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사목연구소(소장 차동엽 신부)의 <나의 신앙 우리 공동체-3단계/나의 인격다지기> 교재의 1과 첫 장을 넘기면 큼직하게 담긴 그림이 나온다. 가톨릭신자인 거복이가 불빛 아래서 성철스님, 법정스님, 틱낫한 스님의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등 뒤쪽에 걸린 십자가와 성경 주변엔 거미줄이 쳐진 그림이다. 불교에 빠져 정신 못 차리는 가톨릭 신자들을 겨냥해서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교재를 만든 사람들이 불교에 대하여 어떤 열등감을 느끼고 있구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의 본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교가 정말 음습해져서 지나치게 방어적이 되고, 나중엔 아예 무분별하게 공격성을 드러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서적을 보면 배신한 애인처럼 되는가
한마디로 그림이 자못 병(病)적이다. 만일 거복이가 한사코 불교 책만 읽다가는 ‘배신한 애인처럼’ 모진 참변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수조차 사랑하라던 스승 예수의 말씀이 이럴 때 더욱 절박하게 들린다. 원수도 아닌데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분이 참 슬퍼할 것 같다.
이 교재는 1과를 마무리하면서 더 엄청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 21세기를 ‘자기계발’ ‘자아실현’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런 경향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처럼’ 되고자하는 오류에 빠지게 하기 쉽다고 말한다. 교재의 필자는 자기계발을 마법사가 되려는 허망한 능력 배양으로 여기고, 자아실현을 통해 스스로 신이 되어 정작 하느님을 경배하지 않게 될까봐 염려한다. 그러나 염려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
내가 예전에 만났던 이들 가운데는 더러 축지법 등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이는 있었지만, 아무리 이리저리 들어봐도 문선명 같은 교주가 아닌 다음에 스스로 ‘신적 위치’를 주장하는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자아실현은 ‘스스로 충분히 기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자 하는 것이고, 불교든 뭐든 따져보면 실천적으로 걸림 없이 자타(自他)를 묻지 않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말만으로 이야기하자면, 하느님이 사랑 그 자체이신데, ‘하느님처럼’ 사랑의 사람이 되려는 게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어떤 종교의 교리가 문제가 아니라 그 종교를 사는 사람의 삶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교재에서는 자기계발을 단죄하고 있지만, 정작 미래사목연구소의 소장인 차동엽 신부는 오히려 자기계발서로 명성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개원리><바보 존><뿌리깊은 희망><꿈의 성취를 향하여><자기경영의 지혜>< 행복코드쉐어링북> 등 무수한 자기계발서 위즈앤비즈 등의 출판사를 통해 펴냈다. 이 자가당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물론 이 책에서도 '하느님' 이야기가 빠지지 않지만, 여기서 하느님은 자칫 자기성장을 위한 도우미 역할 정도로 머물 가능성이 높다.
수행 없이, 교리를 강요하는 종교
한편 교재의 필자는 마태오 복음(11,25-27)을 인용하면서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하느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연종교에 빠져든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와 같은 교조적인 종교가들을 지목한 것이다. 저들이 종교전문가로서 하느님을 독점하려고 하였고, 예수께서 이를 비판하신 것이다. 인간의 삶과 자연적 성정(性情)을 거슬러 율법을 강요하는 이들의 완고함이 복음선포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도자용’ 교재에서는 하느님 말씀을 “강론, 강의, 교회의 가르침”과 등치시키면서 이를 “철부지 아이들처럼” “편견 없이 순수하게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한다. 만약 2천년전 유대의 모든 백성들이 한결같이 종교지도자들의 발언을 철부지처럼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면, 예수도 없고 그리스도교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우매한’ 평신자들을 염려하는 성직자들의 심정은 알겠지만, 평신자들이 진리를 얻기 위해 모험에 나서는 것은 성숙한 신앙을 위해 ‘절대’필요하다. 합리적 이성도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고, 그 지성으로 유치한 신앙에서 어른다운 신앙으로 발전하는 것 역시 ‘하느님의 섭리’다.
여기서 한 번 더 기억하자. 하느님은 인간이 세운 교회보다 크고, 교리보다 넓으며, 인간 자체를 능가한다. 교회와 세상은 모두 역사와 인생을 통하여 하느님을 배워 나가는 학생에 불과하다. 즉 완결된 진리가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음을 깨닫자.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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