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은 아버님 제사.
늦도록 키보드만 만지작 거리다가
망설이는 내게 걸려온 전화 한 통
강원도 백담사로 떠난다.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부적절한 외출.
내 안의 알 수 없는 또다른 나의 반란.
아버님 제사가 어찌어찌해서 평일로 옮겨지고,
내려갈 일이 없어진 내게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그래,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햇살이 너무 따가워서"라고 변명하자.
대화나 합시다.
싱겁게 시작된 대화는 늘어진 테이프처럼,
현깃증나는 이명음만 귀속에서 윙윙거리고,
마지못해 대꾸하는 응답,
엿가락처럼 푹퍼진 고속도로 위에
도로공사에서 파견나온 뻥튀기 장사가
부적절한 관계를 눈치챈 것일까,
손가락 두 개를 펴고,
잘, 라, 버, 리, 겠, 어,
대화도 없이 미사리까지,
이런 만남도 있을 수가 있다니....
모든 질문을 건너뛴 "묻지마" 여행.
관광버스도 아니고 무쏘안에서,
1박하고 올 것을 알면서도,
처음부터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이도, 이름도, 사는 곳도...
心心相印.
< 여행갈 수 있겠어요..>
< 양재동 예술의 전당 앞에서 2시에 뵙시다..>
타이핑이 느린 그의 외로운 손가락이 보인다.
부적절한 여행은,
여주-강원도 미시령-십이선녀탕-백담사-
설악산-낙산해수욕장...
논리적으로 대답하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학생들을
꾸짖던 내가,
채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닫고,
납치를 조장하고,
납치당한 채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그냥"....
그러나 지금 가장 적절한 말.
8월11일은 아버님 제삿날.
뫼르소는 어머님의 부음을 듣고 고향가는 길에
한 여자와 음행을 저지르지.
자식들의 편의로 해서
기일이 옮겨지고,
그 한 자식은 부적절한 관계에 몰두한다.
말은 없어도
사랑은 무작정 겁도 없이, 예고도 없이
고독의 창을 꽂고 막무가내로 쳐들어 오기도 한다.
위태위태한 대화의 연결고리가
강원도 산골 옥수수 머리채처럼
가늘게 이어져,
깊은 산장에서의 하룻밤,
차라리
개구리와 찌르라미 소리가 우리의 대화를 대신하고,
각자 벗어던지고 갈 짐들이,
별들처럼 내려앉는 밤,
산장 옆 산길 모퉁이에
숨죽여 흐느끼는 그를 본다.
외로움의 시간들을 눈물로 토해내는
그는 그래도 낫다.
남들 눈을 피해가며 울음을 참아야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
산넘어 산,
강원도에는 산이 너무 많아 쓸쓸하고,
햇살이 눈부신 일요일,
헐떡거리는 경포대의 파도가
내 외로움의 목까지 차오르는 아침,
우리는 각자
겨누었던 뫼르소의 총탄을 거두고,
부적절한 상경길에 오른다.
살다보면,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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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친구사이게시판
부적절한 하룻밤
여행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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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23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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