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산책16. 예(豫) - 인생의 큰 그림
제16괘 예(豫)
- 인생의 큰 그림 -
豫 利建侯行師(예 리건후행사)
鳴豫 凶(명예 흉)
介于石 不終日 貞 吉(개우석 부종일 정 길)
盱豫 悔 遲 有悔(우예 회 지 유회)
由豫 大有得 勿疑 朋盍簪(유예 대유득 물의 붕합잠)
貞疾 恒 不死(정질 항 불사)
冥豫 成 有渝 无咎(명예 성 유투 무구)
** ⓵합(盍)은 ‘덮을 합’입니다. 합잠(盍簪)은 비녀를 꽂는 것을 말합니다. ⓶명(冥)은 어둡다, 아득하다는 뜻입니다. 명부전(冥府殿)은 지장보살을 주로 하여 염라대왕 등 시왕을 모신 절 안의 법당을 말하지요. ⓷투(渝)는 달라지다, 풀어지다는 뜻입니다. **
예(豫)는 계획을 미리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의 큰 그림을 말하지요. 임금을 세우고 전쟁을 하는 중대한 일은 철저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져야 이롭다고 합니다(리건후행사), 선거에 나서거나 집단적 투쟁을 할 때도 역시 큰 그림을 그린 후 세부적 목표와 실행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주역』에도 몇몇 의미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⓵ 명예 흉(鳴豫 凶). 명예는 계획의 발설을 말합니다. 이건 예나 지금이나 흉하지요. 조직의 기밀이 새면 조직 전체가 곤경에 빠지지요. 국가정보원이나 기무부대가 국가와 군대의 기밀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일도 합니다. 행정기관에서도 개발정보를 흘려 땅투기를 조장해서 졸부가 생겼지요. 사회는 부자에 대한 존경을 잃고 불신을 만들었지요.
⓶ 개우석 부종일 정길(介于石 不終日 貞 吉). 돌에 맹세를 새기는 것을 개우석(개우석)이라고 한답니다. 중국 국민당 장제스의 한자가 개석(介石)입니다. 본래 이름이 중정이었지만 본토에서 쫓겨 대만으로 갈 때 본토수복을 맹세하면서 이름을 개석(介石)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맹세를 되새기면 끝내 길하다는 뜻입니다. 결심을 하고 얼마 가지 못하는 사람이 큰 일 하는 법은 없습니다.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하고 실제 끊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담배 끊는 사람을 보고 참 독하다고 합니다. 그런 독한 정신이 있어야 무슨 일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⓷ 우예 회 지 유회(盱豫 悔 遲 有悔). 우예는 분에 넘치는 허황된 계획입니다. 이런 계획은 후회를 일으키고 일을 더디게 만들고 끝내 후회만 남깁니다. 대개 허황된 계획을 세우고 고집을 세우는 사람은 남들은 다 알아도 본인만 허황된 것을 모릅니다. 다만 허황된 계획인지 원대한 포부인지 구분하는 것은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⓸ 유예 대유득 물의 붕 합잠(由豫 大有得 勿疑 朋盍簪). 유예는 계획실행의 과정입니다. 그 실행과정에서 큰 권력과 재물을 얻게 되면 동료를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는 ‘합잠’이 더 의미 있는 단어입니다. 여자들이 머리를 틀어서 비녀를 꽂는 단계를 합잠이라 하는데요, 일의 마지막 완성을 말합니다. 신뢰를 버리지 않아야 완벽한 합잠의 성공을 이룹니다.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을 보면서 끈까지 의리를 지키고 신뢰를 보인 사람이 끝내 집권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자』에 나오는 도척의 이야기는 교훈이 되기도 하고 재미도 있습니다.
도척(노나라 때 사람으로 9000여 명의 무리를 이끈 도둑)의 부하가 도척에게 물었습니다. “도둑질에도 길(道)이 있습니까?” “어디엔들 길이 없겠느냐. 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맞히는 게 훌륭함(聖)이다. 먼저 들어가는 게 용기(勇)다. 나중에 나오는 게 의리(義)다. 될지 안 될지 아는 게 지혜(知)다. 고루 나누는 게 사랑(仁)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 큰 도둑이 된 자는 아무도 없느니라.” 『장자』 <거협>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거협은 도둑질을 위해 ‘상자를 연다’는 뜻입니다.
⓹ 정질 항 불사(貞疾 恒 不死). 갑자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계획의 막바지에 발병하여 치료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는 괴로운 상황이 발생합니다.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일이 생깁니다. 전염병이 돌아 잘 나가던 사업이 부도에 몰리기도 합니다. 계획은 늘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제2안을 두어야 합니다. 예비적 계획과 보험에 해당하는 계획을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⓺ 명예 성 유투 무구(冥豫 成 有渝 无咎). 명예는 서투른 계획입니다. 서투른 계획으로도 운이 좋아 성공하기도 합니다. 운이 좋아 성공했어도 자신을 돌아보고 부족한 것을 끊임없이 보완해 가는 것이 유투입니다. 그래야 허물이 없습니다. 우리 생활에 유투가 꼭 필요하지요. 전에 시간 보내기가 무료해서 바둑을 잠시 둔 적이 있습니다. 운이 좋아 승기를 잡았을 때 조심하고 잘못된 것을 보완하고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아야 이깁니다. 자칫 우쭐하면 막판에 뒤집기를 당하지요.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정치를 논하는 괘보다는 여기 ‘예(豫)’괘에서 더 많은 지침을 내리고 있습니다. 총론적으로는 큰 그림을 먼저 그리고 세부적 목표와 실행계획을 세우라 합니다. 계획이 통째로 새나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공개되어야 합니다. 목적과 목표를 매일 점검하고 되새겨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파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허황된 공약을 하거나 무리한 계획을 세우면 계획의 진척이 더디고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결국 후회만 남습니다. 그렇다고 원대한 포부가 허황된 계획으로 폄훼되어서는 안 됩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유대관계와 훈련의 정도가 일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믿음과 의리를 지키도록 집단문화를 잘 조성해가야 합니다. 늘 유념해야 할 것은 예기치 못한 상황의 발생입니다. 늘 제2안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보험 같은 대안을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혹시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꾸준히 보완해 나가야 합니다. 좀 일이 잘된다고 우쭐하면 막판 뒤집기를 당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생이란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것을 이루어 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야 인생이 짜릿하지요. 때로 어려운 상황을 만나기도 할 거예요. 바람을 마주보고 맞으면 역풍이지만 뒤돌아서서 맞으면 순풍이 됩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과 상황이 바뀌기도 합니다. 원대한 포부를 품은 선량들과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동무들에게 두 가지 명으로 응원을 보냅니다. 첫째, 일생은 다음 장(章)을 알 수 없는 소설이다. 너무 빨리 덮지 말라. -시드니 셀던-. 둘째, 남을 아는 자는 똑똑하다고 하고 자기를 아는 자는 현명하다고 한다. –노자-. 뭐 인생에 명답은 있겠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이건 제 말이 아니고 김홍신 선생의 말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