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대를 원해요〉는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의 아주 매력적인 곡 〈Je te veux〉(주 테 뵈)입니다.
프랑스어 Je te veux를 직역하면 “나는 당신을 원해요”, 조금 부드럽게 번역하면 “나 그대를 원해요”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이 곡에는 사티의 사랑 이야기와 파리의 화려한 벨 에포크 시대가 함께 얽혀 있습니다. 다만 흔히 알려진 이야기 가운데는 사실과 전설을 구별할 필요도 있습니다.
1. 먼저, 이 곡은 어떤 곡일까요?
작곡은 에릭 사티, 가사는 프랑스의 작사가 앙리 파코리(Henry Pacory)가 썼습니다. 원래부터 단순한 피아노곡이 아니라 노래와 피아노를 위한 ‘노래하는 왈츠(valse chantée)'였습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자료에도 사티 작곡, 파코리 작사, ‘valse chantée’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피아노 독주곡은 이 노래를 사티가 다시 피아노곡으로 만든 판본입니다. 그래서 피아노만으로 연주해도 이상하게 사람이 노래하는 듯한 선율이 느껴집니다.
제목은 강렬하지만 음악은 전혀 거칠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 곁에 있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조용히 고백하는 듯합니다.
2. 이 곡이 태어난 곳은 ‘콘서트홀’이 아니라 파리의 카바레였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파리는 이른바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였습니다. 몽마르트르에는 화가, 시인, 배우, 작곡가들이 모였고 카페와 카바레, ‘카페 콩세르(café-concert)’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젊은 사티도 이 화려한 파리 음악계의 중심에 있던 성공한 작곡가가 아니었습니다. 생활이 넉넉하지 않아 카바레와 술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생계를 이어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바로 그 환경에서 사티는 대중이 쉽게 들을 수 있는 왈츠와 샹송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Je te veux〉는 우리가 아는 〈짐노페디〉나 〈그노시엔느〉의 신비롭고 쓸쓸한 사티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여기에는 살롱과 카페, 샴페인, 춤, 사랑의 속삭임이 있습니다.
3. 이 곡을 유명하게 만든 여인 ― 폴레트 다르티
이 곡과 가장 직접적으로 관계있는 여성은 화가 쉬잔 발라동이 아니라 당시 가수였던 폴레트 다르티(Paulette Darty)입니다.
그녀는 당시 “느린 왈츠의 여왕”으로 불리던 인기 가수였습니다. 사티는 한동안 그녀의 피아노 반주자로 일했습니다.
〈Je te veux〉는 1902년 프랑스 저작권협회 SACEM에 등록되었고, 1903년 파리의 라 스칼라(La Scala)에서 폴레트 다르티가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악보의 피아노 독주판도 그녀에게 헌정되었습니다.
따라서 무대 위에서는 아마 이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다르티가 사랑을 고백하듯 노래하고, 그 뒤의 피아노에서 사티가 부드러운 왈츠 리듬을 연주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독주 피아노로 듣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였겠지요.
4. 그런데 이 곡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바로 화가 "쉬잔 발라동(Suzanne Valadon)"입니다.
사티의 생애에서 쉬잔 발라동은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발라동은 원래 르누아르와 툴루즈로트레크 등의 모델로 활동하다가 스스로 뛰어난 화가가 된 인물입니다.
두 사람은 몽마르트르에서 만나 1893년 약 6개월 동안 격렬한 연애를 했습니다. 사티에게 알려진 거의 유일한 본격적인 연애였습니다. 발라동은 사티의 초상화를 그렸고, 사티는 그녀를 애칭으로 ‘비키(Biqui)’라고 불렀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난 뒤 사티가 크게 상심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생깁니다.
많은 음악 소개글에서는
“〈Je te veux〉는 사티가 쉬잔 발라동을 사랑하며 쓴 사랑의 노래다.”
라고 설명합니다.
아주 낭만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5. 왜냐하면 연도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티와 발라동의 연애는 1893년입니다.
반면 〈Je te veux〉의 정확한 작곡 시기는 조금 논란이 있지만, 음악 자료에서는 흔히 1897년경으로 보며, SACEM 등록은 1902년, 출판·무대 연주는 1902~1903년 무렵입니다.
따라서
“발라동과 한창 연애하던 중 그녀를 위해 〈Je te veux〉를 작곡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히려 발라동과의 관계에서 직접 탄생했다고 보기 좋은 음악은 〈Vexations〉(벡사시옹, ‘괴로움’ 또는 ‘짜증’) 같은 작품입니다. 퐁피두센터 역시 두 사람의 이별과 〈Vexations〉의 관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사티가 평생 경험한 가장 강렬한 사랑이 발라동과의 사랑이었다면, 몇 년 뒤 사랑을 노래하는 〈Je te veux〉를 만들 때 그때의 감정이 그의 내면 어딘가에 남아 있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아름다운 해석이지,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6. 음악을 들어보면 사티의 다른 얼굴이 보입니다
〈짐노페디 1번〉을 떠올려보십시오.
느리고, 고독하고,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음악입니다.
그런데 〈Je te veux〉는 전혀 다릅니다.
3박자의 왈츠 리듬이 계속 흐르고 그 위로 아주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선율이 이어집니다.
‘쿵-짝-짝, 쿵-짝-짝’ 하는 왈츠의 움직임이 있지만 요한 슈트라우스의 화려한 빈 왈츠처럼 거대한 무도회장을 그리는 음악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이 곡을 들으면 파리의 작은 카페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장면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수줍게 말합니다.
‘당신이 좋습니다.’
조금 지나면 마음이 커집니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목 그대로 말합니다.
“Je te veux.”
“나는 당신을 원합니다.”
그래서 이 곡은 격정적인 사랑의 선언이라기보다 우아하고도 조금 관능적인 사랑의 고백에 가깝습니다.
7. 재미있는 것은 사티가 이 곡을 여러 모습으로 남겼다는 점입니다
노래와 피아노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티는 이를 피아노 독주, 관현악 등 여러 편성으로 편곡했습니다. 관현악판에서는 새로운 ‘트리오’ 부분도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같은 〈Je te veux〉라도
피아노 독주로 들으면 우아한 프랑스 소품처럼 들리고,
성악으로 들으면 사랑을 직접 고백하는 샹송처럼 들리며, 관현악으로 들으면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 무도회 같은 분위기가 납니다.
이것이 이 곡의 큰 매력입니다.
만약 독자들이 그동안 사티의 음악을 많이 들으셨다면 〈짐노페디〉의 사티와 〈Je te veux〉의 사티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의외로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들을 때 사티라는 사람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됩니다.
평소의 사티는 엉뚱하고, 냉소적이고, 고독하고,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제목을 붙이던 작곡가였습니다. 그런데 〈Je te veux〉에서는 그런 가면을 잠시 벗어놓고 아주 평범한 한 인간처럼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 곡이 더욱 따뜻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Je te veux〉를 먼저 피아노 독주로 들으신 다음, 소프라노가 프랑스어로 부르는 원래의 성악곡을 들어보십시오.
아마 지금까지 ‘예쁜 피아노 왈츠’라고만 느끼셨다면, 두 번째에는 전혀 다른 곡처럼 들립니다.
“아, 이 선율은 원래 사람이 사랑을 고백하며 부르던 노래였구나.” 하고 느끼게 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