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6월6일~2024년 8월 20일
박애심 집사님은 우리 교회에서 최고의 장수를 누리신 분이다. 103세를 살다가 가신 분은 죽을 때 어떤 말을 남기게 될지 궁금하지 않은가? 눈을 감기 하루 전 고인의 입으로 했던 마지막 고백이 감동이었다. 집중치료실에 계시는 집사님을 뵈었는데 어쩐지 다실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모든 죄가 다 용서된 것과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천국을 선물로 주신다는 말씀을 전해드렸다. 이 말씀이 땅에서 마지막 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집사님은 투명한 산소마스크가 씌워진 채로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믿음 고백을 했다. 입 모양이 너무 아름다웠다.
집사님은 나이답지 않게 유난히 귀가 밝고 눈이 좋으시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버스 승강장에 내리는 사람들까지 다 알아보신다. 더욱 감사한 것은 청력이 좋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잘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잘 듣고 잘 볼 있는 것도 특별한 은총이다.
보통 할머니들과 이야기하고 나면 금방 배가 고파오고 목이 아파온다. 싸우듯이 말해야 하므로 누가 들으면 화를 내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집사님은 젊은이와 대화하듯이 조용하게 해도 다 알아들으신다. 103세 노인답지 않게 청력만 좋은 게 아니라, 말이 통한다. 곧장 농담도 잘하신다.
집사님은 나를 만날 때마다 항상 묻는 단골 질문이 있다. “애들은 몇이나 여웠소.” 항상 같은 멘트지만 싫지 않다. 어쩌다 질문이 더디어지면 묻지 않으실까 봐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다려진다. 한때 몸이 아프셨을 때 고정 질문을 하지 않았다. 노인들은 평소 하던 대로의 행동하지 않으면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는 증거다. 어쨌거나 자기 몸 추스르기도 힘이 드는데 담임목사의 자녀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두니 고마운 일이다.
요양원에 머무시기도 했는데 생활에 불편함에 대해서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다. 항상 편하게 잘살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단순히 나를 안심시키려는 말로 들리지 않는다. 드문 일이지만 요양원 생활을 잘 누리고 계시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면 누리는 법도 체득하면 좋을 듯싶다.
103년간, 이 땅에서 사신 분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으셨을까? 장수는 하나님의 축복이기도 하지만, 인생길에 꽃길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기치 않는 어려움을 만나기도 한다. 집사님 역시도 큰 아픔을 겪으셨다. 그렇지만 그 일로 말미암아 집사님 가정에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생겼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겪었던 일 중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 왜 그런 어려움이 있었는지, 이 땅에서는 희미하게 깨닫지만, 천국에 가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답답했던 일들도 다 나를 사랑해서 주신 것임을 알게 된다. 집사님께서도 힘든 일, 103년 동안 살게 한 이유도 다 풀리셨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의 건강하게 오래 사는 데 관심이 크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인생을 사느냐이다. 그리고 생애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있다. 앞서 말했지만, 고인이 했던 마지막 고백인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믿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눈을 감으며 내 입술로 고백할 수 있는 최고의 복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