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The Tae Baek Mountains, 1994)
7.29 (참여 85명)
전쟁, 드라마 | 한국 | 168 분 | 개봉 1994.09.17
임권택
안성기(김범우), 김명곤(염상진), 김갑수(염상구), 오정해, 임창정... 더보기
국내 청소년 관람불가
산만큼이나 높은 사람들.... 골만큼이나 깊은 아픔들....
해방후, 좌우익의 대결이 심화되는 파란의 역사속에서 48년 10월 여순 사건이 터진다. 전라남도 보성군 당 위원장인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좌익들은 벌교를 장악하고 인민 재판을 열어 반동 숙청을 한다. 하지만 반란군 주력의 패퇴로 조계산으로 후퇴하고 만다. 벌교로 돌아온 경찰 등 우익세력들은 좌익 부역자와 가족들을 연행하여 조사하고 대동청년단 감찰부장인 염상구는 형 염상진에 대한 증오심으로 이 일에 앞장선다. 수도경찰 주도로 손가락 재판이 벌어져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하는 가운데 염상구는 빨치산 강동식의 아내 외서댁을 겁탈하고 반란 때 처형된 유지의 자식들은 멸공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좌익 가족에 대한 테러를 자행한다.
한편, 전라남도 도당 직속의 정하섭은 무당 소화의 집에 잠입하고, 소화는 그의 심부름을 해주면서 둘 사이에는 신분을 초월하는 사랑이 싹튼다. 순천 중학교의 교사이며 민족주의자인 김범우는 벌교 내에서 벌어진 좌익의 잔인한 반동숙청과 우익의 과도한 보복 양쪽 모두를 비판하고 막아보려고 애를 써보지만 빨갱이로 몰리는 수모를 당하고 멸공단에게 테러를 당하고 만다. 산속 깊이 자리잡은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심재모가 이끄는 계엄군이 벌교에 도착한다. 벌교에 남은 좌익 가족들의 생활은 비참의 극치를 달리고 지주들은 농지 개혁을 피하기 위해 논을 빼돌리기 시작한다.
지주와 소작인들간의 갈등과 대립이 발생하고 염상진은 율어면을 공격하여 해방구로 장악한다. 해방구가 된 율어면에서는 무상 분배에 의한 토지 개혁이 실시되고, 주민들의 높은 호응을 얻지만 심재모의 기습 작전으로 빨치산들은 다시 산으로 쫓겨간다. 산자락 마을을 중심으로 벌이는 심재모와 염상진의 싸움은 점점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민족주의자인 김범우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염상진의 빨치산은 49년 겨울부터 시작된 군경의 대대적인 동계 토벌작전으로 철저히 괴멸되어 가고, 혹독한 굶주림과 절망 속에서 드디어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소설 후반부에서 빨치산의 산중 작전이 주로 표현됨에도 영화에서는 북한 정규군의 철수시기로 마무리되었다. 이유는 애초 2부작으로 기획된 것이 1부작으로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즉 6.25 남침 전의 빨치산-구빨치에서 전쟁후의 신빨치로 넘어가는 기점에서 1부작이 끝난다. 빨치산 활동에 한한다면 9.15 유엔군의 반격 전후가 기점이 될 것이다. 후속작으로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이보다 4년 전에 만들어졌던 <남부군>에서 시간적으로 정확히 이어받는 신빨치 스토리가 있으므로 다른 감독이 만든 두 영화임에도 연작과 유사한 줄거리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캐릭터는 다르지만 두 영화 모두 안성기가 주인공으로 나와서 그런 느낌도 없지 않다.
거대한 열전의 한가운데에서 사실적 전쟁씬에 치중했던 <남부군>과 달리 <태백산맥>은 그 비극적 결과에 이르기까지 주고받았던 갈등의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분히 이념적인 지향점이 엿보이는 조정래의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대중의 정서와 가깝게 각색이 된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을 못마땅해 하는 독자도 있지만 대중문화로서 가지는 영화의 위치를 생각해볼 때 작가주의적 소설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임권택 감독 또한 영화계의 작가라면 빠질만한 레벨은 아닐진대, 힘을 주지 않은듯 허허실실 시대를 바라보는 강물같은 시선에서 대가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넘버3로 잘 알려진 송능한 작가의 각색은 전반적으로 평가할만 하지만 안성기가 배역한 대사에서 다소간 문어적인 주제의식이 남발되는 점이 영화적인 느낌을 손상시킨다. 제한된 러닝타임에 걸맞게 곁가지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더 축소시키는 것도 가능했으리라 본다. 특히 제각기 등장하는 세명의 여성 캐릭터들은 스쳐지나가는 정사신 이외에 별다른 존재감이 없다고 느껴진다. 역사 속에 페미니즘을 포함시키려는 의도였다면 아무래도 소화불량이다.
극중 최고의 캐릭터는 단연 염씨 형제 동생역으로 나온 김갑수이다. 악역이면서도 미워할수만은 없는 모순적 캐릭터는 순수한 사상과 지식으로 무장한 형(김명곤)의 모습보다 차라리 더 인간적이기도 하다. 지독히도 서로를 증오하는 형제들이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서로를 용서하기도 한다. 조직의 규범 속에서라면 핏줄을 나눈 형제라도 죽여야만 했던 당시의 비극을 극복해가는 우리의 자화상인 것이다.
깊은 물 / 태백산맥 OST 중에서
돌아눕는 山 (태백산맥 OST)
김수철이 담당한 영화음악 중 국악과 크로스오버 된 작품으로는 <서편제>(1993)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그러나 김수철은 이미 <고래사냥>(1984)부터 영화음악을 작업했고, <허튼소리>(1986)에 아쟁 음악을 삽입하고 있으니 <서편제>를 먼저 떠올리는 이의 짐작보다는 퍽 오랜 세월 영화 속 소리를 실험해 온 셈이다. 그 중 1994년, 그러니까 <서편제>의 이듬해에 작업한 <태백산맥> OST는 국악을 차용한 사운드트랙으로서 한 단계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 듯 보이며, 김수철 자신도 매우 아끼는 앨범이라 알려져 있다. 전통악기에서 흔히 쓰이는 대금과 피리, 대북, 꽹가리는 물론 20인이 연주하는 오고북의 웅장함과 함께 아프리카 민속 타악기까지 끌어들여 다채로운 소리의 조화를 이루게 한다. 김수철의 OST에 익숙하다면 조금은 식상할 신디사이저의 음색도 여전하지만, 김수철 본인은 ‘전통악기와 현대의 악기가 어떻게 만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사용 하’며, ‘소리가 나는 모든 악기를 사랑한’다 고백하고 있으니 그의 일관된 음악적 실험을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KINO] 1996.4 인터뷰 중). <태백산맥> OST 전반에는 다소 실험적인 곡들이 포함되어 있어 듣기가 마냥 편하지는 않으나 트랙 중반부터 15분간 이어지는 음악적 경험, 즉 그윽하게 진동하는, 신디사이저 없이 대금 산조로 연주되는 4번 트랙 ‘깊은 물’부터 주제가 격인 ‘돌아눕는 산’의 태평소와 피리소리, ‘슬픈 골짜기’의 현란한 오고북 연주, 듣는 이의 심장이 고동치듯 깊고 느리게 울리는 ‘상흔’의 대북 소리까지 이어지는 경험은 상당히 근사하다. 들을수록 질리기 쉬운 여느 크로스오버 음악과 달리 <태백산맥>의 음악들은 경험할수록 귀에 감긴다는 신기한 장점도 지닌다. <태백산맥> 음악은 1994년 제33회 대종상 음악상과 제16회 청룡상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http://www.56.com/u22/v_NTM4MDc2OTk.html
http://www.56.com/u61/v_NTM4MDcwMzQ.html 태백산맥 (The Tae Baek Mountains, 1994) -안성기(김범우), 김명곤(염상진), 김갑수(염상구), 오정해, 임창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