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6월21일(토) 맑음 도봉산산행
오늘은 어제 총무 승희를 통해 아침 8시30분에서 7시로 출발시간을 변경한 도봉산 산행이 있는 날이었다. 인홍, 두옥, 윤환, 진호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다섯 명이 동참하였고 총무 승희는 긴급한 약속으로 희돈이는 예정된 선약으로 불참하였다. (희돈이는 나중에 알고 보니 오랜 친목계원들인 경호, 재요, 창민과 함께 친목모임행사로 청계산을 등산하였다함) 여느 때와는 달리 회장인 진호가 30분 늦게 도착하여 7시35분경에 도봉산 매표소를 기점으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오늘 코스는 다락능선을 타고 포대능선으로 올라서 도봉산 주봉인 자운봉과, 신선대를 지나 우이암과 도봉주능선을 따라 우이동으로 하산하는 코스였다. 소요시간은 약 6시간. 습도가 있는 더위 날씨로 다락능선의 2/3정도는 땀을 흘리며 쉬엄쉬엄 올라섰으나 나머지 코스는 산들산들한 바람이 시시때때 불어줘 대체적으로 복 받은 날씨의 산행이었다. 다만 다락능선을 어느 정도 올라선 후 후미의 두옥이가 갑자기 안보여 기다렸더니 제주 고향집에서 걸려온 급한 전화를 받느라 처졌고 곧 우리 일행들에게 우울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치매증세와 언어장애 및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진 고령의 두옥의 아버지께서 어젯밤 고향 집을 나선 후 아직까지 연락이 없어 집안 식구들 모두가 찾아 나섰다는 소식이었다. 더욱이 어제 저녁부터 제주에는 짙은 안개를 동반한 호우가 아직까지 내리고 있어 온 가족들은 더욱 불안해하며 고통스러운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온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이 찾아 나서고 있다 하였다. 일단은 수시로 고향 식구들과 통화하면서 무사히 귀가하실 아버지 소식을 기대하며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등산할 수 밖에 없었다. 다락능선 코스는 포대능선을 가로지르는 코스로 능선의 윗부분은 로프 줄을 잡고 바위타기를 해야 하는 어려운 코스도 있었다. 군데 군데 평평한 바위그늘에서 잠시 쉴 때는 배낭의 무게를 잽싸게 줄이려는 윤환이의 남들에 앞선 선수치기로 과일과 초콜렛 등의 간식거리가 끊이지 않게 쏟아져 나왔다. 이제는 고수반열에 오른 진호의 탁월한 사진배경 선택과 촬영기술로 그의 지시와 권유에 따라 코스 주변의 도봉산 경치를 병풍 삼아 수 없이 모델역할을 하며 별 폼을 다 잡는데 인색할 여유가 없었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망월사가 첨화되어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경치가 우리 시야를 좌우로 가득 메워 헉헉거리는 우리들의 가슴에 청량한 음료수의 역할을 해주었다. 보통 어느 산을 오르면 그 산의 경치와 산세에 매료되어 평소 다녔던 산들 중에서 마치 그 산이 최고의 산인 것처럼 느껴지는 간사한 마음을 들게 하는 데.. 바로 그 산중의 하나가 도봉산 이었다. 염려했던 것 과는 달리 하늘도 쾌청하여 능선에서 바라보이는 수락산과 불암산의 산허리와 녹음이 가까이 보이는 듯 선명하였으며 산 사이 평지로 부질없는 속세의 그림인 아파트 촌과 산을 관통시키는 외곽순환도로가 산 밑자락을 관통시키며 시커먼 두 구멍의 터널로 흉하게 빠져들어가 보였다. 엊그제 명박 아저씨가 대국민담화를 통해 대운하사업 공약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겠다고 발표한 내용을 그나마 다행스럽게 받아들여졌던 생각이 잠시 떠오르며 결코 자연환경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소망을 다시 한번 가져보았다. 자연환경은 가능한한 존재하는 그대로 보존하고 관리하여 대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순리의 이치라고 평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능선 코스를 오르자마자 마주한 포대참호의 포대능선 길을 따라 주봉인 자운봉을 향해 방향을 좌로 틀었다. 휴식을 반복하며 올랐어도 시간은 이상하게 더딘 듯 11시도 채 지나지 못하고 있었다. 대장인 진호가 능선 따라 가다가 평평한 곳을 가리키며 먹을 것 해치워 가자고 하였고 이때다 싶은 우리는 멍석을 잽싸게 깔았다. 각자 준비한 배낭 속을 풀어 헤치며 먹거리를 꺼내었으나 오늘따라 이상하게 빈약하였다. 승희가 불참하여 술이 안보였고 중간에 윤환이의 배낭은 이미 해체되어 버렸으며 두옥이도 별반 준비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매번 우리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인홍이의 배낭이 오늘은 처참하게 비워 있었던 것이었다. 그나마 자신이 먹을 김밥 두 줄만 달랑 집 앞 김밥집에서 말아 왔을 뿐…….. 어쩐지 처음 오를 때부터 배낭이 가벼워 보여 이상하다 하였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진호가 칭한 우리 산행꾼들의 大母인 인홍의 안사람 을자씨가 어제 공사다망으로 고향 제주로 멀리 외유를 나가 홀아비 신세인 인홍이의 처절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었다. 실망한 모습을 보이는 우리들에게 인홍이는 넋두리 마냥 한마디 했다. “각시한테 잘허라! 잉…….각시 어시난 아무것도 못허크라!” "난 각시 어시민 살지 못 험찍햄쪄!" 저번 달 산행 뒤풀이에서는 연금대비론을 설파하더니 오늘은 각시론으로 확실한 노후대비 비법인 “연금+각시”의 변증합론을 주장하였다. 그래도 산에서의 별식은 진미요 항상 가슴을 풍족케 하는 성찬임을 오늘 또한 부족함 없이 느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오늘 최고의 난코스인 신선대 바위타기를 곡예 하듯 무사히 넘기고 서쪽의 오봉을 마주하였다. 오봉을 바라보며 도봉주능선을 따라 우이암 방향으로 가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내가 예전 산행에 불참하였을 때 있었던 논쟁이 고문인 인홍과 회장인 진호간에 재론되는 것 같았다. 무시 무시한 별들의 전쟁이었다. 문제: “오봉의 끝에서 두번째 작은 봉은 봉인가 아닌가? 답: 인홍- 아니다. 진호-맞다. 문제: “오봉은 오봉의 맨 우측에 있는 봉을 포함하여 오봉인가? 아닌가? 답: 인홍-포함한다. 진호-아니다. 치열한 싸움이 이어졌다. 우이암으로 가던 목계단 테크의 사진 조감도에서 오봉의 숫자를 각자 편의대로 스틱으로 찍어보았다. 문제의 봉우리를 서로 인정치 않으려 하였다. 논쟁에서 약간 비켜선 두옥이는 인홍의 주장에 동조하였고 나는 소신대로 말하였더니 진호의 주장과 일치되어 버렸다. 이 순간 인홍이가 내게 섭섭한 말 한마디를 날렸다. “영민이는 내 편인 줄 믿어신디 아니네 잉!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영민이 너 만큼은 믿어신디….쩝쩝!!” 실망이 컸던 모양이었다. 멀리 세 번째와 네 번째 봉 바위를 밧줄로 연결하여 마치 유격훈련을 하 듯 아찔하게 줄을 타고 건너는 등산객이 개미처럼 보이며 오봉인지 육봉인지? 헷갈리는 조화술을 부린 자연을 내 어찌 원망하랴? 우이암 쪽으로 가다 대장 진호가 지시한 하산 방향을 감히 잠시 거역한 大逆으로 바위틈을 오르다 틈새 사이로 스틱을 바위 아래 지옥 저편으로 떨어뜨렸다. 블랙야크産 13만4천원짜리 두랄루민 짝 스틱 중 한 개인데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해서는 아니 되었다. 내 산행을 지금까지 인도했고 앞으로도 인도 할 자식 같은 도구였다. 죽을 각오로 떨어진 곳으로 내려가야 했다. 지옥의 정글이더라도… 모두가 걱정하며 잘 해낼 것인지? 염려하였다. 겨우 내려가 스틱을 건져 올리고 바위 틈새를 비집어 딥고 올라 왔다. 나도 몰랐는데 두옥이가 왼 팔꿈치에서 피가 흐른다고 하였다. 영광의 상처인 것이었다. 이후부터는 별 어려움이 없는 다소 긴 하산 길이었다. 두옥이는 고향 가족들에게서 좋은 소식을 못 들었는지 표정이 다소 어두워 보였다. 산 속이라 통화시도도 잘 안 된다고 하였다. 도봉산과 북한산을 잇는 산행로가 끓겨 소위 불-수-도-북 산행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내려와야 되는 우이동 코스의 하산 길에서 인홍이는 두 산을 잇는 군사용 도로가 있기 때문에 바로 이어 탈 수가 없다고 주장하며 고급 정보를 들려주었다. 7월 초 예정된 나의 운동회원들과의 불-수-도-북 산행 때의 예정코스를 생각하며 도-북을 잇는 등산로가 없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불-수-도-북: 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 일일 종주 산행) 우이동 유원지 포장길에 들어서니 오후 약 2시 30분을 지나고 있었으므로 오늘 산행은 예정보다 1시간여가 지난 약 7시간이 소요되었다. 아마도 중간 중간에 쉬기를 반복하면서 여유 있게 걸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경품이 딸린 산행대회였다면 우리들 실력으로 약 5시간 정도면 충분히 주파할 코스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어제 산행 공지 하다 알려 온 창용이가 집 근처인 이 곳 우이동에서 안 사람과 처형이 오늘 호프집을 개업한다고 하여 위치를 확인하고 축하와 뒤풀이를 겸해 찾아 갔다. 두옥이는 아무래도 저녁 비행기를 타고 제주 고향 집으로 내려 가봐야겠다며 먼저 가기를 청했고 좋은 소식을 듣게 되면 알려달라고 하고 택시를 잡고 총총히 떠나 보냈다. 그린파크 호텔에서 수유동쪽으로 약 10여분 걸어 성원아파트 옆 버스 종점 건너편에 ‘뚜레박 호프’ 라는 상호의 창용네 가게를 찾았고 그들 내외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축하의 멘트를 보내주었다. 우연히도 우리들 산행일자와 맞춰 개업했는데 거기에다 우리들이 첫 손님이었고 개업 첫 메뉴주문이었다. 준비한 축하 금일봉과 도봉산정기를 듬뿍 건네 주었다. 오늘 먹거리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인홍이가 자기가 낼 테니 최고의 메뉴로 준비해 줄 것을 주문하였다. 그 친구는 오늘뿐 만 아니라 언제든 유별나게 친구들과의 자리 비용을 선뜻 부담하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한 때 나 역시 그런 호기로 젊은 시절 과욕(?)을 부린 적이 많았으나 단 한번도 후회해보거나 쓸데없는 짓이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인홍 또는 내 뿐만 아니라 우리 제주 고향 친구들 대다수에게서 느껴지고 보아왔던 제주인들 특유의 넉넉한 인심문화기질인 탓 일 것이다. 오늘도 역시 진호의 특유의 해박한 이야기 주머니가 터져 나왔다. 기억을 더듬어 쏟아낸 여러 이야기를 요약해보면 1.<술자리 건배의 여러 멘트 풀이> 당나귀 – 당신과 나의 귀중한 만남을 위하여 진달래 – 진하고 달콤한 내(래)일을 위하여 기타 – 기억이 없음 2.<내 부덕의 소치 또는 내 탓이로소이다>의 라틴말 – 메아쿨파 3. 화가 램브란트와 김 홍도 그리고 우리들의 화가 강 부언의 차이점과 평가 4. 화가 고호와 고갱의 우정과 그림세계 5. 산수화의 그림기법과 감상투시법… 6. 기타 – 기억이 안 남 하여튼 해박한 주머니를 매번 쏟아 내었다. 내가 더 좋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그의 수준을 따라 가기 위해서라면…
인홍이가 재활용할 가치가 있는 건배용어를 되풀이하며 암기해보려 애썼지만 그 중에서 맘에 드는 ‘당나귀’를 제외하곤 암기를 포기한다고 하였다. 윤환이는 자신의 목소리 하나로 열 사람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것처럼 그 목소리에 강약이 있고 우렁차며 또한 에코가 있으며 구수함이 있고 열정이 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든다. 오늘도 그랬다. 현재 학원(안사람이 원장임)에서 별정직(?)으로 가르치고 있는 중 3년생 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듯 하였다. 본인 스스로의 평가도 그랬다. 모두가 현재 하고 있는 학원을 발판으로 삼아 메가의 스타강사 손 주은 회장을 뺨치는 스타강사가 되어 보기를 권해 보았다. 다섯 시가 되어 창용네 가게를 나와 진호와 헤어지고 윤환, 인홍과 택시에 동승하여 수락산역으로 향했다. 호프 석 잔에 오줌구멍이 터졌는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목적지 부근에서 택시에서 허겁지겁 내린 후 자기 사무실이 있는 오피스텔을 향해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가는 윤환에게 오줌해우의 큰 기쁨이 있기를 기도하며 인홍과도 헤어져 집으로 향했다. 즐거운 산행을 있게 해준 날씨와 친구들에게 오늘 또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