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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소년 아메드 - Le jeune Ahmed >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
나는 당신의 손을 잡을 수 없어요'
벨기에의 13세 무슬림 소년 아메드(이디르
벤 아디 분)는 격변(激變)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가족과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고 학교
수업에도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하죠.
사춘기의 아메드가 몰두하는 것은 오직 ‘진정한
이슬람 교도가 되는 것’ 으로... 그는 청결함과
기도에 과도하게 집착합니다.
한 달 전만 해도 게임에만 몰두했던 아메드가
쿠란(이슬람 경전)을 지퍼백에 넣어 소중히
간직하고,
기도 시간과 규칙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정결한 삶을 요구하는
열성 신자로 탈바꿈했지요.
아메드는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이웃의 이슬람
근본주의자 이맘(오스만 모먼 분)의 영향을
받아 종교 원리주의에 빠져든 겁니다.
누가 봐도 평범하고 착했던 아들의 급작스런
변모는 엄마(클레어 보드손 분)를 곤혹스럽게
하지요.
심지어 이맘이 위험 인물이라며 가까이 하지
말라는 엄마에게 '술주정뱅이' 라고 부르며
대들지를 않나...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누나에게 노출이
있는 옷차림을 지적하며 화를 냅니다.
엄격하고 교조적인 계율상 여자가 술을 마시고
조신하지 않게 몸을 드러내서는 안된다고
여기는 게죠.
엄마가 건넨 화해의 포옹마저 기도하려고
씻었다며 싸늘하게 거부하는 아메드...
그는 '무장테러범' 였던 사촌, 곧 이맘의 표현에
따르면 이슬람 전사로 성전에 참전해 '순교자'가
된 고독한 영웅의 삶을 동경합니다.
그런 아메드에게 신의 이름으로 치러야 하는
소명이 생겨나죠.
목표는 다름아닌... 돌봄 교실의 이네스 선생님
(메리엄 아카디우 분)입니다.
아메드는 진정한 이슬람 교도는 여자와
악수하지 않는다는 믿음과 함께
선생님에게조차 손을 내밀지 않지요.
이네스는 아메드가 난독증의 어린 시절부터
그를 헌신적으로 가르친 교사이건만...
사제 간의 온정어린 추억은 타협 없는 교리
앞에 무력하기 그지 없습니다.
참된 무슬림이 돼야 한다는 의식 아래
아메드는 이네스 선생님을 의식적으로
멀리하죠.
'어디서 마주치든 알라의 이름으로 적을
죽여야 한다' ... 그것이 지금 아메드가 굳게
품은 신조입니다.
그런데... 이맘은 예언자의 신성한 언어를
어린이들에게 노래로 가르치고자 하는
이네스 선생님을 신성 모독의 '배교자' 로
지탄하죠.
이미 이맘에게 철저히 세뇌당한 아메드는
이네스 선생님을 향해 강한 적개심을 품게
됩니다.
이네스는 아메드에게 쿠란에는 다른 공존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며 함께 공부하자고
설득해 보지만...
아메드는 쿠란에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우리의 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데다 여자와는
책을 같이 읽을 수 없다고 거부할 뿐이죠.
갈수록 극단적 믿음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던
아메드는 급기야 이네스 선생님을 '신의 이름'
으로 처단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이 사건으로 소년 교정 시설에 들어가
농장에서 일손을 돕던 아메드는,
같은 또래 소녀 루이즈(빅토리아 블럭 분)를
만나 낯설고도 미묘한 감정과 맞닥뜨리게
됩니다만...
그곳에서도 이네스 선생님을 향한 자신의
사명을 끝내 거두지 않습니다.
소년원에서 아메드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기도를 계속하며,
지도사와 상담사 앞에선 자신이 변했다며
교화에 순응하는 척 하지요.
하지만 뒤에서는 빼돌린 칫솔로 끝이
날카로운 흉기를 만들어 거사를 다시
계획하는 치밀함과 집요함을 보입니다.
그런 아메드가 유일하게 흔들리는 순간은
솔직하고 당당하며 심신이 건강한... 루이즈를
만났을 때죠.
농장에서 루이즈는 아메드의 유난스러운
행동에 "네가 믿는 종교에선 다 그래?" 라며
다름을 인정할 줄 압니다.
그녀는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먼저
키스를 하지만... 개종하라는 아메드의
요구에는 단호하게 돌아서지요.
< 소년 아메드 > 는 오프닝과 동시에 다르덴
형제 감독의 작품임을 보여줍니다.
공간음으로만 채워진 사운드...
관객의 시선과 같은 핸드 헬드, 그리고
주인공의 뒷모습과 함께 하죠.
어디선가 있을 법한... 늘 불편하고 불안정한
다르덴 특유의 시선이 느껴지는 설정으로,
드라마의 서사는 이번에도 '현실의 가까운 곳'
에서 출발합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광풍에 휘말린 벨기에...
그리고 그 사상에 물든 13세 소년이
그리하지요.
다니엘 형제는 화면 속 아메드의 모습에
'안경' 을 통해 포인트를 줍니다.
안경은 아메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미장센 역할을 하지요.
안경 아래로 아메드가 어떤 눈을 뜨고 있는지
관객들은 알 수 없고... 때문에 아메드의
진짜 속내가 무언지 당최 종잡을 수 없습니다.
안경을 벗을 때면 머리를 푹 숙이고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지요.
단 한 번, 루이즈의 ‘꾀임’(?)에 안경을 벗고
눈을 마주치며 키스까지 하지만... 이내 알라를
향해 회개하고 소녀를 배교자로 매도합니다.
아메드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미성숙한 아이일 뿐이죠.
지금의 혼돈이 마음을 흔드는 사랑의 감정인 지
믿음을 무너뜨리는 종교적 죄악인 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결국 아메드는 가장 극단의 선택을 통해
속죄하고자 하지요.
이메스 선생님에게 사과하고 싶다며 다시
만나게 해달라 부탁하는 아메드...
그간 소매치기, 실업자, 이민자 등 우리 사회
주변부 마이너리티 인물들과 군상에
주목해온 다르덴 형제였기에,
새 영화에서 유럽 사회의 무슬림 소년을
타이틀 롤로 삼은 것은 일견 새로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다가오지요.
아랍어를 가르치는 방식에 대해 지역사회
내의 무슬림 학부모들이 모여 토론하는
장면은,
이슬람 디아스포라의 현실적 고민을
드러내는 동시에,
“신은 위대하다!(알라후 아크바르!)" 라는
나지막한 중얼거림과 함께 자신 만의 처단을
시도하는 13살 소년의 맹신적인 행태...
그런 아메드의 모습과 아우러지며 오늘날
세계적으로 만연한 광기어린 테러의 공포와
충격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르덴 형제는 영화 < 소년 아메드 > 에서
사건 이전의 사연보다는 이후의 상황에
관심을 두죠.
“우리는 어떻게 한 사람이 광기에 물들고
빠르게 진화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단 개인이 자신의 광적인 믿음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지의 문제에 주목했다” 는
형제의 말처럼...
영화는 '아메드' 와 같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현대 사회가 고안한 제도적 시스템(소년
교정시설) 안에서 당사자들이 보여주는
언행과 그 변화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언제나
그러하듯, 카메라는 건조하고 무정하게
인물을 포착해내죠.
카메라가 잡아내는 것은 무표정의 가면으로
스스로를 숨기고 있는 아메드이지만,
관객은 굳어 있는 그의 표면 아래 내적
혼란이 어지러이 산재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답게 인물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 시선은,
계속해서 뭔가를 숨기고 싶어하는 아메드의
모습을 향하죠.
아메드가 이맘의 식료품점에서 종교
원리주의와 관련된 영상을 보는 모습,
훔친 칫솔을 흉기로 만드는 모습 등을
말입니다.
카메라의 집요한 눈길은 그런 아메드의
순간 순간에 천착(穿鑿)하며 소년의 혼란스런
질주를 긴장감있게 담아내지요.
아메드가 믿고 의지하던 이맘은 막상
사건 후 그를 냉정하게 밀어낸 데다,
엄마와의 대화 역시 무력감을
불러일으키며...
아메드는 종종 의심의 대상이 되고, 계획은
결국 허무하게 무산됩니다.
또한 소녀 루이즈와의 만남은 익숙하지
않은 감성과 새로운 질문을 촉발하죠.
그 과정에서 선과 악, 영웅과 악당, 정의와
불의의 경계는 흐트러지고...
아메드는 어떠한 믿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혼란의 시간을 온몸으로 맞닥뜨리게 됩니다.
< 소년 아메드 > 는 그렇게, 자신의 원리주의를
고집하며 순화를 완강히 거부하는 아메드를
추적하며 그의 심리적 흔들림을 포착해내죠.
영화의 클라이막스... 거의 10분을 차지하는
긴 시퀀스입니다.
"네 행동을 깨닫게 되는 데 시간이 걸릴 거야!"
라고 충고하는 소년원 지도 교사.
달리는 그의 차에서 탈출한 아메드는 숲 속을
지나 담을 넘고...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이네스 선생님의 거처 여기저기서 찾지요.
그런데 문이 잠겨 있자, 그는 옥상으로
올라가 창문을 통해 들어가려고 합니다.
이토록 험난한 형극의 고행은 폭풍처럼
격렬하게 고동치는 아메드의 마음을
은유하는 것 같죠.
벽을 타고 오르다 그만 땅에 떨어진 그는
흉기를 펜스에 소리가 나도록 내리치면서
살려달라고 외칩니다.
살해를 위한 무기가 자신의 생존(구조)을
위한 도구로 치환되는 아이러니...
신의 이름만을 부르던 아메드는 급박한
위기의 순간에야 엄마를 찾지요.
마침내 거짓된 광신은 무너지고...
신의 아이가 아닌 엄마의 자식으로 거듭나는
아메드.
소년의 극단은 극단의 상황 앞에서야 변화를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의 선율이
엔딩 크레딧을 조용히 감싸안지요.
“아메드와 같은 어린 급진주의자들이
느낄 법한 어둠과 외로움의 감정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는 다르덴 형제의
올곧은 설명처럼,
< 소년 아메드 > 는 오늘날 극단적 사상에
물들어 있는 수많은 청소년들의 깊은 칠흑의
내면세계에 감독만의 방법으로 접근해본
결과물일 것입니다.
판단이나 대안보단 고민과 응시를 중심으로
한 접근법의 소중한 선물인 셈이죠.
마지막 시퀀스의 작동 프레임이 지난 영화의
되풀이라거나 다소 도식적이고도 나이브한
결말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깁니다만....
'일종의 모호한 엔딩 스타일' 의 열린 결말은
'소년 아메드' 의 미래에 관해 적지 않은 것을
여백으로 남겨놓고 있지요.
그렇게...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순간의
희미한 가능성을 헤아려보는 감독의 마지막
배려는 나름의 반문과 공명을 불러일으킵니다.
근본주의의 독침... 그 광기는 소년의 여린
영혼에 생채기를 내며 깊숙이, 또 거칠게
파고들지요.
그러나 인간을 억압하는 맹목적인 광신보다
더 강력한 사랑과 용서... 그 치유와 희망의
힘은 실로 위대하게 울려옵니다.
1. < 소년 아메드 - Le jeune Ahmed >
- https://youtu.be/gC6WsR31CTQ
언제나... 현재를 영화화하고 현재에 맞서야
한다고 설파해온 장 피에르 다르덴 과
뤽 다르덴 감독.
이들 형제는 < 소년 아메드 > 를 통해
광신주의의 폭력과 마주한 유럽의 현재를
초점화하며, 끈질기게 현재를 묻고, 또 현재에
답합니다.
가히 정치(精緻)한 질문과 섬세한 응답이지요.
다르덴 형제는 아메드가 이네스를 찌르는 데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보다...
왜 아메드가 칼을 잡았는지, 어떻게 해야
아메드 스스로 칼을 내려놓게 할 수 있는지
심문합니다.
이는 아메드에게 변화 가능성이 남아
있어서죠. 그는 겨우 열세 살입니다.
작품의 원제 ‘어린 아메드’(Young Ahmed)에서
다르덴 형제는 특히 ‘어린’ 에 방점을 찍었다고
하지요.
전과 다르게 그가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또한 그러는 데 필요한 여건을 제공할 책임이
어른에게 있다는 말일 겁니다.
"신은 위대하시다" 를 입에 달고 살던 아메드가
언제야 '신' 대신 간절하게 '엄마' 를 부르는지,
"선생님의 손을 잡지 않겠다" 던 아메드가
어떤 순간과 맞닥뜨려 그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지 우리는 유심히 봐야 하지요.
침묵으로 일관하는 음악은 아메드의 대사와
숨소리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듭니다.
핸드 헬드 촬영 또한 그의 심장을 대변해 주죠.
이토록 과묵한 다르덴 형제의 서사는 자못
묘한 서스펜스를 제공해 줍니다만...
아메드를 심판의 대상이 아닌 안타까운
소년으로 보이게 하는,
'관객들의 시선을 움직이는 연출'... 바로
다르덴 형제가 지닌 신묘함이죠
이견이야 없을 수 없겠지만, 다르덴 형제는
분명하게 자문 자답했습니다.
" 정말 신이 있다면, 신은 틀림없이 적대가
아닌 환대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드라마 속 아메드와 어머니의 날선 대화는
빈곤층 이민자 가정이 안고 있는 현안과
이로 인한 종교 원리주의 확산에 주목하지요
잘못돼 있지만 굳건한 아메드의 믿음...
성장기의 소년이지만 아메드 내면의 신념은
이미 굳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메드는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히잡을
씌우지 않았다' 며... 종교 원리주의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하고 힘든 거라 주장하죠.
화불단행(禍不單行)의 '불행과 고통' 은
이를 초래한 범인, 곧 희생양을 어떻게든
찾게 만듭니다.
아메드는 교리를 충실히 지키지 않은
아랍계 아버지를 타락과 오염의 범인으로
설정한 채,
이와는 다른 인물이 되고자 몸부림치는
게지요.
두 감독이 네개의 눈으로 한 소년을 응시하며
그 마음에 놓인 편견과 아픔을 조명하는
<소년 아메드 >.
영화는 그렇게... 증오와 혐오에 빠져
맹목적으로 질주하다 추락하는,
가깝고도 먼 현실의 아메드의 모습을 통해
현실의 종교가 직면한 문제를 얘기합니다.
- https://youtu.be/t3Wbxol0gRE
'혐오와 극단의 시대를 향한 달리기'
다르덴 형제 감독 작품은 언제나 현실에
기초합니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고 들춰내는데 거침이 없지요.
특별히 관객을 가르치려 하지도 않습니다.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강요하지 않지요.
그저 보여줄 뿐으로,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판단할지는 오롯이 관객의 몫입니다.
뚜렷함보다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좋다며,
루이즈는 안경을 벗은 아메드를 보고 그 모습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죠.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아메드를 암유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아님 그 또래가 가진 관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녀 루이즈의 열정어린 접근은
소년 아메드를 혼란스럽게 하지요.
더욱이 그녀의 짜릿한 첫 입맞춤은 그를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여성과 손잡는 것도 거부한 아메드에게
감히 '키스' 라뇨...
어쩌면 그의 확고한 믿음이란 것이 한순간의
본능도 제어하지 못하는 얕은 신앙였을 지도
모르죠.
아메드는 그렇게, '이슬람' 이라는 안경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는 언제나 ‘진정한 이슬람교도’ 가 되기
위해 맹목적으로 애쓸 뿐이지요.
이네스 선생님을 해치려 한 것 역시 그와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아메드에겐 살인에 대한 죄책감도, 그를
따질 이유도 없지요.
오로지 알라를 위한 헌신이 그의 모든
것입니다.
종교적 급진주의에 빠진 모슬렘 소년을
조명하는 < 소년 아메드 > 는,
유럽 사회에 현존하는 테러 위협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영화이지요.
급진주의적 이슬람교 지도자의 가르침에
사로잡힌 아메드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 유대인 남자친구를 둔 선생님을
해치려 합니다.
이처럼... 종교에 의해 몸과 마음을
통제당하는 개인은 타인을 통해 변화할 수
있을까요?
장 피에르 다르덴은 말합니다.
“(동생 뤽과) 종교를 진지하게 다루자고
서로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아메드가 기도하는 모습을 담았죠.
그런데... 아메드는 기도한 뒤 누군가를
죽이려 합니다.
어떤 종교든 그런 모습은 보기에 정말
끔찍하죠.
종교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종교의 특수성
때문이죠.”
다르덴 형제는 본인들의 작품을 ‘달리기와
추락’ 의 영화로 정의하지요.
실로 명징(明澄)한 표현으로... 아메드는
순교를 위해 달리고, 또 신을 향해 높이
올라가려 합니다.
맹목적인 신앙과 자기 합리화에 빠져
끊임 없이 이네스 선생님을 응징하려던
소년은,
가장 높이 올라선 순간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지요.
영화 < 자전거 탄 소년 >(2011) 피날레에서
마을 소년에게 쫓겨 도망치다 오른 나무에서
그만 떨어져 죽은 줄 알았던 주인공 '시릴' 처럼
말입니다.
아무런 배경 음악도 없이 툴툴 털고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떠나가는 소년, 시릴' 을
계속해서 비추던 카메라...
아메드는 그토록 추락하고 나서야 단단하기
그지없는 '안경' 으로부터 비로소 벗어나지요.
어느덧 드라마는 미친 듯 달리다 날개도 없이
속락하는 아이에게 내미는 '손의 윤리학' 으로
변용되며...
신을 찾던 목소리는 엄마를 부르고, 선생님을
해치려던 손은 구원의 또다른 손길을 건네는
그녀를 붙잡습니다.
아메드는 이네스 선생님에게 진정으로
사과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죠.
어쩌면 그는 진작부터 용서를 빌고 싶었지만...
그 사죄로 인해 자신이 의지한 작은 안식처마저
무너질까봐 두려웠던 지도 모릅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메드를 물들게 했던
이맘이 그를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극단주의를 제창하고 적을 만들며 아메드를
순교의 길로 몰아붙였던 이맘은 정작
아메드가 위험에 처했을 때,
"모스크를 지키고, 신도를 보호해야 한다" 는
미명 하에 그를 내칩니다.
아메드는 그런 와중에도 이맘의 말이
옳다며 기꺼이 소년원으로 향하죠.
자기 파괴의 극에 이르고 나서야 벗어날 수
있었던 광신의 고통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맘은 그 책임이 자유롭습니다.
< 소년 아메드 > 는 그토록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인 이야기가 경종을 울리는
드라마로 다가오지요.
'주변을 돌아보고, 세계를 관찰하며...
현실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 이라 늘 생각해왔다는 시네아스트
다르덴 형제.
그들은 그런 의미에서 종교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한 소년으로부터 영화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기로 결심했죠.
다르덴 형제가 극 중 소년 아메드의 나이를
'13세' 로 설정했던 건 '열세 살' 이 유년과
성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나이여서
그랬다고 합니다.
아메드는 가족 구성원 중에서 자신의
롤모델 찾기에 실패한 뒤...
가족의 테두리 밖에서 알게 된 이맘에게
정신적으로 세뇌당하고 종교적 이상주의의
포로가 되지요.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이상적 원리주의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열세 살 소년으로서 그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죠.
이처럼 아메드는 변화의 여지가 남아 있는
모호한 연령대의 소년인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종교적 급진주의는 아메드가
다른 사람을 마주하지 못하게 하고,
타인이 그에게 접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지요.
소년 아메드의 순수함을 오염시킬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떼어놓음으로써
소년은 바깥 세계와 완전히 격리되는
것입니다.
아메드는 순교한 사촌처럼 죽음을 자신의
삶을 포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요.
이러한 종교적 신념은 무척 복합적인
문제일 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종교에 대한 망상을
포기하고 다시 일상적인 삶으로 복귀하게
만들지를 고민하던 다르덴 형제는 결국
좀더 긍정적인 결말을 선택하기에 이릅니다.
이는 소년 아메드가 여전히 변화할 수 있는
시기에 놓여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서였을
것이죠.
다르덴 형제는 삶에 대한 개인의 의지가
그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광기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영화 속 이네스 선생님을 공격하는 대목을
비롯해 대부분 장면에서 아메드가 하는
행동은 별반 위협적이지 않지요.
다르덴 형제의 절제된 연출 덕분이기도
하지만...
주인공 아메드가 시종일관 어설프게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감독이 열세 살 주인공을 내세워
'이슬람 광신도’ 를 비꼬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죠.
소년원으로 끌려가는 아메드를 외면하는
이맘의 모습에서 짙어진 이 ‘의심’ 은,
영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확신’ 으로
바뀝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얘기하지요.
"칼을 든 소년을 무엇이 멈추게 만드는가?
마지막 장면은 당신을 멈춰 세울 것이다!"
2.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 B- 플랫 장조
D.960 중 '2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Andante Sostenuto)' - 알프렛 브렌델의 피아노
https://youtu.be/G2AIMQ0-zWY
슈베르트는 고작 31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갔거니와...
3부작 피아노 소나타의 마지막 곡 21번은
슈베르트의 음악적 삶을 관통했던 ‘방랑’ 이라는
주제의 마지막 방점과도 같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불과 두달 전에 작곡됐다는
점에서 ‘세상과의 작별인사’ 라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요.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슈베르트 인생의 깊이와 폭이
얼마나 넓고 깊은 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한데...영화 < 소년 아메드 > 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 2악장' 이 회한의 통곡처럼 흐르죠.
2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 는 전 악장 중에서
가장 서정성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방랑에 나섰지만 아무 데도 갈 곳 없는
나그네의 비애가 진하게 배어 있지요.
주제로 제시한 선율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특히 고개를 툭 떨구면서 잦아드는 마지막의
‘소멸’ 은 슈베르트의 못 다 핀 생애를
자꾸만 반추하게 만듭니다.
- 카티아 부니쉬티아발리 피아노
https://youtu.be/Yhg_BDfX4aA
다르덴 형제 감독의 전작 < 자전거 탄 소년 >
(2011) 속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 2악장 '아다지오' 만큼이나 그윽한 반향을
남기는 곡이죠.
*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 B-플랫 장조
D.960 - 알프렛 브렌델의 피아노
1악장은 온화하고도 원숙한 구조적
아름다움이 깔려있습니다
2악장은 애절한 슬픔이 깔려있지만, 낭만성과
맑은 서정성을 보여주죠.
3악장은 낮은 음역대를 대비시킴으로써
심적 동요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4악장은 장대한 피날레로 겨울나그네인
자신이 겪어온 험난한 삶을 표현하죠.
숨가빴던 예술 세계의 끝을 향하여 격렬하고
장엄하게 치닫습니다.
- 1악장 'Molto moderato'
https://youtu.be/Ok9tofNmqNY
- 2악장 'Andante sostenuto'
https://youtu.be/G2AIMQ0-zWY
- 3악장 'Scherzo - Trio'
https://youtu.be/zD12AOCty0Q
- 4악장 'Allegro ma non troppo - Presto'
https://youtu.be/p2YbCgudmc0
- 李 忠 植 -
첫댓글 < 소년 아메드 - Le jeune Ahmed > 트레일러
https://youtu.be/gC6WsR31C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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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B-플랫 장조
D. 960 중 '2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
- 알프렛 브렌델 피아노
https://youtu.be/G2AIMQ0-z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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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 아메드 -Young Ahmed >
30초 예고편
https://youtu.be/t3Wbxol0g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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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B-플랫장조,
D.960...
평생 가난과 고독에 허덕이며 살면서, 자기
피아노를 가져보지 못했고 체계적인 작곡
기법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슈베르트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 남긴 세 개의 소나타 중 베토벤 이후
가장 아름다운 소나타로 평가받는 유작입니다.
1930년 대에 이르러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의 발굴 덕분에 빛을 보게된 작품이죠.
레닌그라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자동차
한 대로 대륙을 횡단하면서 낡은 피아노는 물론
조율도 안된 피아노로100회 가까운 연주회를
가졌던 리히터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피아노는 그저 홀에 있는 피아노로 연주해야
한다. 그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시골 연주회는 적어도 한가지 장점이 있다오.
사람들이 속물 근성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기 위해서 오니까 말이오."
https://youtu.be/lncNcNtGkJY
-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터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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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덴 형제는 사회적 소외계층의 사연에 주시한
근작으로부터 눈길을 돌려,
혐오와 극단의 시대 속 '종교와 신념' 에 대한 신작
< 소년 아메드 > 를 연출했지요
영화는 주인공 아메드 역의 이디르 벤 아디를
비롯해 메리엄 아카디우, 오스만 모먼,
클레어 보드손 등 출연진의 연기가 어우러지며
절묘한 하모니를 이룹니다.
여기에 핸드 헬드와 롱테이크 등 다르덴 형제
특유의 연출 메커니즘은 영화적 긴장감과
현장감을 극대화하죠
다르덴 형제는 영화와 현실의 벽을 부수기 위해
비전문배우를 쓰는 거라고 말합니다만...
배우 경력이 전무한 이디르 밴은 벨기에에서
2005년에 태어나고 자란,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죠.
그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비디오게임을
좋아하던 평범한 소년이었으나 종교적 광기에
휩싸여 범죄를 저지르는 '아메드' 라는 캐릭터를,
현실감 넘치는 무슬림 눈빛과 표정, 말투와
몸짓을 두루 활용해 안정감있게 표현했습니다.
서툰 걸음걸이와 통통한 손, 안경을 쓴 얼굴 등
형제가 상상하던 아메드의 모습에 부합했던
이디르 벤 아디...
그는 절제된 표정과 긴장된 몸짓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한 심리의 아메드를 완벽하게
연기했죠.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가 '아역배우를 연출할
생각을 하지 말고 그들에게 사건과 분위기를
제공하라' 말한 것처럼,
이디르 벤은 모든 측면에서 다르덴 형제를
깜짝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하지요.
지난 10년간 유럽 사회의 화두는 단연 '난민'
였지요.
'아랍의 봄', '시리아 내전' 등을 통해 유럽에는
중동 난민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이들 중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면서 사회에 잘
적응하고 융합돼 지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슬람 국가(IS)가 제창한 종교 원리주의에
빠져 극단적인 과격 양상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요.
다르덴 형제는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 발생한
이슬람주의자들의 테러와 광신에 빠진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고 영화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순교를 부르짖는 아메드의 모습은 영화 속에만
있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죠.
종교를 소재로 그려졌을 뿐, 결국 영화는
혐오와 극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삶과 다름없습니다.
< 소년 아메드 > 는 그런 이슬람교 원리주의에
빠진 한 소년을 통해, '현재의 유럽' 을 바라보고
있지요.
과연 이슬람 근본주의에 경도된 아메드를 누가
구할 수 있을까요?
영화는 아메드가 무슨 이유로 극단주의에 빠져든
것인지를 주목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엄마가 홀로
아메드와 남매를 돌보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설명하지 않지요.
영화의 관심은 오직 아메드의 현재와 그가
세상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극단주의로부터
벗어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형 장 피에르 다르덴은 설명하지요.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테러 공격이 일어나고,
젊은이들이 성전에 나가기 위해 떠나는 상황을
보면서 뤽과 저는 이런 얘기를 자주하곤 했어요.
‘우린 늘 현재를 다룬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니까 현재 상황을 직시해야 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종교적 광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거기에
사로잡혀 달라진 소년들의 현재를 다루는 것이지'
라고 말입니다."
다르덴 형제 감독... 그들이 바라보던 곳은 항상
현실이었죠.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 텔링,
다큐멘터리 형식을 띈 촬영과 사운드 등,
투박할지도 모를 이 사실성이라는 무기는 세계의
영화제를 정복해왔던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또다른 이웃의 현재 속
현실을 탐구하는 거장 다르덴 형제 감독의 신작
< 소년 아메드 >...
영화를 통해 다양한 사회 문제를 조명하고 실질적인
사회 변화까지 이끌어내기도 했던 그들이 이번에는
벨기에의 10대 무슬림 소년을 이야기합니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통해 현실을 마주하고 이해해
왔던 다르덴 형제는 아메드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죠.
" '아메드’라는 주인공이 현실에 온 것이다.
20년 전 < 로제타 > 를 찍을 때는 각지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사태를 상상하지 못했다.
그때는 종교 때문에 누구를 죽이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들 형제 감독은 예상하지 못하게 바뀐 현실과,
그 현실을 나타내는 인물인 아메드를 통해
다시 한번 현재를 마주하는 시도를 했던 겁니다.
다르덴 형제의 감독상 수상은 제72회 칸영화제
폐막식의 이변 중 하나였습니다.
워낙 쟁쟁했던 올해 경쟁부문의 각축전 속에서,
< 소년 아메드 > 는 평단과 언론의 관심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있던 작품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영화는 복합적이고도 모순적인 삶의
양상을 통해 사회적, 정치적, 윤리적 문제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리얼리스트 다르덴 형제의
여전한 저력과 건재함을 보여줍니다.
유럽 사회의 계층적, 윤리적, 정치적 문제를 다룬
수작으로 꾸준히 회자되는 다르덴 형제 감독.
그들은 지난 몇 년 간 유럽에서 발생한 일련의
테러 사건 이후,
종교 극단주의에 사로잡힌 소년들의 ‘현재’ 를
다루기 위해 < 소년 아메드 >를 연출하게 되었다고
하지요.
유럽 국가 중에서도 무슬림 인구 비율이 높은
벨기에의 상황과,
종교 원리주의에 빠져 테러 등 극단적인 행동을
계획하는 무장단체에 입단하는 많은 10대
청소년들의 현실을 바라보며...
다르덴 형제는 아직 변화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아메드의 이야기를 완성했습니다.
하여...
< 소년 아메드 > 는 서로를 신뢰하지 않고, 점점
폐쇄적인 성향을 갖게 되는 시대 속에서 해결
방법과 변화에 대해 고민해보는 화두를 던지는
작품으로 자리하지요.
항상 현실의 이야기를 주제로 영화를 찍어온
다르덴 형제는 이번에도 자신들의 나라 벨기에가
직면한 실상을 영화에 담았죠.
벨기에는 인구의 5%가 무슬림입니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몰렌베이크 지역의 경우
인구 10만명 가운데 30%가 모로코·터키·시리아
출신의 무슬림일 정도로 비율이 높죠.
그런데 몰렌베이크의 실업률은 30%에 이르고,
이는 벨기에 다른 지역의 실업률 9%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벨기에 무슬림들의 이런 사회적 불만을 틈타
종교적 극단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테러에 가담하는 등 첨예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죠.
이런 현실을 다르덴 형제는 종교적 극단주의에
빠진 소년의 이야기 < 소년 아메드 > 로
담아냈습니다.
'다르덴 형제가 보여주는 또 다른 현재'
현재를 사는 현실적인 사람... 다르덴 형제가
이들의 사회적 문제를 포착하는 시선은
담담하되 예민합니다.
다르덴 형제의 모국 벨기에는 2015∼2016년
유럽에서 잇달아 발생한 테러 사건의 중심에
있었죠.
벨기에의 감옥이 파리 테러 주범 등
극단주의자들의 양성소로 지목됐고,
국제공항과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브뤼셀
시내 한복판에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벨기에는 유럽에서도 무슬림 인구 비율이
높고, 이민자나 이민자의 후손인 이들은
빈곤과 차별에 시달리죠.
청소년들은 종교와 신념의 문제로 혼란을
겪고 일부는 극단주의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파리와 브뤼셀에서 테러를 저지른 이들
대부분은 20대 청년이었죠.
벨기에는 물론, 세계적 문제가 된 이 사건을
지켜본 다르덴 형제 감독...
그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교조적
가르침에 빠져들기 시작한 13살 무슬림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소년 아메드> 를
통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묵직한
메시지를 건넵니다.
장 중 내내 배경 음악 없이 속내를 알 수 없는
소년의 뒤를 따라가는 영화 < 소년 아메드 >.
여느 스릴러 작품 못지않은 서스펜스를
이어가지요.
카메라와 함께 소년의 뒤를 따라가는 관객은
그가 어디로 향하고 어떤 행동을 벌일지 시종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