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은 <길>의 시인으로 불려왔다. 이번에 <김명인 특집>을 마련하고 청탁된 모든 글에도 <길>의 언급은 그의 시와 삶을 아우르고 있다. 참으로 그의 시적 영혼은 <길> 위로 하염없이 불어가는 <바람>과도 같다. 한 세기가 바뀌는 격동의 시기에 펴낸 시집의 후기에서 시인 스스로 자신의 시세계를 돌아보며 <남들이 방법에 기댈 때 나는 내용에 기댄다>라고 고백했을 때에도 그는 삶의 <길>을 떠도는 마음의 행로를 시의 <내용>이자 본질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의 시세계가 <길>의 속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젊은 날 내 시에는 이야기를 담고자 한 의욕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작가 인터뷰」)다는 고백에도 암시되어 있다. 스스로 <나는 맺힌 것이 많은 사람>(같은 글)이라는 고백도 그러한 사실을 암시하는 데 일익을 감당한다. 유년시절의 가난이 그를 <맺힌 것이 많은> 사람으로 만들었다면, <맺힌 것>은 그를 <욕된 세상>으로 출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욕된 세상>으로 떠도는 그의 마음이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고 그러한 의욕은 고스란히 그의 첫 번 째 시집 『동두천』에 담겨있다. 엄경희는 「시인론」에서 그러한 의욕이 <쉽게 몰아낼 수 없는 시적 정서를 지니게> 만들고 그런 정서가 바로 <우울>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더불어 그러한 <우울>이 <기교도 없이 새소리도 없이 가라고/내 시를 때>(「동두천4」)리게 만들었다고 판단한다. <기교도 없>는 시의 절실함이야말로 시의 <내용>, 시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원동력인 셈이다. 장석주는 「주제비평」에서 <길>을 나서게 만드는 <기억>의 몇 가지 트라우마를 분석해 보여준다. 그것은 시인의 유년시절에 초자아로 작용하는 <아버지>이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의식과 그로 인한 가난의 고통이 그러한 트라우마의 현실적 증상이다. 또 다른 트라우마로 <구멍>에 대한 공포를 들 수가 있다. 그 구멍은 <보호와 양육의 우산을 드리워주는 아버지의 결여>(같은 글)이기도 하다. 장석주는 <구멍>의 트라우마가 갖는 증상을 <추락의 공포, 혹은 죽음과 결부된>(같은 글)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김명인의 시세계가 보여주는 <길>의 방향을 김명인 스스로는 두 가지로 나눈다. <젊은 날의 시에서는 열정과 의도를 아로새겨서 현실을 극복해보려는 노력을 했었고, 중년 이후로는 마음의 근거들을 들춰내는 탐색의 경로를 모색해왔다고 할 수 있다>(「작가 인터뷰」)는 고백이 그것이다. 엄경희는 그러한 <길>의 두 번째 갈래를 <시간에 대한 성찰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시인론」)이라고 규정한다. 김명인의 세 번째 시집 『물 건너는 사람』에서부터 그러한 <존재와 시간이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같은 글)는 <길>의 모습이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길>의 모습은 <수평적 이동에서 수직의 하강의 형태로 바뀐다>. 존재의 내부로 향한 그 <길>에서 <김명인의 수직공간은 대부분 하방을 향해 있다>(같은 글). 장석주처럼 엄경희도 <김명인의 수직공간은 바닥없는 심연으로의 추락을 예고하는 캄캄한 구멍의 이미지로 반복된다>(같은 글)고 규정한다. 엄경희의 「시인론」은 김명인 특유의 문체가 갖는 속성을 삶의 <길>에 대한 떠돌이 의식과 연계시켜 놓기도 한다. <떠돎이라는 생의 방식에 스며있는 우울을 토로하며 김명인은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문맥 속에 수없이 많은 자문 형식의 물음표들을 심어놓곤 한다. 아울러 그는 행과 행 사이의 의미가 서로 맞물리도록 행간걸침의 기법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문장이 쉽게 미끄러지지 않도록 불편한 호흡법으로 막아선다>(같은 글)는 지적이 그것이다. 김명인 시인은 작년에 회갑을 기념하여 펴낸 그의 시선집에서 <끝끝내 그리워할 시가 있으므로 나는 길 위에선 결코 멈춰서고 싶지 않은 시인이다>(「작가 인터뷰」)라는 고백을 들려준 바 있다. 그 떠돌이의 행로에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적요>를 들고 있다. <적요는 어떤 전율의 시간이기도 하고, 근원의 시간을 환기하는 것이기도 하다네. 그것은 단지 공허를 인식하는 정지의 순간이 아니라, 다른 크고 깊은 세계와 연결되는 경과의 시간이라>(같은 글)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펴낸 시집 제목이기도 한 <파문>이야말로 그러한 존재의 울림 효과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한 존재의 울림 효과를 본지에 발표되는 그의 <신작 소시집>과 <신작산문>에서 충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 기 획 <2000년대 새로운 문학의 좌표> 에는 시와 문학이론의 새로운 담론 틀과 개념들이 글쓰기에 적용되고 있는 사례들을 비판적으로 점검한 두 편의 문학 평론이 실렸다. 방대한 분량의 야심 찬 글에서 조영일은 가라타닌 고진이 『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저서로 한국문학 평단에 미친 영향을 주목하고 그 저서의 논지가 노정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원론적인 차원에서, 또한 한국문단의 세태적 차원에서 조목조목 따져보는 의욕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시선은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에 대한 규정과 근대 이후 문학의 가치에 대한 규정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라타니 고진의 규정이 한국 비평문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착잡한 세부사항들을 황종연의 가라타니 고진에 대한 서평자료를 활용하여 촘촘하게 들추어내고 있다. 특히 황종연의 근대문학 이후의 한국문학에 대한 논의가 스스로의 <신념>을 <논리>로 내세우는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하고 <오늘날의 한국문학이 어떻게 근대문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형식화한 가치’를 넘어서서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증거자료들을 찾아낼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오형엽은 2000년대 한국의 젊은 시인들이 표현하는 시적 상상력의 중요한 요소로 <환상>을 지적하고, <환상>의 정신분석학적 기제들이 어떻게 시적 상상력의 기법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는 김민정과 이민하의 시세계를 그 대표적 사례로 검토하고 있는 바, 그들의 <시의 환상은 대타자의 억압이나 결여 앞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동시에 주체의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기 위한 상상적 시나리오>라고 규정한다. 이들의 <시는 환상의 중층적 기제로 무의식적 심층을 탐사한 점에서는 새로운 시적 차원을 획득>했지만, <무한 증식과 전도와 변신의 메카니즘이 낳을 수 있는 자기복제의 위험>을 갖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 시인 산책 <정진규 시인 - 밀고 당김의 미학> <시인산책>에는 정진규 시인을 초대하였다. 그의 시세계는 특정한 에꼴이 주도하는 한국문단에서 그가 성취해온 가치를 비교적 바르게 평가받지 못했다. 이점에서한국 문단은 그에게 부끄러운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의 시세계에 대한 분석과 평가 또한 우리 문학의 분석틀이 항상 노정하고 있는 약점이기도 한 문체론과의 유기적 관계망을 소홀히 취급해온 약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세계가 가장 빛나는 성취에 이른 20여 년의 작업이 한결같이 산문체의 리듬을 유지해온 속성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세심하게 평가하는 작업이 이제부터라도 정치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이경호의 지적처럼 <시 전체를 하나의 몸뚱어리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시인의 삶을 육체성으로 누리는 과정과 유기적으로 소통하고 있고, 그러한 소통효과도 산문체의 리듬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시선이 그러한 논의들을 추동하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호에 발표되는 정진규 시인의 신작들 역시 그러한 산문체의 리듬이 시와 생의 몸뚱어리와 유기적으로 얽혀서 빚어내는 포에지의 진경을 과시한다. 유난히 마르고 단단한 것의 육체성이 갖는 리듬을 시적 주체와 대상이 서로 <밀고 당기며> 구현해내는 포에지의 윤무(輪舞)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 해외 문학 <페타르 코치치 - 보스니아 정치 풍자극의 대가> <해외문학>에는 보스니아 정치 풍자극의 걸작인 「보스니아의 오소리, 법정에 서다」와 저자인 페타르 코치치를 선보인다. 코치치의 문학이 갖는 속성은 <예술에서 미가 불멸적인 무엇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예술에서 보다 불멸적인 것은 삶이다>라는 그의 주장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번 호에 실린 정치 풍자극도 그러한 그의 문학관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동시대 보스니아 농민들의 비극적 운명을 묘사하는 것을 작가적 책무이자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보스니아 농민들은, 세르비아 문학에서 전통적으로 등장했던 바, 민족의상을 입고 축일의 행사에 열중하는 농민들, 가부장적 관계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황폐하고 미신적이며 굶주림에 시달리고 헐벗은, 그럼에도 활력으로 충만하고 굽힘없고 저항적인> 인물상을 새롭게 제시하는 업적을 코치치는 남긴 셈이다. <서사성과 서정성을 결합함으로써 현대 유고문학의 경향을 선취하고 있는> 그의 정치풍자극을 우리의 전통 마당극과 그것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1980년대의 민중극과 비교하면서 감상해보는 의미로운 자리가 될 것이다.
■ 특집 시인 김명인 연보 1946년 9월 2일(음력)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삼률리에서 김석광 ? 이양선의 4남 7녀 중 넷째로 출생하여,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1965년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조지훈 선생님을 뵙고 대학 2학년 때부터 시를 써보려고 작심하였다. 1967년 고대신문사 주최 전국대학생 문예현상 공모에 시가 당선되었다. 1969년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두천에서의 교사생활을 거쳐 육군에 입대, 여러 근무지를 거쳐 월남전쟁에도 참전했으며, 사병으로 3년을 꼬박 복무한 뒤 제대하였다. 1973년 『중앙일보』신춘문예 시 부문에 「출항제」로 당선하였다. 1975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이 해 김창완 ? 정호승 ? 이동순과 <반시>동인을 결성하고 1980년대 초까지 활동하였다. 1975년 첫 시집 『東豆川』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1981년 여러 대학의 강사를 거쳐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조교수, 부교수, 교수를 거쳐 1999년 2월까지 재직하였다. 1985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1930년대 시의 구조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6년 김창완?이동순?정호승과 4인 시집 『마침내 겨울이 가려나 봐요』를 열음사에서 출간했다. 1988년 두 번째 시집 『머나먼 곳 스와니』를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하였다. 이해 겨울에 도미하여 Utah 주 Brigham Young 대학교에서 1년간 한국현대문학을 강의하였다. 1992년 <소월시문학상>과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하고, 세 번째 시집 『물 건너는 사람』을 세계사에서 출간했다. 1991년 시선집 『물 속의 빈집』을 미래사에서 간행하였다. 1994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소재한 극동국립종합대학교에서 6개월간 한국현대문학을 강의했다. 네 번째 시집 『푸른 강아지와 놀다』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1995년 시집 『푸른 강아지와 놀다』로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1997년 다섯 번째 시집 『바닷가의 장례』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하였다. 1999년 19년간 재직했던 경기대학교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로 직장을 옮겼다. 여섯 번째 시집 『길의 침묵』을 문학과지성사에서 간행했다. 2000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 시집『길의 침묵』으로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2년 일곱 번째 시집 『바다의 아코디언』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2005년 여덟 번째 시집『파문』을 문학과지성사에서 간행하였다. 이 시집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시집 『파문』으로 <이형기문학상>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