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주신글]
백기완(白基琓)
출생 1932년 1월 24일
사망 2021년 2월 15일
(향년 89세)
큰 별이 떨어졌다.
선생은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이다.
1933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13살 때 월남해서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1964년 한일회담과 유신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 양 성고문 사건을 주도했다.
광주사태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도 선생의 작품이다.
선생은 노동자, 농민, 빈민 등 민중을 위해 싸운 거리의 투사였다.
재야 운동가 백기완, 협객 방동규 삼포로 가는 길의 황석영이 조선의 3대 구라였다.
백기완 백구라
선생의 구라는 장엄한 산맥 백두산과 도도히 흐르는 압록강이다.
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騅不逝
騅不逝兮可奈何
虞兮虞兮奈若何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는다. - 어떤 작가의 찬사다.
선생의 일화
선생이 스물한 살 때였다. 수하로부터 어께들이 리어카
행상들에게 자릿세를 뜯는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그래서 수소문해서 찾은 것이, 두목 스무 살 방동규였다.
방동규는 주먹세계에서 자신의 '나와바리(구역)'를 가진, 보기 드문 한량이었다.
듣자 하니 자네가 주먹 좀 쓴다 하던데 몇 명이나 상대할 수 있나?
뭐 그저! 한 삼십 명 정도는!
그러자 똥께나 뀌는 방구라에게 싸대기를 올려붙였다.
방구라는 어이가 없어
피죽도 못 얻어먹은 파리한 책상물림이, 어디서 감히!
한 주먹 감도 안 되는 녀석이!
이에 백구라의 일갈
사내로 태어났으면 삼천 명이나 삼만 명은 상대해야지 겨우 삼십 명이야?
다시는 내 앞에 얼쩡거리지 마라! 썩 꺼지지 못해!
방구라 그릇을 보고 말한 것이다. 동네 양아치에게 그렇게 했다면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히딩크도 만만한 구라가 아니다.
조선 호랑이처럼 뛰어라!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에게 딱 한 가지만 당부했다. 결국 선수들은 그의 말대로 일을 냈다.
히딩크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백기완 선생이라고 한다.
가지 않으면 세월이 아니고, 진화하지 않으면 구라가 아니다.
구라 치지마!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은 흘러간 유행가 가락이고
봉이 김선달과 닭장수는 시치미 구라.
대동강과 북청 물장수는 이재용 손발 묶는 돈 구라
문성근의 부친 문익환 목사가 서울역장에게 ‘평양행 기차표를 내놔라!’ 불가능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구라
유흥준 구라 주선으로 문화재청 안내원이 된 방동규 구라
황석영 황구라는 음담 반 패설 반, 거시기 구라
몸을 뒤집고 거꾸로 날아가는 비둘기를 보았다. 정말이야?
세월이 흘러 대장부 사이에서 이런 구라는 전설 따라 삼천리가 되었다.
지나는 길에
젊은이들이여! 박정희 대통령을 제대로 알고나 말하라!
박통! 소리만 들어도 치가 떨리고 경끼가 날게다.
그래 맞다! 박통이 군사 독재를 했다.
나도 젊어서는 니놈들 보다 간덩이가 더 부었지만, 벌벌 떨고 살지는 않았다.
정치하고 거리가 먼 나도 박통이 미웠다. 정치를 해 보겠다고 나선 놈들이야 오죽하겠냐?
그렇지만 누구보다 많이 당했던 백기완도 박통에 대해서
우리 같은 정치인이 3만 명이나 당했지만, 국민들 3천만 명은 먹여 살렸다.
할아비, 할미들의 소원이 뭐인 줄 아냐?
뭐? 언론자유? 민주주의? 웃기지 마라.
그것은 바로 '새벽종이 울렸다! 잘살아 보세!'였다.
밤이 있었냐? 낮이 있었냐? 눈뜨면 일하고, 쓰러지면 잠이 들었다.
일 하느라고, 라면 끓여 먹을 시간이 없어 라면을 날로 먹었다.
박통이, 밤새 머리털 꼬매 만든 가발로 번 달러 아까워, 콩을 볶아서 태워 커피로 마셨다.
니들이 커피 맛을 아느냐?
그런 걸 백 밤, 천 밤을 새고 얘기해도 끝이 없다.
늙은이의 분노 중에서
백기완 빈소에서
선생은 연탄이 떨어질 정도로 어려웠던 시절에도 굴하지 않은 분이었다.
선생은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영생하실 것이다.
단순한 민중운동가나 통일운동가가 아니라 혁명을 꿈꾸는 로맨티스트였다.
백기완 이름 석 자가 탄압받은 노동자들에게는 힘이었다.
의외의 인물, 교수 최재천과 가수 전인권이 조문 석에 보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라,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라, 산자여 따르라
삼가 명복을 빕니다.
허주의 아침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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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1cJrIm3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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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기완 빈소에서
선생은 연탄이 떨어질 정도로 어려웠던 시절에도 굴하지 않은 분이었다.
선생은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영생하실 것이다.
단순한 민중운동가나 통일운동가가 아니라 혁명을 꿈꾸는 로맨티스트였다.
백기완 이름 석 자가 탄압받은 노동자들에게는 힘이었다.
의외의 인물, 교수 최재천과 가수 전인권이 조문 석에 보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라,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라, 산자여 따르라
삼가 명복을 빕니다.
허주의 아침산책
민족의 대명절 설날에도 5인이상 모이지 말라 케놓고 광화문광장에 수천명모여도 괜잔코! 수천명은 괜잔코 사랑의교회는 코로나상황에 모였다꼬 수십억원 손배고소하고 출처도 없는 코로나백신 들여온다카고 문재인과 민주당부터 백신맞아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