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 2사무 5,1-3. 제2독서 : 콜로 1,12-20. 복 음 : 루카 23,35ㄴ-43.
여러분은 ‘왕’ 혹은 ‘임금’이라는 말을 들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요? (잠시 생각해보세요.) 저는 최근에 보도된 뉴스들이 떠오르면서 “권력 남용”이라는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났습니다. 건국 이래 최악의 사태라고 불리는 일명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권력 남용의 폐해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현상만 다를 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어왔습니다. 백성을 섬기기 위해 뽑힌 통치자가 권력을 남용하며 백성 위에 군림했을 때 끝이 좋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당시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지 몰라도 모든 권력을 내려놓게 되는 순간부터 힘을 잃고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오직 선정을 베풀 때에만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 존경과 사랑을 받는 통치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1독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묵상하게 해줍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받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처음에는 판관들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다가 백성들은 주변 강대국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줄 임금을 원하게 됩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사울을 이스라엘 왕국의 첫 임금으로 뽑으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다윗의 등장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여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 와중에 백성들의 마음은 판단력을 잃어버린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옮겨갔습니다. 이렇게 하여 왕국의 두 번째 임금이 된 다윗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틀어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의 모든 면에서 가장 강력한 왕으로 군림합니다.
다윗 임금이 예루살렘을 왕국의 수도로 세우고 뒤를 이어 솔로몬 임금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으면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다 기원전 933년에 솔로몬이 죽자 그의 아들들에 의해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집니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722년에 먼저 멸망하고 남 유다 왕국도 기원전 587년에 바빌론으로 유배를 가면서 바빌론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던 기원전 538년 고레스 칙령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이 사제들을 중심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합니다. 이때부터 종교의 자유가 주어졌으나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그리스,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해 버립니다. 이렇게 길고 긴 식민 지배를 받다 보니 이미 예수님 시대에는 메시아사상이 절정에 달해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위에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메시아”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메시아”는 ‘기름부음 받은 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이며 히랍어로는 ‘그리스도’라고 번역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아의 모습은 모든 면에서 주변국들보다 뛰어났던 다윗 임금 시대와 같은 정치적인 왕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참된 메시아의 모습은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게 해줄 정치적인 모습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으로 초대하시는 왕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주님께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으려면 우도처럼 그리스도를 참된 왕으로 모실 수 있어야겠습니다. 십자가의 죽음 앞에 선 예수님을 조롱하는 군사들과 빈정거리는 지도자들과 모독하는 좌도의 모습이 아니라...
이처럼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왕의 통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영토를 확장하거나 오래 다스리거나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느님의 뜻에 충실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군사력을 키우거나 주변 국가들과 동맹을 맺으면서 나라를 지키려는 노력들이 잘못되었다고 비판을 받고 있으며 오히려 인간의 힘에 의지하지 말고 하느님께 의지하며 그분의 뜻에 충실하라고 가르칩니다. 바오로 사도도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제2독서에서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가야할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편교회는 전례력으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중 마지막 주일인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교회는 이번 한 주간을 “성서주간”으로 지내면서 성경 안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생명의 양식으로 전해질 수 있도록 말씀을 맛 들이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공동체 미사를 봉헌하는 오늘은 강론 시간에 “전 신자 의식조사 설문지”를 작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강론을 글로 대신합니다. 그러니 이 미사를 봉헌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우리의 삶 안에 다가와 힘겨운 세상살이를 이겨낼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고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 땅에서 온전히 펼쳐질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혼란스런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특별히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