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 길, 양 섶으로 토끼풀도 꽃반지를 수없이 토하고 그 사이사이로 개 망초나 인중 쑥 대궁이 성큼 아이들 허리 키를 넘보는 오월 중순을 넘어서면서부터 깊어가는 봄만큼이나 춘궁기도 극에 달하여 산골 아이들은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그저 점심을 굶고 학교를 다녔는데 아이들은 배고픈 하교 길에서 그동안 꺾어먹던 송구는 이제 단물도 사라지고, 보들 야들하던 찔레 순도 성큼 자라서 먹을 수없게 되자 곧이어 피기 시작하는 아카시아 꽃이나 싸리 꽃을 따서 가늘어지는 목구멍에다가 밀어 넣었다.
아카시아 꽃은 사실 향기가 찐하고 많이 먹기는 뭣하여, 같은 시기에 피는 싸리 꽃을 적당히 썩어서 빈 깡통에 담아 소금을 살짝 뿌린 후에 쪄서 먹기도 하였다.
아침에 보리밥을 한 그릇 먹었다 하지만 보리밥은 원래 끈기가 약해서 그 길고 머-언 등교 길에 뛰어가다 보면 이미 배는 교문 들어서기 전에 다 꺼져 버리고 돌아오는 하교 길에는 여기저기 파놓은 옹달샘에 엎드려서 벌컥벌컥 물배만 채웠는데 그나마 아카시아 꽃이니 싸리 꽃 같은 것이 있어 천만 다행 이였다.
곧이어 색다른 먹이감이 나오는 곳이 바로 보리밭이나 밀밭 이였다.
학교를 파하고 방앗골 작은 고개를 넘고,
토제비(도깨비)가 터를 잡아 주었다는 천하명당 배 감사 묘가 있는 제궁 골을 지나고
무덤들이 여기저기 굽은 산길을 지키고 있는 큰 미질고개를 힘들게 넘어서
작녁골(長여谷) 마실 앞, 사래 긴 밀밭을 한참을 지나서
현애골에서 내려오는 솔천 거랑을 건너고
마지막으로 너부렁 고개를 넘어야 하는 시오리 하교 길.............
한창 커가는 아이들이 허기진 배로 다니기란 여간 힘든 길이 아니다.
그런 하교 길 섶에는 물이 귀하여 자연 논보다가는 보리밭 아니면 밀밭 이였는데 점심 굶고 그 긴 산길을 걸어 다니는 아이들은 부쩍 영양실조로
“오월은 어린이 날
우리들은 자란-다아-아!“ 가 아니고 한마디로
“오월은 배고 푼 달
우리는 굶는다-아-아“
아니면 어디서 흘러서 산골까지 온 노래인지 몰라도
“소고기 껀데기는 상사가 먹고
육군 쫄병은 국물도 없다-아“
뭐 이런 가사의 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볼떼기에는 뿌허연 마름 버짐이 퍼지고 소위 데구빠리라고 칭하던 머리에는 기계 충 버짐이 논둑에 떨어진 황새 똥 자리처럼 허옇게 번지기도 하였다.
그때쯤이면 노고 지리 새가 유난히 하늘 까마득히 올라가서 노골노골 거렸는데 그 새를 처다 본다고 고개를 들고 한참을 보노라면 하늘이 노래지고 뱅글뱅글 돌아서 픽 하니 쓸어 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황토길 양 옆으로 있던 보리밭에는 미처 익지도 못한 보리 목가지가 뎅강 떨어져 나간 것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밭골 초입에서부터 질서 정연하게 머리가 잘려나간 것은 대체로 밭주인이 집에 양식이 떨어져서 보리 이삭이 다 익을 때 까지 도저히 기다리지 못하고 허기진 식구들을 위하여 낮으로 조금 씩 미리 잘라서 먹은 것이고 중구난방으로 잘려진 곳이면 누군가 보리 싸리를 해먹을 셈으로 급하게 훔쳐 간 자리였다.
사람들은 이때를 일년 중 가장 힘든 소위 “보리 고개” 라 하였다.
보리 밭 여기저기 미처 익지도 못한 보리 싹이 싹둑 잘려나간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허기진 사람들의 목줄을 타고 내리는 눈물만큼이나 허하게 보이고
오월 늦바람이 불어도 잘려진 보리대궁은 일렁이지도 못했다.
그런 보리밭 사이로 수수대궁처럼 가냘픈 아이들이 동그란 눈망울로 힘들게 걸어가다가 배 고품을 참지 못하고 급기야 주인 몰래 슬쩍 길섶에 있는 보리밭에서 들어가 보리 꼭지를 뽑아서 보리를 손으로 싹싹 비빈 후에 후-욱 입 바람으로 불어내면 , 싱싱하고 푸른 냄새가 번지는 말랑말랑한 알곡이 손바닥에 남았고 그것을 한 입에 탁 털어 넣고 먹으면 그래도 허기를 간신히 넘기던 시절 이였다.
그런 이유로 명희, 기철이 ,규한, 승현, 칠구 봉구 산골 아이들 하교 길에 자연 남의 보리밭에 들어가는 일이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당당하게 뽑아 먹어도 주인이 크게 뭐라 하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깜부기 이였다.
깜부기는 보리알이 어느 정도 들어찰 때 새카맣케 타들어가면서 깜장 솜털을 송송 피우는 일종의 박테리아 병인데 먹을 것이 궁하니 그것을 아이들이 흟어 먹었다.
그래서 봉구가 하교 길에 흐-죽 웃으면서
“야들아 조짝넘어(저넘어) 보리밭에는 깜부기 굉장이 많테이!”
“그래 우리 깜부기 터래기(털)라도 먹을래?”
“잘못 묵으마 주디(입)하고 옷 다 버린데이”
“가자 깜부기 있는 곳으로!”
사실 깜부기 맛은 니 맛도 내 맛도 없고 그저 약간 비릿한 곰팡이류 냄새가 나는 것 이였고 보리깜부기를 잘못 먹으면 얼굴이고 옷이고 그저 검정 깜부기 가루가 묻어서 쫌 지저분해 지는데 그런 보리깜부기를 하교 길에 입안에 털어 넣고 다니다가 조금 더 지나면 늦 붐에 밭뚜버리 여기저기 조선 뽕나무에서는 검붉은 오디가 익어가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달작지근하고 ,시그럽고, 씨는 오독오독 씹혀서, 한마디로 죽이 주는 맛있는 열매인지라 이 마을 저 마을 아이들 끼리 오디 나무 쟁탈전으로 주먹다짐도 벌어지고 자연 허기에 지치니 이웃 동네 아이들 사이에도 감정도 매 말라 가고 있었다.
비록 마을과 마을 사이를 경계 표시로 줄을 쳐놓은 것은 없었지만 동네 아이들 사이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선이 형성되어서 비록 배가 고파서 길 섶 뽕나무에는 올라갔지만 이웃 마을 안쪽이나 들 깊숙이는 들어가지를 아니 했다.
그 외에 입안에 넣을 수 있는 뱀 딸기, 논 골부리, 새박이, 올무 같은 것이 많았지만 절대로 타 마을 아이들의 눈총에 거슬리는 그런 선 까지는 함부로 들어가지를 아니했다.
입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은 한결같이 익기 전에 아이들 손에 의해서 거덜이 났는데 뱀 딸기나 새박이 같은 것은 별도로 임자가 없는 것이므로 어떤 아이들은
“야 이누마들아 이건 내가 미리 맡아 놓았데이 따 머그면 직이삔다 알았제?”
엄포를 놓기도 하였다.
즉 싸움의 시발은 늘 먹을거리로 시작되는 궁한 시절 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작녁골 앞을 지나가야하는 하교 길이......서서히 신양골 아이들에게 는 공포의 길이 되었다.
앞이마가 유난히 툭 뛰어나와서 별명이 도꾸부리라는 붙여진 아이가 작녁골로 이사를 왔는데..학교도 다니지 아니하고 소위 꼴통이라서 서서히 신양 골 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 한 것이다.
“앞으로 니딴메이(너 같은) 같은 넘들 내손에 걸리면 반 디질줄 알아라 이 자슥들아!
그런 험악한 소리를 도꾸부리가 공공연하게 신양골 아이들에게 쏘아 붙혔다..
원래 신양 골 아이들은 동네가 크고 아이들 숫자가 많아서 하교 길 중간 마을인 작녁골 아이들에게 맞거나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해 신양골 큰 형들인 택준, 원환, 욱동, 흥용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그의 동생들인 진환, 규환이, 택상이,,봉구 ,칠구 등이 오학년을 올라간 후에, 도꾸부리가 나타나면서 작녁골 아이들에게 갑자기 신양골 아이들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소문에 그 도꾸부리란넘의 형은 읍내에서 사는데 공수가 3단, 태권도가 4단으로서 펄펄 날으는 싸움꾼이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자연히 그 동생인 도꾸부리도 저거 형 한데 공수를 배워서 싸움을 잘한다는 소문이 이 산골에 퍼지면서 신양 골 아이들이 지레 겁을 먹고 가능한 작녁골 지나갈 때는 충돌을 피 하려고 조용히 지나가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걸핏하면 도꾸부리가 하교 길 중간지점인 미질 고개에서 터-억 버티고 서서 시비를 걸어오자 아무래도 한바탕 코피 터지는 혈투가 쌍방간에 일어 날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 당시 여자아이들은 싸움이 붙으면
1회전은: 입을 매몰차게 오므린 후에 혀 바닥으로 춤을 뽀글뽀글 이르키면서 상대방
눈을 째려보는 눈싸움을 벌였고 서로 결말이 나지 않으면
2회전은: 머리 끄뗑이를 잡고 서로 많이 뽑으려고 오만 용을 다 쓰다가 한 움큼 씩
머리카락을 뽑아 들고서는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3회전은: 상대방 얼굴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활키였는데 그래서 유독 성깔이 있는
여자아이들은 얼굴에 꼭 손톱자국을 달고 다녔다.
그런 여자 아이들에 비하여 남자 아이들은 싸움이 큰 상처 없이 끝났는데 왜야하면 싸움이 붙으면 무조건 주먹으로 상대방 코를 노렸고 주먹이 왔다 갔다 하다가 어느 쪽이던 먼저 코피가 터지면 대체로 싸움은 중단되었다.
싸우다가 상대방 코에서 코피가 터지면 그것으로서 판정승! 결말이 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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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봉구, 칠구, 명희(남자다), 정내, 택상이 이렇게 셋이서 청소 당번이라서 조금 늦게 마치고 누우렇게 익어가는 보리 밭 사이 길로 깜부기를 몇 개씩 따먹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솔천 꺼랑을 지나고 저 만치 너부렁 고개 마루에 왠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누구로? 싸움 붙었나?”
“싸움 붙은 것 같다!‘
“빨리 가보자!
하고 고무신을 벗어 들고는 등 어리 걸친 책 보따리에서 몽당연필 소리를 달그락거리면서 아이들 모여 있는 그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달려가 보니 역시 그 도꾸불이란 넘이 자기 마을 앞으로 지나가는 신양골 여자아이들 길을 막고 시비를 걸고 있었다.
원래 작녁골 이이들은 소 풀 먹이로 들로 나올 때 솔천 거랑을 기준으로 절대 넘어오는 법이 없었는데 이제 신양골 너부렁재 고개까지 당당하게 들어온 것이다.
사무랍게 생긴 도꾸부리가 험악한 인상을 쓰고 있고 그 앞에 겁먹은 눈초리로 태희,옥순이,후불이가 고개를 숙이고 덜덜 떨고 있었다.
도꾸불이가 버럭 또 고함을 질렀다.
“야 이지지바들아 코쟁이 껌 안줄래?”
“..................”
“껌 안주면 달구락지를 화-악 분질럿뿐다 씨!
“...............”
그동안 자기 마을 앞을 지나가 신양 골 여자아이들을 길을 가로막고 고무줄 줄, 몽당연필을 빼앗기도 하고 씹던 껌을 빼앗기도 하는 도꾸부리란 놈은 정말로 악질 이였다.
그 당시 껌은 조금 뻐덕뻐덕한 오환 껌, 조금 더 부드러운 십환 껌 두 종류가 있었지만 그것 보다가는 코쟁이 껌이 더 부드럽고 오래 씹어도 삭지를 아니하여 아이들에게 최고 인기 품목 이였다.
그러나 산골 아이들이 코쟁이 껌을 구경하기란 밍(목화) 밭에서 돌배 따기요,
비가 안와서 바짝 가물은 밭에 콩 싹 보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국산 오환 껌이나 빠르게 발음하면 욕이 되는? 십환 껌이 있었으나 돈이 없으니 그저 껌을 씹고 싶은 아이들은 소나무 가지에서 나오는 송진을 질겅질겅 씹거나 밀을 한 움큼 입안에 털어 넣고 오래 씹으면 껌처럼 되었는데 송진 껌은 너무 찐득거려서 씹고 나서는 다음날
“입 아구지가 아파서 밥도 못 씹었데이”
말했을 정도로 턱주가리가 얼얼했고 밀로 만들어 씹는 껌은 너무 멀컹 거려서 씹는 맛이라곤 당체 없었다.
그런 산골에 몇 해 전 후불이 언니 후자가 짚차 타고 오는 군 장교에 시집을 간 후에 어쩌다 그 후불이 형부가 갖고 오는 코쟁이 껌을 아이들은 얻어서 질겅질겅 껌을 씹어보기도 했는데 대체로 껌을 좋아하는 여자 아이들은 먼저 오빠들이 껌 씹는 모습을 부러운 듯이 처다 보고 있다가 한참 후에 단물 다 빠진 껌을 얻어서는 조금씩 갈라서 니꺼 내꺼를 정해놓고 씹었다.
잠잘 때는 벽에다가 붙여 놓고 그다음 날 또 씹고 또 씹고 하여도 껌 관리에 따라서 색갈이 틀려지므로 언니 동생 사이에 껌이 뒤바뀌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런대 오늘 도꾸불이란 넘이 옥순이 입안에 있는 그 중요한 코쟁이 껌을 빼앗을 심상 이였다.
그 껌은 어제까지 후불이가 씹던 껌인데 옥순이가
“우리 밭에 자두 익으마 세개주께 니 껌 나줄래?”
“세개말고 네개 줄래? 그라만 내 껌 니 주께”
“4개는안 된다 세개 주께 바꾸자!”
“그럼 자두 3개 나중에 주기로 하고 껌 쪼매마 니 주까?”
“좋아 쪼매춤이라도 주라...근데 니 소문내면 안된데이 우리 오빠 알만 내 달구락지 분질른다 알았제?”
“비밀로 할께...꼭 자두 세개 줘야 한데이”
옥순네 과수원에는 사과 말고 매콤 달콤한 자두나무가 많았으므로 곧 그 자두가 익으면 3개를 후불이에게 주기로 하고 후불이가 벌써 며칠 째 씹던 껌을 옥순이가 일부 양도 받은 것으로서 일종의 외상거래요 물물 교환한 껌 이였다.
그런 껌을 옥순이가 순순히 빼앗기겠는가?
연거푸 도꾸불이 고함에고 불구하고 옥순이가 고개만 숙이고 당체 입안에 든 껌을 줄 의사가 없자 도꾸부리 란넘이 잔뜩 인상을 쓰더니
‘“어쭈 이지지바가 간땡이가 부었네 엉? 니 껌 안뱉을네.칵 직일삘라!
고함을 치자 옥순이는 흴꿈 택상이를 처다 보면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택상이는 옥순이 사촌 오빠다.
“야 고마해라”
택상이가 도꾸불이를 보고 말렸으나 소리가 작았다.
소리가 작은 것은 괜히 시비가 붙고 싶지는 안았기 때문이다.
“너는 뭐야 임마!”
도꾸불이가 뱀눈으로 택상이를 노려보자 택상이는 흠칠 놀랬다.
인상 쓰는 도꾸불이 뒤로 작녁골 오문이,병탁이,병걸이가 버티고 있었고 신양 골 아이들은 봉구,칠구,명희,택상,정내다.
숫 적으로는 우세지만 봉구는 바보인지라 원래 싸움을 못하고 늘 실실 웃기만 하니 별 도움이 안 되는 친구다.
설상 패싸움이 붙어 이긴다 하여도 여차하면 작녁골 큰 형들이 달려와서 신양 골 아이들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너부렁재 고개에서 싸움하는 것은 위치적으로 상당히 신양골 아이들에게는 불리한 셈이다.
“그래도 그렇지 니 지지바들 한데 껌 뺏으면 되나?” 이번에 정래가 말했다.
‘뭐야 이 자식은 엉? 생긴 것은 꼭 지지바처럼 생기같꼬!“
“.....................”
도꾸불이가 정래를 노려보면서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렸다.
그때 정내 옆에 겁먹은 얼굴로 서있던 봉구가 미처 도꾸불이를 피하지도 못하고 도꾸불이 발에 조금 걸렸다.
“이바보 새끼! 내 발을 왜 걸어 엉?” 순 생트집 이였다.
“......................” 봉구 큰 눈이 겁먹은 황소 눈처럼 둥그레졌다.
‘야 바브새끼야 공수 맛 쫌 볼래 엉? 니 지난번 우리 큰집 밭에 까투리 복숭아 따먹었지 임마!“
“....................”
사실 봉구가 도꾸불이 큰집 밥투버리에 있는 까투리 복숭아나무에 며칠 전 얼찐거린 것은 사실이다.
아직 솜털 송송난 까투리 복숭아가 익어서 붉은 실핏줄이 보이도록 탁탁 벌어지려면 한달도 더 기다려야 하지만 혹 그전에 덜 익은 체로 떨어진 것이 있나하고 얼찐거린 것 이였다.
익기 전에 떨어지는 것은 너무 시구러워 먹지 못하나 집에 주워가서 할매에게 부탁하여 보리밥솥에 쪄서 먹으면 그런 되로 먹을 만한 열매였기 때문에 특히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했던 봉구가 늘 남의 집 까투리 복숭아나무 밑에서 떨어진 것이 없나하고 두리번거렸다.
봉구가 대답을 아니 하고 머뭇거리자 도꾸불이란 넘이 홱하니 봉구 사타구니를 발로 차 올렸다.
“어이구얏!”
순간 봉구가 사타구니를 우부려 잡고 주저 앉았다.
“어쭈 이 새끼 공수 앞차기 한방에 지랄이네! 일어나 문디 새끼야!
엉? 공수?....
아이쿠 겁나네 이를 우째노! 저래 큰 소리 치는 것 보면 도꾸불이란넘
제비 물차 오르듯이 날렵하게! 언제 정내 정갱이를 차고 턱주가리를 날릴지 모를 일이다.
도꾸불이란 넘이 누구인가?
벌써 한살 위의 숫 신양 영제가 지난 가을에 콩 사리 해먹다가 얻어터진 적이 있지 않는가?
택상이도 정내도 도꾸불이 험악한 인상과 공수 운운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공수 초단이 태권도 2단도 이긴다카던데...공수도 태권도도 본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는 신양골 아이들은 그저 여동생들 앞에서 바야흐로 개망신 당할 판 이였다.
발에 차인 봉구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 일어나는데 그사이 도꾸불이가 또 봉구 앞가슴을 내리 질렀다.
평소에 다른 아이들에게 봉구 터지는 것은 못 참던 정내도 도꾸불이 공수 운운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야들아 고마 우리는 가자!’
하고 정내가 앞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봉구를 일으키면서 책 보따리를 들고 금새라도 후려칠 것 같은 도꾸불이를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자 홱 도꾸부리가 앞으로 뛰어가서는 이번엔 정내 앞길을 막았다.
“야 지지바 처럼 생긴넘아 니 이 자슥아 지지바들 편드냐?
“아이다 난 지지바들 편 안 들었다, 근데 니 치사하게 지지바들 입안에 있는 껌을 돌라카만 되나?”
“어쭈 이새끼 꼴에 신사 짓 할라카네! 쌔-액끼 확 직이뿐다!”
도꾸불이가 점점 의기양양하게 고함을 치는데 참으로 난감 하였다.
“니 진짜 글칼래? 그카만 니 내 박치기 한번 맛 본데이 엉?”
정내도 할 수 없이 큰 소리를 화-악 질렀지만 속으로는 덜덜 떨었다.
정내는 주먹보다 싸움이 붙으면 박치기를 잘 써먹었는데 도꾸불이 란넘 이마가 너무 뛰어나와서 그 이마에 박치가 하다간 도로 이쪽이 깨질 것 같아서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그때다 택상이가 혀를 갑자기 빼물더니만
“그래 한판 붙자 이 자식아! ” 도꾸불이란 넘을 향해 정내처럼 똑같이 고함을 치는 것이 아닌가?
“어쭈 이 문디 새끼들 떼거리로 덤빌라카네”
“근데 신사답게 우리 주먹으로 코 때리지 말고 불알 발로 차기 없기로 하자!”
“왜 임마! 코하고 불알은 왜 때리면 안 되는데 이 자슥아!”
택상이는 코피가 터지면 아무래도 어제 새로 입은 새 란닝구가 걱정이요,
불알은 지난번 아직 꼬투레도 아니한 소를 올라타다가 소가 화들 짝 놀라서 도망치면서 그만 소 엉치 뼈에 불알을 박치기하는 바람에 얼마나 아팠던지 꼴깍 숨 너머 가는 소리로 엉엉 울었던 기억나고 실은 아직도 사타구니 밑이 얼얼한데, 공수 앞차기를 잘한다는 도꾸불이가 자기 불알을 차면 어쩌나 하고 잔뜩 겁을 먹고 한 이야기였다.
“좋아! 이자슥아 니딴메이 한방에 직이뿔께네 덤펴 이자슥들아!
정내하고 댁상이, 명희는 둘도 없는 친구다.
아무래도 피할 수 없는 한 판 싸움이 붙어야 일이 끝 날 것 같은 사태로 번졌다.
택상이는 싸움을 붙을 때는 혀를 길게 내 빼무는 버릇이 있다.
“야 고마해라”
정래가 험악해져가는 사태를 막으려고 택상이를 말리자 도꾸불리 란넘은 핵하니 정래를 밀치더니 이번에는 택상이에게 다가섰고 아이들은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다.
일촉즉발 화급한 상황에 빠졌다.
에라 이쌍! 하더니 도꾸불이 란넘 주먹이 먼저 택상이 얼굴 정면으로 날랐다.
“퍽!”
“에라 온나(덤벼라) 자슥아!”
“퍽, 퍼퍽 퍽!”
택상이는 싸울 때는, 두 눈 찔끔 감고 오른팔 왼팔 바람개비 돌리듯이 마구 양손을 빙빙 돌리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버릇이 있는데 소위 “마구잡이” 즉 무데뽀 주먹질 이였다.
얼굴에 한방 먼저 얻어맞은 택상이가 혀를 빼물고는 마구잡이 주먹을 휘두르자
도꾸불이란넘도 악착같이 택상이 코만 노리고 주먹질을 하였다.
불알하고 코 때리기 없기로 한 합의는 어디가고 일단 싸움이 붙으니 막 싸움이 되었다.
아무래도 택상이가 조금 밀리는 상황인데 그때 정내가 보다 못해서 도꾸불이란넘 허리를 감아 제키자 언덕으로 띵그르 구르면서 도꾸부리하고 정내가 같이 넘어졌고 그 틈을 안 놓치고 택상이가 번개같이 도꾸불이 넘을 올라타더니 사정없이 도꾸부리 안면을 지어 박았다 그리고 명희는 같이 덤빌까 말까하고 망설이는 나머지 작녁골 아이들에게
“너 이자식들 덤비면 학교에서 죽을 줄 알아! 소리 쳤다.
사실 도꾸부리 외에는 겁이 안 나는 넘들이기 때문이다.
퍽! 퍼퍼벅! 우이.. 씨
퍽 퍽.끙..끙끙거리면서 댁상이 마구잽이가 주먹이 빙빙 돌아가면서 쥐어박고 도꾸부리도 뒤엉겨서 밀리지 않고 치고받으면서 업치락 뒷치락 하는 사이 순간 붉은 피가 튀었다.
도꾸부리 코에서 코피가 터진 것이다.
2:1 싸움에서 정내가 도꾸부리 다리를 잡고 늘어지자 택상이가 코를 정통으로 후려 친 것 이였다.
도꾸부리 코에서 코피가 터지자 택상이는 힘이 솟는지 내리 서너 번 주먹으로 도꾸부리 코를 더 집중 공격하였고 코피는 더 터졌다.
도꾸부리는 밑에서 갈린 체로 댁상이 멱살을 잡고 버둥버둥 거리면서 위로 올라오려고 하였으나 정내가 다리를 잡고 늘어지자 무리였다..
2:1 싸움이 쫌 치사하지만 그동안 도꾸부리가 공수한다는 소문에 얼마나 겁먹었던 세월인가?
그 판에 도꾸부리가 마지막 힘을 다하여 훽하니 정내란놈 이마에 발길질을 하고 정내가 나가떨어지자 이번에는 도꾸불이 택상이를 깔아 뭉기고 벌얼건 코피를 택상이 새 라닝구에 막 풀었다....한마디로 악착같고 지독한 넘 이였다.
보나마나 어차피 터진 코피를 택상이 란닝구에 확 풀어서 란닝구를 못 쓰게 할 심보였다.
“아이고 내 란닝구 내 라닝구 다베린다, 이 나쁜 이자슥아!
화들짝 놀라 고함을 치면서 일어서려하자 도꾸부리는 터진 코를 택상이 란닝구에 마구 문지르면서 씩씩 거렸다.
뒤로 벌렁 나자빠진 정내가 벌떡 일어서서 순식간에 도꾸부리 데갈 바꾸를 두 손으로 잡고 정면으로 박치기를 넣으면서 상항이 끝나버렸다.
박치기는 이마를 노렸지만 눈두덩이 바로 위에 정확하게 박혔다.
“팍!” 조롱박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아이고 어메!”
고통의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고꾸불이란 넘이 드디어 아픔을 참지 못하고 눈언저리를 잡고 뒹굴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정내도 도꾸불이 발길질에 오른쪽 이마가 벌게졌고 엉덩이에 꿔멘 헐렁한 무명 바지도 다 찢어졌다.
도꾸불이가 울음을 터트리자
명희가
“야들아 우리 이겼다, 빨리 도망가자!
외치자 봉구,후불이,옥순이,태희, 택상이, 칠구 우르르 신양골 쪽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다가 숫 신영 변씨 영감님 웅덩이에 다다르자 이번엔 택상이가
“내 란닝구 내 란닝구!”
하면서 피투성이 란닝구를 물에 빨면서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며칠 전 택상이 아부지가 새 란닝구를 사주었는데 오른쪽이 찢어졌고 란닝구 여기저기 피 투성 이였다.
얼마나 귀한 란닝구 인가?
택상이는 란닝구를 물에 몇 번이고 빨아도 영 도꾸불이 코피는 다 지워지지 아니했다.
결국 그날 저녁 저거 아부지가
“에이 이놈아 어디서 싸움질이나 해서 어제 새로 사 입힌 란닝구 옷을 찢어갖고 들어오나 어잉?
하시면면서 지게 작뎅이를 들고 따라오자 교회 쪽으로 갈음아 날 살려라 징징 울면서 도망가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마에 붉은 상처를 달고 어두워 딜 때를 기다리며 아랫방에 숨어 있던 정내도 그날 저녁 마당에서 식구 들이 둘러 않아서 국시를 먹고 있는데 결국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말았다.
왜야하면 도꾸불이리 뒷발질에 이마가 벌게진 것은 어두워질때까지 식구들이 잘 몰랐으나 도꾸불이 어메가 도꾸불이를 앞세우고 마당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낮에 싸울 때 정내 박치기로 도꾸불이 란넘 왼쪽 눈두덩이가 왕 벌에 쏘인 듯 퉁퉁 불어올라 거의 한 쪽 눈은 멍으로 덮어 있었다.
정내네 할아버지가 그저 죄송하다고 도꾸불이 어메에게 아까징끼라도 사서 바르라면서 돈 20환을 주어 돌려보낸 뒤에 할아버지가
“이놈아 하나님이 사람 때리랏꼬 카드나 어잉?
하시면서 고함치시는 바람에 결국 정내도 국시 먹던 싸리 젖 가락을 놓고 찔금찔금 울게 되자 오랜만에 친정 오신 막내 고모가 살살 달래주면서 피부 버얼것게 버겨진 이마를 보시더니
“아이고 덧날라 개 멀구 잎사귀라도 발라 두어야 겠다”
하시면서 거름 무더기 옆에 성큼 자란 개 멀구 잎사귀를 따와서 손바닥으로 탁탁 치셨다.조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