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시인의 방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 나날의 그물을 꿰매다 ]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 ============
[ 나날의 그물을 꿰매다 ]
박소영 시집 / 천년의 詩 041 / (주)천년의 시작(2010.10.30) / 값 8,000원
================= =================
그물을 꿰매는 남자
박소영
무창포 선착장 빈 배에 앉아
그물을 꿰매고 있는 남자
제사장처럼 경건하다
세상의 모든 상처를 꿰매달라고 하고 싶다
갈매기는 바다를 관장하는 신인 듯
그의 머리 위를 선회하고
고래잠을 자고 있는 선착장에서
에베레스트 산처럼 앉아
나날의 그물을 꿰매고 있다
밀물이 도둑처럼 살금살금 들어오자
하늘에는 걸릴 수 없는 무지개가
찬연히 뜨는 선착장
맨발의 햇살이 물 위를 걷는다
그물에 구멍이 생기듯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뚫린 삶의 구멍들
닳아진 시간, 마이너스 된 통장, 잃어버린 건강, 깨진 우정
그리고 사랑이 빠져나가 피가 멈추지 않는
상처를 안고 다가가는 나
저녁 해도 눈을 부릅뜬 채 수면에 걸려 있다
붉은 정원
박소영
붉은 나뭇잎이 떨어진다
단풍나무는
저녁 해보다 더 뜨거운 정열을 가두고
생피보다 더 붉은 눈물을 흘린다
뱀의 속삭임보다 달콤한
거울보다 더 진실한 사랑이
붉은 정원에 갇혀 잇다.
십자가에 매달려
물과 피를 다 꼳아낸 예수가
하늘 나라로 올라갔듯이
금기를 넘어 신을 사랑한 죄
붉은 눈물로 다 흘리고 나면
정원 위를 훨훨 날 수 있을까
단풍나무 그늘 아래
새 한 마리 붉게 물들고 있다.
화석
박소영
꿈결이듯이, 바람인 듯 코끝을 스치는 향기인 듯, 왔다가는 가는 인연들을 버리지 못하고 막차로 너를 보낸 후, 행선지 알리는 표지판 되어 서 있다 이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면 신도 시비를 걸지 못하리라 빗물에 젖어 떠내려가는 흙먼지가 된 하루를 보낸 버스정류장에서 너를 부른다
내 사랑은 아빌라
블루베리 눈을 가진
정숙한 달의 여신
정신은 아테네처럼 명석하다는
그리고 어느 날, 실망했다는 너의 말이
하늘신전 기둥으로 꽂혀 있는 늦은 밤, 가로등 불빛만이 눈을 간신히 뜨고 졸음을 쫓고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삭제된 글씨로 보낸다 순간이동보다 빠른 찰나의 만남에 노예가 되는, 그 첨예한 것이 풀잎보다 약하지만 칼잎이 된 사랑이 빗줄기 속에 서 있다
사람아,
맥주 거품 같은 너와 나의 인연을 너무 탓하지 마라 인연은 억지로 맺어지는 것이 아닌 태곳적부터 예정된 것임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신만이 아는 건널 수 없는 강물이 흐른다는 것을, 저녁이 있으므로 아침이 있고 장대비가 빗방울 속에 잠시 박혀 있던 것으로 지나가는 인연을 그러나 사람아, 너는 가고 나는 망부석 되어 차갑게 굳어가던 그 날의 기억은 심장의 화석으로 기억하라
모과
박소영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도
돌을 맞지 않았는데
얼마나 깊은 죄를 지었기에
몸에 든 멍빛이 저리도 선명할까
서릿바람 맞으며
상처투성이 알몸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허공에 몸을 맡긴 불룩한 몸뚱어리
세상 죄를 다 안은 듯하다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 진액으로 번들거린다
가을바람이 지나간 자리
하늘을 우러르며 허공에 기댄 몸
마른 우물로 패어 있는 검은 상처마다
십이월 햇빛에 몸을 말리고 있다
이미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곰삭은 몸뚱이에서
진한 죽음의 단내가 난다
고서
박소영
남편은 하늘구름으로 날아갔다
자식은 강가의 청개구리로 도망갔다
돈은 바람에 날리는 검불처럼 흩어졌다
어머니는 시들어가는 꽃잎 되어 누워있다
빨치산과 싸운 이야기를 하던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나는 하루가 지나간 만큼 키가 줄어든다
물위를 지나는 뱀을 바라보며 나도 매끄럽게 헤엄쳐 갈 수 있다면,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을 떠가는 구름도 유유히 순풍에 밀려가는 돛배가 되어 가고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다 아름다운데, 나는 살아남기 위해 카멜레온처럼 적응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형수 되어 고해의 고삐에 묶여있다 주무시지도 않고 나를 감찰한다는 나의 신은 언제까지 지켜만 볼 것인지, 요나가 고기 뱃속에 들어갔을 때를 생각해 본다 한없이 그리워하며 되돌아가고 싶은 내 유년의 봄날은 푸른 안개 속보다 더 아득하고 더 멀다
꿈을 꾸었지. 종가 무남독녀 외손녀가 벽장에 쌓여있는 고서를 보고 있었지 누런 표지 위에 쓰여 진 할아버지 글씨가 어제 일기처럼 또렷했지 할아버지 옆에 늘 있던 연상도 벽계수를 읊던 할아버지도, 양자 외삼촌이 그 고서를 가지러 왔지 할아버지와 나는 ‘족보와 임금이 내린 교서는 내주었지만 이것만은 내줄 수 없다’ 고 띄어쓰기 잘한 문장을 읽듯 또박또박 말했지 한 권 한 권 들춰보고 살펴보다가 이 책은 원본, 이 책은 필사본, 장화홍련전, 흥부놀부전 밤새껏 분류하고 새벽이 되었지 창가 목련나무로 날아와 나를 깨우는 새소리 듣고 일어나는 푸른 새벽을 보았지
아직 이름표를 달지 못한 채 시를 쓰는, 나는 늘 깨어나서도 꿈을 꾸지
약국 감옥
박소영
할머니, 다리가 아파요
나의 발은 종일을 걸어도 제자리입니다
장맛비로 땟국을 씻어낸 하늘이 말갛게 얼굴을 드러낸 오후, 천사의 날개 빛 뭉게구름은 밀레의 어떤 그림보다 보다 훌륭하지요 그 그림 속에는 담장 가에서 자줏빛으로 익은 툭툭 불거진 자두도 보이네요
입 안에 침이 고여요
어젯밤 꿈속에서는 유년의 강가에 갔었지요. 금강 상류 칼바위 밑 깊고도 시퍼런 물은 우리 집 머슴 기선이도 못 들어간다고 했지요. 태고정 아래 강변 자갈돌들이 옥양목을 펼쳐놓은 듯 하얗게 빛을 발하면 달맞이꽃 입 벌리는 소리도 퍽퍽 들렸지요
안망정 산기슭에는 도라지꽃과 참나리가 피어 있고 그 아래 원두막에서 수박과 개구리참외를 먹던 생각이 나요 기러기 안雁에다 바랄 望과 뜰 庭이라고 말씀하셨던 생각도 나네요 雁望庭
이름처럼 참 아름다운 그 곳
할머니, 다리가 아파요
온종일을 걸어도 제자리인 약국에서 다시 할머니를 불러요. 할머니를 그리워하면 용담댐에 묻힌 고향도 보여요 하늘을 올려다보면 할머니는 구름이 비켜난 자리에 늘 있지요. 보이기만 하고 만질 수 없는 할머니, 눈을 뜬 채 물의 문을 열고 댐 속으로 들어가면 할머니를 만질 수 있을까? 하지만 죄인이 들어갈 수 없는 천국의 문처럼 굳게 닫힌 물이 열리지 않아요 물의 낯을 바라보며 잠들어 있는 고향을 마음눈으로만 봐요 언제나 헛바퀴 도는 차륜으로 서 있는 내가
천형의 감옥에서 오늘을 살아요
기억의 문을 열다 - 용담댐 연가
박소영
담쟁이 넝쿨 아래 소꿉 살던 아이
꽃신 옆에 피어있던 제비꽃
모두 어디로 갔을까?
저승으로 들지 못한 떠도는 영혼
구름에 달 가듯이* 고향을 찾는 나
고향을 묻은 댐은
문을 잠근 고요한 빈방이다
다리 위에서 물의 낯을 바라보는데
기억이 물의 문을 열고 나온다
이사 나오던 날 뒤돌아본
정구지 밭 한켠에 엎어져 있던
꼭지 떨어진 옹배기도
자운영꽃 위에 내리던 햇살이
비단날개를 달고 내게로 온다
고향은 물속에 수장된 것이 아니다
단단한 옹이로 박혀
사람들 마음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연꽃동산 가는 길
박소영
공주 연꽃동산 가는
새뜸 길목에
땟국에 절은 분뇨차가 있다
연잎보다 더 푸른 몸
쉴 틈 없이 움직이며
지상의 마지막 식탁을 깨끗이 비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만삭이다
바람개비처럼 골목을 돌고 돌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
오늘은 어느 집 식탁을 비웠을까
달리는 여섯 바퀴 마찬이 나도록
목울대가 짓무르도록
분뇨만 마시다 숨을 거둘 땐
어디로 갈까
길이 끝나는 곳
서켠 노을 벽에 연꽃을 피울까
연꽃 향기 가득한 하늘길
금화
박소영
가을이 오고 있다
저벅저벅 군화를 신은 군인이 되어 오고 있다
십자군 군대가 쳐들어오듯 물감을 이끌고 와서
대지와 하늘, 나무와 풀잎에게 색칠한다
공사장 인부 신발, 명퇴한 가장 머리칼
유치원생 가방 어깨끈
새보다 더 먼저
새벽을 깨우는 미화원 신발도 물들이고
암수가 마주해야 열매 맺는 은행나무도 물들인다
노랑, 노랑, 노랑 황금보다 더 샛노란 은행잎을 보다가
순간, 저 은행잎
모두 금화로 변환될 수 있다면
소말리아 굶주린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숨 못 쉬는 천식환자에게 약도 주며
하늘에서 만나를 뿌리듯
가난을 구제할 수 있을 텐데
은행잎이 금화로 변환되지 못하는 세상은
고통과 기아가 낙엽처럼 널린 철의 시대
금융 위기가 해일처럼 온 자본사회에서는
칼의 마음만 빛난다
나는 열차를 놓치고 가을을 걸어서 간다
변명의 금줄
박소영
사월이 와도 뒷걸음질 치는
봄,
언 땅이 풀려도 두 발이 시리다
중환자실 병동
사각의 거푸집 안에서
흰벽을 안고 바깥을 꿈꾸는 그들
아직 봄이 멀다
바이올린 현처럼 탱탱하게 맞서는
생과 사의 얼음 시간을
따뜻한 입김으로 불어준다면
뒷걸음치는 봄 발길을 돌리겠지
추위에 꽁공 묶인 끈 풀려
‘훈훈한 봄기운 물관을 타고 흘러가
꽃망울 터지듯
병실 문 열고 나올 수 있다면
세상 어두운 뒷길까지
벚꽃 길보다 더 환해지리라
까미유 클로델과 막달라 마리아처럼
박소영
나는 눈물이 고인 바다가 되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거미줄에 걸린 나비
사랑의 독은 죽음보다 깊고 어둡네
얻을 수 없는 달을 사랑한 여자
까미유 클로델처럼
눈물이 고인 바닷가에서 죽어가고 있다
두 손을 모아도 너는 빠져 나가는 물이었지
내 심장에서
내 운명에서
너는 문둥병 환자 손가락마냥 떨어져나가고
나는 뭉텅 코 잘려 나가도록 자존심까지 다 버렸지
쥐면 쥘수록 새어나가는 물 같은 사랑이여
주먹 꼭 틀어쥐고 달려와 보니 빈손
바닷가에 서니 바다에 빠진 달 해인되어 웃는다
너에게 갈 수가 없다
하늘과 땅의 거리보다 먼 너
눈물로 강을 이루어 갈 수 있다면
내 몸 다 마르도록 울 수 있는데
사랑하는 마음,
하늘 심연 어떤 별보다 더 뜨거운데
태양은 구름 속에 갇혀 있고
거울 속보다 더 훤히 나를 꿰뚫어보는 얼음마녀의 눈
대낮 태양 어둠으로 빛난다
흐르기를 멈추면 썩어야 하는 물처럼
내 사랑은, 마침표가 없다
사랑이여 내 눈물의 바다를 배로 건너와
항해해서 온다면
소금기 묻은 그대 발을
은대야에 새벽이슬 받아 고이 씻겨주리라
그대에게 씌워줄 면류관도
그대에게 입혀줄 아름다운 옷도 갖지 못한 나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른 것처럼
그대 사랑에 무릎 꿇어 입맞춤하리라
달의 시간
박소영
꿈속에서 그를 만났다
어둠이 출렁이는 방천둑길을 걸어갔다
그의 왼손이 내 어께를 감싸주며 걸어간 길은
분명 아는 길이었으나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죽음 같은 고요가 팽팽한 길이었다
한없이 친숙하나 조심스러운 그를 만났다
잘못 내딛으면 죽음의 강물로 빠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으나
안개가 걷히듯 두려움이 사라지는
그 시간은
내 평생에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달의 시간이었다
꿈속에서 그와 함께 길을 갔다
분명 목적지는 없는데 가야만 하는 길
한마디 말이 필요 없는
봄밤이었다
그는 내 어깨를 감싸고 달 속으로 난 길을 걸어서 갔다
꽃지
박소영
길의 끝,
하늘과 바다가 붙어버린
수평선에 걸린달
주검보다 더 깊은
소름 돋는 한기
밤의 눈물이 된
나는 너를 바라보고
바다는 너를 먹어버렷다
팔월 열하루
꽃지
내게 주어진 일생보다 더 사랑하고픈 달
가슴 우물에 약藥처럼 비쳐 있는 달
=================
■ 시인의 말
구약 시대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가족과 짐승들을 구해냈듯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는 문학이 방주가 되었다.
오늘가지 살아오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
갚아야 할 恩과 怨, 그리고 恨이 있었다.
그 중에서 은과 한이 그리움이 되었다.
그리움은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유년의 그때처럼 징의 동그라
미가 되어 나를 맴돌고 있다.
그 그리움의 조각들을 하나씩 기우어서 솔기 없는 보자기를 만들었다.
그 보자기는 시가 되어 내게로 왔다.
앞으로 내게 주어지는 소중한 시간을 더욱 아름다운 그리움으로 만들어가며 살아가야겠다.
.▩
=============== == = == ===============
박소영 詩集 [ 나날의 그늘을 꿰매다 ]
[ 시집 해설 ] -
고통과 환희를 살아내는 자웅동체
이 승 하
시인. 중앙대 교수
지구에 집을 짓고 사는 우리는 유기체이며 유한자이다. 어느 누구의 일생도 유유자적이나 희희낙락만으로 점철될 수는 없다. ‘불의의 사고’라고 흔히 말하지 않는가. 유쾌하게 지내다가도 예상치 못한 일에 근심 걱정에 휩싸이며, 휴식을 취하러 휴양지에 갔다가 천재지변을 만나 영원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비극은 사람 사는 곳 그 어디에나 있다. 이 세상에 경치 좋은 곳은 많고 많지만 가만히 있어도 의식주가 해결되는 무릉도원 같은 데는 없다. 비극적인 세상사에 대해 유독 민감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인’이다. 시인은 너무나 당연한 생명체의 생로병사의 의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철학자이며, 보통 사람보다 훨씬 감정이 풍부한 조울증 환자이다. 하지만 철학자는 논리적이기에 상상력이 부족하고 조울증 환자는 차분히 책상머리에 앉아 글을 쓰기 어렵다. 시인은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고서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고, 대지에 발 디디고 서서 혁명의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럼, 첫 시집을 묶으려고 하는 박소영 시인은 어떤 시를 써 이 세상과의 소통을 꿈꾸려 하는 것일까?
그물에 구멍이 생기듯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뚫린 삶의 구멍들
닳아진 시간, 마이너스 된 통장, 잃어버린 건강, 깨진 우정
그리고 사랑이 빠져나가 피가 멈추지 않는
상처를 안고 다가가는 나
-「그물을 꿰매는 남자」제3연
돈도 잃고 건강도 잃고 친구도 잃었다니 이보다 더 난감하고 비참한 경우가 있을까? 게다가 사랑도 빠져나가 “피가 멈추지 않는/ 상처를 안고” 화자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무창포 선착장 빈 배에 앉아 제사장처럼 경건하게 그물을 꿰매고 있다. 화자는 오죽했으면 내 상처의 구멍을 꿰매달라고 말하고 싶어할까. 그렇다. 이 세상에는, 에베레스트 산처럼 앉아 나날의 그물을 꿰매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이라고 해서 나날의 고통이 없을 것인가. 하지만 술독에 빠져 있지 않고 그물을 꿰매고 있다. 그물은 삶의 구멍이며 상처이다. 해설자가 보건대 시인이야말로 수많은 사람의 영혼의 상처를 꿰맬 줄 아는 의사이다. 다시 말해 박소영 시인은 그물을 꿰매는 남자를 살펴본 관찰자이면서 그물을 꿰매는 남자 자신이다. 시인은 꿰맨 언어의 그물로 시를 낚는 사람일 터이니.
생이란 멀쩡한 길에서
제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신혼여행지에서 쓰나미로 죽기도 한다
왜 세상에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신호대기에서 출발한 택시에 뛰어든
아이를 본 날
일인다역의 배우가 된다
발을 땅에 딛지 못하는 밤이 출렁댄다
-「잠들지 못하는 밤」제2,3연
시인의 말 그대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네 인간이란 존재는 멀쩡한 길에서 제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혹자는 신혼여행지에서 쓰나미로 죽고, 잘 나는 동네 꼬마아이는 교통사고로 화자의 눈앞에서 죽기도 한다. 우리들의 운명은 “발을 땅에 딛지 못하는 밤”이니 당연히 난파선처럼, 혹은 높은 파도처럼 출렁댄다. 그런 밤에는 시인의 말마따나 몸유병 환자처럼, 중환자실의 불빛처럼 잠들지 못한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오가며/ 진자운동을 하는 시계추, 정신은 에테르”인 양 우리는 번민의 늪에 빠져 잠들 수 없다. 비극적인 현실에 대한 시인의 이와 같은 예민한 감각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시인의, 혹은 시적 화자의 유년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아버지 계신 하늘나라에도 달은 뜨겠지요”(「달에게 부치는 편지」)라는 구절로 보아 화자의 아버지는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신 모양이다.
서릿발 입고 서 있다
산비탈에 서서 안간힘 쓰며
아버지 장의차 배웅하고 있다
(…중략…)
은사시나무 심으면 돈이 될 거라고
땅이 모자란 듯 다니며
심은 나무들
성군의 죽음을 애도하는 백성인 양
흰옷 입고 도열해 배웅하고 있다
-「은사시나무」첫 연, 끝 연
화자는 25년 전의 일을 더듬고 있다.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은사시나무가 돈이 될 거라고 숨넘어가게 전화를 했던 아버지였다. 돈을 벌었는지 안 벌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덧 아버지는 임종을 맞이한다. 그때 심은 은사시나무들이 커서 아버지의 장의차를 “성군의 죽음을 애도하는 백성인 양/ 흰옷 입고 도열해 배웅하고 있다”. 시인은 아래 예시한 시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있다.
처가에 둔 어린 딸 보러
가끔 찾아오는 아버지
학용품과 책가방 손 가득 들고
휘적휘적 방천둑길 걸어올 때
떠나가는 아버지 뒷모습이 보였지
-「관객」제2연
이 장면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시인에게 물어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사실이건 허구이건 간에 어린아이로서는 대단히 서러운 장면이다. 처갓집에서 자라는 딸을 가끔씩 만나러 오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화자는 먼 훗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 입고/ 염습실에서” 만난다. 화자의 기억 속 아버지는 늘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고, 결국 “다림질 된 아버지 와이셔츠”를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관객이 된 내가 바라본다. 시어머니와는 줄곧 갈등 관계에 있었던 것 같은데, 갈등에서의 해소가 또한 염습실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염습 절차가 끝나고 관 뚜껑이 닫힐 때
어머니와 나의 거리가 비로소 무너졌다
몸은 염습실 안에 묶여 있지만 생각은
고인이 묻혀야 할 산까지 바람처럼 다녀온 나
끊을 수 없던 시집살이가 관 속으로 들어가고
목쉰 소쩍새 울음이 강물되어 흘러나왔다
-「거리」마지막 연
죽은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너그럽게 한다. 염습실에서 사자와 생자 사이에 이뤄진 극적인 화해는 이처럼 아름다운 시편을 완성케 한다. 가족사의 아픔과 설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이런 시편을 통해 해설자는 시인이 왜 인간의 생로병사에 천착하고 희로애락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을 듯도 하다. 더 깊이 느끼고 더 민감하게 반응하였기에 시인의 길로 나선 것이 아닐까. 시인의 말마따나 “심해의 심층수와 수면의 바닷물은 섞일 수 없지만/ 고통과 환희는 함께 살아내는 것”(「사진 속의 하루」)이다. 사람마다 차가 좀 있지만 인생살이에 있어 고통만 연속되지도 않고 환희만 지속되지도 않는다. 호사다마인가 하면 새옹지마이기도 하다.
그럼 시인을 키운 것은 누구인가? 헤어져 살던 아버지가 아니고 할아버지가 아니었을까? “조기의 살을 발라먹고 펄펄 살아온/ 할아버지 사랑의 살을 파먹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꽃잎비늘」)라는 구절로 보아 시적 화자로 분한 시인은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서도 무척 외로운 성장기를 보낸 것 같다. 화자는 할머니에 대해서도 애틋한 정을 느끼고 있다.
할머니가 보낸 호박씨가 왔다
남양분유 통 가득 들은 호박씨,
가슴이 저려 바라만 보고
눈물이 아른거려 입에 넣지 못했지
무남독녀가 낳은 외손녀 생각에
잠 못 이루며 까서 보낸 호박씨
그 해 겨울 다 가고 난 후
다 절어 먹지 못하게 되었지
-「하늘에서 온 소포」제 2연
시인은 시적 형상화를 위해 모종의 장치를 하는 대신 이야기시의 창작방법론에 입각, 사실을 곧이곧대로 전달하고 있다. 화자의 할머니는 외손녀에 대한 정이 애틋하다. 화자는 그 정을 아끼다가 호박씨를 그대로 버리게 된다. 결국 “그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몇 십 년이 지난 어젯밤 꿈에” 또다시 하나하나 깐 알몸 호박씨 한 통을 받게 된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쌓이면 꿈에서 보게 되는데, 화자는 꿈에서 호박씨 소포를 다시 받는다.
시인의 고향은 수몰이 된 것일까, “할머니를 그리워하면 용담댐에 묻힌 고향이 보여요. 하늘을 올려다보면 할머니는 구름이 비켜난 자리에 늘 있지요”라며 온갖 추억이 깃든 고향마을과 함께 사라진 유년시절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다.
사라져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는 이런 시도 쓰게 한다.
이사 나오던 날 뒤돌아본
정구지 밭 한켠에 엎어져 있던
꼭지 떨어진 옹배기도
자운영꽃 위에 내리던 햇살이
비단날개를 달고 내게로 온다
고향은 물속에 수장된 것이 아니다
단단한 옹이로 박혀
사람들 마음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억이 물의 문을 연다」부분
고향마을 전체가 수장된다는 것은 추억 자체를 빼앗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시인은 역설적으로 말한다. 고향은 물속에 수장된 것이 아니라 “단단한 옹이로 박혀” 사람들 마음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이렇게라도 고향의 기억의 화폭에 다시금 재현해내는 시인의 마음은 참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이렇듯 몇 편의 시를 연결시키면 시인의 성장기와 가족사를 대강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사연이 없는 성장기와 가족사가 없는 시인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수준에서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시인은 그것을 한다. 다시 말해 고통의 범주를 확산시킨다. 내 내면의 고통에 연연해하지 않고 보편의 고통을 탐색한다.
이라크 전장에서 보내온 아들 메일에
-친구, 다리가 하나 없는데 함께 가도 될까요
어머니는 네가 불편하니 와서 일주일만 같이 있으라 했다
다시 메일이 왔다
-그 친구 두 팔도 없는데 괜찮느냐고
네가 너무 불편하니 데리고 오지 말라고 했다
그 후 또 한통의 메일이 왔다
그 아들이 자살했다는 통보였다
아들은 어머니 가슴에 다시 죽었다
그 아들이 오늘도 죽어간다
-「사월에 온 소식」제1연
화자의 아들은 이라크에 파병된 병사다. 그런데 이라크 전장에서 보내온 아들의 메일 내용이 심상치 않다. 유심히 보니 익명의 ‘아들’이(이 아들은 미군 병사다)어머니에게 보낸 메일이다. 친구라고 했지만 사실은 자신이다. “친구, 다리가 하나 없는데 함께 가도 될까요”라고 물었지만 자기 다리가 하나 잘렸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 후에 미군 병사는 다시 메일을 어머니한테 보낸다. “그 친구 두 팔이 없는데 괜찮겠습니까”하고, 병사는 결국 자살하고 만다. 전쟁터에서 한쪽 다리와 두 팔을 잃는 미군 병사의 얘기를 이렇게 남 이야기 하듯이 하고 있지만 “아들은 어머니 가슴에 다시 죽었다”는 말로 어머니의 비통한 심정을 전해준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희생정신은 “불타는 얼음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어머니는,/ 끝이 나지 않는 전장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시의 결구에 이르러 더욱 애절하게 표현된다. 이 땅의 어머니들뿐만 아니라 저 멀리 미국의 어머니들 심정까지 헤아려본 시인의 모성애로 말미암아 해설자는 가슴이 새삼 따뜻해져 옴을 느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풀려나지 못한 인질들의 근황을 알려주는 알자리라 방송은, 맹수가 바글거리는 밀림 속에서 잃어버린 눈먼 딸을 찾을 수 없다는, 무덤 속에 생매장된 아들의 죽음처럼 아득한 소식만 전해온다
-「아프가니스탄, 트라우마」부분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 활동을 간 우리나라 선교사 중 2명의 여성이 인질로 잡혀 무진장 고생하고 온 뉴스가 전해지자 시인은 펜을 꺼내 들었다. 이 일로 가장 큰 고통을 겪은 이는 납치된 당사자가 아니라 어머니라고 시인은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시인 자신 “내 아들이, 내 딸이 저곳에 있다면”하고 가슴을 쓸면서 긴 한숨을 짓다가 금세 열대야에 잠을 설쳤다고 투덜댄다. 인간이란 원래 이기적인 동물이라 자기 가족이 아니면 고통과 절망도, 파멸과 죽음도 먼 산의 불일 뿐이다. 하지만 시인의 인류애적 관심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비로소 오늘 신을 버린다
삶의 고통은 죽음과 같아 대신할 수 없는 것, 반으로 잘려진 지렁이가 되어 버둥거리는 삶이 8월의 땡볕 아래 말라가는데, 그러나 어디엔가 나보다 더 아픈 이가 있다는 걸 생각한다. 탈레반의 총구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아들과 딸을 둔 어머니를 위해, 그들의 무사 귀환을 빈다
-「아프가니스탄, 트라우마」부분
이 부분은 시인의 세계관을 극명히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혹은 다른 생명체)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보고서도 시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탈레반의 총구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아들과 딸을 둔 어머니를 위해, 그들의 무사 귀환을” 빌어줄 수는 있다. 시인의 역할은 여기서 멈추지만 어찌하랴, 그것이 능력이 최대치인 것을. 이 시의 제6연인 “비로소 오늘 신을 버린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 불가항력적인 비극의 현장에서 시인은 마음 깊이 절망했지만, 목숨을 버리는 결심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첫 시집에서 시인은 기독교적 시의식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신을 버린다 운운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신성이 구현되는 세상을 향한 시인의 노력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몸이 다 자라면 물 밖 세상으로 나와
죄를 대신한 예수처럼
물과 피를 다 쏟아내고
백짓장같이 얇아진 몸
더는 낮아질 수 없을 만큼 낮아져
몸을 조아리고 엎드려 있다
-「김」제2연
식용 김이 소재지만 비유의 대상은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된 예수다. 이런 식의 기독교적인 은유나 상징은 시집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기독교적인 비유나 상징은 신성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는 지상의 비극에 대한 깊은 슬픔 때문이리라.
시대는 변해도 사람들은 변하지 않아
기원전이나 지금이나
아침과 저녁이 둥글어지면 반복되듯
선과 악이 바퀴살을 이루어 굴러가는
수레에 올라 있다
-「사마리아 연인」제3연
구약의 시대에 카인과 아벨이 있었듯이, 소돔성에 타락자와 의인이 함께 있었듯이, 지금 이 세상에도 사람들은 선과 악이 바퀴살을 이루며 굴러가는 수레에 올라 있다. 나는 “언제나 헛바퀴 도는 차륜으로 서” 있고, “천형의 감옥헤서 오늘을 살아”(「약국 감옥」)가고 있지만, 인간이기에 “내게도 화사한 모란꽃으로 피어나는 봄날이 다시 온다면, 목숨을 건 사랑도 해보리라”(「모세 광야 사십 년」) 고 다짐하기도 한다. 그러다 신에게 다시 주문을 건다. “예수의 주검에 감긴 수의 같은 하루가 화살로 지나가게 해달라고”. 참된 신앙인이라면 교회에 가서 복을 비는 대신 욕망의 끝 간 데를 추구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고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텐데 시적 화자는 종종 후자의 자세를 취한다. 예컨대 “식당 앞 계단에 노숙자가 덮은 신문/ 순방길에 오른 대통령 부처 얼굴처럼 웃을 수 있으려나/ 구겨진 종이 활자도 몸이 비틀어져 있다”(「이천사 년 겨울」) 같은 시행이나 “저 은행잎/ 모두 금화로 변화될 수 있다면/ 소말리아 굶주린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숨 못 쉬는 천식환자에게 약도 주며/ 하늘에서 만나를 뿌리듯/ 가난을 구제할 수 있을 텐데”(「금화」) 등의 구절에서 엿볼 수 있는 인류애적 시각은 동시대 다른 시인들이 지니지 못한 덕목이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시세계와는 좀 다른 세계가 있어 주목을 요한다. 「구름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 중 ‘차마고도’를 보고 쓴 시인 듯하다. 차마고도(茶馬古道)란 비단길보다 앞서 만들어진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무역로로 중국 원난성과 쓰촨성에서 시작되어 티베트, 인도, 파키스탄 등지를 거쳐 비단길로 이어진다. 제1연에서 화면을 통해 본 것을 그대로 기술한 시인은 제2연에 가서 면모를 일신, 나 자신의 차마고도로 환원시킨다.
당신에게 가는 길은
그 누구도 가지 않은 나만의 길
새도 쥐도 다니지 않아 길을 내며 가야 하지요
해의 눈도 피해서 가야 하는 어둠의 길
그러나 나는
마방이 송이를 판 백만 원의 돈을 받고
가족에게 돌아가는 환희의 길이 아니지요
내가 가진 것을 다 내어주고도 당신을 살 수가 없네요
신의 세계에서 육신을 입고 지상에 왔다가 돌아가야 하는
원하는 것을 얻든 못 얻었든 돌아와야 하는 나
지하세계에서 혼자 돌아오는 오르페우스가 되었지요
-「구름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가운데 연
당신은 절대자 혹은 예수 그리스도? 마음속의 이상 혹은 추억 속의 연인? 하지만 당신이 누구인지 섣불리 상상해서는 안 된다. 한용운의 ‘님’을 조국이나 이성으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에게 가는 길은 “해도 눈도 피해서 가야 하는 어둠의 길” 이기에 전인미답의 험로이며, 그 과정은 역경의 연속이다. 그래서 시인은 화자 자신을 지하세계에서 혼자 돌아오는 오르페우스라고 한 것이다.
차마고도 마방의 길보다 험한 길
발자국마저 남길 수 없어 허공에 발을 내디디며
당신에게 가는 길은
티베트와 히말라야 산을 오가는 구름발로 가는 나만의 길이지요
-「구름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끝 연
차마고도 마방의 길보다 험한 길이라고 했으니 얼마나 험한 길이란 말인가. ‘나만의 길’이란 혹 시인으로서 홀로 가야 하는 길이 아닐까? 시인으로서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자 이 시를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보게 되는 것은, “길이 없는,/ 길이 아닌 길을 가야 한다”(「다시 아침」)는 각오를 다른 시에서 엿보았기 때문이다.
박소영 시인은 첫 시집을 내고 이제 비로소 시인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박 시인은 “티베트와 히말라야 차마고도를 넘나드는/ 천장공로 이천백 킬로미터의 순례 길에서/ 오체투지하는 자들의 행보를 생각”(「사진 속의 하루」) 한다고 했다. 이 생각이 생을 마칠 날까지 지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고통과 환희는 자웅동체를 살아내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앞으로도 박 시인은 뭇 생명체의 생로병사와 인간의 희로애락을 뜨겁게 느끼고 서늘하게 표현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 표사의 글 ◆
박소영 시인의 첫 시집 『나날의 그물을 꿰매다』에 보이는 시적 장점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귀에 거슬리지 않는 평균율(平均律)의 목소리로 차분히 전해주는 자연스런 유연함에 있다 할 것이다. 그의 시에서는 생활 현실의 구비 구비마다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우연과 필연들을 가성(假聲)이 아닌 자신만의 소탈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순정성이 느껴진다. 계룡산이나 삽시도 같은 자신이 뿌리박고 사는 삶터 근처의 풍경을 다루건, 캄보디아나 차마고도 같은 먼 이국의 낯선 세상 이야기를 다루건 간에, 그의 시는 인간의 공통적 삶의 진실을 예리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구체적 현장성을 우리에게 생생히 전해준다. 그러기에 안이한 ‘낭만적 거짓’의 함정에 함부로 빠지지 않는 그의 시를 읽는 순간, 우리는 금세 동시대의 공유체험을 나누어 갖는 내적 기쁨에 스르르 젖게 된다.
― 이가림 시인. 인하대 명예교수
박소영은 꿈과 그리움의 시인이다. 충분히 다른 이들처럼 안주해도 좋을 자리에서 그녀는 안주하지 못하고 새로운 나라를 좇아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그 여행은 결코 낯선 여행이 아니다. 이미 친숙했지만 잊혀진 나라로 떠나는 여행이다. 가들가들 그녀의 가볍고도 섬세한 마음의 촉수가 가 닿으면 까마득 잊혀진 것들은 빛깔이 되고 소리가 되고 모습이 되어 우리 앞에 꽃밭을 수놓고 소리의 개울을 펼친다. 이적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꽃밭이요,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는 소리의 교향이다. 언제 이렇게 키가 자랐을까? 그녀의 키가 실지로 큰 것처럼 박소영 시인의 시는 키가 크다. 키가 크니까 더욱 멀리까지 보일 것이다. 오래 만나온 사람에게도 그것은 괄목상대(刮目相對)다. 어쩌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박소영 시인의 시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정말로 눈으로 보는 듯한 시, 귀로 듣는 듯한 시이다. 발목에 기운이 남았을 때, 가슴이 뜨거울 때, 첫 시집의 기쁨을 들고 충분히 멀리까지 가보기를 권한다.
― 나태주 시인
.▩
=================
▶박소영 시인∥
∙ 1955년 전북 진안 출생
∙ 대전대학교 문예창작학고 졸업
∙ 중앙대학교 에술대학원 재학 중
∙ 2008년『詩로여는세상』등단
∙ 한국시인협회 회원, 대전작가회의 회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