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전 세계인이 함께했던 한국민주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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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이 함께했던 한국민주화 투쟁

낙서장 2015/11/20 13:14

http://blog.hani.co.kr/sdhan/113698

다른 작업을 하다, 몇년 전에 외부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발견했다.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 암울했던 시절로 다시

우리가 되돌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속상하고 걱정된다.

역사는 직선적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경구는

바로 우리 현실에서 체험적으로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대한민국은 역사의 놀라운 현장이며,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이다.

기록을 위해.

2012년 여름, LIST, Books of Korea 라는 영문잡지용으로 쓴 것.

거기서 편집한 것을 그대로 옮긴다.

전 세계가 동참했던 인간다운 삶을 향한 투쟁
-한국의 민주화 운동

한승동(『한겨레』 선임기자)

1. 시대를 지킨 양심 짐 스텐츨 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7 486p, ISBN 9788991057258 2. 송건호 평전 김삼웅 저, 책보세, 2011 404p, ISBN 978899385450

대한항공 002호기가 태평양 위로 빠져 나오고, 간식이 제공되었다. 한 젊은 여승무원이 내 앞에 식판을 놓고는 내 무릎에 엽서 한 장을 떨어뜨리고는 아무 말 없이 서둘러 갔다. 나는 엽서를 힐끗 보았으나 잠시 기다렸다가 뒤집어서 읽어 보았다. “오글 목사님, 안녕히 가십시오. 저는 한 젊은이입니다. (제 이름을 쓸 수 없습니다.) 저희 대부분은 목사님께서 우리나라의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일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의 마음도 목사님과 함께 울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이름은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상황이 변할 것이며 머지않아 목사님께서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한국으로 초청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나는 울기 시작했다. 그것이 눈물로 가득 찬 순간들이 많았던 그 긴 하루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조지 오글(George E. Ogle). 한국명 오명걸. 감리교 목사. 192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서쪽 탄광지대 마을에서 태어나 1954년 9월 미혼의 선교사로 처음 한국에 온 지 20여 년 만인 1974년 12월 14일 그는 추방당했다. 죄목은 선교사 비자로 입국해 대학교수를 한 위법을 저질렀다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명목이었을 뿐이다. 가난한 산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회 목회활동인 도시산업선교회 일을 통해 ‘노동조합에 가입한 빨갱이 공산주의자들’을 도왔다는 것과

역시 사법 당국이 ‘빨갱이’로 몬 이른바 인민혁명당(인혁당) 관련 사형수 8명의 무죄와 석방을 요구하고 그 가족을 도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박정희 군사정권의 노동운동 파괴공작과 억압체제를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게 진짜 이유였다. 그때 한국인들은 국제선 항공기 기내에서조차 추방당하는 외국인 선교사와 마음대로 접촉도 할 수 없는 억압과 감시체제 속에서 살았다. 접촉행위만으로도 때론 자신과 가족을 파멸로 몰아갈 수 있는 야만의 시절이었다.
오글 목사가 추방당한 지 4개월여 만인 1975년 4월 9일 유신 독재체제의 광신적 반공주의자들은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이 난 지 20시간 만에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자신들이 억지로 빨갱이로 날조한 인혁당 관련자 8명의 사형을 집행해버렸다. 국제법학자협회는 그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27년 뒤인 2002년 인혁당 사건을 재조사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그 사건이 고문에 의해 날조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2007년에 법원은 인혁당 사건을 재심에 부쳐 관계자 전원의 무죄를 선고했다.
1975년 4월 30일 인혁당 사건이 날조된 것임을 폭로하고, 한국 군사정권 반공주의 광신자들, 그리고 그들과 공모한 미국 정부, 그런 불의를 보고도 침묵한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던 또 한 명의 외국인 짐 시노트(Jim Sinnott) 신부가 추방당했다.

1970~80년대에 일본 도쿄의 외신기자 클럽에 소속돼 당시 군사독재체제하의 한국을 취재했던 미국 언론인 짐 스탠츨(Jim Stentzel)이 2005년에 엮어낸 『시대를 지킨 양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최명희 옮김, 2007년)은 한국 민주화운동에 직접 뛰어들었던 오글 목사와 시노트 신부를 비롯한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출신 외국인 선교사 15명의 체험기를 모아 놓은 독특한 책이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 민주화운동의 내면이다. 옮긴이의 지적대로 이 회고록은 한국 민주화와 인권쟁취 운동이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들이 동참한 세계적인 보편성을 지닌 운동이었음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외국인 선교사들 모두가 동참했던 것은 아니다. “대다수 선교사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자신의 일, 가족과 그들이 누리는 풍요로움이 없어질까 두려워하면서 선교사들은 한국정부의 손님으로서 ‘국내정치에 개입’하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15명이 대표한 또 다른 많은 선교사들은 한국 군사정권과 미국 정부가 공모한 억압체제의 인권과 민주주의 유린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자신들이 믿는 기독교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칠 위험을 무릅쓰고, ‘월요 모임’이라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억압체제에 저항하는 한국인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들은 한국 반정부 지하운동의 지원자요 연결망이었고, 민주주의와 인권 유린에 관한 기밀자료 수집과 해외 유출 통로였으며, 위기에 처한 한국 운동가들이 생명의 안전을 기탁할 수 있는 최후의 의지처였다. 8명이 처형당한 지 1개월쯤 지난 1975년 5월 군사정권은 ‘대통령 긴급조치 9호’를 선포했다. 긴급조치 9호는 억압의 근간이었던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고, 그 금지를 규정한 긴급조치 9호 자체에 대한 비판도 처벌하는 ‘법 위의 법’이었다. 바로 전 해인 1974년에 유신헌법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이 일어났고 그런 행위를 처벌하는 긴급조치 1호, 2호가 발동됐다. 그리고 군사정권은 유신억압체제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북한의 사주를 받는 좌경용공’ 집단으로 몰아 처벌하기 위한 ‘전국민주청연학생총연맹’(민청학련)이라는 사건을 날조했다. 1천여 명의 대학생과 교수, 지식인들, 외국 취재기자들을 엮어 넣은 그 사건에서 180여명이 구속·기소돼 비상 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았다. 군사정권은 그들 중 23명의 민간인들을 민청학련 사건 배후 조종자로 몰아 좌익 조직사건을 날조해냈다. 인혁당 사건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 4개월 뒤 8·15 경축식에서 재일동포 문세광의 박정희 저격사건이 일어나 육영수 부인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

3. 한국민주화운동사(전3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저, 돌베개 2010, 687p, ISBN 9788971993248(1권) 4. 역사가의 시간 강만길 저, 창작과비평사, 2010 679p, ISBN 9788936471880 5. 지배자의 국가 서중석 저, 돌베개, 2010 430p, ISBN 9788971993910 6. 6월 항쟁 서중석 저, 돌베개, 2011 704p, ISBN 9788971994436 7. 한국현대사 60년: 1945~2005 서중석 저, 역사비평사, 2007 246p, ISBN 8976965264

독재정권을 위기로 몰아간 이런 격동의 세월에 대한 진상을 보도하지 말라는 당국의 조치에 저항하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 실천운동이 본격화됐고 군사정권은 동아일보에 대한 기업들의 광고를 전면 금지했다. 그리하여 광고란이 빈 채로 나간 ‘백지광고’사태가 일어났다. 시민들이 자신들 돈으로 그 광고란을 채우자 군사정권은 동아일보 사주를 압박해 1백 수십 명의 기자들을 해고해버렸다. 조선일보에서도 수십 명의 저항기자들이 쫓겨났다. 『송건호 평전-시대가 ‘투사’로 만든 언론선비』(김삼웅 지음, 책보세)가 그때의 사정을 자세히 담고 있다.
그 한 해 앞인 1973년에는 야당 지도자 김대중 씨가 묵고 있던 도쿄의 한 호텔에서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납치당해 죽음 일

8.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오도엽 저, 후마니타스, 2008 332p, ISBN 9788990106728 9. 전태일 평전 조영래 저, 전태일기념사업회, 2009 340p, ISBN 9788996187424

보 직전까지 간 사건이일어났고, 1972년에는 이 모든 분란의 원인인 유신헌법이 공포됐다. 박정희를 영구 총통으로 만들기 위한 전제적 억압체제 유신헌법은 헌법 자체에 대한 모든 비판과 반대를 처벌하는 만능의 악법이었다. 그 전 해인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군 등 관권을 총동원하고도 도전자인 김대중에 가까스로 이겼다. 그리고 1969년 영구집권을 위한 3선 개헌, 1965년 한-일 재수교와 미-일 자본주의 체제로의 본격적인 편입, 1961년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 1960년 이승만 독재체제를 무너뜨린 4·19혁명, 그리고 1948년 분단정권 수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민주화 내지 민중운동 역사를 체계적으로 종합 정리하고 분석한 책이 『한국민주화운동사 1, 2, 3』(돌베개)다. 세계 민중운동사에서도 특기할만한 장기간의 한국 민주화운동은 그 중심에 학생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서중석 교수의 『한국 현대사 60년』(역사비평사),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돌베개)는 한국 현대사를 민주화운동적 시각에서 통사적으로 압축·정리했으며, 『6월항쟁』(돌베개)은 형식적·절차적 민주화를 어느 정도 완성한 이른바 ‘87년 체제’를 만들어낸 1987년 6월의 거대한 민중봉기를 종합적으로

정리·분석한 책이다.‘분단체제’라는 개념을 정립한 강만길 교수의 자서전『역사가의 시간』(창비)을 통해서도 한국 민주화운동사를 또 다른 눈으로 살펴볼 수 있다. 문익환·문동환·박형규 목사, 백낙청·이문영 교수, 한승헌 변호사, 백기완·정경모·김정남·김자동씨 등 이제는 원로가 됐거나 고인이 된 한국 민주화운동 거목들의 저작이나 회고록, 평전도 최근에 많이 출간되고 있다.

박정희 유신체제가 등장하기 2년 전인 1970년 가난한 봉제공장 노동자 전태일이 장시간의 열악한 노동과 살인적인 저임금에 항거하며 분신자살했다. 노동자와 지식인들에게 충격을 주고 그들의 사회인식을 뒤흔든 ‘전태일 사건’은 한국 노동운동만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대사건이었다. 그 자신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고생한 조영래 변호사가 정리한 『전태일 평전』(돌베개, 아름다운 전태일)은 한국 민주화운동사의 고전이 됐다. 아들이 남긴 뜻을 평생 동안 실천에 옮긴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씨가 말년에 구술한 생각과 삶을 정리한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오도엽 지음, 후마니타스)는 평전의 짝이 될 만하다. 이 전태일 평전을 읽고 자신의 인생을 바꾼 사람이 김진숙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도 그 덕에 또 한 번 바뀌었다. 1960년생인 김진숙은 감동적인 자전적 회고록 『소금꽃 나무』(후마니타스)에서 그 평전을 읽은 감상을 이렇게 썼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난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꺼이꺼이 지리산 계곡처럼 울었다.” “‘내가 곧 그들(이른바 공돌이·공순이)’이라는 사실이 더 이상 부끄럽지도 치욕스럽지도 않았다. 같이 살아야 된다는 생각, 내가 달라져야 그들이 달라진다는 생각, 그들이 딛고 선 땅이 변해야 내가 딛고 선 땅도 변한다는 생각, 인간이 참 고귀한 존재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부산의 조선소 한진중공업의 고공 크레인에서 300일 이상 홀로 농성하며 해고 노동자 복직 등을 요구한 김진숙의 목숨을 건 싸움에 전국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몰려가 응원한 2011년의 ‘희망버스’ 사건은 한국 노동운동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강화

10. I, a Woman Worker (2 vols.) Ed. You Kyung-soon, Greenbee Publishing Company 2011, 512p, ISBN 9788976827517 (Vol. 1) 11. Salt Flowers Kim Jin-suk, Humanitas 2007, 282p, ISBN 9788990106384

도 가난뱅이 집에서 태어나 중학생 때 가출했고 자살도 기도했다. 운대 백사장에서 아이스크림 장사, 신문배달, 우유배달, 샴푸와 주방세제·정수기 외판원으로 떠돌았다. 가방공장에도 들어갔다. 그때가 18살. 그리고 “속옷 구석구석까지 홀딱 벗고 항문까지 몸 검신” 당한 김해에서 부산 충무로까지 가는 122번 버스 안내양. 그 다음이 대한조선공사 유일의 ‘처녀 용접사’, 그리고 해고통지, 출근투쟁, 대공분실 감금, 무자비하고 끝없던 폭행, 수배 5년, 두 번의 감옥살이…. 소금꽃은 봄부터 가을까지 용접공들 등에서 난 땀이 옷에 말라붙어 허옇게 무늬를 그린 고생 자국이었다.
1970대 이후 지금까지 노동조합운동과 비정규직 차별 철폐에 헌신한 여성 노동자들의 개인적 회고담들을 모은 『나, 여성 노동자 1, 2』(유경순 엮음, 그린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