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논증[1].hwp
자살과 안락사에 관한 반대논증을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살펴보았다. 이제 자살과 안락사에 관한 반의무론적 입장에서 나의 입장을 설명할 것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의무론적 사고는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당사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의무론적 관점에서 중대한 문제는 위협받는 당사자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어느 경우이며, 그 권리가 침해 될 수 있는 것은 언제인가 하는 것이다. 자살과 안락사의 경우,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죽음이 죽음을 당하는 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근거에서 그릇된 것인지 아닌지의 경우이다. 이에 의거하여 볼 때, 의무론자는 자살의 도덕적 허용가능성을 별 어려움 없이 정당화 할 수 있다. 생존권이 침해되는 사람과 침해하는 사람이 동일인이기 때문이다. 의무론자의 논변에 있는 중대한 몇 가지 논점에 대해 주목해 보면 첫째, 의무론자의 논변이 전제하는 바는 만일 자살이 그 자체로서 도덕적으로 반대할 만한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일이 죽는 자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일일 것이라는 점이다. 국가의 권리나, 신의 권리에 대한 침해는 문제되지 않는다. 둘째, 자살 행위가 그 자체로서 도덕적으로 허용 못할 게 없다고 말함으로써 자살하는 일이 그릇될 경우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우리는 우리의 권리들 중 일부를 포기할 수 있다. 그렇게 했을 경우, 타인이 그것을 침해했다는 것을 근거로 그릇된 행위를 한다고 할 수 없다. 넷째, 자살 행위가 도덕적으로 허용가능하다고 주장함에 있어 의무론자는 그러한 행위가 합리적이거나 현명한 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과 같은 논변이 자발적 안락사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쉽게 연장될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첫째, 동일한 원리를 그대로 적용. 둘째, 대리인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첫째와 관련해, 자살의 도덕적 허용가능성에 대한 의무론적 논변의 요체는 자살 행위에 함축되어 있는바 자신의 생명이 빼앗겨도 좋다는 데 동의함으로써 죽는 자는 생명권을 포기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정당하다면, 그러한 동의에 따라 누가 행위하느냐 하는 것은 별 상관이 없다. 이는 또한 대리인 원리를 제시한다. 다른 누가 나의 요청에 따라 대리인으로서 내 생명을 끊는 일 또한 허용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자발적 안락사는 자살의 연장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따라서 한 행위의 도덕적 허용 가능성에 대한 정당한 근거는 다른 행위에 적용될 수 있다. 비자발적 안락사는 의무론적 관점에서 볼 때 당사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자발적인 까닭에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보아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할 만한 다른 경우도 있다. 때때로 우리는 문제된 사람이 그럴 능력만 있다면 죽여 달라는 요청을 함으로써 자신의 생명권을 포기하리라는 아주 강한 신념을 느낄 때가 있다.
공리주의자와 달리 의무론자는 자살과 안락사에 대한 대표적(혹은 표준적)인 논증의 대부분에 합의한다. 나아가 의무론에 따르면, 자살이나 안락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당사자의 판단에 강하게 의존한다. 즉 그것은 그 사람의 생명이 갖는 가치에 대한 제삼자인 우리들의 판단과는 무관하다. 또 한 가지 차이는 자발적인 안락사와 비자발적인 안락사와 같은 구분에 중대한 의의를 부여한다.
어떤 것이 맞다 규정지을 수 없지만, 의무론적 입장에서 보면 두 가지 입장이 충돌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안락사 허용 여부는 국가의 생명보호 의무와 개인의 죽을 권리 사이의 충돌 관계 속에서 논의된다. 개인의 자율에 기초하여 그의 죽음을 처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하나의 관계, 즉 인간이 자신의 현존 속에서 사회적 존재로써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인간들과 맺는 관계와 동떨어져서 생각 할 수 없다. 인간은 고유한 정체성과 정신을 가진 존재로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 있고, 그 속에서 인간적 생존조건도 필요로 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바로 이 한도 내에서 국가의 생명보호 의무는 그 효력을 발한다. 반대로 국가의 생명보호 의무가 발동되기 시작하면 개인의 생명처분권을 적극적으로 인정해 줄 수는 없게 된다. 이것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헌법상의 인간존엄에 부합하는 결론이기도 하다. 국가의 생명보호 의무는 형법상의 촉탁,승낙 살인죄와 자살관여죄 규정들을 통해 구현된다. 하지만 법체계의 논리상 규법적으로 생명처분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더라도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 소극적 안락사, 간접적 안락사 혹은 판례에서처럼 무의식 상태의 환자의 경우 적극적인 생명처분권과는 별개로 자기결정권이 작동할 여지는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생명권 보장이 더 이상 치료가능성 없이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한계에 놓인 개인에게 생명을 유지하라는 잔혹한 요청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가가 개인의 생명권을 온전히 보장해 주지 못 할 때, 생명보호를 위해 국가가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비용의 부담을 개인에게 부과시켜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자유롭게 발현될 수 있는 기회들을 감소시키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종교적 논의를 떠나 법적으로 보면, 인간이 자신의 생과 죽음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죽을 권리’라는 개념은 자신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국가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 불과하지 자신이 죽을 권리가 있으므로 죽여 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적극적 권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 죽을 권리로부터 바로 적극적 안락사의 권리가 추론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따라서 죽여 달라는 요청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안락사라는 특별한 한계상황이 설정되어 있더라도 적극적 안락사는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추상적인 관념론으로서 이상적이기는 하나 인간사회의 현실적.사실적 문제를 도외시한 것으로서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훼손할 수 있는 법적 권리는 아니더라도 사실상 처분할 수 있는 지위로서의 권능 내지 자격은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권능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적극적 안락사의 허용근거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실상 처분권으로서의 자기결정권 행사는 자신이 직접 실시하거나 또는 타인에의 위임을 통해 간접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보장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와 같이 안락사를 인정하더라도 죽을 의사를 가진 자가 자신을 살해하도록 허용하거나 요청할 자격을 가질 뿐 그로부터 자신을 살해할 권리가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만약 권리로 인정하게 될 경우 법적으로 그 권리의 상대방, 이를 테면 환자로부터 안락사 시술의 촉탁을 받은 의사에게는 안락사 시술의 의무가 발생한다고 해야 하는데, 이는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죽을 의사를 가진 자에게 자기 자신을 살해할 권리는 부여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자격 내지 권능은 인정된다고 할 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격의 행사로 인해 타인 또는 사회의 법익에 대한 침해나 남용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이를 형법적으로 금지시켜야 할 것이고, 이러한 가능성이 없거나 있더라도 제도적으로 거의 차단이 가능하도록 보완이 된다면 금지시킬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엄격한 허용요건과 절차 하에서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