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71)도쿄도지사의 망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많은 일본인들도 고개를 흔들고 있다. 그러나 “한일합방은 조선인들의 총의로 이뤄졌다”,“중국인들은 무지(無知)하다”며 갈수록 가관인 망언 행진은 계속하고 있다. 발언 배경과 파장을 해부해본다.
◆배경=이시하라는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논객으로 꼽혀 왔다. 미국에 대해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을 펴냈고, 1999년에는 "헌법을 고쳐 대동아 공영권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내 중국인 범죄에 대해 "DNA(유전자)가 다르기 때문" "히틀러가 되고 싶다"는 등 정상인으로는 보기 어려운 막말로 좌충우돌하고 있다.
그가 이런 식의 막말 행진을 벌이는 데는 개인적인 성격도 한 몫 한다.
다양한 연예활동을 하고 있는 둘째아들 요시즈미(良純)는 2년 전 펴낸 '이시하라 집안 사람들'이란 책에서 "아버지 행동의 기본은 정의감이지만 집착과 독선적인 가치관 때문에 불필요한 마찰을 불러온다"며 "(아버지의) 지난 수십년간은 (누군가에) 화내는 것의 연속이었다"고 밝혔다. "식당에서 큰 소리로 음식이 잘못됐다고 주인의 얼굴에 음식을 들이대고 심하게 탓했다"며 "분별있는 어른이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음식을 먹는 젊은 직장여성을 야단치고, TV에서 아버지를 비판하는 정치인을 '때려주겠다'고 계속 말하는 등 이런 일은 셀 수 없을 정도"라는 내용도 있다. 요컨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에다 자기 위주로만 생각.행동하는 성향이 겹치면서 극우로 치닫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장기 경기침체 속에 사회 분위기와 정치권이 보수화된 점도 그의 극우적 막말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에토 다카미(江藤隆美)전 총무청장관은 95년 "일본은 조선 식민지 통치 시절 좋은 일도 했다"고 말했다가 경질됐지만, 지난 6월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먼저 원했다"고 말했던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정조회장은 지난 9월 오히려 총무성 대신이 됐다.
◆반응.전망=극우세력은 환영일색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선 일본의 보수인사들조차도 우려를 한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민주당 간사장, 기타오카 신이치 도쿄대(北康伸一)도쿄대 교수 등 많은 사람은 그를 네오 내셔널리즘(신민족주의)이라고 평가했다. 극우단체가 대북 대화정책을 추진해온 외무성 관료의 집에 폭탄테러 위협을 한 데 대해 이시하라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선까지 치닫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도 나서서 비판했다.
그러나 이시하라의 발언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며 '이시하라 류(流)'가 꼬리를 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 들어 에토 전 총무청장관(6월), 아소(7월)와 이시하라의 망언이 잇따랐지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2년 전 역사왜곡 교과서 파문을 일으켰던 우익세력들은 올 들어 일제의 중국 침략, 태평양전쟁 당시 일왕이었던 '쇼와(昭和.일왕 히로히토)의 역사 재조명'이란 명분 아래 일제 침략 역사를 미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서점에는 이런 책.잡지들이 즐비하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제 침략이 잘못됐다는 것이 95년 무라야마(村山)정권 이후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이지만 우익세력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며 "올 들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간사장 등 극우적 인사들이 득세하면서 침략 합리화에 집단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경력=이시하라는 소설가 출신이다. 히도쓰바시(一橋)대 재학 때 '태양의 계절'로 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을 받았다. 68년 정계 입문 후 연속 당선됐지만 89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패배한 후 95년 의원직을 사퇴했다. 자민당 시절 극우 막말 때문에 배척받기도 했다. 올 4월 도쿄도 지사에 재선됐는데, '강력한 리더십과 보수화된 국민 정서'가 주요 이유였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