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나르는 밀밭
Ramparts of Paris, The
Paris: Summer, 1887
(Manchester, Whitworth Art Gallery, University of Manchester)
누에넨 예배당으로 가는 사람들
http://my.netian.com/~jclee2/Vincent/vincent.htm
Vincent Van Gogh의
모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
http://www.vangoghgallery.com/
고흐의 편지글 모음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신성림 옮김, 예담 출판사, 1999.
●될 수 있으면 많이 감탄해라.(1874.1)
●굳이 변한 것을 말하자면 당시에 내가 생각했고 믿고 사랑했던 것을 지금은 더 생각하고 더 믿고 더 사랑한다는 것이다.(1880.7)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1880.7)
●뭐가 중요하지? 논리인가, 나 자신인가?......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고, 살지 않을 것이고, 살아서도 안 된다. 나는 열정을 가진 남자에 불과하고, 그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얼어붙든가 돌로 변할 것이다.(1881.12)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보여주겠다.(1882.7)
●나의 목표는 더 엄밀하고 강렬한 표현을 하는 것이다.(1882.8)
●그것은 누가 가르쳐 준 방법이나 체계 안에서 습득한 인습적인 언어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에서 나온 언어다.(1882.9)
●그러는 동안 복권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깊은 의미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마지막 남은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샀을지도 모르는 복권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그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의 고통과 쓸쓸한 노력을 생각해 보렴.(1882.10)
●위대한 일이란 그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이루어진다......그림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다.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인내심을 갖고 삽질을 해서 그 벽 밑을 파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럴 때 규칙이 없다면 그런 힘든 일을 어떻게 흔들림 없이 계속해 나갈 수 있겠니?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1882.10)
●늙고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인물화가들과 거리를 산책하다가 한 사람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데 그들은 "아, 저 지저분한 사람들 좀 봐" "저런 류의 인간들이란"하고 말하더구나. 그런 표현을 화가한테서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그래 그런 일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런 장면은 사람들이 가장 진지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라 느껴졌다.(1883.3)
●나는 이 세상에 빚과 의무를 지고 있다. 나는 30년간이나 이 땅 위를 걸어오지 않았나!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림의 형식을 빌어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다.(1883.8)
●고요하게 밝게 빛나는 하늘은 라일락 색조를 간신히 아낼 수 있을 정도로 부유스름하다. 그것은 빨강, 파랑, 노랑이 떨리면서 반사되는 흰색이면서도, 아래쪽에 있는 옅은 안개와 흐릿하게 뒤섞여 섬세한 회색 빛을 띠고 있다.(1883.11)
●나는 그 개의 길을 택했다는 걸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개로 남아 있을 것이고, 가난할 것이고, 화가가 될 것이다.(1883.12)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1884.10)
●밖으로 나가 현장에서 직접 그려야지! ...... "나는 그림(예술작품) 속에서, 사람-예술가를 찾는다. 나는 사람-예술가를 사랑한다"(졸라의 말) ...... 사실 회화에서는 일상적인 인물만큼 그리기 힘든 소재도 없다. ...... 전체적인 구성이나 해부학적인 묘사도 아카데미 사람들 눈에는 잘못된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 그림은(삽질하는 여인) 살아 있다. ...... 밭갈이하는 농부의 사진을 찍는다면, 사진 속의 농부는 더 이상 밭을 갈고 있지 않을 게 분명하다.
미켈란젤로의 인물은 어떠냐? 다리는 길쭉하고 엉덩이도 펑퍼짐하지만 아주 근사하지 않니. 세레에게 전해다오. 밀레와 레르미트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라고. 그건 그들이 분석적인 방식으로 대상을 검토한 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대상에서 받은 느낌에 따라 그렸기 때문이다. 대상을 변형하고 재구성하고 전환해서 그리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 '부정확성'을 배우고 있다. 그걸 거짓말이라 부르겠다면, 그래도 좋다. 그러나 그 거짓말은 있는 그대로의 융통성 없는 진실보다 더 '진실한 거짓말'이다.(1885.7)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1885)
●성당보다는 사람의 눈을 그리는 게 더 좋다. 사람의 눈은, 그 아무리 장엄하고 인상적인 성당도 가질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다.(1885)
●사람들이 싹을 틔울 수 있는 힘은 바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겠지.(1887)
●나는 그 동안 힘든 일을 많이 겪은 탓에 빨리 늙어버린 것 같다.(1887)
●신은 이상한 존재여서 솔직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1887)
●내가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글을 쓰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네 믿음이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 내 소중한 동생아. 차라리 춤을 배우든지, 장교나 서기 혹은 누구든 네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하렴. 네덜란드에서 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그래 차라리 바보짓을 몇 번이고 하렴. 공부는 사람을 둔하게 만들뿐이다.(1887)
●나는 아직도 말도 안 되는 연애사건을 일으키곤 한다. 대개는 그런 사건으로 창피와 망신만 당할 뿐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 것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종교나 사회주의에 심취한 적이 있는데 그때 사실은 사랑에 빠졌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사랑에 빠지지 못해서 종교나 이념에 몰두하게 된 것이지.(1887)
●글을 쓰고 싶다면 행동을 해라.(1887)
●많이 즐기고 많은 재미를 느껴라.(1887)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1887)
●대부분의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발전하게 돼 있다.(1887)
●공부는 독창성을 죽일 뿐이다. 네 자신을 즐겨라! 부족하게 즐기는 것보다 지나치게 즐기는 쪽이 낫다.(1887)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구원과 같다.(1887)
●나는 현대 작품이 이전의 작품처럼 도덕적인 설교를 하지 않아서 아주 좋다. "선과 악도 설탕이나 황산처럼 화학 생성물에 불과하다"(1887)
●"재능은 오랜 인내로 생겨나고, 창의성은 강한 의지와 충실한 관찰을 통한 노력으로 생긴다"(플로베르).(1988.3)
●이곳의 밤은 지독하게 아름다울 때가 있다.(1888.4)
●요즘은 사람이야말로 모든 것의 뿌리라는 생각이 든다.(1884.4)
●이 세계는 그(신)가 망쳐버린 습작에 불과하다......이 세상은 신이 뭘 하는지 잘 모를 때, 제정신이 아닌 불행한 시기에 서둘러서 만들었음이 분명하다.(1884.5)
●압도될 것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완벽함 앞에서 아무리 큰 무력감을 느끼더라도 우선 시작은 해야겠지.(1888.6)
●북서풍이 한창일 때 이 그림을 그렸는데 오죽했으면 이젤을 말뚝으로 고정해야 했네. 자네에게도 권하고 싶군. 이젤 다리를 흙 속에 박고 50센티미터 길이의 말뚝을 그 옆에 박았네. 그리고는 이 모두를 로프로 묶어야 하네. 그렇게 하면 바람이 불어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지.(1886.6)
●실제와 똑같이 그리고 색칠하는 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이 아니다. 설령 현실을 거울로 비추는 것처럼 색이나 다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일이 가능할지라도, 그렇게 만들어 낸 것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1888.6)
●우리를 이끌어주는 것은 우리의 감정, 그리고 자연에 대한 진지한 느낌 아니냐. 그런데 이런 감정이 너무 강할 때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한 채 붓을 휘두르게 된다.(1888.6)
●뛰어난 선생 지엠에 따르면, 남자는 더 이상 발기할 수 없는 순간부터 야망을 품게 된다고 한다.(1888.6)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땐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운송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1888.6)
●그런 작업을 마치고 나서 긴장을 풀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술 한 잔 마시거나 독한 담배를 피우면서 멍하니 취해 있는 것이다.(1888.7)
●전통은 무능하고 나태하다. 물론 혁신적인 화가들은 여전히 외롭고 가난하며 미친 사란ㅁ 취급을 받고 있다. 바로 이런 시선이 그들을 광기로 몰아 넣지......그가 단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자기 희생과 자기부정, 그리고 상처받은 영혼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 역시 그만큼 힘든 일이다......아마 내가 더 많이 지치고 더 많이 아파할수록, 우리가 말한 이 위대한 예술의 부흥기에 더 창의적인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1888.7)
●우리는 광휘를 발하는 선명한 색채를 통해 영원을 표현해야 한다.(1888.8)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이다.(1888.8)
●모델을 구하지 못해서 대신 내 얼굴을 그리기 위해 일부러 좀 좋은 거울을 샀다.(1888.9)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우리가 써버린 돈을 다시 벌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전혀 없다. 그림이 팔리지 않는 걸...... 그러나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1888.10)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1889.1)
●수확하느라 뙤약볕에서 온 힘을 다해 일하고 있는 흐릿한 인물에서 나는 죽음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그건 그가 베어들이는 밀이 바로 인류인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이다. 그러므로 전에 그렸던 <씨뿌리는 사람>과 반대되는 그림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죽음 속에 슬픔은 없다. 태양이 모든 것을 순수한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환한 대낮에 발생한 죽음이기 때문이다.(1889.9)
●내가 아팠던 동안 비와 함께 눈이 왔나 보더라. 풍경을 보기 위해 밤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한 번도, 결코 한 번도 자연에서 그토록 가슴 아프고 그토록 감동적인 인상을 받아본 적은 없다.(1890.1)
●작년에 어디에선가 글쓰는 일과 그림 그리는 일은 아이를 낳는 일과 같다는 글을 읽었습니다.......저는 다른 무엇보다 제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비록 그림 그리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 받지 못하는 일 중 하나이지만 저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유일한 고리거든요.
생 애
0.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브란반트 지방의 작은 마을 그루트 준데르트에서 엄격하고 보수적인 칼뱅파 목사 테오도루스 반 고흐와 온화한 성품의 안나 코르넬리아 카르벤투스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다.
0. 1877년 5월에 신학 대학에 들어감
0. 1878년 7월 신학 공부를 그만두고 전도사가 되어 가난한 광부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벨기에의 탄광지역인 보리나주로 감. 그러나 그의 지나치게 엄격한 태도와 광적인 신앙심, 가난한 사람에 대한 봉사정신으로 인해 다른 종교인들과 마찰을 빚게 되고 여러모로 힘든 생활을 함.
0. 1879년 여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 동생 테오가 경제적인 지원을 약속. 이후 테오는 고흐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경제적, 정신적 후원자가 된다. 고흐는 동생 테오와 668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이 편지들을 통해 고흐의 생각의 편린들을 맛볼 수 있다.
0. 1888년 12월 23일 고갱과 심하게 다툰 후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름. 그후 환각증상을 보여 정신병원에 감금되기도 했다. 고흐는 이 때 자신이 자른 귀를 싼 종이 뭉치를 라첼이라는 매춘부에게 "이걸 잘 간수해" 라는 말과 함께 건네주었다 한다.
0. 1890년 7월 27일, 스스로 가슴에 총탄을 쏘아 자살함. 이틀 후인 7월 29일 새벽 1시 30분에 동생 테오의 품에 안긴 채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파란만장한 생을 38살로 마감함.
그로부터 6 개월 후에 동생 테오도 33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고흐의 무서운 광기는 가장 가까운 자를 기어코 태워 버리지 않고는 못배기는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고흐는 평생 동안 879점의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