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울린‘가쓰라-태프트 밀약’ 뒤엔 제국주의자 루스벨트
8·15 광복 65주년입니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도 앞두고 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미래를 안다고 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우리 격동의 역사를 다룬 신간을 골랐습니다. 당시 미국이 추구한 아시아 정책의 실체를 파헤친 『임페리얼 쿠르즈』, 100년 전 복잡하고 치열했던 동아시아 역학 관계를 파헤친 『고종 44년의 비원』과 『꼬레아 러시』 등입니다.

임페리얼 크루즈/ 제임스 브래들리 지음/ 송정애 옮김
숭미(崇美)· 친미(親美)파는 질색하고, 지미(知美)파는 회의에 빠질 책이다. 미국이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란 사실을 꼼꼼하게 사실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1905년 7월8일 길이가 축구장 두 배에 달하는 거대한 여객선 맨추리어 호가 샌프란시스코 항을 떠났다. 배에는 앞서 7월 1일 워싱턴을 출발한 대규모 미국사절단이 타고 있었다. 훗날 대통령이 된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상원의원 7명, 하원의원 23명이 각각 부인과 보좌관을 대동했으며 무엇보다 당시 세계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맏딸 앨리스 루스벨트가 함께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반전영화 ‘아버지의 깃발’ 의 원작자인 지은이는 이들의 행로를 ‘제국주의 순방’이라 부르며 이면을 파헤쳤다. 하와이를 거쳐 일본·중국·필리핀·대한제국을 다니며 미국의 이익을 도모하고, 챙기고, 확인하는 이들의 행태를 중심으로, 작가는 이념적 배경, 숨은 이야기를 녹여냈는데 그야말로 가관이다.
미국인들은 인류문명의 계승자인 아리아 인의 후손을 자처하며 서진(西進)을 당연시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서부팽창사』에서 “인디언들의 삶이란 워낙 무의미하고 비참하고 흉포하다. 들짐승들에 비해 하나도 나을 게 없다”고 썼을 정도였다. 쿠바를 놓고 스페인과 전쟁을 벌인 전임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는 “미국은 다른 나라 국민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 군대를 이끌고 그 나라를 침공해 들어갈 수 있다”며 “그 나라 국민이 미국의 도움을 원하는지 여부에 대한 결정은 미국이 내린다”고 했다. ‘정의로운 국제경찰’로서의 명분을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1901년 루스벨트가 필리핀에 파견한 제이크 스미스 장군은 “나는 포로를 원치 않는다. 그저 죽이고 불태우기만 하면 된다. 무기를 들 만한 능력이 있는 자들은 모두 죽여라”란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무기를 들 만한 나이’를 열 살 이상으로 규정했다. 이후 학살과 강간이 자행된 것은 물을 것도 없다. 필리핀인들을 ‘태평양의 흑인’으로 본 미국의 사절단 대표로 태프트 장관은 필리핀 방문 때 “나는 여러분에게 독립을 주러 온 게 아니다. 때가 되면 독립을 이루겠지만 다음 세대에도, 아마도 100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개연설을 했다.

1905년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육군장관을 단장으로 한 아시아 순방단은 도쿄를 방문해 가쓰라 다로 일본 총리와 만나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었다. 언론이 이런 보도 사진에 열 올리는 동안 ‘미국은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드는 것을 승인한다’는 내용의 밀약이 이뤄진 것이다. 사진은 일본에서 스모 경기를 관람하는 태프트 일행.
무엇보다 국내 독자들의 눈길을 끌 부분은 태프트 장관이 7월 28일 도쿄의 시바 궁에서 가쓰라 다로 일본 총리와,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는 배경과 과정이겠다. 희한하게도 미국의 일반적 정서는 일본인들이 ‘훌륭하고 문명화된 사람들’이라 인식해 ‘명예 아리아 인’ 취급을 했다. 그리고 러· 일전쟁에서 슬며시 일본 편을 들었던 루스벨트는 전쟁 중재 노력으로 1907년 미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책에 따르면 철저한 인종주의자요, 미국지상주의에 빠진 제국주의자였다. 1900년 부통령이던 루스벨트는 친구에게 “나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차지하길 바란다. 그러면 일본은 러시아를 저지하게 될 것이고, 일본은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고 써 보냈다. 그랬기에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임을 인정하는 ‘일본판 먼로주의’를 부추겼고 끝내는 필리핀과 대한제국을 나눠먹기로 한 밀약을 맺었던 것이다.(이건 말 그대로 미 의회도 몰랐던 비합법적 비밀조약으로 19년이 지난 뒤에야 공개됐단다.)
그런 루스벨트에게 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큰형님 미국이 우리를 반드시 도와줄 것”이라며 순진하게 매달렸다. 경성을 방문한 앨리스 루스벨트를 황제전용열차로 모시는가 하면 서양인 최초로 궁궐 여성들과 식사하도록 하는 등 정성을 다했다. 이후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루스벨트는 지원을 호소하는 고종의 밀사를 “정식 절차를 통하라”며 냉정하게 대했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이미 일본에 빼앗긴 대한제국으로선 이룰 수 없는 조건을 달았던 것이다.
분통이 터지는 일이지만 미국도 루스벨트가 잘못 꿴 ‘팽창주의 첫 단추’의 업보를 져야 했다. 지은이는 수많은 미국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간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도 루스벨트가 씨앗을 뿌렸다고 보았다. 미국인들에게는 교훈이 될 지적이다. 하지만 한국인들로선 책을 읽고난 소감이 딱 한 마디로 정리되겠다. “미국에 대한 환상을 버릴지어다”라고. 냉혹한 국제정치무대에선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국력을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천둥같은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김성희 2010.08.14
루스벨트 딸과 美·日의 밀약
임페리얼 크루즈 / 제임스 브래들리 지음
1905년 7월 8일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항에서 한 척의 배가 출항했다. 배에는 육군장관 하워드 태프트를 비롯해 상원의원 7명, 하원의원 23명, 그리고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 대통령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가 타고 있었다. 이들은 2개월여 하와이, 일본, 필리핀, 중국, 한국을 차례로 방문했다. <임페리얼 크루즈>는 이 순방단의 행적을 좇으며 미국 제국주의 팽창의 역사,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발화점을 탐색한 책이다.

저자는 국내에도 개봉된 동명 영화의 원작인 논픽션 <아버지의 깃발>의 작가 제임스 브래들리. 이 작품 등에서 태평양전쟁에 천착해 온 그는 "도대체 어디서 그 끔찍한 전쟁이 시작됐는지"를 추적하다 태프트 순방단의 존재에 주목하게 된다. 그는 미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루스벨트 대통령이 실은 백인 우월의식에 사로잡힌 잔인한 제국주의자이며, 그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결국 미국이 태평양전쟁이라는 재앙과 맞닥뜨리게 됐다고 주장한다.
눈길이 가는 부분은 역시 우리와 관련된 부분이다. 태프트 순방단은 1905년 7월 25일 요코하마에 도착했고 이틀 뒤 도쿄에서 일본의 한국(당시 대한제국) '보호'를 허용하는 밀약을 맺었다. 바로 가쓰라-태프트 협약이다. 이 같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고종 황제는 그로부터 한 달여 뒤 서울을 찾은 스물한 살의 앨리스 루스벨트에게 구걸하듯 매달려 자주권 수호를 위한 미국의 도움을 요청한다. 책에는 "연민을 자아내는 분위기였다"는 앨리스의 회고가 실려 있다. /유상호 2010-08-13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왼쪽)와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오른쪽)는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배, 전쟁과 분단으로 이어지는 우리 근대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