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과 문화유산
서울대 교수 나영일
문화재청은 2008년 7월 7일 정릉에 위치한 국궁장(백운정)을 철거했다. 이는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왕릉 원형복원 차원에서 철거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서울시는 남산에 위치한 국궁장(석호정)의 운영 문제를 일반공원의 매점이나 지하상가처럼 수익을 위한 공개경쟁입찰 방식을 적용하여 2009년부터 대한궁도협회이나 석호정와 전혀 상관없는 특정인을 임대계약자로 선정하였다. 문화재관리와 자연보호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최근의 행정당국의 논리를 이해하기 힘들다. 국궁과 같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유형으로 보는지 아니면 무형으로 보는지 그것도 아니면 장사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지 모르겠다.
1995년 문화재관리국은 세계자연유산 등재후보로 설악산 국립공원을 유네스코에 등록하려 했으나 야생동물이 별로 살지 않는 동물생태계 미흡과 주민반발을 이유로 신청을 철회한 적이 있다. 동물이 살지 않는 자연은 살아 숨쉬는 공간이 아니라 황폐함 그 자체다. 문화유산도 역시 그렇다.
국궁은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수천년을 이어온 대표적인 무형문화재다. 전국에는 370여곳의 국궁장이 있고, 서울에만 9개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백운정이 헐리고, 석호정이 놀이공원처럼 1,000원을 내고 화살 5발을 쏘는 놀이터가 되어 전국 4만여 국궁인들의 불만이 드높다. 우리나라의 국궁장은 대부분 국공립공원의 자연녹지에 있는데 앞으로 이러한 조치가 확대되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무예인 국궁은 그 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장충단 뒷편 산기슭에 있던 석호정 활터는 조선시대 어영청의 분영이었던 남소영(南小營)이 있던 곳으로, 한 때는 1만 4천여명의 한량들이 과거 시험을 치루기 위하여 모였던 과거시험장이었고, 조선시대의 실학파이며 대표적 문인이었던 박제가 같은 시인들이 모여 활을 쏘고 시를 짓던 유서 깊은 곳이다. 또한 석호정은 민간사정의 대표 정이면서 동시에 한국 양궁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올림픽경기에서 양궁 단일 종목에서만 16개의 메달을 딴 우리의 자랑스런 한국 양궁은 바로 이곳 석호정에서 활을 쏘던 석봉근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석호정은 단순히 건물이 아니다. 활터인 사정(射亭)을 건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2006년부터 우리나라 체육제도의 근간을 스포츠클럽시스템으로 변화시키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스포츠클럽시스템의 원조는 바로 활터다. 활터에는 사두(射頭)라고 불리는 대표어른이 있고, 사범을 통하여 국궁을 배우고, 편사(便射)라고 불리는 시합을 하고 있다. 또 서로를 접장(接長)이라고 부며 각종 예의범절을 교육하고 전수하고 있어 서양의 스포츠클럽과는 차원이 다른 가장 한국적인 전통 스포츠클럽이 바로 전국에 산재해있는 활터다.
그 동안 태권도와 같이 현대화된 무예들은 나름의 영역에서 비교적 자리를 잡아온 반면, 국궁과 같은 역사성, 지역성, 정통성을 지니고 문화유산으로 각광받아야 마땅할 전통무예가 우리사회에서 외면 받고 올바로 계승되지 못하였었다. 이러한 전통무예계의 현실을 늦게나마 인식하고 이를 보호 육성하기 위해 2005년 발의된 “전통무예진흥법”이 우여곡절 끝에 2008년 2월 26일 국회를 통과하여 3월 28일 제정 공포되었으며, 2009년 3월 29일자로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전통무예진흥법”은 정부차원에서 법적으로 무예를 진흥해야 하는 근거를 마련하고 무예진흥을 위한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앞으로 중장기적으로 우리무예를 육성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2010년부터 시행될 새로운 교육과정의 중학교 2학년 체육과목에는 ‘국궁’을 가르치도록 하여 학생들에게 국궁의 전통을 잇게 하는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행정당국의 국궁 홀대 정책은 체육계와 교육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치와 완전히 역행하는 조치로 반드시 개선되고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유산은 유형이건 무형이건 우리의 소중한 보배이고 자산이다. 그것은 우리 겨레의 삶의 예지와 숨결이 깃들여 있는 민족 문화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을 제대로 알고 찾아서 가꾸는 일은 곧 나라 사랑의 근본이 이며 겨레 사랑의 바탕이 됨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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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나영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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