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눈이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 있다!
마태복음 9장 27-31절 / 27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성경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눈 먼 소경이 예수님에 의해서 눈이 떠 볼 수 있게 된 이야기가 두 번(마 9:23-27; 20:29-34) 나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안고 있는 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그분들에게는 그리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의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소경 이야기는 그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참으로 기쁜 이야기입니다. 이분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옴으로 눈이 떠졌습니다. 이들의 눈을 뜨게 하여 볼 수 있는 눈에 있게 하신 분이 누구신가를 이들이 직접 하는 말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불리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이분들이 눈을 떠 가장 먼저 곧, 제일 먼저 첫 번째로 그들의 눈으로 본 것은 그동안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서 들어 알고 있었던 예수님이 전하시고 가르치시며 행해 오신 것에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분이시라는 믿음에 있어 오고, 그래서 다윗의 왕권을 행사하여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불쌍히 여겨 돌아보아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소경들이 이처럼 예수께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구한 것은 왜이겠는지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했는데, 다윗의 왕권을 이어받아 자신들의 왕으로 오신 분이시라는 것에서 인지요. 과연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며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서 이스라엘의 왕이심은 세상 나라 왕의 개념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들에게는 왕이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 땅을 통치하는 왕으로는 로마 황제가 세운 헤롯왕이 있었던 것입니다. 헤롯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에 의해서 기름부음으로 세워진 왕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헤롯왕이 유대 땅을 통치하고 있을 때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이 유대 땅에 오신 것은 유대인들의 왕으로 추대되어 로마의 지배로부터 유대 나라를 회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불리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이적을 행하시는 것에서 예수님은 어둠에 있던 그들에게 빛을 보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 자신을 계시해주는 사건으로 있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소경에 있는 그를 진리에 눈을 뜬, 곧 진리를 보는 눈에 있게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경은 몸만 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소경으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진리를 보지 못하는 진리에 소경된 자였습니다. 그런 소경에게 먼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임을 아는 눈 뜬 자가 되었고, 그런 그의 소경된 몸도 고쳐주어서 그의 눈이 그가 다윗의 주라고 부르는 예수님을 보는 눈의 즐거움이요 기쁨의 복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동안 진리를 보지 못함으로 그냥 소경에 있었는데, 이제 예수님을 본다고 함으로 소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에게로 모여들고 그분의 뒤를 따라다니면서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다윗의 왕권을 쥐고 오셔서 자신의 백성이 매여 있는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풀어주어 빛 가운데 거하고서 맘껏 그 빛을 즐기며 그 빛이 주는 유익을 누리는 자유한 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세상은 몸의 눈은 뜨고 있어도 보고 있어야 할 진리요 생명이요 길이신 옛수님을 보지 못하는 소경된 자로 가득 차 큰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을 봄으로써 소경이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몸의 눈이 떠져 있는 중에 예수님을 보는 눈에 있는 사람은 그들의 눈으로 보는 것이 있으므로 복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몸의 눈이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소경에 있는데,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할 자이심을 보는 믿음에 있는 눈에 있는 사람은 더욱 큰 이적에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말이죠. 예수께서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 있다“(마 13:16) 라고 하셨는데, “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은 참으로 복 있다”(요 20:29)라고 하신 복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이 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게로 눈길이 가는 눈에 있지 않아 마음에 빛 가운데 있는 게 아닌 어둠을 깔고 있음은 참으로 마음이 따스하지 못하고 스산하며 춥게 느껴집니다.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날을 보냄에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