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현대카드 본사의 카페테리아 '더 박스(The box)'. 회사가 운영하는 이 카페의 벽에는 작은 액정표시장치(LCD)화면 60개가 일렬로 있다. 일명 '통곡의 벽'. 스크린에는 '00지점 담당자는 전화만 돌린다. 마음에 안 든다.' '현대카드. 그딴 식으로 영업할 거냐' 등 험악한 문장만 나온다.
이는 현대카드 임원들이 뉴욕타임스 본사에 갔을 때 본 독자 댓글 모니터에서 빌려온 아이디어다. 뉴욕타임스는 독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직원들에게 공개하고 있었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은 "자만하지 말고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뜻으로 스크린을 설치했다"고 설명한다. 카드회사지만 신문사에서도 배울 점을 찾는 개방적인 자세는 한때 카드업계 꼴찌였던 현대카드를 우량 기업으로 변모시킨 원동력이 됐다.
◆'인사이트 투어'
현대카드는 기존 신용카드사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성장했다. 다른 카드사와 다른 느낌의 광고를 내보내고, 포인트를 선지급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또 신용카드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했고 대형 콘서트 등을 열었다. 현대카드만의 독특한 문화와 경영방식 중 상당 부분은 회사 바깥에서 얻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다만 새로운 시각에서 혁신적인 것을 관찰하고, 이를 현대카드의 문화에 맞게 이식한다'는 게 현대카드 측 설명이다.
이런 작업의 기폭제가 '인사이트 투어(Insight Tour)'다. 정태영 사장과 주요 임원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새로운 마케팅으로 주목받는 곳을 찾는다. 혁신적인 미술관이나 자동차 회사까지 간다. 금융회사는 가급적 가지 않는다. 현대카드는 카드회사라는 업(業)에 대한 정의를 다르게 내렸기 때문이다. 카드사는 고객이 결재하는 카드만 취급하는 회사가 아니라 고객 라이프스타일까지 디자인하는 곳이라는 게 현대카드의 시각이다. "카드사는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통찰을 얻어야 한다. 인사이트 투어는 고객의 삶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역점을 둔다"고 강조했다.
인사이트 투어 중 머무르는 숙소마저도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숙소를 고를 때는 별이 몇 개인지가 아니라 누가 디자인했는지부터 살핀다. 판박이 디자인의 글로벌 호텔 체인에 묵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인사이트 투어에서는 산업 디자인계의 거장 필리프 스타르크가 설계한 미국 뉴욕의 ' 더 스탠더드 호텔'에 묶었다.
글로벌 제휴사도 벤치마킹 대상이다. 현대카드는 '살림의 여와 '마사 스튜어트와 제휴해 잡지 '마사스튜어트 리빙'을 판매하는데, 이 잡지사도 인사이트 투어의 방문 대상이었다. 가정주부의 일로 치부되던 살림조차도 TV쇼로 만들어 기치를 창출하는 역발상이 인상적이었다는 것.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 고객들에게 더 큰 가치를 주고 브랜드 이미지도 끌어올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