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초등학교까지는 열심히 성당을 다녔.고 세례도 받았어요..
대학과 직장 때문에 서울생활한지 10년이 다 되었는데
다시 성당을 다니고 싶은데 첫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네요
가서 미사보는 곳에 조용히 앉아있어야 할지..
수녀님한테 가서 저 처음왔는데요.. 라고 말해야 할지..^^;;;
어떻게 다시 돌아가죠?
저희 집에서 대림동성당이 가까워 나가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나서.. 망설이고 있어요..
처음 미사 보기가 어려운지요? 공감합니다.
필자 도민고의 경우는 모태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지난 20년 넘도록 그 어느날 성모님 은사로 회두(회심을 위하여 머리부터 돌아보는 것)한 뒤 그나마 선데이 신자 명맥을 유지하려 주일 미사를 절대 빠질 수 없는 입장이지만 세 개의 미사인 크리스마스(그리스도미사)를 본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공감합니다.
언젠가 어느 신부님과 늦은 밤, 방금 전 포장마차 국수 나눔을 지나 술 한잔 나누며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피곤하실텐데 아침 미사를 집전하시지요? 나는 집에가서 푹 쉴랍니다" 하니 신부님이 복수의 칼날을 갈으시며 잠시 머뭇하시더니 응답하셨지요.
"미사는 보는 것이 아니라 참례하는 것입니다..."
처음 미사 보러 가기가 어렵다는 임도 이 말씀을 기억하심이 어떨까요?
그런가 하면 어느 수녀님께서 미사에 대한 강론중 잠시 하신 말씀으로 우리에게 던진 질문 한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 성당을 제일 먼저 입당하면 무엇부터 바라봐야 할까요?"
이에 여러가지 응답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수녀님께서는 "미사 입당시 가장 먼저 바라봐야 할 것은 '그리스도 제대'랍니다"라고 말씀하셨지요.
도민고는 임의 그런한 것을 공감한다고 하였습니다. 공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너와 나의 느낌이 같다'라는 뜻이라 합니다. 미사는 때때로 고행과 피로가 겹칠 수 있는 우리에게 유일한 돌파구이자 안식을 주시는 완전한 기도로서 첫 크리스마스이자 두 번째 크리스마스인 예수님의 수난을 통한 부활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이 두가지를 합한 세번째 크리스마스는 멀까요? 가까울까요?
임께서 그러하시듯 필자 또한 한 순간 성당을 열심히 다녔고 세례의 은총에 감복하여 구름을 탄 손오공처럼 성당으로 집으로 훨훨 날아다니던 추억 새롭습니다. 시골에서 서울 생활로 10년을 향해 걸어오셨나보군요.
하느님은 분노에 더디시기에 우리의 조급한 그것들이 스스로 막고있는 성당문 앞에서 기다려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이 우리 어머니와 같은 밀알 동호회 요안나 자매님 부친께서 오랜 암 투병을 지나 입관 예절 주인공으로 임하시는데 필자는 왜 그렇게 남편을 하늘로 보내시고 코 흘리게 그 시절 다방의 공짜 신문보던 아저씨들 때문에 통금 수 없이 지나도 100% 대문 앞에서 기다려주시던 요안나 어머니가 생각날까요?
미사는 이처럼 내가 참례하는 것도 맞는듯 하면서 아니오, 다만 우리가 하느님 품에 안겨 그 평화의 숨결을 나눔입니다. 때론 임께서 말씀하신 그것처럼 조용히 앉아있을 때 코 끝을 스치는 바람결조차 주님과 나의 평화의 데이트를 축복해 주겠지요.
다시 성당을 다니고 싶은데 첫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노래를 못 부른다 단정하는 사람들이 모든이와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걸작품인 것을 부정하는 인간의 고정관념 및 선입견등에 얽메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 입당시 그리스도 제대를 제일 먼저 바라봅니다. 임의 경우도 다시 미사 참례를 맛들이면 또는 절대 미사 참례를 궐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하느님과 함께 약정한다 하더라도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다시 수반하겠지요.
그렇게 과거와 미래로 도둑맞지 않기 위하여 오늘 우리는 이 순간에 모여있습니다.
지금 곧바로 눈을 감아 보세요.
그리고 그 분심을 조용히 침묵안으로 초대해보세요.
생각을 침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거룩한 침묵으로 내게 온 너를 강물같은 평화의 침묵으로 인도해 주시겠지요?
나의 죽은 침묵이 산 침묵으로 부활하기 시작하는 것이 또한 미사입니다.
데이빗 윌리암스가 그랬다지요?
생각을 조심하라 말이 되기 때문이다.
말을 조심하라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행위를 조심하라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습관을 조심하라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라고요.
그런데 이러한 격언조차 지금의 노래를 안 부르고 있는 것처럼(성당 교형들 미사곡 연습시 꿀먹은 벙어리가 많음^^) 우리가 참례가 아닌 보는 것으로 그친다면 하나의 율법 및 바이사이 기질 충족에 그치지 않는 결과도 초래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것을 더욱 부드럽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그러하니 저 조언을 다시 한 번 하느님 음성으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첫 크리스마스와 두번째 크리스마스 여정을 밟고 계신 수녀님께 "저 처음 왔는데요"라는 고백도 무척 반가운 영적 선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타인들처럼 수녀님을 귀찬케 하진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하느님께 감사하는 작은 선물의 마음으로 그렇게 인사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어떻게 다시 성당으로 돌아가죠?라고 물으셨는데 지난 수년간 미사를 향할 때 필자 역시 의무감과 해치움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안고 임이 주인공 되어 가시도록 해보십시오. 필자 경우는 성모님 은사 관계로 나중에 절두산 미사곡까지 여전히 제대에 올라 홀로 7년째 부르고 있기에 의무감이 많았는데 외롭기보다 다만 행복한 것은 왜일까요? 그것을 다시 평화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임의 집에서 대림동성당이 가까워 오며 가며 하고 싶다는 것, 주님 또한 임만을 믿으시기에 가까운 임을 거룩한 그 문 앞에서 고대하고 계실 것입니다. 조급한 우리들과 달리 지고 지순과 완전하신 사랑으로 너와 나의 헤어짐을 서글퍼하시며 기다리시기에 그 용기를 계속하여 기도로서 나눈다면 좋은 결과 이어질 것입니다.
언제 한 번 대림동 근처 절두산 성지 미사도 놀러 오세요. 연중 8주일 27일(다음날이 법정스님 열반 기념일이군요) 오전 10시 미사곡이 또다시 당번인데 오시어 아는척 하시면 순교자 현양회관의 유난히 맛있는 자판기 커피와 함께 데이트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다른건 모르겠으나 그리스도 미사 은총에 대한 공감을 더욱 주님과의 동의화로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우리들의 힘과 용기 더해질 것입니다.
공감 : 느낌이 같다.
동감 : 느낌이 달라도 생각이 같다.
동의 : 느낌과 생각이 달라도 너와 함께할 수 있다.
이 세가지 묵상 자료는 임의 미사 참례를 더욱 주님안에서 행복하게 이끌어 주시는 은사로 이어지겠는데 오늘날 50%의 이혼률로 치닿는 우리와 자녀들에게도, 보다 어둠의 세력인 내 자아들과의 투쟁에서도 승리의 탄알을 제공할 것입니다. 돌아가신 성모성심 본당의 주임 신부님이셨던 김몽은 사도 요한 신부님께서 '사랑의 총'은 '용서와 화해의 탄창'으로 이루어졌다는 고백이 생각남은 왜일까요?