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상>
깃발
오수아 목포중앙여자중학교 1학년 1반
바람이 불어온다.
내가 계속 펄럭펄럭 움직이네
움직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도
어쩔 수 없이 계속 펄럭펄럭 움직인다
저기 사람이 지나간다.
나도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처럼 바람이 불어도
펄럭펄럭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옛날에는 그나마 사람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하며 뛰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그저 아무데나 꽂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람을 맞으며 펄럭펄럭 움직인다.
만약 정말로 진짜 사람이 된다면
나의 소원이 이루어 진다면 바람으로부터
펄럭거리지 않고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텐데 하고 항상 생각도 하고
상상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즐겁고 좋았던 추억이
있어 그게 언제였냐며 나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함께 싸웠고 내가 바로 우리나라의
상징 깃발 ‘태극기’야!!
이렇게 생각하면 이제
아무도 부럽지 않아
그리고 아무도 되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사람은 평범함 사람이니까
하지만 나는 소중한 ‘태극기’니까!
배
이수빈 무안북중학교 3학년 4반
“아, 됐다니까! ”
나는 엄마를 내 방 밖으로 밀어내고는 문을 세게 닫았다. 안 그래도 시험을 망쳐 침울한 기분을 안고 하교한 내게, 집에 들어가자마자 쏟아지는 엄마의 성적 관련 질문들은 나를 서럽게 만들었다. 시험의 난이도는 어땠냐는 둥, 아이들의 점수는 어떨 것 같냐는 둥 하는 질문들이 내 귀에는 그저 웅웅거리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조금 전 엄마를 밀어낸 방문의 문고리를 손이 하얗게 질릴 때까지 힘을 주어 꽉 쥐었다.
“쟤는 무슨 시험만 보면 저런다냐, 차라리 공부를 더 해, 공부를!”
그때 문 밖에서 희미하게 엄마의 억양 센 말이 들려왔다. 나는 그 말에 여태 문고리를 꾹꾹 세게 잡으며 눌러왔던 감정을 더 이상 나타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까까지 엄마에게 틱틱댔기에 그런 것인지 이상한 자존심이 생겨 울음소리도 내지 않으며 끅끅 울었다.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주저앉아 있었고, 얼굴은 이미 따뜻한 눈물 때문에 젖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어릴 적 바다에 놀러가 찍었던 사진이 있었다. 나는 사진 속 웃고 있는 나를 보다 그대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까지도 가지 못하고 방문 앞에 주저앉아 자는 내가 흉해 보일 테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꿈 속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푸른 빛 찰랑한 물결을 가진 바다였다. 내 위엔 수많은 선박들이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고, 나는 그것들이 원하는 곳까지 잘 갈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나는 실제의 나답지 않게 포옹력과 자비심이 넘쳤다. 그들이 내게 쓰레기를 던져 날 아프게 해도, 기름을 부어 내게 상처를 줘도 난 그저 나중엔 나아지겠지, 라며 모든 선박들을 용서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분명 해일이나 일으켜 그들을 덮쳐버리라며 답답해 했을 것이다. 계속 바다로 지내던 어느날, 한 작은 배가 내게 물어왔다.
“항로를 잃었는데,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을까요?”
나는 표류하는 그 작은 배에게 무언가 연민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왠지 그 배를 도와주고 싶어졌다. 오랜 기간동안 바다에서 본 것을 토대로 일러주고, 내가 널 책임지고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했다.
약속한 날 후로 우린 늘 함께했다. 비바람이 세차게 날리고 번개가 치는 날에는 잔뜩 긴장해 뒤집어지기라도 할까 노심초사하는 배를 위해 괜찮아, 이조차 너에게 도움이 될 거란다. 하며 꼭 안아줬고, 햇빛이 방실방실하게 배와 나를 비추는 날이면 회색으로 반짝이는 몸을 가진 돌고래들의 수영 쇼도 보여줬다. 나는 더 내구성이 좋아져가는 내 배를 보며 행복감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헤어질 날이 가까워진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기에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약속대로 그 배에게 항로까지 데려다 주게 됐다. 이제 그 배를 보내야 하는데, 나 없이 홀로 항해 할 배가 나는 무척이나 걱정되었기에 나는 괜시리 한번 풀었다.
“혼자 갈 수 있겠니?”
“그럼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바다 님.”
나는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선박을 한참 바라보았다. 배가 혼자 잘 가길.
“아...!”
나는 긴 꿈에서 깨어났다. 방문 앞에 있던 나는 침대 위에 잘 누워있었다. 아마 엄마가 날 보고 올려주신 것 같았다. 나는 곧장 방문을 열고 나가 부엌에 계신 엄마께 안겼다. 엄마는 잠깐 놀란 기색을 보이셨지만, 내 퉁퉁 부은 눈두덩을 보시고는 꼬옥 안아주셨다.
“사랑해요, 엄마.”
<은상>
깃발
손수연 목포혜인여자중학교 3학년 4반
불 마저 얼어 버릴 듯한 바람에
한 깃발 홀로 펄럭인다
언제 부러질지 모르는 깃발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갈망하는데
그 소리는 무엇보다 단단하고 아름답다
작은 하나의 깃발이 눈덩이처럼 불어
하나에서 열 개로 다시 백 개로
점점 늘어나 온 땅을 뒤덮으며
저마다 견고한 눈빛으로 펄럭인다
자신의 깃발이 한 개임을 아쉬워하며
부러지기는 무섭지만 자랑스러워하며
나는 부러졌어도 결국 봄은 오리라 믿으며
석고처럼 단단하게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봄을 찾아 펄럭인다
깃발
최은영 목포중앙여자중학교 3학년 3반
“엄마 저 어디서 내려야 돼요?”
2014년 뜨거웠던 그날의 아찔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원래 살던 곳에서 이사를 하는 바람에 난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학원을 다녀야 했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버스에 몸을 실었던 날 내려야할 정류장을 까먹은 나는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과 다급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었다. 다행이도 나는 어마의 도움으로 무사히 학원을 갈 수 있었지만 그 때의 기억이 나에겐 아빠의 등보다 더 큰 충격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내가 충격을 받았다고 해서 버스를 타지 못하거나 트라우마가 생긴 것은 아니였다. 어쨌건 난 학원을 다녀야 했으며 설상가상 학교까지 버스로 통학을 해야하는 씁슬한 현실 때문이었다..
2014년의 기억이 점점 옛날이야기가 될수록 나는 점점 버스와 친해졌다. 매일 아침 7시, 버스에 몸을 싣고 매일 밤 10시에 또 한 번 버스에 몸과 마음을 의지하는 날이 장롱 위에 먼지가 쌓이듯 늘어갔기 때문이다. 1월의 어느 추운 날, 친구와 일찍 헤어지고 집에 가려던 날, 나는 그만 버스를 잘못 타서 15분이면 갈 집을 1시간이 넘게 못갔던 적이 있다. 순간 2014년도의 아찔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머리카락이 쭈빗 거렸지만 나는 금새 평정심을 되찾고 메모장을 켜 글을 썼다. ‘얼마나 더 가야 이 낯선 동네를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과 함께 이렇게 뚜렷한 목적지 없이 버스를 타니 꼭 무인도를 탐험하는 여행가가 된 느낌에 묘한 설렘이 내 손을 통해 표현되었다. 그리고 난 이날을 기점으로 뚜렷하지 않은 목표와 답을 찾기 힘든 질문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까 ‘깃발’이란 단어는 실로 오랜만에 보는 3월의 개나리에게서 느낀 익숙한 반가움을 물씬 풍긴다. 내 머릿속에서 조각조각 떠도는 기억들은 깨워봐도 나에게 깃발은 ‘목표달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미 TV속에서 숱하게 접한 모습들. 미션 수행을 위해 죽어라 달려 깃발을 집어들곤 입이 찢어저라 함박 웃음을 짓던 사람들. 나에게 깃발은 목표 달성을 뜻하는, 인생이란 버스의 종착역이다. 1월에 탔던 묘한 설렘과 불안감을 안고 나는 매일 살아간다. 그 때 봤던 낯선 동네만큼 나의 하루에는 익숙치 않은 일들이 너무도 많고ㅗ 그 속에서 ‘나에게 닥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하는 뚜렷한 해결책 없는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어 고민한다. 가끔 너무 답답하고 난처한 상황을 만나게 되면 정말이지 미래의 나에게 답을 얻고 싶어지는 날도 많다.
그럴 땐 억울함이 가득 담긴 눈물을 애써 참은 채 ‘이것도 내가 탄 버스에 한 정류장이겠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한참 스스로를 다독이다 보면 막연하게 ‘내 깃발은, 나의 종착역은, 어떤 모습일까?’하는 물음표가 내 머릿속에서 자신이 구명조끼라도 되듯 동동 떠다닌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인생이란 버스에 봄이 오면 향긋한 꽃을, 겨울이 오면 갖가지의 산타 인형을 놓는 여유 있는 버스 기사이고 싶다. 누군가가 태워주는 버스가 아닌 내가 운전해서 맞이할 수 있는 종착역을 만나고 싶다. 누군가에겐 인생의 종착역이 앓다 터져버린 고드름처럼 아플 수도 있고, 누군가가 붙여준 밴드처럼 마음 한 켠이 따뜻할 수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종착역이 있다. 그 종착역이 자신에게 어떻게 다가오게 될지, 종착역의 모습을 결정짓는 것은 지금 버스를 운전하는 자들의 몫이다. 나의 종착역은 아마 모든 세상이 하얗디 하앴을 때 홀로 푸르른 소나무같이 파아란 하늘 아래, 사는 동안 열심히 버스를 몬 나를 위한 민들레 하나가 노오랗게 피어있는 잔디일 것이다. 모두가 각박한 세상에 과속으로 벌금을 낼 때 내는 여유롭게 버스를 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