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曠野)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시집 육사 시집, 1946)
이육사(李陸史) : 본명 - 이원록(李源祿), 원삼(源三), 활(活)
1904년 경상북도 안동 출생
1915년 예안 보문의숙에서 수학
1925년 형 원기(源祺), 아우 원유(源裕)와 함께 대구에서 의열단에 가입
1926년 북경행
1927년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 대구 형무소에 3년간 투옥됨. 이때의 수인(囚人) 번호(264)를 자신의 아호로 삼음.(264→李戮史*→李陸史) *戮史-치욕의 일제역사를 살륙하겠다는 뜻.
1932년 북경의 조선 군관 학교 간부 훈련반에 입교
1933년 조선 군관 학교 졸업 후 귀국, 이때부터 일경의 감시하에 체포와 구금 생활을 반복
1935년 신조선에 시 <황혼> 발표
1943년 피검되어 북경으로 압송
1944년 1월 16일 북경 감옥에서 사망
시집: 육사 시집(유고 시집, 1946)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광막한 공간과 아득한 시간을 배경으로 강인한 지사적 의지를 노래한 시다. 화자는 이곳에 서서 태초를 포함한 역사(歷史)를 생각하고, 미래의 찬란한 역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매화 향기’는 ‘고고한 기상, 강인한 기품’ 또는 ‘민족 정기’로 해석된다.
▶ 성격 : 의지적, 저항적, 참여적, 지사적, 미래지향적, 상징적
▶ 어조 : 남성적 어조
▶ 시상 전개 : 시간의 흐름에 따른 추보식 전개
▶ 구성 :
① 광야의 원시성(제1연)------------------
② 광야의 광막성(제2연)------------------과거
③ 역사의 태동(胎動)(제3연)--------------
④ 현재의 암담한 상황과 그 극복 의지(제4연)---------현재
⑤ 영광스런 미래의 소망(제5연)---------------------미래
▶ 제재 : 광야(曠野)
▶ 주제 : 조국 광복에의 신념과 의지.(새 역사 창조의 의지)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1)역동적 심상이 가장 잘 나타났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들고, (2)그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 수사법을 쓰라.
☞ (1)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
(2) 의인법(활유법)
2. 화자가 처한 상황을 대조적 심상으로 표현한 (1)연속된 두 시행을 찾아 쓰고, (2)그것이 나타내는 뜻을 쓰라.
☞ (1)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2) 시적 화자가 처한 현재의 상황은 혹심한 추위처럼 가혹하며, 고고한 정신(민족 정기) 마저 잃어버릴 것 같다.
3. ㉠, ㉡이 상징하는 의미를 각각 2-3어절의 말로 쓰라.
☞ (1) ㉠ : 민족사의 새로운 국면.(민족의 구원자, 위대한 민족 시인)
(2) ㉡ : 역사의 현장
4. 이 시에서 다음의 밑줄 그은 말과 그 함축적 의미가 같은 시어를 찾아 쓰라.
☞ 제4연의 ‘가난한’
<감상의 길잡이>(1)
이 시의 제1-3연은 광야의 과거의 역사, 제4연은 현재의 암담한 상황과 의지, 제5연은 미래의 소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연은 아득한 옛날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 광야에는 사람도 살지 않았을 것이다. 광야의 원시성을 뜻한다. ‘닭 우는 소리’는 대유법으로, 사람의 자취 또는 생명체를 뜻한다.
제2연은 산맥들이 바다를 향해 형성될 때에도 이 광야만은 침범하지 못했다. 광야의 광막성 또는 신성성을 뜻한다. ‘광야’는 역사의 현장으로 해석함이 좋다. 의인법을 사용하여 역동적 표현을 하고 있다.
제3연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이 땅에 강물이 흐르고 길을 열었다. 문명의 탄생을 뜻한다. ‘강물’은 역사 또는 문명을 상징한다.
제4연은 상황의 인식과 현실 극복의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평화로운 한반도에 일제의 가혹한 수난이 닥치고, 고고한 정신마저 빼앗길 위기에 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생명의 씨를 심어야겠다. ‘눈’은 가혹한 시련을 뜻하고, ‘매화향기’는 고고한 기상, 광복의 기운을 뜻하는 것으로 ‘눈’과 대조적 심상이다. ‘노래의 씨’는 가혹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생명의 의지, 또는 생명의 씨앗으로 이해된다.
제5연은 미래 지향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자기 희생을 통하여 이 땅의 후손들이 마음껏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현실을 극한적 상황으로 인식하고 새 역사의 아침이 도래할 수 있게끔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남성적인 어조로 표현하여 강렬성을 더해 주고 있다.
<감상의 길잡이>(2)
윤동주와 함께 일제 암흑기의 2대 민족 시인이자 저항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육사는 1935년 신조선에 시 <황혼>을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1937년 신석초, 윤곤강, 김광균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하는 등, 상징적이면서도 서정성이 풍부한 목가풍의 시를 발표하였다. 그의 시작 발표는 주로 조광(朝光)을 통하여 1941년까지 계속되었으나, 시작 활동 못지 않게 독립 투쟁에도 헌신, 전 생애를 통해 17회나 투옥되었으며, 40세에 북경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1935년부터 1941년까지의 기간 중에 씌어졌는데, 이때는 그가 중국과 만주 등지를 전전하던 때인 만큼 광활한 대륙을 배경으로 한 침울한 북방의 정조(情調)와 함께 전통적인 민족 정서가 작품에 깃들어 있다. 대표작인 <광야>에서 보듯이 그의 시는 식민지 치하의 민족적 비운(悲運)을 소재로 삼아 강렬한 저항 의지를 나타내고 있으며, 꺼지지 않는 민족 정신을 장엄하게 노래한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이 시는 육사의 확고한 역사 의식에 바탕을 둔 현실 극복 의지가 예술성과 탁월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자기 극복의 치열성에 바탕을 둔 초인 정신과 투철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하는 지사(志士) 의식, 그리고 순환의 역사관에 뿌리를 둔 미래 지향의 역사 의식 등이 종합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15행의 5연시로 과거(1~3연), 현재(4연), 미래(5연)의 시간적 추이에 따라 구성되어 있는데, ‘까마득한 날’에서 ‘다시 천고의 뒤’까지의 시간의 흐름은 조국의 현실을 ‘광야’로 상징한 역사 의식의 표출이다.
1연에서는 천지가 개벽하는 태초의 상황을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라는 부정적 설의법을 이용하여 광야의 원시성과 신성성을 보여 주고 있으며, 2연에서는 활유법을 구사하여 광야의 광활하고 장엄한 모습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3연에서는 신성한 공간인 광야에서 태동한 우리 민족사의 유구한 역사와 문명을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라는 동적 이미지로써 보여 주는 한편,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에서는 시간적 개념인 ‘계절’을 ‘피어선 지고’라는 시각적 이미지로 감각화하고 있다. 4연에서는 일제의 압제를 상징하는 ‘눈’과 조국 광복의 기운이자 온갖 폭압에 맞서 싸우는 절조(節操)인 ‘매화 향기’를 대립시킨 가운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라는 미래에 대한 굳은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여기에서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의 ‘아득하니’는 ‘멀다’의 뜻이 아니라, ‘그윽하고 은은하다’의 의미이며, ‘노래의 씨’는 가혹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는 생명의 의지로, ‘씨’에 함축되어 있는 자기 희생적 이미지를 통해 화자의 극복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한편, ‘가난한’이라는 수식어는 자기 겸손의 표현이기보다는 냉혹한 현실 상황에서 홀로 행하는 행동임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 5연에서는 새 역사에 대한 소망이자 조국 광복에 대한 굳은 확신을 통하여 미래 지향의 확고한 역사 의식을 제시하고 있다. 암담한 현실 상황에 화자가 뿌린 ‘가난한 노래의 씨’를 수확하여 ‘목놓아’ 노래 부를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바로 불행했던 역사를 몰아내고 온갖 질곡과 고통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여 찬란한 민족 문화를 꽃 피울 인물이다. 그런데 그 ‘초인’의 도래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꽃>에서의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과 같은 확고한 믿음임을 ‘초인이 있어’에서의 ‘있어’를 통해 알게 해 준다.
따라서 이 시는 ‘광야의 원시성․신성성’ → ‘광야의 광막성’ → ‘민족사의 태동과 개척’ → ‘현실 인식과 선구자 의식’ → ‘초인 정신과 예언자적 역사 의식’의 구조로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시는 육사의 투철한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지사적․예언자적 기품과 단호하고 강인한 남성적 어조로써 신념에 찬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민족시의 정화(精華)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