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작,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 드라마, 코미디
만든 지 벌써 15년은 된 영화다. 다양한 캐릭터와 에피소드로 인해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재일교포로서 일본에서 살아가기의 한 단면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만난 재일교포들이 있었다. 뭔가 일본인이라 하기엔 좀 아닌 그러나 한국말은 참으로 서툰 재일교포, 하지만 중국에서 만난 재중교포보다 오히려 재일교포가 더 민족적 정체성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중화주의에 입각한 소수민족 동화정책에 따라 불평등을 없애고 한족과 동등하게 하며, 중국 중심의 역사로 주변 소주민족의 역사를 흡수하여 가르쳤고, 더구나 일제시대와 6.25 땐 우리 민족 내지 북의 동맹이었던 관계로 저항감이 더 적은데다, 금서와 방송 제한 등 사상의 통제가 아직은 강한 나라라 한국말을 하는 조선족이어도 의식은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한 것 같았다. 그래서 중국 여행을 하며 조선족에 대한 환상도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일본 주류문화의 차별 속에서 정체성을 지키고 자기 부정을 하며 단련된 재일교포들이 훨 동정이 가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게 당연하지도 몰랐다.
이 영화는 한국에 와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다. 명동 CQN극장. 비디오로 봐도 상관은 없지만, 보나마나 비디오로는 나올 것 같지 않아 형이 보내준 예매권을 사용했다. 시적인 제목과 포스터의 맛이 끌어당겼다.
영화는 우울과 웃음을 교묘히 배합하고 있다. 일본의 다양한 유흥문화를 옅볼 수도 있지만, 조선징의 결혼식 장면에서 장고를 치고 노들강변을 부르며 모두 춤추는 걸 보며 참으로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그렇게 흥겹게 놀 수 있는 전통문화를 유치하다고 몰아내고 결혼식장에서 서양식 축가와 연주만을 할까? 모멸감이 들 정도의 자기부정이 있다는 사실, 내가 가슴 찡하게 느꼈던 유일한 장면은 바를 운영하는 어머니와 30대 노총각 택시운전사 아들이 결혼문제로 얘기하다 북한에 있는 형의 가족에게 소포를 부치기 위해 상자를 싸는 장면이었다. 어머니가 담아놓은 물건을 다시 빼고 아들은 돈을 상자 바닥 겹쳐지는 부분에 은밀히 봉합하고 테이프를 붙인다. 그들에겐 일상이 되어버린 일이지만 그 사정을 짐작만 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영화를 보며 나는 어릴 적 택시운전을 했던 아버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지금도 아버지는 서울 지리를 훤하게 꿰고 계신다. 길을 잃을 때마다 회사로 전화하는 운전사에게 달을 찾아보라고 말해주는 장면이 거듭 나온다. 도시의 길은 실로 거미줄 같이 복잡하지만 거기에 자리 잡고 사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더구나 이방인의 입장에서. 이런 주변인의 정서를 참으로 따뜻하게 재미나게 잘 묘사한 영화다.
줄거리 : 일본 이름 타다오, 한국 이름은 강충남. 그는 동창이 운영하는 택시 회사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시간이나 떼우는 처지다.
아둥바둥 살아가는 동창과 동료들. 하지만 충남의 관심사는 오로지 여자를 꼬시는 일 뿐이다. 일본 여자는 엄마가 무조건 반대를 하고, 모처럼 추파를 던져본 한국 여자들은 그를 한량 취급하기 일쑤다. 그때 충남의 눈에 들어온 여자가 있었으니, 엄마의 술집에서 접대부로 일하는 필리핀 아가씨 ‘코니’.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거짓말로 동정표를 얻고, 무작정 코니의 집에 쳐들어가 동거를 시작한다.
충남이 코니와의 연애에 열을 올리는 동안, 택시 회사는 커다란 위기를 맞는다. 사장인 동창이 사기를 당해 회사가 야쿠자의 손에 넘어갈 지경에 이른 것. 때마침 충남의 연애 전선에도 먹구름이 드리운다. 도통 진지하지 못한 충남의 태도에 실망을 거듭하던 코니가 자신이 거짓말에 속았다는 사실까지 알아 버린 것. 코니는 충남의 곁을 떠나 다른 술집으로 옮겨 가고, 야쿠자가 들이닥친 택시 회사는 온통 어수선하게 돌아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