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감옥
윤희상
혀끝으로 총의 방아쇠를 당겨 혀를 쏘았다
쏟아지는 것은 말이 아니라, 피였다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안에서 자라는 말을 베어 물었다
그렇더라도,
생각은 말로 했다
저것은 나무
저것은 슬픔
저것은 장미
저것은 이별
저것은 난초
끝내는 말로부터 달아날 수 없었다
눈을 감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을 가지고 실컷 떠들고 놀 것을 그랬다
꽃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향을 피울 것을 그랬다
온종일 말 밖으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했다
아무도 몰래, 불어가는 바람 속에
말을 섞을 것을 그랬다
(토풍시 사화집 『다시, 화양연화』에서, 2023)
*윤희상 시인은/
1961년 영산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남 나주시 영산포 조선시대 제민창 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1학년 봄에 전남학생시조협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고등학교 3학년 졸업 때까지 활동했다.
광주동신고등학교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9년 『세계의 문학』에 「무거운 새의 발자국」 외 2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줄곧 편집자로, 편집회사 대표로 오래 일했다.
시집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소를 웃긴 꽃』, 『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 머물고 싶다 아니, 사라지고 싶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