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해 있는 동안 피카소만큼 일반인들의 상상력을 쥐고 흔들었던 사람은 없었다. 그는 가장 혁신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20세기 화가들 중 한 명이다. 뒤틀린 얼굴과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을 보여주는 <아비뇽의 처녀들>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몰이해와 혐오를 드러냈지만 그 이후로 줄곧 이 작품은 현대 회화의 시금석으로 받아들여졌으며, 큐비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뾰족한 세부와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된 형상이 작품의 모호한 공간성과 다양한 시점의 효과를 나타낸다. 이 때문에 많은 후대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큐비즘의 시초로 보고 있다. 가운데 서 있는 두 여인은 고대 이베리아 반도의 두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두상의 툭정 부분은 아프리카 종족 예술의 영향을 보여준다(오른쪽 하단).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작품을 처음 본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하며 적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힘이 느겨지고 리듬감이 있는 옷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보인다. 이는 엘 그레코의 <묵시론적 비전>에 나오는 옷감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당시 그 작품은 파리에 있는 피카소의 친구가 소장하고 있었다.
앙드레 브르통 (1924): <아비뇽의 처녀들>이 20세기 초반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사건이라는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신비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 작품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미의 문제는 그 다음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분석을 거부하는 작품으로 그 구성의 법칙은 어떤 식으로든 정형화하기가 곤란합니다.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은 칼데아인들의 황소처럼 그저 하나의 상징이며, 아주 조금씩만 포착할 수 있는 현대의 이상을 투사하고 있습니다. 조금 신비화해서 이야기하자면, 피카소 이후로 과거의 모든 예술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나에게 이 작품은 신성한 이미지입니다.
존 리처드슨(1991) : <아비뇽의 처녀들>은 석기시대 아베리아의 조각상에서부터 엘 그레코, 고갱, 세잔 등 피카소보다 앞선 예술작품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 작품은 무엇보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조토 이후로 가장 혁신적인 회화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새로운 시각문법(추상적인 시각구조)을 구축했으며 사물을 새로운 시선과 정신으로 보게하여 다른 차원의 인식을 형성하였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20세기 최초의 걸작이며 현대의 새로운 사조의 기폭제 역할을 한 20세기 예술의 시금석이다. 피카소 개인에게도 이 작품은 자신의 '액막이'라고 부른 하나의 통과의례였다.
기존 사회의 성에 대한 전복적인 의미를 대변하는 매춘부는 19세기 전반에 걸쳐 미술과 문학에서 전위작가들의 발전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록 자전적인 의미를 가지며 과격한 스타일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피카소의 이 작품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가 10대 때 그린 작품을 보면 알 수있듯이, 피카소는 고전적인 기술에도 능통했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기존 미술계에서 인정할 만한 작품을 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1907년 자연주의적인 형식에서 완전히 등을 돌렸고, 고대 이베리아와 아프리카의 조각품에서 영감을 받아 있는 그대로의 '원시주의'를 받아들였다. 이는 전위예술의 다양한 시도들 중 하나였지만 피카소 개인에게 있어서는상대 성(sex)에 대한 혼란스러운 느낌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 느낌은 당시의 애인이었던 페르난드 올리비에와의 시끄러운 관계 때문에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