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화 선생이 강화도 북쪽 휴전선 가까운 곳에, 무교기념관·무당학교·전통문화 체험실습장· 신도를 위한 삼신당 등 다목적으로 쓰기 위하여 기념관과 삼신당을 짓고 기념관의 이름을 금화당錦花堂이라고 하였다. 2년여에 걸친 공사 끝에 2005. 4월 23~24일 토요일 일요일 양일 간에 걸쳐 낙성굿을 하게 된 것이다. 건축하는 사람들이 공사는 제대로 안 해 주고, 돈만 가로채가는 바람에 공사가 지연되었고, 빚도 지게 되었고, 마음에 드는 건물을 짓지 못하고, 마음고생을 많이 한 후에 낙성을 본 건물이다.
현재는 본 건물 <금화당>과 부속건물 <삼신각> 두 채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이 들어서게 된 곳은 김 선생이 6.25전쟁 때 두고 떠나온 고향 옹진과 가까운 곳이다. 강화읍을 지나서 48번 국도를 따라 동북쪽에서 서북쪽으로 가다가 보면 하점면의 군부대 앞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 산자락에 한식으로 지은 웅장한 건물이 서 있어서 한눈에 뜨인다.
나는 처음 집터를 잡을 때부터 시작하여, 착공식과 또한 공사 중간 중간에 김 선생을 따라와 그곳을 여러 번 둘러보았다. 무교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내게, 그가 해 온 일들이 빼놓을 수 없는 관심거리의 하나였기 때문에, 그가 함께 가 보자고 하면 따라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현장을 둘러보곤 하였다.
나는 그의 행보行步를 볼 때마다, 한 나이 든 여자의 몸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발산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에밀레 박물관’을 세우고 <三神民考>라는 명저를 남긴 고 조자용선생과의 만남이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나는 보고 있다. 그 이후에 본인이 쌓아 온 각고의 노력이 책으로 또 방송으로 나와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을 터이다.
그는 <거므나 따에 만신 희나백성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김금화의 무가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굿을 이해하는 데에 길잡이가 되는 책으로,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나는 이 책을 텍스트로 하여, 집중적으로 <철무리굿>을 분석하고 추론하여, 우리의 상고시대역사와 종교와 문화를 거론한 적이 있다. 독자층을 무당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에게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하여 쓴 글이다. 이 글은 <엠파스 마고지나 블로그>,<네이버 마고지나 블로그>, <경기문예블로그 노중평의 문예블로그> 등에서 읽을 수 있다.
그는 굿과, 굿을 하는 무당을 이 나라의 종교와 역사와 문화에 지식이 없는 깡통과에 속하는 뭇사람들이 말이 되지 않는 하찮은 이유를 대가며 천대하던 시절에, 정계며 관계며 재계에 발이 넓은 조자용 선생이 그를 한미수교 100주년 행사에 한국문화사절로 추천하여, 미국이라는 나라의 문화를 작두타기 한번으로 넉 아웃시킨 놀라운 신통력을 발휘하였다.
“그 이전에 현지 공관원들의 김 선생 일행에게 보인 멸시와 하대와 구박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꼴불견이었다”고, 모 인사가 <금화당> 착공식에서 마이크를 잡고 공개적으로 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가 미국사람들에게 보여준 대한민국 무당의 신비스러운 능력과 굿에 대한 기사가 현지 언론에서 대서특필되었고, 그의 일행이 현지로부터 최고의 문화사절로 vip 대접을 받게 되자, 그제서 공관원들이 사람대접을 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화가 지금도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낙성식을 하기 전에, 김 선생 일행이 독일에 가서 굿을 하고 돌아와, 시차가 극복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낙성식을 감행하였다. 4월 24일이 음력으로 3월 16일 단군조선시대에 역대 단군왕검들이 천제를 올리던 날이다. 그러므로 역사의식에 투철한 김 선생이 이 날을 넘겨서는 아니 되겠다는 생각으로 건강상의 무리를 감수하며 낙성굿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낙성굿의 이름은 <복을 짓는 굿>이다.
나라에서 별로 지원 받은 것이 없이 본인의 능력으로 <금화당>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이루었으니, 이를 찬사를 해야 할 일인지, 무모한 일을 했다고 비난을 해야 할지 판단이 가지 않는다. 본인으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던 터에, 앞으로 해야 할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으로 보며, 이 일을 하자니, 이제는 여력이 없을 듯도 싶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머지 부분은 나라에서 손을 써서 마무리를 하여, 이 시설이 우리 굿과 무당 문화를 전 세계 에 알릴 수 있는 도장으로 활용이 될 수 있도록 도아야 할 것으로 본다.
23일에, 나는 <샤머니즘 뷰>를 운영하고 있는 장영호씨와 함께 <금화당>으로 갔다. <금화당>이 있는 곳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신봉리 127번지야산이다.
가는 도중에 고인돌공원에서 고인돌축제가 열리지 않고 <고려산 진달래축제>가 벌어지고 있음을 보았다. 축제 바람에 차가 밀려 1시간 이상이나 걸려 <금화당>에 도착했다.
필자는 그 곳을 지나가면서, <고인돌축제>는 어디로 사라지고, 왜 <고려산 진달래 축제>가 그곳에서 벌어져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축제 자체도 <약장사 약 선전장>을 방불케 하는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유행가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고인돌이라면 단군조선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인데, 이러한 테마를 가지고 축제를 벌일 생각을 하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강화군 당국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단군조선에서 하늘에 올렸던 천제와 관련된 축제를 기획만 해도 격조 높은 문화축제를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보는데 한심하게 국고를 낭비하고, 장사꾼만 데려다가 흥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고인돌 축제>를 <금화당>과 연결하여 새롭게 개발한다면,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축제가 되리라고 본다. 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