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40:1–8
[서론] 그림자의 절망에서 실체의 은혜로
사랑하는 여러분, 구약의 제사 제도는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결코 인간의 죄의식을 완전히 씻어내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은 구약의 율법과 제사를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끊임없이 흘려야 하는 짐승의 피는 죄의 자각을 가져올 뿐, 인간 존재의 깊은 비참함(웅덩이)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인간 존재 안에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무한한 빈자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율법적 행위나 도덕적 공로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할 때, 인간은 도리어 자아라는 기막힐 웅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의 고백은 다윗 개인의 탄식을 넘어, 훗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히브리서 10:5~7)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의 은혜는 18세기 방탕과 노예 매매라는 깊은 죄악의 수렁에 빠져 있던 존 뉴턴(John Newton)의 실존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시편 40편과 히브리서 10장을 잇는 히브리어 단어들을 통해, 십자가에서 완성된 구원의 은혜와 존재론적 변화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째, 약속의 신실함을 붙드는 인내의 기다림
본문 1절의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카바)" 여기서 ‘카바(קָוָה)’는 줄을 팽팽하게 꼬아 묶듯, 자신의 존재를 하나님께 고정하는 주동적인 인내의 소망을 뜻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3절은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라고 권면합니다. 신약의 성도들이 참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함 때문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약속된 메시아를 ‘카바’하며 기다렸다면, 신약의 성도들은 이미 성취된 십자가를 바라보며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 중에 기다립니다.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가 지적했듯, 절망에 빠진 인간이 주체성을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 앞에 서는 자(Coram Deo)’가 되는 것입니다. ‘카바’는 세상의 주도권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소망의 닻으로 삼는 참된 실존의 결단입니다.
1748년 북대서양의 맹렬한 폭풍우 속에서 배가 침몰해 가던 순간, 존 뉴턴은 자아의 절망 끝에서 하나님을 소망하였습니다. 그의 소망(카바)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영혼의 줄을 매어두는 구원의 시작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향해 영혼의 줄을 팽팽히 매어두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제사를 넘어서는 순종과 단번의 대속
본문 6절은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구약의 도살 제사를 뜻하는 ‘제바흐(זֶבַח)’의 한계가 지적됩니다. 그리고 8절에서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라촌, רָצוֹן) 행하기를 즐기오니"라고 선언합니다.
히브리서 10장 5–10절은 이 시편 구절을 그리스도의 육신을 입으심(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에 직접 적용합니다."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이 뜻(라촌)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에파팍스, ἐφάπαξ)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5, 10) 짐승의 피 제사(제바흐)는 죄를 근본적으로 없애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종함으로 드린 단 한 번의 제사(에파팍스)는 죄와 사망의 기막힐 웅덩이(쇼아, שׁוֹאָה)에서 우리를 완전하고도 영원히 건져내어 반석 위에 세우셨습니다.
하이데거(M. Heidegger)는 인간을 스스로 피할 수 없는 '피투성(Geworfenheit, 세상에 던져짐)'과 죄의식의 한계 속에 갇힌 존재로 보았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의 행위나 반복되는 의식으로는 이 존재론적 한계를 넘을 수 없습니다. 오직 외부로부터 찾아오신 절대자 그리스도의 단번의 완전한 대속 사건만이 인간의 실존을 비참함에서 구원합니다.
존 뉴턴은 자신이 율법이나 종교적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온갖 거친 죄악에 물든 자신을 구원한 것은 어떠한 자격도 요구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신 완전한 은혜였습니다. 이 구속의 완전함이 그를 평생 겸손한 은혜의 종으로 살아가게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원은 흔들리는 나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완성하신 완전한 대속 위에 서 있습니다.
셋째, 새 언약의 성도가 부르는 노래
본문 3절에서 다윗은 "새 노래(쉬르 하다쉬, שִׁיר חָדָשׁ)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라고 고백합니다. ‘하다쉬(새로운)’는 본질적·존재론적 변형을 뜻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6–19절은 예레미야의 새 언약 예언을 인용하며, "내 법을 그들의 마음 속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선언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성소 휘장 밖에서 두려움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새 언약 아래 있는 신약 성도들은 예수의 피로 열린 "새롭고 살아있는 길(히 10:20)"을 통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새 노래(쉬르 하다쉬)를 부르는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존재의 변화는 찬양의 언어를 낳습니다. 허무와 비참함을 노래하던 존재가 구원의 실체를 경험할 때, 그의 언어는 존재론적 감사의 언어로 재창조됩니다.
한때 거친 욕설과 노예 매매의 비인간적 언어로 입술을 더럽혔던 존 뉴턴은 새 언약의 은혜를 경험한 후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의 입술에서 터져 나온 ‘새 노래’가 바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입니다. 이 찬송은 단지 하나의 곡조가 아니라, 죄인이 새 언약 안에서 부르는 영원한 은혜의 노래였습니다.
우리는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새 언약의 성도입니다. 오늘 우리의 입술과 삶에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새 노래'가 계속해서 선포되기를 원합니다.
[결론] 단번의 대속 위에 서서 세상을 향해 은혜를 노래하라
히브리서 10장 35~39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ㆍ어떠한 고난의 웅덩이 속에서도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향해 인내(카와, קָוָה)로 영혼의 줄을 꼬아 묶읍시다.
ㆍ불완전한 나의 행위나 의식을 의지하지 말고,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단번에 (에파팍스, ἐφάπαξ)드려(히 10:10) 나를 반석 위에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을 의지합시다.
ㆍ새 언약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매일의 삶을 새 노래(쉬르 하다쉬, שִׁיר חָדָשׁ)의 예배로 드립시다.
존 뉴턴이 경험했던 그 은혜, 본문이 예언하고 히브리서 10장이 선언한 그 단번의 완전한 은혜가 오늘 우리 교회의 기초이며 성도 여러분의 삶의 이유입니다. 이번 한 주간, 십자가 반석 위에 견고히 서서 세상을 향해 구원의 은혜와 ‘새 노래’를 담대히 선포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