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통속적으로 계산해 보자면 병준이는 얼른 각시가 붙지 않을 여러모로 형편이 탐탁치 않은 그런 위인인데...
하루는 비어 있다시피 하던 동네구판장이 분주해 지더니 내부랑 외부 수리하며 식당 겸 슈퍼로 꾸며지고 있더란 말이지.
이미, 중늙은이가 되어버린 총각 병준이가 객지를 떠돌다가는 젊고 곱상한 각시를 어디선가 얻어 왔는데, 그 각시가 식료나 일용잡화 같은 것을 팔면서 주막장사도 하고 그러더란 말이지.
그 각시는 그런 일에 경험이 있어 보였는데, 동네 꼬맹이 과자나부랭이부터서 아낙네들의 식용유 간장, 라면 화장지 등은 물론이거니와 일 철에 새참으로 쓸 山內의 털보네 변산 탁주까지 마치 이 전부터 해 온양 전혀 어색함이 없이 일을 치러 낸다.
그런가 하면, 뱃일에서 돌아온 이 동네고 저 동네며 먼 동네인 격포고 원포며 사방 팔방에 뱃놈들까지 입 소문을 듣고 와서는 술회포도 풀고 윶 놀음도하고 그래서는 단장한지 얼마 안 되는 구판장은 날로 번창해 가는 것이, 저러다가 병준네는 금방 부자가 될 듯 하였다.
그런데, 그러면 즐거워해야 할 병준이 표정이 그렇지 못하게도 날로 어두워지더니 급기야 부부가 티각태각 하기까지 하더란다.
병준이 생각에는 장사가 잘 되는 것이 아무래도 각시의 용모나 빼어 난 수단에 이 놈 저 놈이 흑심을 품고 있는 듯 하고 젊고 늙간에, 심지어는 똥오줌을 못 가리는 노인네 종규양반 조차도 막걸리 한 병을 탁자에 턱하니 받아 아깝게 홀짝거리며 각시의 치마 섶에서 집에 갈 생각을 않는 모양새에 심사가 하루하루 틀어져 가기만 했기 때문이다.
(무)
무엇보다도 못 말리는 망나니 영수는 차라리 구판장에 각시가 자기 애인이라며 웃통을 훌라당 벗고는 유리창 깨고 그릇을 던지고 땡깡을 부리질 않나 이러다가는 어렵사리 얻어 논 각시가 동네각시가 될 판이다.
그러던 와중에도 내 친구 영철이 조차 각시가 참, 귀엽게 생겼다며 여간 좋아하질 않는다.
본디, 영철이는 유동 삼거리의 성진 네 집이 공식지정 주막이었는데 병준이 각시, 장사를 시작하고부터는 나를 핑계삼아 우리동네로 거래처를 확실히 옮겼단 말이지. 그 바람에 나는 그 예의 영철이 스타일인 大그라스로 소주 원샅 하는 상대를 매일 하느라 술 실력이 날로 늘어만 갔다.
영철이 황급히 불러서 제집으로 쫓아 가보면 밭에서 금방 딴 수박을 큰 바구니에 실어주면서 병준이 각시 갖다주라고 하는 멋 적은 심부름을 시키곤 하였다.
"여름에 구판장 손님들 안주로, 얼른 쓰기에는 좋을 거야!"
오토바이 짐칸에 얹어 주는 바구니 꼭대기에 별 볼품 없는 내 몫을 두어 개 더 얹어 주는 건 잊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심부름하기를, 마늘 파지, 양파 쫄뚜기 수 망에다... 양배추에, 고구마 작은 것들....
심지어 그의 처 은순 오메가 김치라도 맛 깔 나게 담아서는 남편 친구인 나에게 특별히,
" 가실 때, 이 김치통 가져가시라 우~ 광하네 꺼 따로 담았응 께~" 할라치면,
"여보 소! 도청에 작은 각시 꺼도 한 통 더 담으소!" 시커멓게 잘 생긴 큰 눈을 끔벅이며 태연스레 내 뱉는다.
(뭇)
뭇 사내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그녀가 좋아지기 시작하였는데, 내가 그 각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말이 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밥 먹었으라 우?" , "암시렁 않다니 께~", "산내에 간당 께~" 뭐 이런 말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좀 됨직한 말이 통하는 사람이 그 구석에서 그 각시가 유일하다는 것 이였다.
병준이 각시와 나, 둘이서 대충 그 쪽으로다 대화를 나눈다면,
"M, R, I 사진" 발음이 되질 않아 "에밀레 사진"하는 어둔한 영철이는 돌아앉아 코방귀를 뀌거나, 엉뚱한 화재를 몰고 와 대화의 맥을 끊어 훼방을 놓곤 하였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교육 동기생인 허영자씨 부부가 찾아오게 되면 주로 구판장으로 모시게 되는데, 그들 부부조차도 각시가 늘 책을 받쳐들고 있는 모습이나, 문학을 하고 싶다며 노트에 뭔가를 끌쩍거리는 각시를 애처롭고도 이쁘게 생각하여서는 방송대에 입학하기를 권하기도 하거니와 메모할 수 있는 노트와 연필을 사다 주곤 하였다.
이렇듯, 병준이 각시를 좋아하는 팬은 주변에서 빠르게 늘어가고 있었다.
(늦)
늦은 저녘에 구판장에 뭘 사러 갔다가 흠칫 했던 것은, 그 곳에 병준이 혼자서 어두운 표정으로 소주를 마시고 있어서였다. 며칠 전에 연철이 한말이 떠올랐다.
"오형! 도청마을에 소문이 나기를, 경준이 각시의 애인이 수두룩한데 첫째가 배 공장에 곽 사장이고, 둘째가 영수. 그 다음이 나랴~ 그리고 자네는.... 일곱 번짼가~ 여덟 번짼가 한디야..."
소문은 뻔하다 술만 마시면 속옷에 똥을 찌리곤 하여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종규영감이 젊은이 틈에 끼여 제대로 대접 못 받고 각시가 냉대하자 질투의 화풀이로 지어낸 말인 것이다.
"뭐? 나도 거기에 끼였어? 푸~하하!! 영광이네 영광이여~ 나를 빠트리지 않아서."
당시에는 호기롭게 웃었지만, 막상 병준이를 마주치니 기분은 그렇지만 않았다.
취기가 있는 병준이는 나를 불러 세워 굳이 술잔을 권했고 알 수 없는 위압과 긴장감으로 그 의 맞은편에 앉아야 했다.
병준이는 자기가 광주에 나가서 철근 노가다를 한지가 벌써 오래 된다는 것과 하루 일당이 12만원인데 한 달에 스무날만 일 하드라도 200만원이 넘어가니 적잖이 괜찮은 노동임을 강조하고는 농사보다야 훨 나은 일이라 형도 생각이 있거들랑 자신이 십장에게 얘기는 해 주겠노라고 자신의 위치가 웬만함을 힘주어 주절 되는 것이 일종의 과시인 셈이다.
병준이, 바짝 마른 몸매에 머리통에 살점이라고는 붙어 있는 곳이 없어 턱 뼈가 유난히 불거져 보이는데, 그의 목 줄기가 하도 가늘어서 그 작은 머리통이 무거워 보이기까지 하였고 쌘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힘없어 보이는 모가지가 마른 나무 가지 부러질듯해서 아슬아슬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 형편없는 위인 앞에서 웬일인지 나는 선생님 앞에 어린 학생처럼 잔뜩 위축되어서는 침 튀기는 그의 말씀에 경청은 물론이고 탄성까지 지르며 다소 과도한 표정으로 위대한 병준이를 칭찬에 칭송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씀이 적당히 맥이 끊어질 즈음에, 나는 그 훌륭한 노가다에 은혜를 입어 동참하고 싶으나 딸린 아이들이 아직은 어리니 객지로 나다니는 일은 할 수 없음을 정중히 설명 올리고 간신히 그 자리를 빠져 나올 수가 있었다.
이튿날, 구판장 주변에 병준이 모습이 보이지 않음은 그가 새벽 일찍 광주로 막노동 일을 떠났음이라...
그리곤 꼭 잊을 만 할 때, 하루 저녘 반짝 그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
그리고, 햇볕이 쨍 한 어느 날...
우리 집 변소에서 똥을 누고는 바람 창으로 바로 보이는 구판장의 높지 않는 담 장 넘어에 화사한 옷설미가 얼핏하길래, 심 삼아 막걸리 사려 구판장을 들렀더니 경준이 각시가 수돗가에 배추를 행구는 과년한 처자를 가르키면서 하는 말인 즉,
"우리 딸이라 요~ 이쁘죠?" 하질 않는가....?
막내쯤 되는 동생이던가 아님, 조카이려니 싶었는데....
그리고는 각시의 딸이 돌아가고 얼마 후에, 딸에 대한 내막을 직접 그녀로부터 듣게 되었다.
각시가 아직은 철이 없는 청춘일 때 유원지에 놀러 갔다가 초면의 남정네로부터 사고로 잉태한 씨앗이 그 딸년이라 하였다. 아니길 바랬지만, 날이 갈수록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불러 올라왔고 황당해 하는 각시의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친구, 친척 등 주변에서 들 찢어 없앨 것을 강력히 회유했지만, 당시엔 무슨 오기인지 모르게 모든 강압에도 마다하고는 기어코 핏덩이를 낳고야 말았다.
어린 생명을 부여 앉고서 조선천지 사방 팔방을 헤매며 안 해본 것 없이 산 넘고 강 건너 홀로 키워온 딸년이 이제는!.... 익산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며 당당히 말하고 있는 거다.
그 순간, 나는 콧등이 시큰했었다.
자리에 누워 몸을 뒤척이면서 엄마, 엄마! 하면서 연신 제 어미를 부르며 각시의 일을 돕던 훌쭉히 키 큰 그녀의 딸애 모습이 어른거려 상념에 잠기게된다.
딸린 애가 많아서나 유희로 잘못 들어섰다면, 더구나 사고로 원치 않는 씨앗이라면 가차없이 지워버리고 사람이 다 되어도 수술해 찢어버리는 세상에 그녀는 왜 그토록 핏덩어리를 얻어서 가시밭을 헤맸을까.
모성애일까?.....
(병)
병준이가 각시를 데려고 올 때만 하드라도 살기 힘든 과수댁이려니 다들 동네에서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처녀가 아닌 처녀로서 잘난 위인 경준이에게 스스로의 몸값을 낮추었으랴 생각에 더욱 애처로울 일이다.
돌이켜보니 그녀가 우리동네로 오고 나서 그녀에 대한 느낌이라는 것이 짙은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부랑아 영수와 수인사를 튼 것도 구판장에서였는데 대낮에 벌겋게 술이 오른 그는 엊저녘을 각시와 함께 잤다며 나에게 허스레를 떨었지만, 각시는 묵묵히 영수의 탁자 위 팔 한 쪽을 들어 흘린 막걸리를 대꾸 없이 닦아낼 때도 어머니의 대범한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항상 젊은이에게 밀린다고 못 마땅해 하던 종규영감도 막걸리 몇 잔에 목을 축였나 싶으면 더 마시면 똥싸게 된다며 추슬러 집으로 돌려보낼 때도 철부지 아이를 다루는 어머니 모습이었던 것 같다.
연철이가 찌끄래기 농산물이라도 모아서 보내는 것도 어쩌면 고생하는 안스러운 어머님에 대한 측은지심 어린 일종의 효심과 같은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행동과 입이 험한 뱃놈들이 구판장에서 늦은 시간까지 윶 놀음을 벌리고 떠들고 춤추고 하는 것은 어머니 앞에서의 유희와 재롱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영수가 딴 남자들에게 친절하다는 이유로 구판장 유리문을 박살내고 집기를 부실 때도 눈 하나 끔적 안하고 과감히 꾸짖고 대드는 모습 또한, 엄숙한 어머니의 형상이었다. 영수는 그 대담함에 움찔거리곤 했었다.
한 번은 영수 아내가 대체 둘 사이가 어떤 사이냐고 전화가 왔었는데 그 때도 각시는 그저 동네 아저씨로 생각한다며 자근자근 설명하고 설득하는 모습도 며늘 앞에서의 자상한 시어머니가 훈시하는 모습이었다.
사람에게 공기총을 발사해서 옥살이까지 한 사나운 복영이도 각시가 잘 잘못을 짚어 줄 때는 눈만 끔벅거리고 듣기만 해서 신기했던 것이 같은 맥락이었으리라.
정월 보름이고, 백중날에 구판장에서 동네 잔치가 열리면 그녀의 행동거지나 일 치르는 모습 또한, 대가집의 맏며느리 그 모습이었다.
헛소문이라 하더라도, 허잡한 소리를 들음직한 병준이가 나에겐 뭔가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 쓰던 그가 두말 없이 다음날 건설현장으로 말 없이 되돌아간 것은 푸근한 어머님 품에서 하룻밤의 안위와 안심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망)
망나니 영수나, 내 친구 영철이, 멀고 가까운 포구마다 뱃놈들이나 종규영감은 물론이고 다혈질 복영이, 포쟁이 기성이나 구판장을 드나드는 모든 남정네들이 오래 전에 어머니 뱃속에서 떠나 험난한 풍랑의 바다에서, 끝없이 손해 되는 힘겨운 농사에서나 또는, 노가다판에서 사람대접 받지 못하면서 세파에 시달리다 못해 귀향하는 심정으로 그녀의 자궁으로 되돌아가고 안기고 싶었을 것이다.
나 또한,
현실적이지 못한 시골생활에서 애 키우면서
잠시,
그녀의 품 한구석에서 한 숨을 돌려보고 싶었을 게다.
아련한 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