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 자벌레/ 김진혁(2014 무등시조문학상 공동 수상자)
한 뼘 두 뼘
재며 가니
인생 고비
언제 넘나.
염려 마
오욕칠정
허물들을
벗고 나면
비로소
날개가 돋아
세상길이
환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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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1/ 이구학((2014 무등시조문학상 공동 수상자)
어제는 부도수표
내일은 약속어음
오늘만이 지갑속의 현찰이 아닌가요?
딛고 선
땅만이라도
굳게 딛고
서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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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수/ 임성규(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시조작품상 수상자)
어디로 흘러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네
모든 바람이 저 숲으로
가라고 말했지만
믿을 건 아무도 없다고 고개를 저었네.
바닥에 맨발로 서 있던 날도 많았지
독수리가 허공을
빙빙 도는 빈들에서
내 마음 움푹 패도록
그대를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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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아침/ 박정호
그대여 하늘을 보라
기막히지 않은가
더 이상 기막힐 일 없는
세상의 숲속에서
이 땅의 권속을 보라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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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斷髮)의 불빛/ 송선영
산허리 행궁(宮) 한 채, 외눈부처 칩거중인
덩굴손 섶이 되는
소리 경(經) 곳집 같은
그 행궁
숨은 불빛 한 소절
보쌈중인
밤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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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길/ 염창권
1. 소금길
너와 내가 만나는 강, 그 강이 소금 길이다
입술에 밴 맛으로
매운 눈물 맛으로
절여서 눅여둔 강 따라, 벗은 발이 다가오다.
2. 소금굿
눈물 마른 자국 위로 허공의 길 열린다
무명천을 걸어놓고 맨발로 그 길 닦을 때
슬픔이 몸을 건너와, 한 알 두 알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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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안에는 나비가 살고 있다/ 유헌
휘몰이로
불어대는 바람의 옷 걸치고
창살에 갇힌 시간 수 만 번을 맴돌아도
죽지는 늘 제자리다
햇귀에 반짝일 뿐
한 바퀴
돌 때마다 한 생이 오간다면
몇 겁을 지나가야 호르르 날아갈까
바람의 꼬리를 잡고
참선중인 여름 한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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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지 못한 편지/ 이보영
전할 수가
없구나.
오월에 쓴 편지는
가난한
그리움이
꽃등 켜는 저녁답
조막손 여린 손들이
깃발 되어 나부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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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전원범
이별은 순간에 가지만
서러움은 두고 두고 온다
그대 떠난 자리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
겨울이 풀리는 자리
노랗게 핀 산수유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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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曺雲) 생가에서/ 조민희
'빗소리도
굵으리다'*
파초
사그라진 자리
반송(盤松)은
진물 나고
갈가리
찢기었소.
북새에
쏟아진 감또개
내 발자국
어지럽다.
*조운 시조집 <가을비>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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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천병국
떠난 사람 그리워서
하얀 눈물 흘린다
사랑이 아픔으로
아픔이 다시 그리움으로
타다가
자로 지치면
별로 뜨는
얼굴 하나
화기(火氣)가 하늘에 닿아
혼(魂) 잡아오고
촛물이 땅에 젖어
백(魄)을 끌어오면
보름 밤
월출산 위에
달로 뜨는
얼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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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3/ 최지형
내 본분 평생 지키다
닳아지면 또 채웁니다
절개만은 지켰기에
무릎 꿇는 일도 없습니다
구름이
앞을 가려도
내 갈길 헤쳐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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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모음.67- 풍뎅이/ 김강호
눈이 휘뜩
뒤집힌 채
제자리만
돌고 있다
설 수도
날아갈 수도
죽을 수도 없어서
노랗게
맴도는 하늘
회오리로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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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도 울더라/ 김옥중
초저녁 과수원길 산책을 나갔다가
애절한 울음소리 따라가 보았더니
복사꽃
구경 왔다가
거미줄에 걸린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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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약/ 김종
튜브에 담긴 시간을
연고처럼 잘라 쓰면
늘어선 시간들이
산 하나는 두르겠고
배고픈 生의 중량은
목덜미에 걸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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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노창수
조여라 머리 질끈
해결하라 밀린 품삯
칙칙한 숱을 베며
노동 꿇린 자갈 밭
면도날 내리 긁다가
눈물 기우뚱 감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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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 문주환
왜가리
한 마리가
잿빛 하늘 날아간다
구름 속을
헤쳐 가며
왝, 하고 우는 울음
경비실
쫓겨 나오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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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백일홍/ 박금희
호젓한 토담 아래
붉은 원삼 나래 펴고
마음이 마음을 키워
그리움이 자라서
지상에
별이 되고자
석 달 열흘 웃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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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 눈부실 때/ 서연정
눈부시게 애틋한
꽃 뒤에 숨은 헌신
헤아리지 못하여
놓친 줄도 몰랐네
저 많은 사랑의 순간
허공의 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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