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애’, ‘꽃벵이’. 언뜻 들으면 과자나 빵 이름 같다. 그러나 이것들은 딱정벌렛과의 갈색거저리와 흔히 굼벵이로 불리는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의 애칭이다. 장수풍뎅이를 포함해 이들 곤충 3종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식품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됐다. 대다수 사람은 곤충을 보면 징그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아무리 정부가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원료로 사용하도록 허가했을지라도 소비자들이 혐오식품이라며 기피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 때문에 이들 곤충을 식용으로 개발한 농촌진흥청은 벌레라는 이미지를 없애고 식생활에서 더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공모를 통해 이름부터 바꾸는 작업을 추진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일까. 이들 곤충이 식품 원료로 허가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많은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다. 한식 양식 일·중식 등 각종 요리가 개발됐는가 하면, 지난해엔 곤충식품전문 레스토랑이 문을 열어 성업 중이다. 또한, 국내 대형 병원에서 환자식을 위한 레시피가 개발돼 내년부터 본격 적용할 예정이다. |
왜 곤충인가지난 13일 전북 전주에 있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이하 농과원) 농업생물부 강당에는 곤충에 관심 있는 농민을 비롯해 업계, 연구기관, 학계 관계자 등 100여 명이 모여 이러한 정보를 공유하는 기회를 가졌다. 농과원 곤충산업과를 주축으로 한 관련 공무원들의 동아리 모임인 ‘곤충식품연구회’의 창립을 기념하는 학술행사였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먹을 것이 남아도는 판국에 곤충까지 식품으로 연구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다.
FAO(국제식량농업기구)는 전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넘는 2050년부터 지금의 2배에 달하는 식량이 소비될 것으로 예측하고 닥쳐올 식량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곤충을 지목했다. 닭, 소, 돼지, 생선 등과 같은 다른 육류에 못지않은 단백질 함량(50% 이상)과 몸에 좋은 리놀레산과 올레산 같은 불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높고 동물성 식이섬유인 키토산 외에도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까지 골고루 함유한 곤충의 영양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곤충은 또 대부분 가축보다 친환경적이다. 소·돼지 등 가축이 배출하는 메탄, 이산화질소,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는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발생량의 18% 이상을 차지하는데, 갈색거저리의 경우 1kg당 돼지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토지이용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곤충은 사료 및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어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1년에 여러 번 세대가 순환되므로 빠른 기간에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면에서 곤충을 대체식량으로 활용하면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단백질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 각국이 곤충식품 개발을 비롯한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국내 곤충식품 산업화 현황우리나라는 그동안 곤충을 식품으로 이용하려면 30년 이상 먹어온 근거가 있어야만 가능해 식품공전에 등록된 식용곤충은 메뚜기와 누에(번데기, 백강잠) 두 가지뿐이었다. 그러나 2011년부터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 식품화 연구를 수행해 2014년 7월 식약처로부터 갈색거저리 유충(애벌레)을 한시적 식품원료로 인정받은 데 이어 9월에는 흰점박이꽃무지 유충, 그리고 올해 들어 장수풍뎅이를 추가로 인정받았으며, 하반기에는 귀뚜라미도 등록을 추진 중에 있다.
이처럼 곤충을 한시적 식품 원료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기원 및 개발 경위, 원료의 특성, 안전성 등이 확보돼야 한다. 위생적이고 소비자가 선호하는 모양을 갖도록 하기 위한 세척, 배변, 살균 등의 최적조건을 확립하고, 각종 영양구성비 분석과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한 독성실험이 필수다.
야외에서 채집할 경우 곤충이 먹는 물질이나 서식 환경 등에 대한 파악이 쉽지 않아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농진청은 식용곤충사육 지침에 따라 실내에서 정해진 사료로 사육함으로써 안전성을 확보했다.
농진청은 식용곤충을 귀중한 식량자원으로서의 가치 확대와 다양한 메뉴 개발을 통해 ‘맛있는 건강식’의 위상을 확립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경민대 김수희 교수와 한식 양식 일·중식 후식 및 음료 등을 개발, 시식을 통한 전문가들의 긍정적 의견을 도출했으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는 1년 반에 걸쳐 환자 치료식을 개발, 내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소화능력이 떨어져 육류 섭취가 어려운 환자들에게 위에 부담이 적은 곤충 단백질을 섭취토록 하겠다는 방안이다.
식용곤충 전문 레스토랑도 인기다. 기능성과 영양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쿠키 등의 과자류와 양갱, 에너지바, 한방차 등을 연구해온 벤처기업 이더블(주)는 국내 최초로 서울 동작구 흑석동과 부산 동래구 안락동에 식용곤충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식용곤충연구소는 식용곤충식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 ‘빠삐용의 키친’을 오픈하고 예약제로 운영할 만큼 성업 중이다. |
곤충산업의 미래지상 최대의 미활용 자원으로 중요한 연구개발 대상이 되는 곤충산업 활성화를 위한 각국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와게닝겐 대학이 94만 유로를 투자해 육류 대체품으로 친환경 곤충 이용을 위한 상품화 연구개발에 한창이고, 중국은 170여 종의 식용곤충 외에도 10종의 약용 곤충을 대량사육하고 있으며, 사료용 거저리의 수출을 통해 10조 원 규모의 곤충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벨기에도 지난해 풀무치·벌집나방 등 곤충 10종을 식용으로 규정하고, 정부에서 지원하고 있다.
멕시코는 549종,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등지에서 164종의 식용곤충을 이용하고 있고, 특히 태국은 동북부 7개현에서 50여 종의 곤충을 볶음 양념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메뚜기·개미 통조림이,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꿀벌이 올려진 커스터드푸딩이나, 메뚜기가 들어간 타코 등이 레스토랑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으로 인해 세계 곤충산업 시장은 2007년 11조 원, 2020년 38조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곤충산업은 700억 원 규모로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지만, 그만큼 잠재적 가치가 충분해 정부 차원의 연구개발 노력이 활발하다. 농진청은 애기뿔소똥구리에서 추출한 신규 항생 펩타이드 물질인 코프리신이 포도상구균 감염증 및 장염 치유 효과 등이 있음을 임상실험을 통해 입증했으며, 아울러 이를 화장품 소재로 이용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또한, 왕지네에서 추출한 펩타이드는 아토피 유발 시 증가하는 면역 글로블린E와 히스타민 억제에 효과가 있음도 확인했다.
농진청은 현재 6종의 식용곤충 종을 오는 2018년까지 10종으로 늘리고, 이들을 활용한 특수 의료용 식품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암환자, 위장장애, 삼킴장애 환자 등을 대상으로 임상 영양실험을 추진하고 있으며, 염증, 비만, 치매 등 치료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
문제점과 대책식용곤충산업 활성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관리 체계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 농진청은 식용곤충 사료의 종류, 사육환경 등 사전관리에 필수적인 내용을 규정해 고시하고, 식용곤충 생산자 관리 또는 생산이력추적제도를 마련해 식용곤충 사육농가에 대한 사후관리도 강화할 계획이다. 수입곤충에 대해서는 유전정보 확보 및 판별 마커를 개발하고 향후 곤충 생산·가공·판매 체계 확립을 위해 ‘곤충식품소재개발사업단’을 운영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미 곤충식품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점도 많다. 우선,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해소하기 위한 곤충식품의 영양적 가치와 개발 당위성에 대한 홍보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또한, 식품을 비롯한 화장품, 의약품 등 관련 업계가 이를 다양한 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별 적성과 용도에 관한 연구를 병행하고, 무엇보다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고부가 제품 개발 및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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