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종자와 의미와 그 활동조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아뢰야식연기론에서는 우주의 모든 현상이 오직 마음의 발현이며, 그 근본은 아뢰야식 안에 함유되어 있는 종자(種子)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종자라고 하면 반드시 싹이 트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종자로서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의 씨앗이 싹이 트려면 수분이나 온도 등의 영향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아뢰야식 안에 있는 선·악의 종자도 역시 일정한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가해지지 않으면 만법(萬法)을 전변(轉變)시킬 수가 없다. 이러한 지속적인 영향력을 훈습(熏習), 또는 습기(習氣)라고 하는데, 마치 의복에 계속 향기를 쏘이면 그 옷에 향기가 배이듯이 우리들의 선·악의 갖가지 전칠식(前七識)의 행위가 제8식을 훈습시키면 그 훈습을 받은 종자가 나중에 적당한 인연을 만나 활동을 일으키는[現行]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작용을 하는 종자에는 그 성질상 찰나멸(刹那滅), 과구유(果俱有), 항수전(恒隨轉), 성결정(性決定), 대중연(待衆緣), 인자과(引自果)라는 여섯 가지 조건이 있다. 이것을 종자육의(種子六義)라고 하는데, 다음에 그 각각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① 찰나멸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모든 존재[一切有爲法]는 어느 것이든 순간에 나서 순간에 없어지는 무상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이것을 찰나멸(刹那滅)이라고 하는데, 종자도 역시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것이라면 과(果)를 낼 수 없으므로 종자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콩에 온도나 습기 등의 싹이 틀 조건을 아무리 가해도 싹이 트지 않고 언제나 콩으로서만 존속한다면 종자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② 과구유
과구유(果俱有)란 결과가 원인 속에 함께 갖추어져 있다는 뜻으로, 일체의 만물을 만들어내는 원인인 종자와 그 결과인 현행(現行)은 반드시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원인이 앞이고 결과는 뒤거나 앞뒤의 시간이 바뀌어 있다면 이미 종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치 아들과 어머니가 동시에 존재해야 함과 같은데, 시간상으로 보아 어머니는 아들을 낳는 순간부터 어머니가 되는 것이고, 또 아직 아들을 낳지 않은 여인을 어머니라고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③ 항수전
항수전(恒隨轉)이란 아뢰야식 안에 있는 선·악의 종자는 각기 현행할 시기를 기다리는 동안은 반드시 자신의 성질을 바꾸지 않고 한결같이 존속해야 한다[一類相續]는 뜻이다. 예를 들면 콩은 인연을 만나 싹이 틀 때까지는 언제까지나 콩으로서의 성질을 변함없이 유지해야 하며, 만일 그 사이에 변질이 된다면 이미 콩의 종자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④ 성결정
아뢰야식 안에 간직되어 있는 종자는 선·악·무기의 세 가지 성질로 나뉘어지는데, 성결정(性決定)이란 그러한 각각의 종자는 그 본성이 이미 결정되어 있어 바뀌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⑤ 대중연
대중연(待衆緣)이란 종자가 현상을 현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러 가지 인연을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인(因)이 여러 연[衆緣]을 기다리지 않고는 과(果)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⑥ 인자과
인자과(引自果)란 하나의 종자는 반드시 그 각각의 종자에 알맞은 스스로의과[自果]만을 맺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의 원인이 여러 가지 결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비로소 종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종자육의설의 의미이다.
그러면 다음에 이와 같은 종자와 아뢰야식 사이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그런데 이 양자간의 관계 즉, 종자는 아뢰야식 안에 선척적으로 발생한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예부터 본유설(本有說), 신훈설(新熏說), 신구합생설(新舊合生說) 등 여러 가지 견해가 있었다. 이제 그 하나 하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① 본유설
본유설(本有說)이란 모든 종자는 본래부터 아뢰야식 안에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으며, 훈습에 의해 새로운 종자가 만들어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견해이다.
② 신훈설
신훈설(新熏說)이란 종자는 모두 훈습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지 선천적으로 아뢰야식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그러나 만일 종자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조물주가 우주만물을 임의대로 창조했다고 하는 견해와 다름이 없어 어떤 사물이든 직접적인 원인[因]과 보조적인 원인[緣]이 합쳐져서 나타난 결과[果]라는 불교의 인과설에 부합되지 않는다. 또 만일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후천적인 훈습에 의해서만 생겨나는 것이라면 그것도 역시 근원적인 원인[因]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③ 신구합생설
신구합생설(新舊合生說)이란 아뢰야식 가운데는 과거부터 존재하는 종자도 있지만, 일체의 활동에 따라 새로운 전칠식의 종자가 아뢰야식을 새로이 훈습시키기도 한다는 견해이다. 마치 등잔의 심지에 불을 붙이면 심지가 다시 새로운 불꽃을 낳고 그 불꽃이 다시 심지를 태워, 심지와 불꽃이 서로 인과관계를 맺으면서 존속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또한 갈대 묶음이 서로 의지하여 서 있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뢰야식에 본래 간직되어 있는 종자가 현행하여 전칠식의 제법(諸法)을 낳고 다시 그 제법이 제8식의 종자를 훈습신킨다는 것으로, 이렇게 종자가 현행을 낳고[種子生現行] 현행이 종자를 훈습시키면서[現行熏種子]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어 일체의 현상을 영원히 전개시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