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산의 진산-고봉산 나들길 2020년 2월 5일, 황룡산-고봉산-정발산, |
한북정맥 끝지점인 고봉산은 일산의 진산으로 고양시민및 수도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산이다.

> >  <고봉산탐방>- 고양시 진산 고봉산 탐방일지,
<서울근교산>- 고양시 황룡산-고봉산-정발산 탐사기, ☞일시: 2020년 2월 5일(수요), 기록: 자유인산악회 한문희총대장, -09:40분, 서울 대림동 출발, -11:10분, 전철3호선 정발산역 도착, -11:20~50분, 정발산공원 순방, -12:10분, 양지마을 2단지, -12:30분, 소개울 생태터널 앞, -12:38분, 고봉산자락 경주김씨 지묘, -12:54분, 고봉산 만경사(사찰) 박영묵(님) 조우, -13:00시 고봉산 영천사 넘어가는 고개, -13:15~20분, 고봉산 장사바위 정상, -13:50분, -14:10~15:40분, 중산지구 식당에서 박영묵(22기님) 점심, - -일시: 2020년 2월 6일(목요) -10:30분, 탄현역 sbs방송국 앞, -11:06분, 황룡산능선 한북정맥 갈림길, -11:20분, 금정굴, -11:33분, 고봉3거리고개, 고봉산두부마을+장어집 고개, -11:35분, 중산정수장+테미공원, 등산로 입구, -11:56분, 고봉산 H장, -12:20분, 고봉산 장사바위정상, -12:42분, 고봉산 영천서+만경사 갈림길 고개, -12:48분, 6,25참상 현판 있는 H장, -13:17분, 소개울공원 생태터널, -13:20분, 안국고등학교 앞, (종료), |
> <트레일>- 고양시 탄현-황룡산-금정굴-고봉3거리고개-고봉산-소개울-안곡고-나들길-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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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현의 sbs제작 방송국이다.

황룡산3거리로 한북정맥이 이곳에서 탄현 큰마을을 거처 까치울-장명산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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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산(黃龍山134.5m): 일산구 고봉동 및 탄현동. 파주시 교하면의 경계이며 탄현마을 뒤에 자리하고 있다. 이 산은 고양시와 파주시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예부터 누런 용이 산다고 하여 황룡산이라 부르고 있다. 산 정상에서는 멀리 북한 땅도 볼 수 있는 고양시 최서 북단의 산이다. 산 아래에 성석동 감내마을이 있는데 이곳에 용강서원도 자리하고 있다. 황룡산 기슭에는 문화재인 이천우 선생 묘가 있고 산에는 참나무, 소나무, 아카시아나무가 많다. 탄현동 방향에는 대규모의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황룡산 아래로 일산과 봉일천을 연결하는 고봉로가 지나고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나 산 정상은 군시설로 인하여 오를 수 없다. 소나무 숲 사이로 고봉산과 금정산으로 연결되는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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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굴 개요: 고양 금정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최초의 심층 보고서 ♥한국전쟁 시기 수많은 민간인들이 무고하게 학살되었다. 참으로 참혹하고 비극적인 희생이었다. 한국전쟁은 전 국토가 뒤섞인 전쟁터였고, 밤낮으로 점령군이 바뀌었다. 점령군이 좌우익으로 교체될 때마다 응징 보복의 학살이 마치 톱질하듯이 번갈아 자행되었다. 특히 수복해 들어온 남한의 군대, 경찰, 우익단체에 의한 보복학살은 오랜 시간 동안 그 진실이 드러나지 못했다. 인민군 편에 가담했거나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협력했던 사람들은 '부역자'로 낙인 찍혀 학살 대상이 되었다. 적군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부역혐의를 뒤집어쓴 채 야만적으로 학살당했던 것이다.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금정굴 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금정굴 사건은 서울 수복 직후인 1950년 10월 고양경찰서 소속 경찰관, 의용경찰대, 태극단(6.25전쟁 당시 고양지역에서 결성된 반공청년조직)이 최소 153명의 주민을 부역자로 몰아 고양지역의 한 폐광인 금정굴에서 총살한 사건이다. 하지만 금정굴 사건은 발생일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지나도록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고, 피해 유족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지난날 학살을 주도했던 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한국 사회를 좌우해 오면서 그들은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를 씌웠고, 침묵을 강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했다.그러다 1990년대 들어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민간인 학살의 실체도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피해 유족들은 강요당한 침묵에서 벗어나 학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고,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금정굴 사건 역시 1995년 10월 희생자들의 유해가 발굴되면서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활동이 본격화됐다.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 때부터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을 벌였던 신기철 전 조사관은 2005년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에 참여한 뒤 본격적으로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매달려 왔다. 마침내 그는 2007년 "금정굴 사건은 당시 고양경찰서장 책임 아래 자행된 집단살해이며, 그 최종 책임은 국가에 귀속된다!" 라는 [진실화해위원회 1차 보고서]를 통해 진실에 다가설 수 있었다. 또한 국가가 유해를 봉안할 수 있는 추모시설 설치 등을 신속히 처리할 것을 권고문에 담아내는 성과를 얻었다. ▶그 후에도 신 전 조사관은 2009년 국가기록원의 보존 자료를 통해 금정굴 사건 당시 고양경찰서에서 조직적으로 학살에 개입한 사실을 증언하는 문서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는 학살의 주체를 확증하는 자료이자, 일선 경찰서의 단독 행동이 아니라 그 윗선의 조직적 개입을 확인할 수 있는 단초였다. 하지만 2008년 정권 교체 이후 금정굴 사건의 진실 규명 활동은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1995년 발굴된 금정굴 사건 피해자들의 유해는 16년이 지나도록 서울대병원 법의학교실에 방치되어 있고, 애초 진실화해위원회가 1차 보고서에서 권고한 추모시설 설치는 현재까지도 아무런 진척사항이 없는 실정이다. 또한 새로운 조사 내용이 드러났지만 이를 반영하는 2차 보고서는 끝내 채택되지 못했다. 결국 신 전 조사관은 지난 10여 년간 수집해온 증언 자료와 조사기록 등을 묶어서 [진실, 국가범죄를 말하다]라는 책을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이 종료된 지 두 달이 되는 시점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제노사이드의 실상을 알려주는 최초의 역사 기록서: 신 전 팀장은 금정굴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그동안 각종 공공기록을 세밀히 수집하여 검토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회고록.증언록들을 낱낱이 검토했고, 생존해 있는 관련 인물들을 일일이 찾아 생생한 증언을 청취했다. 또한 관련 학술연구물은 물론 미국 측의 자료들까지 조사하여 제시했다. 그는 이처럼 매우 공들여 조사한 다양하고 풍부한 관련 자료들을 원고지 1,800매라는 방대한 분량의 내용으로 정리해냈다.[진실, 국가범죄를 말하다]는 주로 고양 금정굴 민간인 학살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이 책에서 밝힌 사건의 배경과 학살의 전모, 희생자의 유형과 가해자의 실체, 그리고 유족들이 받았던 피해사례 등은 한국전쟁 당시 광범위하게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전체 실상을 알려주기에 손색이 없다. 금정굴 사건을 통해 낱낱이 드러난 사례들은 곧 전국적으로 자행된 학살사건의 실체라 할 것이다. 특히 신 전 팀장이 채록한 증언들은 반세기 이상 참담한 역사를 외면하고 부정해 왔던 우리들의 체부를 아프게 찌르고 있다. 신 전 팀장은 희생자와 가해자들의 기억과 증언과 관련된 내용들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건조한 문체로 정리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역사적 망각을 되돌리기에 충분할 만큼 생생하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 대해 역사학계의 참스승이라 할 이이화 선생은 "금정굴 사건이라는 하나의 진실을 통해 광란의 시대에 저질러진 '제노사이드(genocide)' 전체의 실상을 알려주는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진실, 국가범죄를 말하다]는 한국전쟁 시기 부역 혐의로 자행된 민간인 학살 문제를 가장 심층적으로 조사.분석한 매우 귀중한 저술이라 하겠다. ♠추천사 : 고양의 한 폐광이었던 금정굴은 오랫동안 언급해서는 안 되는 금기였으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강제적으로 지워져야 했다. 그러나 덮인 흙더미 밑으로 결코 잊혀질 수 없는 무고한 희생자들의 처참한 실상이 생생히 살아 있었다. 저자는 이런 금정굴을 조사하여 한국전쟁이 야기한 부끄러운 상처를 통절하게 드러냈다. 저자의 치밀한 분석을 통해 고양 금정굴은 야만적이고 고통스러운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타임캡슐로 바뀌었다. 금정굴 희생사건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참상과 함께 이후 이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추악하고 철면피한 모습을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안 병 욱(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전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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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산(高峰山 208.6m: 또는 태미산: 고양시 일산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옛부터 태미산으로 알려져 있는 산이다. 이곳 고봉산은 높은 산봉우리 또는 봉화를 올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행정구역상 일산 2동과 고봉동의 경계가 되며 멀리서 볼 때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산은 꼭대기에 커다란 안테나가 있어 다른 산과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모습이다. 삼국시대의 기록인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유명한 산으로 한강유역 일대를 두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한 접전을 벌인 군사, 교통, 전략상의 요충지였다. 이 산에서는 이를 증명하듯 곳곳에서 삼국시대의 토기편이 발견되고 있다. 밤나무 등이 서식하고 있어 늘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으며 산기슭에는 만경사, 영천사의 작은 사찰과 함께 정지운 묘, 홍이상 묘와 같은 문화재도 자리하고 있다. 이곳 고봉산에서 보면 고양시는 물론 파주, 개성, 강화, 인천, 김포, 서울, 수원 등을 볼 수 있어 이 곳의 중요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산에는 작은 바위들이 많은데 마당바위, 장사바위, 두꺼비바위, 붙임바위, 이무기바위, 벼락바위등이 대표적인 바위들이다.1990년대 이후 대규모의 택지개발 사업이 이루어져 중산마을 일대의 산자락은 이미 아파트가 들어섰고 나머지 소개울 마을도 일부가 택지로 개발될 예정이다. 숲이 많지 않은 일산지역에 정발산, 황룡산, 견달산과 함께 일산구의 허파역할을 하는 소중한 산이다. 정상에는 고봉산 봉수대가 위치하고 있다. 옛 문헌에는 이곳에 고봉산성이 있어 봉수대가 설치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봉수대는 산 정상 봉우리를 중심으로 직사각형으로 돌 석축을 쌓은 상태로 남아 있다. 석축의 총 둘레는 약 120m에 달하며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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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울공원및 안곡습지공원으로 가는 생태터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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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푸르름을 간직한 자유인사람들!.. 항상 백두대간과 우리산줄기를 탐사하고 있습니다. 다음카페- 자유인산악회02834-1777, 또는 한문희총대장을 검색해 보세요,
♡♡♡ 잔잔한 음악이 흐릅니다.
> 신송의 잔잔한 옛노래, 조약돌 外 20여종
자유인산악회 한문희총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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