눈도 많이 내려 우중충한 모양이다. 언제나처럼 겨울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울적하게 하기도 하지만 올해라고 유독 춥고 을씨년스러울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는 말도 있다. 춥다고 할 일을 못하거나 해야 할 일을 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영악한 동물. 우리인간은 쉽게 환경이 잘도 적응한다. 그렇지만 언젠가 인간도 제가 만든 환경파괴에 무릎 굵고 말 것이라는 생각은 세월가면서 더 자주 해보게 되는데 해마다 높아지고 있는 해수면과 오염 온도가 지구를 파괴한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그러나 누구도 바로 잡으려 하지 않는다. 아니 방치하면 안 된다고 부르짖기만 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입장이 다르고 의견만 분분하다.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세상일 테지만 탈 없이 지나간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그리움에 더하여 더러 아쉬움도 남지만 후회는 없다. 멋진 여행-연애-행복-감격을 느끼거나 보지는 못 했을망정 그래도 착하고 아름답게 살지 않았나 싶다. 한 해 동안 40회 이상 오르고 내린 산행의 재미. 총연장 1,190㎞쯤 내달린 달리기(런닝).. 담아두고 싶은 추억들까지
내년(庚寅年)은 올해와 또 다른 감회가 생기고 보람도 느낄 것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36년 경찰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어 지금 한 해를 마감하는 기분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살아온 인생에 결코 미련도 없다. 고운 추억을 담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지금까지 좋았던 일은 계승하고 새로운 도전에 결코 게으르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 본다. (12.28)
「이 젖가슴 외에 나의 무엇이 남겨지는 걸까.
물론 덴고가 기억이 남는다. 그의 손의 감촉이 남는다. 마음의 거센 떨림이 남는다. 그에게 안기고 싶다는 갈망이 남는다. 가령 다른 사람이 된다 해도. 덴고에 대한 그리움이 내게서 뜯겨나가는 일은 없다. 그것이 나와 아유미의 가장 큰 차이다. 아오마메는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은 무(無)가 아니다. 황폐하고 메마른 사막이 아니다. 나는 변함없이 덴고라는 열 살 소년을 그리워한다. 그의 강함과 총명함과 다정함을 그리워한다. 그는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육체는 멸하지 않고, 서로 나누지 않은 약속은 깨지는 일이 없다.」(2권 135p)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도 없고 절대적인 악도 없어.” 남자는 말했다. “선악이란 정지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장소와 입장을 바꿔가는 것이지. 하나의 선이 다음 순간에 악으로 전환할지도 모르는 거야.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 도스토옙스키가〈가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묘사한 것도 그러한 세계의 양상이야.
중요한 것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선과 악에 대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면 현실적인 모럴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돼. 그래. 균형 그 자체가 선인 게야. 내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이네.”
“이제 당신을 죽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어요.” 아오마메는 단호히 말했다.」(2권 290p)
「출구는 막혀버린 것이다.
아오마메는 찌푸린 얼굴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주의 깊게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한 번 에소 광고판을 올려다보았다. 급유호스를 손에 들고 꼬리를 위로 쳐든 호랑이도 이쪽을 곁눈질하며 즐거운 듯 미소 짖고 있었다. 최고로 행복해.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일은 결코 없어. 하는 듯이.
당연한 일이야. 아오마메는 생각했다.
그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호텔 오쿠라의 스위트룸에서 그녀의 손에 죽어가기 전에 리더도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1Q84년에서 1984년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없다. 이 세계에 들어오는 문은 한쪽 방향으로밖에는 열리지 않는다. 고
그래도 아오마메는 자신의 두 눈으로 그 사실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그녀의 본성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실을 확인했다. 끝. 증명은 끝났다. Q.E.D.」(100120)
근 두 달 동안 지하철에서 아니면 잠자리에서 읽었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 생각해 보니 독후감 삼아 남길 것이 아무 것도(별로) 없다는 생각이 이 소설을 읽은 소회다. 어쩌면 3류 통속소설 한편을 읽고 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소설부분 베스트셀러에 끼이고 있다는 뉴스는 나름대로 뭔가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해 보게 하는데 그것은 소설이 재미있어서인지 내용, 구성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광고효과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간혹 짜릿하게 읽는 맛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내용도 구성도 조금은 얼렁뚱땅한『1Q84』는 그렇게 읽혀지고 난 뒤 덮이고 말았다. 한참 세월이 지난 뒤 다시 들춰내어 읽어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아무튼 아오마메와 덴고의 슬픈 늪에서 우리는 헤어나야 한다. 그들은 허구의 인물이며 하늘에 달이 2개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하는 맹랑한 주인공들이다.
일본인 작가의 소설『1Q84』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나라 여류작가권비영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쓰지 않고 견딜 수가 없었다’는 광고를 보고 소설《덕혜옹주》를 샀다. 남은 올해 겨울 동안 마지막 황녀의 슬픈 이야기와 역사에 빠져들게 될지 모르겠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고 슬픔과 애절함 혹은 간절함이 인간생활의 희로애락 일 바에 그것을 힘껏 보듬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2010.1.26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